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제13대 국회의원 선거]][[분류:경상북도의 정치]] [include(틀:상위 문서, top1=제13대 국회의원 선거/지역구 국회의원)] [목차] == 개요 == 본 [[항목]]은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의 [[경상북도]] [[지역구]] [[선거]] 결과를 정리하는 항목이다. [[선거구]]는 가나다순이 아니라 '''지역 선거관리위원회가 설치된 순서'''로 한다. 이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쓰는 공식 발표법이기 때문이다. == 결과 == === [[포항시]] === ||<-4> {{{#ffffff {{{+1 '''포항시'''}}}}}}[br]{{{#ffffff 포항시 일원}}} || ||<|2>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 '''정당''' || '''득표율''' || '''비고''' || ||<|2> {{{#ffffff {{{+5 '''1'''}}}}}} || '''[[이진우(1934)|이진우]](李珍雨)''' || '''59,433''' || '''1위''' || || [include(틀:민주정의당)] || '''43.46%''' || '''당선''' || ||<|2> {{{#ffffff {{{+5 '''2'''}}}}}} || [[최수환(정치인)|최수환]](崔守桓) || 21,105 || 3위 || || [include(틀:통일민주당)] || 15.43% || 낙선 || ||<|2> {{{#000000 {{{+5 ~~'''3'''~~}}}}}} || ~~최영만(崔榮萬)~~ || - ||<|2> 사퇴 || || [include(틀:평화민주당)] || - || ||<|2> {{{#ffffff {{{+5 '''4'''}}}}}} || [[이성수(1928)|이성수]](李聖秀) || 46,245 || 2위 || || [include(틀:신민주공화당)] || 33.82% || 낙선 || ||<|2> {{{#ffffff {{{+5 '''5'''}}}}}} || 이진탁(李鎭卓) || 1,360 || 7위 || || [include(틀:신한민주당)] || 0.99% || 낙선 || ||<|2> {{{#ffffff {{{+5 '''6'''}}}}}} || 김병구(金丙久) || 5,843 || 5위 || || [include(틀:한겨레민주당)] || 4.27% || 낙선 || ||<|2> {{{#ffffff {{{+5 '''7'''}}}}}} || 이성석(李聖錫) || 2,738 || 6위 || || [include(틀:무소속)] || 2.00% || 낙선 || ||<|3> '''계''' || '''선거인 수''' || 168,833 ||<|3> '''투표율'''[br]81.89% || || '''투표 수''' || 138,259 || || '''무효표 수''' || 1,535 || 3명의 전직 의원(민정당 [[이진우(1934)|이진우]], 민주당 [[최수환(정치인)|최수환]], 공화당 [[이성수(1928)|이성수]])이 맞붙었다. 변호사인 민정당 이진우 후보가 승리했다. === [[경주시]] === ||<-4> {{{#ffffff {{{+1 '''경주시'''}}}}}}[br]{{{#ffffff 경주시 일원}}} || ||<|2>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 '''정당''' || '''득표율''' || '''비고''' || ||<|2> {{{#ffffff {{{+5 '''1'''}}}}}} || '''[[김일윤]](金一潤)''' || '''25,400''' || '''1위''' || || [include(틀:민주정의당)] || '''39.28%''' || '''{{{#000000 당선}}}''' || ||<|2> {{{#ffffff {{{+5 '''2'''}}}}}} || 김양호(金良浩) || 13,230 || 3위 || || [include(틀:통일민주당)] || 20.46% || 낙선 || ||<|2> {{{#000000 {{{+5 '''3'''}}}}}} || [[이상두]](李相斗) || 1,088 || 5위 || || [include(틀:평화민주당)] || 1.68% || 낙선 || ||<|2> {{{#ffffff {{{+5 '''4'''}}}}}} || [[임진출]](林鎭出) || 20,333 || 2위 || || [include(틀:신민주공화당)] || 31.44% || 낙선 || ||<|2> {{{#ffffff {{{+5 '''5'''}}}}}} || 박광도(朴廣度) || 874 || 7위 || || [include(틀:무소속)] || 1.35% || 낙선 || ||<|2> {{{#ffffff {{{+5 '''6'''}}}}}} || 백수근(白水根) || 2,772 || 4위 || || [include(틀:무소속)] || 4.28% || 낙선 || ||<|2> {{{#ffffff {{{+5 '''7'''}}}}}} || 정강주(鄭康珠) || 962 || 6위 || || [include(틀:무소속)] || 1.48% || 낙선 || ||<|3> '''계''' || '''선거인 수''' || 79,158 ||<|3> '''투표율'''[br]82.38% || || '''투표 수''' || 65,213 || || '''무효표 수''' || 554 || 현역 의원이자 경주에서 여러 학교를 운영하는 민정당 [[김일윤]] 후보가 승리했다. 2번째로 국회의원에 도전하는 선거에서 비록 낙선했지만, 공화당 [[임진출]] 후보도 희소한 여성 정치인치고는 보수적인 경주에서 꽤 선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 [[김천시(선거구)|김천시·금릉군]] === ||<-4> {{{#ffffff {{{+1 '''김천시·금릉군'''}}}}}}[br]{{{#ffffff 김천시, 금릉군 일원}}} || ||<|2>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 '''정당''' || '''득표율''' || '''비고''' || ||<|2> {{{#ffffff {{{+5 '''1'''}}}}}} || '''[[박정수(정치인)|박정수]](朴定洙)''' || '''54,067''' || '''1위''' || || [include(틀:민주정의당)] || '''63.91%''' || '''당선''' || ||<|2> {{{#ffffff {{{+5 '''2'''}}}}}} || 박희동(朴喜東) || 20,922 || 2위 || || [include(틀:통일민주당)] || 24.73% || 낙선 || ||<|2> {{{#000000 {{{+5 '''3'''}}}}}} || 정정문(鄭正文) || 2,957 || 4위 || || [include(틀:평화민주당)] || 3.5% || 낙선 || ||<|2> {{{#ffffff {{{+5 '''4'''}}}}}} || 조석환(曺錫煥) || 6,651 || 3위 || || [include(틀:신민주공화당)] || 7.86% || 낙선 || ||<|3> '''계''' || '''선거인 수''' || 99,488 ||<|3> '''투표율'''[br]86.20% || || '''투표 수''' || 85,761 || || '''무효표 수''' || 1,164 || 주요 정당 공천을 받지 못하고 줄곧 무소속으로 출마했고, 그럼에도 2승 1패를 기록한 [[박정수(정치인)|박정수]] 전 의원이 이번에는 민정당 공천을 받아 출마했다. 민정당의 텃밭에다가 본인의 인지도까지 더해 큰 표 차이로 승리했다. === [[안동시(선거구)|안동시]] === ||<-4> {{{#ffffff {{{+1 '''안동시'''}}}}}}[br]{{{#ffffff 안동시 일원}}} || ||<|2>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 '''정당''' || '''득표율''' || '''비고''' || ||<|2> {{{#ffffff {{{+5 '''1'''}}}}}} || [[권중동]](權重東) || 21,854 || 2위 || || [include(틀:민주정의당)] || 41.73% || 낙선 || ||<|2> {{{#ffffff {{{+5 '''2'''}}}}}} || '''[[오경의]](吳景義)''' || '''23,258''' || '''1위''' || || [include(틀:통일민주당)] || '''44.41%''' || '''{{{#000000 당선}}}''' || ||<|2> {{{#FFFFFF {{{+5 '''3'''}}}}}} || [[김노식]](金魯植) || 6,545 || 3위 || || [include(틀:한겨레민주당)] || 12.49% || 낙선 || ||<|2> {{{#ffffff {{{+5 '''4'''}}}}}} || 김성현(金聖顯) || 705 || 4위 || || [include(틀:사회민주당(1985년))] || 1.34% || 낙선 || ||<|3> '''계''' || '''선거인 수''' || 65,251 ||<|3> '''투표율'''[br]81.02% || || '''투표 수''' || 52,864 || || '''무효표 수''' || 502 || 민정당 텃밭인데다가 [[안동 권씨]] 문중 파워까지 안고 있던 민정당 [[권중동]] 후보의 우세가 예상되었다. 게다가 초대 [[노동부장관]]을 지내는 등 정치적 비중도 나름 있는 후보였다. 하지만 선거 이틀 전 권 후보 측에서 금품을 살포한 사실이 포착되면서 여론이 급변했다.[* 민정당에서는 권중동 후보에 대한 제명까지 논의되었으나 실제 제명까지 이어지진 않았다.] 개표 결과 통일민주당 [[오경의]] 후보가 막판 역전에 성공해 당선되는 대이변이 벌어졌다. === [[구미시]] === ||<-4> {{{#ffffff {{{+1 '''구미시'''}}}}}}[br]{{{#ffffff 구미시 일원}}} || ||<|2>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 '''정당''' || '''득표율''' || '''비고''' || ||<|2> {{{#ffffff {{{+5 '''1'''}}}}}} || '''[[박재홍(1941)|박재홍]](朴在鴻)''' || '''31,481''' || '''1위''' || || [include(틀: 민주정의당)] || '''45.28%''' || '''당선''' || ||<|2> {{{#ffffff {{{+5 '''2'''}}}}}} || 박도태(朴道泰) || 8,831 || 3위 || || [include(틀:통일민주당)] || 12.70% || 낙선 || ||<|2> {{{#ffffff {{{+5 '''3'''}}}}}} || [[박준홍]](朴埈弘) || 29,198 || 2위 || || [include(틀:신민주공화당)] || 42.00% || 낙선 || ||<|3> '''계''' || '''선거인 수''' || 89,850 ||<|3> '''투표율'''[br]78.18% || || '''투표 수''' || 70,244 || || '''무효표 수''' || 734 || 현역 재선 의원이자 [[박정희]] 전 대통령의 조카인 민정당 [[박재홍(1941)|박재홍]] 후보가 출마했는데, 이에 맞상대로 박정희의 또 다른 조카인 [[박준홍]] 전 대한축구협회 회장이 공화당 후보로 출마했다. 사촌끼리의 선거전이라는 촌극이 벌어졌다고 두 후보를 모두 비난하는 여론도 있었다. 선거 결과, 접전끝에 그래도 현역 의원이고 여당 조직력이 있는 박재홍 후보가 3% 차이로 당선되었다. === [[영주시(선거구)|영주시·영풍군]] === ||<-4> {{{#ffffff {{{+1 '''영주시·영풍군'''}}}}}}[br]{{{#ffffff 영주시, 영풍군 일원}}} || ||<|2>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 '''정당''' || '''득표율''' || '''비고''' || ||<|2> {{{#ffffff {{{+5 '''1'''}}}}}} || '''[[김진영(1939)|김진영]](金晉榮)''' || '''39,354''' || '''1위''' || || [include(틀:민주정의당)] || '''50.19%''' || '''{{{#000000 당선}}}''' || ||<|2> {{{#ffffff {{{+5 '''2'''}}}}}} || [[전우창]](全遇昌) || 4,687 || 3위 || || [include(틀:신민주공화당)] || 5.97% || 낙선 || ||<|2> {{{#ffffff {{{+5 '''3'''}}}}}} || [[김창근]](金昌槿) || 34,367 || 2위 || || [include(틀:무소속)] || 43.83% || 낙선 || ||<|3> '''계''' || '''선거인 수''' || 94,534 ||<|3> '''투표율'''[br]84.06% || || '''투표 수''' || 79,462 || || '''무효표 수''' || 1,054 || 민정당은 지역 농축산업자인 [[김진영(1939)|김진영]] 후보를 공천했다. 한편 공화당 시절 영주에서만 4번 당선된 [[김창근]] 전 의원은 [[김영삼]] 민주당 총재와 매우 가까웠는데, [[신군부]] 출범 이후 정치규제를 받자 진영을 바꿔 김영삼과 민추협 활동에 나선다. [[제13대 대통령 선거]]때만해도 김영삼을 도왔으나, 국회의원 선거때에는 아무래도 경상북도가 야당세가 약하다고 생각했는지 무소속 후보로 출마했다. 선거 결과, 민정당 [[김진영(1939)|김진영]] 후보가 6.4% 차이로 당선되었다. 김창근 전 의원은 낙선했고 진영도 옮겼지만, 의외로 [[노태우 정부]]에 의해 교통부장관으로 임명되는데, 이후 노태우와 김영삼을 오가며 [[3당 합당]]의 가교 역할을 한다. === [[영천시]]·영천군 === ||<-4> {{{#ffffff {{{+1 '''영천시·영천군'''}}}}}}[br]{{{#ffffff 영천시, 영천군 일원}}} || ||<|2>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 '''정당''' || '''득표율''' || '''비고''' || ||<|2> {{{#ffffff {{{+5 '''1'''}}}}}} || '''[[정동윤(정치인)|정동윤]](鄭東允)''' || '''37,237''' || '''1위''' || || [include(틀:민주정의당)] || '''51.38%''' || '''{{{#000000 당선}}}''' || ||<|2> {{{#ffffff {{{+5 '''2'''}}}}}} || [[권오태]](權五台) || 33,715 || 2위 || || [include(틀:통일민주당)] || 46.52% || 낙선 || ||<|2> {{{#000000 {{{+5 '''3'''}}}}}} || [[조병환]](曺丙煥) || 1,511 || 3위 || || [include(틀:평화민주당)] || 2.08% || 낙선 || ||<|3> '''계''' || '''선거인 수''' || 87,787 ||<|3> '''투표율'''[br]83.70% || || '''투표 수''' || 73,477 || || '''무효표 수''' || 1,014 || 현역 전국구 의원인 민정당 [[정동윤(정치인)|정동윤]] 후보와 현역 민주당 지역구 의원인 [[권오태]] 후보가 치열하게 맞붙었다. 권오태 의원은 여당 텃밭에 출마했지만, 구여당인 [[민주공화당]] 출신이고 아무래도 지역구 다선의원인지라 전국구 의원을 지냈던 여당 후보와 인지도 측면에서 앞서며 접전 승부를 벌였다. 그래도 여당의 조직력을 앞세운 민정당 [[정동윤(정치인)|정동윤]] 후보가 5% 차이로 신승했다. === [[상주시(선거구)|상주시·상주군]] === ||<-4> {{{#ffffff {{{+1 '''상주시·상주군'''}}}}}}[br]{{{#ffffff 상주시, 상주군 일원}}} || ||<|2>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 '''정당''' || '''득표율''' || '''비고''' || ||<|2> {{{#ffffff {{{+5 '''1'''}}}}}} || '''[[김근수(정치인)|김근수]](金瑾洙)''' || '''46,141''' || '''1위''' || || [include(틀:민주정의당)] || '''51.92%''' || '''당선''' || ||<|2> {{{#ffffff {{{+5 '''2'''}}}}}} || [[이재옥]](李在玉) || 22,686 || 2위 || || [include(틀:통일민주당)] || 25.52% || 낙선 || ||<|2> {{{#ffffff {{{+5 '''3'''}}}}}} || [[정휘동(정치인)|정휘동]](鄭輝東) || 20,034 || 3위 || || [include(틀:무소속)] || 22.54% || 낙선 || ||<|3> '''계''' || '''선거인 수''' || 106,089 ||<|3> '''투표율'''[br]85.16% || || '''투표 수''' || 90,347 || || '''무효표 수''' || 1,486 || [[중앙정보부]]와 [[국가안전기획부]]에서 줄곧 경력을 쌓은 민정당 [[김근수(정치인)|김근수]] 후보가 당선되었다. 민정당 공천을 받지 못한 [[정휘동(정치인)|정휘동]] 의원이 무소속 후보로 출마해 친여성향 표를 가르는 악재 속에서도 과반 득표율을 넘기며 압승했다. === 점촌시·[[문경군]] === ||<-4> {{{#ffffff {{{+1 '''점촌시·문경군'''}}}}}}[br]{{{#ffffff 점촌시, 문경군 일원}}} || ||<|2>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 '''정당''' || '''득표율''' || '''비고''' || ||<|2> {{{#ffffff {{{+5 '''1'''}}}}}} || 이영화(李永和) || 27,474 || 2위 || || [include(틀:민주정의당)] || 42.21% || 낙선 || ||<|2> {{{#ffffff {{{+5 '''2'''}}}}}} || '''[[신영국]](申榮國)''' || '''28,177''' || '''1위''' || || [include(틀:통일민주당)] || '''43.29%''' || '''{{{#000000 당선}}}''' || ||<|2> {{{#ffffff {{{+5 '''3'''}}}}}} || 고목훈(高睦勳) || 9,434 || 3위 || || [include(틀:신민주공화당)] || 14.49% || 낙선 || ||<|3> '''계''' || '''선거인 수''' || 78,623 ||<|3> '''투표율'''[br]85.96% || || '''투표 수''' || 66,184 || || '''무효표 수''' || 1,099 || 금속공작기계 전문업체인 주식회사 남북을 경영하는 민주당 [[신영국]] 후보가, 관료 출신인 민정당 이영화 후보를 1% 차이로 꺾고 당선되었다. 안동의 오경의 당선자와 함께 대구-경북 지역에서 통일민주당의 유이한 당선자이다. === [[달성군]]·[[고령군]] === ||<-4> {{{#ffffff {{{+1 '''달성군·고령군'''}}}}}}[br]{{{#ffffff 달성군, 고령군 일원}}} || ||<|2>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 '''정당''' || '''득표율''' || '''비고''' || ||<|2> {{{#ffffff {{{+5 '''1'''}}}}}} || [[이용택(1930)|이용택]](李龍澤) || 29,154 || 2위 || || [include(틀:민주정의당)] || 41.46% || 낙선 || ||<|2> {{{#ffffff {{{+5 '''2'''}}}}}} || 배영수(裵泳壽) || 5,346 || 3위 || || [include(틀:통일민주당)] || 7.60% || 낙선 || ||<|2> {{{#ffffff {{{+5 '''3'''}}}}}} || '''[[구자춘]](具滋春)''' || '''35,818''' || '''1위''' || || [include(틀:신민주공화당)] || '''50.93%''' || '''당선''' || ||<|3> '''계''' || '''선거인 수''' || 86,315 ||<|3> '''투표율'''[br]82.66% || || '''투표 수''' || 71,352 || || '''무효표 수''' || 1,034 || 군 출신이고 [[박정희 정부]]시절 [[서울시장]]과 [[내무부 장관]]등 화려한 관료생활을 한 공화당 [[구자춘]] 후보는, 5공 시절에는 정치규제등으로 인해 야인으로 지내다가 이번 국회의원 선거를 통해 복귀를 노렸다. 민정당은 현역 의원인 [[이용택(1930)|이용택]] 후보를 공천했다. [[구자춘]] 후보는 비록 선거 출마는 이번이 처음이지만, 관료 시절의 업적과 중량감을 내세워 소속 정당의 낮은 당세에도 불구하고 당선되었다. === [[군위군]]·[[선산군]] === ||<-4> {{{#ffffff {{{+1 '''군위군·선산군'''}}}}}}[br]{{{#ffffff 군위군, 선산군 일원}}} || ||<|2>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 '''정당''' || '''득표율''' || '''비고''' || ||<|2> {{{#ffffff {{{+5 '''1'''}}}}}} || '''[[김윤환(1932)|김윤환]](金潤煥)''' || '''50,692''' || '''1위''' || || [include(틀:민주정의당)] || '''76.16%''' || '''당선''' || ||<|2> {{{#ffffff {{{+5 '''2'''}}}}}} || 윤창한(尹昌漢) || 7,689 || 3위 || || [include(틀:통일민주당)] || 11.55% || 낙선 || ||<|2> {{{#ffffff {{{+5 '''3'''}}}}}} || 구문장(具文藏) || 8,171 || 2위 || || [include(틀:무소속)] || 12.27% || 낙선 || ||<|3> '''계''' || '''선거인 수''' || 73,492 ||<|3> '''투표율'''[br]91.78% || || '''투표 수''' || 67,452 || || '''무효표 수''' || 900 || 민정당의 실력자이자 [[대통령비서실장]]을 지낸 민정당 [[김윤환(1932)|김윤환]] 후보가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되었다. === [[의성군]] === ||<-4> {{{#ffffff {{{+1 '''의성군'''}}}}}}[br]{{{#ffffff 의성군 일원}}} || ||<|2>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 '''정당''' || '''득표율''' || '''비고''' || ||<|2> {{{#ffffff {{{+5 '''1'''}}}}}} || '''[[정창화(정치인)|정창화]](鄭昌和)''' || '''38,345''' || '''1위''' || || [include(틀: 민주정의당)] || '''57.84%''' || '''당선''' || ||<|2> {{{#ffffff {{{+5 '''2'''}}}}}} || 양재범(梁在範) || 4,475 || 3위 || || [include(틀:통일민주당)] || 6.75% || 낙선 || ||<|2> {{{#ffffff {{{+5 '''3'''}}}}}} || 김상윤(金相允) || 23,464 || 2위 || || [include(틀:신민주공화당)] || 35.39% || 낙선 || ||<|3> '''계''' || '''선거인 수''' || 78,144 ||<|3> '''투표율'''[br]86.07% || || '''투표 수''' || 67,259 || || '''무효표 수''' || 975 || 민정당 [[정창화(정치인)|정창화]] 후보가, 김종필 공화당 총재의 최측근인 공화당 김상윤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정창화 당선자는 민주공화당 당료 출신으로 재선 의원이지만, 두 번 모두 전국구 의원으로 당선되었기에 지역구 출마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 안동군 === ||<-4> {{{#ffffff {{{+1 '''안동군'''}}}}}}[br]{{{#ffffff 안동군 일원}}} || ||<|2>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 '''정당''' || '''득표율''' || '''비고''' || ||<|2> {{{#ffffff {{{+5 '''1'''}}}}}} || '''[[류돈우]](柳惇佑)''' || '''29,230''' || '''1위''' || || [include(틀:민주정의당)] || '''51.66%''' || '''{{{#000000 당선}}}''' || ||<|2> {{{#ffffff {{{+5 '''2'''}}}}}} || 정석교(鄭析敎) || 4,729 || 4위 || || [include(틀:통일민주당)] || 8.35% || 낙선 || ||<|2> {{{#373a3c {{{+5 '''3'''}}}}}} || 김재환(金在煥) || 1,212 || 5위 || || [include(틀:평화민주당)] || 2.14% || 낙선 || ||<|2> {{{#FFFFFF {{{+5 '''4'''}}}}}} || [[김시명]](金時明) || 12,860 || 2위 || || [include(틀:신민주공화당)] || 22.73% || 낙선 || ||<|2> {{{#FFFFFF {{{+5 '''5'''}}}}}} || [[박해충]](朴海充) || 8,544 || 3위 || || [include(틀:무소속)] || 15.10% || 낙선 || ||<|3> '''계''' || '''선거인 수''' || 68,249 ||<|3> '''투표율'''[br]84.22% || || '''투표 수''' || 57,480 || || '''무효표 수''' || 905 || [[한국주택은행|주택은행]]장을 역임했고 정치신인인 민정당 [[류돈우]] 후보가 무난히 당선되었다. === [[청송군]]·[[영덕군]] === ||<-4> {{{#ffffff {{{+1 '''청송군·영덕군'''}}}}}}[br]{{{#ffffff 청송군, 영덕군 일원}}} || ||<|2>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 '''정당''' || '''득표율''' || '''비고''' || ||<|2> {{{#ffffff {{{+5 '''1'''}}}}}} || '''[[황병우]](黃昞禹)''' || '''30,440''' || '''1위''' || || [include(틀: 민주정의당)] || '''44.54%''' || '''{{{#000000 당선}}}''' || ||<|2> {{{#ffffff {{{+5 '''2'''}}}}}} || [[김찬우(정치인)|김찬우]](金燦于) || 29,992 || 2위 || || [[통일민주당|[include(틀:통일민주당)]]] || 43.88% || 낙선 || ||<|2> {{{#ffffff {{{+5 '''3'''}}}}}} || [[남상걸]](南相杰) || 6,315 || 3위 || || [[신민주공화당|[include(틀:신민주공화당)]]] || 9.24% || 낙선 || ||<|2> {{{#ffffff {{{+5 '''4'''}}}}}} || 박종욱(朴鍾郁) || 1,588 || 4위 || || [include(틀: 제3세대당)] || 2.32% || 낙선 || ||<|3> '''계''' || '''선거인 수''' || 80,852 ||<|3> '''투표율'''[br]85.59% || || '''투표 수''' || 69,205 || || '''무효표 수''' || 870 || [[청송군]]과 [[영덕군]]의 소지역주의 구도로 선거가 치러졌다. 청송군 출신인 민정당 [[황병우]] 후보와 영덕군 출신인 민주당 [[김찬우(정치인)|김찬우]] 후보가 맞붙었다. 황병우 후보는 [[1987년]] [[신한민주당|신민당]]을 탈당해 여당인 민정당으로 옮겨간 철새이기에 비판을 받기도 했다. 영덕군이 청송군보다 인구가 조금 더 많으나, 청송군의 결집력이 더 강했다. 민정당 황병우 후보가 448표차로 민주당 김찬우 후보를 겨우 꺾고 당선되었다. === [[영양군]]·[[봉화군]] === ||<-4> {{{#ffffff {{{+1 '''영양군·봉화군'''}}}}}}[br]{{{#ffffff 영양군, 봉화군 일원}}} || ||<|2>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 '''정당''' || '''득표율''' || '''비고''' || ||<|2> {{{#ffffff {{{+5 '''1'''}}}}}} || '''[[오한구]](吳漢九)''' || '''35,536''' || '''1위''' || || [include(틀:민주정의당)] || '''59.33%''' || '''{{{#000000 당선}}}''' || ||<|2> {{{#ffffff {{{+5 '''2'''}}}}}} || 김경기(金慶起) || 20,569 || 2위 || || [include(틀:통일민주당)] || 34.34% || 낙선 || ||<|2> {{{#000000 {{{+5 '''3'''}}}}}} || 류상기(柳相基) || 3,786 || 3위 || || [include(틀:평화민주당)] || 6.32% || 낙선 || ||<|3> '''계''' || '''선거인 수''' || 70,350 ||<|3> '''투표율'''[br]86.70% || || '''투표 수''' || 60,990 || || '''무효표 수''' || 1,099 || 현역 의원인 민정당 [[오한구]] 후보가 넉넉한 표차로 승리했다. === [[영일군]]·[[울릉군]] === ||<-4> {{{#ffffff {{{+1 '''영일군·울릉군'''}}}}}}[br]{{{#ffffff 영일군, 울릉군 일원}}} || ||<|2>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 '''정당''' || '''득표율''' || '''비고''' || ||<|2> {{{#ffffff {{{+5 '''1'''}}}}}} || '''[[이상득]](李相得)''' || '''47,795''' || '''1위''' || || [include(틀:민주정의당)] || '''51.67%''' || '''당선''' || ||<|2> {{{#ffffff {{{+5 '''2'''}}}}}} || [[박기환(정치인)|박기환]](朴基煥) || 25,652 || 2위 || || [include(틀:통일민주당)] || 27.73% || 낙선 || ||<|2> {{{#ffffff {{{+5 '''3'''}}}}}} || [[서종렬]](徐鍾烈) || 19,051 || 3위 || || [include(틀:무소속)] || 20.59% || 낙선 || ||<|3> '''계''' || '''선거인 수''' || 116,913 ||<|3> '''투표율'''[br]80.52% || || '''투표 수''' || 94,143 || || '''무효표 수''' || 1,645 || 코오롱그룹 전 사장이자 [[이명박]] 전 대통령의 둘째 형인 [[이상득]] 의원이 처음으로 출마한 선거이다. 군 및 관료 출신 비중이 너무 많은 민정당에서 군정 이미지 해소와 총선을 위해 기업인등 다양한 인사들을 영입했는데, 그 중 하나가 이상득 전 사장이었다. 이상득은 건강문제로 육사를 중퇴했기에 [[노태우 정부]]의 일부 인사들과도 친분이 있었다. 포항-영일 일대가 그나마 경북에서는 민주당세가 강한 지역이나, 야당표가 [[박기환(정치인)|박기환]], [[서종렬]] 후보로 나뉘면서 민정당 이상득 후보가 큰 격차로 손쉽게 당선되었다. 물론 득표율이 과반이 넘었으니 야당 후보가 1명이었어도 당선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을 것이다. === [[월성군]] === ||<-4> {{{#ffffff {{{+1 '''월성군'''}}}}}}[br]{{{#ffffff 월성군 일원}}} || ||<|2>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 '''정당''' || '''득표율''' || '''비고''' || ||<|2> {{{#ffffff {{{+5 '''1'''}}}}}} || '''[[황윤기]](黃潤錤)''' || '''42,661''' || '''1위''' || || [include(틀:민주정의당)] || '''56.84%''' || '''{{{#000000 당선}}}''' || ||<|2> {{{#ffffff {{{+5 '''2'''}}}}}} || [[심봉섭(정치인)|심봉섭]](沈鳳燮) || 32,381 || 2위 || || [include(틀:통일민주당)] || 43.15% || 낙선 || ||<|3> '''계''' || '''선거인 수''' || 93,347 ||<|3> '''투표율'''[br]81.65% || || '''투표 수''' || 76,214 || || '''무효표 수''' || 1,172 || 관료 출신인 민정당 [[황윤기]] 후보가, 정통 야당인이자 전직 의원인 민주당 [[심봉섭(정치인)|심봉섭]]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심봉섭 후보도 나름 높은 득표율을 올렸으나, 경북 소선거구에서 당선되기에는 조금 역부족이었다. === [[경산군]]·[[청도군]] === ||<-4> {{{#ffffff {{{+1 '''경산군·청도군'''}}}}}}[br]{{{#ffffff 경산군, 청도군 일원}}} || ||<|2>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 '''정당''' || '''득표율''' || '''비고''' || ||<|2> {{{#ffffff {{{+5 '''1'''}}}}}} || [[박재욱(정치인)|박재욱]](朴在旭) || 41,719 || 2위 || || [include(틀:민주정의당)] || 39.76% || 낙선 || ||<|2> {{{#ffffff {{{+5 '''2'''}}}}}} || [[박정규(1937)|박정규]](朴正圭) || 21,362 || 3위 || || [include(틀:통일민주당)] || 20.36% || 낙선 || ||<|2> {{{#ffffff {{{+5 '''3'''}}}}}} || '''[[이재연]](李在淵)''' || '''41,827''' || '''1위''' || || [include(틀:신민주공화당)] || '''39.87%''' || '''{{{#000000 당선}}}''' || ||<|3> '''계''' || '''선거인 수''' || 132,694 ||<|3> '''투표율'''[br]80.17% || || '''투표 수''' || 106,382 || || '''무효표 수''' || 1,474 || 박재욱 전 의원은 [[한국국민당]]에서 민정당으로 옮겨 출마했으나, 13대 총선 최소표차인 108표 차이로 오히려 국민당의 실질적 후신인 공화당 후보로 출마한 이재연 법무사에게 패했다. 이재연 후보는 3전 4기끝에 민정당 텃밭에서 당선되는 쾌거를 거뒀다. === [[성주군]]·[[칠곡군]] === ||<-4> {{{#ffffff {{{+1 '''성주군·칠곡군'''}}}}}}[br]{{{#ffffff 성주군, 칠곡군 일원}}} || ||<|2>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 '''정당''' || '''득표율''' || '''비고''' || ||<|2> {{{#ffffff {{{+5 '''1'''}}}}}} || '''[[장영철(1936)|장영철]](張永喆)''' || '''44,539''' || '''1위''' || || [include(틀:민주정의당)] || '''56.80%''' || '''{{{#000000 당선}}}''' || ||<|2> {{{#ffffff {{{+5 '''2'''}}}}}} || [[김창환(정치인)|김창환]](金昌煥) || 33,868 || 2위 || || [include(틀:통일민주당)] || 43.19% || 낙선 || ||<|3> '''계''' || '''선거인 수''' || 94,305 ||<|3> '''투표율'''[br]84.66% || || '''투표 수''' || 79,840 || || '''무효표 수''' || 1,433 || [[칠곡군]]과 [[성주군]]의 소지역주의 구도로 선거가 치러졌다. 칠곡군 출신이자 전직 관료인 민정당 [[장영철(1936)|장영철]] 후보와 성주군 출신이자 전직 국회의원인 민주당 [[김창환(정치인)|김창환]] 후보가 맞붙었다. 칠곡군이 성주군보다 인구가 많고, 또 경상북도가 민정당 텃밭인지라 장영철 후보에게 훨씬 유리한 선거전이었다. 덕분에 장영철 후보가 김창환 후보를 13.6% 차이로 꺾고 처음으로 당선되었다. === [[예천군]] === ||<-4> {{{#ffffff {{{+1 '''예천군'''}}}}}}[br]{{{#ffffff 예천군 일원}}} || ||<|2>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 '''정당''' || '''득표율''' || '''비고''' || ||<|2> {{{#ffffff {{{+5 '''1'''}}}}}} || '''[[유학성]](兪學聖)''' || '''31,196''' || '''1위''' || || [include(틀:민주정의당)] || '''63.06%''' || '''{{{#000000 당선}}}''' || ||<|2> {{{#ffffff {{{+5 '''2'''}}}}}} || [[반형식]](潘亨植) || 12,179 || 2위 || || [include(틀:통일민주당)] || 24.65% || 낙선 || ||<|2> {{{#ffffff {{{+5 '''3'''}}}}}} || [[황병호]](黃丙鎬) || 6,090 || 3위 || || [include(틀:신민주공화당)] || 12.31% || 낙선 || ||<|3> '''계''' || '''선거인 수''' || 59,984 ||<|3> '''투표율'''[br]83.87% || || '''투표 수''' || 50,306 || || '''무효표 수''' || 841 || 육군대장에다 [[안기부]]장까지 지낸 신군부의 실세인 민정당 [[유학성]] 후보가 고향인 예천군에서 무난하게 당선되었다. === [[울진군]] === ||<-4> {{{#ffffff {{{+1 '''울진군'''}}}}}}[br]{{{#ffffff 울진군 일원}}} || ||<|2>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 '''정당''' || '''득표율''' || '''비고''' || ||<|2> {{{#ffffff {{{+5 '''1'''}}}}}} || '''[[김중권]](金重權)''' || '''23,484''' || '''1위''' || || [include(틀:민주정의당)] || '''54.78%''' || '''{{{#000000 당선}}}''' || ||<|2> {{{#ffffff {{{+5 '''2'''}}}}}} || 황지성(黃志聲) || 8,336 || 2위 || || [include(틀:통일민주당)] || 19.44% || 낙선 || ||<|2> {{{#373a3c {{{+5 '''3'''}}}}}} || [[장소택]](張蘇宅) || 3,370 || 5위 || || [include(틀:평화민주당)] || 7.86% || 낙선 || ||<|2> {{{#FFFFFF {{{+5 '''4'''}}}}}} || 최순열(崔淳烈) || 3,755 || 4위 || || [include(틀:신민주공화당)] || 8.75% || 낙선 || ||<|2> {{{#FFFFFF {{{+5 '''5'''}}}}}} || 이동일(李東一) || 3,924 || 3위 || || [include(틀:무소속)] || 9.15% || 낙선 || ||<|3> '''계''' || '''선거인 수''' || 52,604 ||<|3> '''투표율'''[br]82.59% || || '''투표 수''' || 43,444 || || '''무효표 수''' || 575 || 현역 의원인 민정당 [[김중권]] 후보가 무난히 당선되면서 3선 고지에 올랐다. 하지만 이번 선거가 김중권 의원이 마지막으로 당선된 선거이다. 4년 뒤 [[제14대 총선]]에서 김중권 의원은 [[울진 원자력 발전소]] 유치에 반발하는 여론때문에 낙선했고, 이후에도 끊임없이 국회 복귀를 노렸으나 14대 총선을 포함해 총 6번 낙선한다. [[2000년]] [[제16대 총선]]때는 재검표끝에 16표차로 낙선하는 슬픔을 겪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