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제 군주)] |||||| '''{{{#ece5b6 제(齊)나라 22대 국군 {{{+1 혜공}}} 惠公}}}''' |||||||||| |||| '''[[성씨|{{{#ece5b6 성}}}]]''' |||| 강(姜) || |||| '''[[본관|{{{#ece5b6 씨}}}]]''' |||| 여(呂) || |||| '''[[휘|{{{#ece5b6 휘}}}]]''' |||| 원(元) || |||| '''{{{#ece5b6 아버지}}}''' |||| [[제환공]](齊桓公) 강소백(姜小白) || || '''{{{#ece5b6 생몰 기간}}}''' || 음력 || 기원전 ???년 ~ 기원전 599년|| || '''{{{#ece5b6 재위 기간}}}''' || 음력 || 기원전 608년 ~ 기원전 599년|| [목차] == 개요 == [[제(춘추전국시대)|제나라]]의 제22대 [[군주]]. [[제환공]]의 아들. [[공자무휴]]의 이복 동생이자 [[제효공]], [[제소공]], [[제의공]]의 이복 형. [[제경공(23대)|제경공]]의 아버지. 그는 용식과 병융이 제 의공을 [[살해]]하고, 그를 추대해 [[제나라]]의 군주가 되었다.~~아버지도 꽤 오래 살았고 형제들이 35년 가까이 왕위에 올라 있었으면 이 사람은 도대체 몇 살에 즉위한거임??~~ == 재위 기간 == 제 혜공 원년([[기원전]] 608년) 봄, [[노나라]] 공자 축이 제나라에서 아내를 맞았다. 노나라의 실세 삼환(三桓) 중 계씨(季氏)의 우두머리 계손행보가 제나라에 예물을 바쳤다. 제 혜공 2년(기원전 607년) 여름, 제 혜공은 [[노선공]]과 평구에서 회맹했다. 제 혜공 3년(기원전 606년) 가을, 적적(赤狄)이 침입했다. 그것을 왕자 성보가 쳐서 그 추장을 죽이고 그 머리를 북문에 매달았다.[* 왕자 성보는 제 환공 때부터 활약한 인물이다. 즉 이때는 [[노장]]이라는거다.] 제 혜공 4년(기원전 605년) 여름, 적적이 재침입하자 그것을 막았다. 가을에는 노 선공이 방문했다. 제 혜공 5년(기원전 604년) 봄, 노 선공이 제 혜공의 초대를 받았다. 제나라의 대부 고고(高固)가 그것을 말렸다. 그리고 그는 노 소공에게 딸인 숙희와 결혼하자고 했고, 가을 9월 숙희와 결혼하였다. 제 혜공 7년(기원전 602년) 여름, 제나라가 내(萊)나라를 쳤다.[* 내나라는 말이 나라지 사실은 [[동이족]]의 나라다. 노파심에 [[환빠]]들에게 말하자면 한민족과 아무 관련없다.] 제 혜공 10년(기원전 599년) 여름, 제 혜공이 죽자 최저(崔杼)[* 이 양반이 경봉(慶封)과 함께 제나라의 국정을 농단했다. 그리고 경봉은 [[제경공(26대)|제경공]](齊景公) 때 최저를 살해하고 권력을 장악했으나 경봉의 천하도 오래 가지 않아 경봉이 사냥 나간 틈에 고씨와 국씨 그리고 노포별 형제가 경봉의 일족을 주살하니 경봉은 제나라에서 살 수 없게 되어 [[오(춘추시대)|오(吳)나라]]로 도망갔다. 그러나 그 경봉은 [[초영왕]]이 오나라를 칠 때 동생이며 나중에 [[초평왕]]이 되는 웅기질(熊棄疾)이 경봉을 죽였다. 참고로 경봉의 존재 자체가 초 영왕이 오나라를 치는 명분이었다.]]는 혜공의 총애를 받아 국씨와 고씨는 그를 꺼려 그를 몰아내어 [[위나라|위(衛)나라]]로 갔다. 그리고 아들 강무야(姜無野)가 즉위하니 그가 바로 [[제경공(23대)|제경공(齊頃公)]]이다. [각주] [[분류:제나라의 군주]][[분류:기원전 599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