||<-2>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115deg, #cd313a 50%, #0047a0 50%)" '''[[독립유공자|{{{#ffffff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br] {{{#ffffff '''{{{+1 제갈윤신}}}'''[br]'''諸葛允信'''}}}}}} || ||<|2> '''출생''' ||미상 || ||[[경상도]] [[영덕군|영덕현]] (현 [[경상북도]] [[영덕군]]) || ||<|2> '''사망''' ||[[1910년]] [[1월]] || ||[[강원도]] [[평강군]] 목전면 산성곡[br](현 [[강원도(북한)|강원도]] [[세포군]]) || || '''상훈''' ||건국훈장 애국장 || [목차] [clearfix] == 개요 ==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 생애 == 제갈윤신은 경상도 영덕현(현 경상북도 영덕군) 출신의 대한제국군 군인으로, 1907년 [[정미7조약]]으로 인해 군대가 강제해산되자 의병장 [[연기우]]의 아장(亞將)을 맡아 [[강화군]], [[연천군|삭녕군]] 등 경기도 각지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였다. 이후 1910년 1월 의병장 현청농(玄靑農)·김공선(金公先) 등과 협의해 삭녕군 세금수송 일자를 탐지한 후 의병 30여 명을 거느리고 수욱진 부근 송림 사이에 매복하였다가 세무관리와 일제 기마헌병대를 기습하여 사살했으며, [[철원군]], [[평강군]] 등지에서 일본군을 상대로 4차례 유격전을 벌였다. 그러나 1910년 1월경 강원도 평강군 목전면(현 세포군) 산성곡에서 일본군의 야습을 받고 최후까지 싸우다 전사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제갈윤신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조선 의병장]][[분류:남양 제갈씨]][[분류:영덕군 출신 인물]][[분류:1910년 사망]][[분류:건국훈장 애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