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대한민국의 주요선거)] [include(틀:역대 대한민국 국회)] ||<-5> {{{#FFFFFF {{{+1 '''대한민국 제13대 국회의원 선거'''}}}}}} || ||<-5>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2BAwVcDl55I)]{{{-2 당시 [[대한뉴스]] 보도}}}}}} || ||<-5> {{{#!wiki style="margin: -7px -12px" ||<#FFFFFF,#212121> {{{-2 [[1985년]] [[2월 12일]]}}}[br][[제12대 국회의원 선거|12대 총선]] || → ||<#FFFFFF,#212121> {{{-2 [[1988년]] [[4월 26일]]}}}[br]'''13대 총선''' || → ||<#FFFFFF,#212121> {{{-2 [[1992년]] [[3월 24일]]}}}[br][[제14대 국회의원 선거|14대 총선]] ||}}} || || {{{#580009 '''투표율'''}}} ||<-4>75.8%{{{-3 [[제12대 국회의원 선거|{{{#blue ▼ 8.8%p}}}]]}}} || ||<-5> {{{#FFFFFF '''선거 결과'''}}} || ||<-5> [[파일:13대 총선 결과.png|width=100%]] || ||<-5>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A84E9 calc(125*100%/299), #FADA5E 0%, #FADA5E calc((125 + 70)*100%/299), #E60026 0%, #E60026 calc((125 + 70 + 59)*100%/299), #59955E 0%, #59955E calc((125 + 70 + 59 + 35)*100%/299), #FF7F50 0%, #FF7F50 calc((125 + 70 + 59 + 35 + 1)*100%/299), #808080 0%)" }}} || || '''정당''' || '''지역구''' || {{{#!wiki style="margin: 0 -10px" '''전국구'''}}} || '''총합''' || '''비율''' || || [[민주정의당|{{{#!wiki style="display: inline; margin: 0px -10px;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A84E9; font-size: .9em" {{{#FFFFFF '''민주정의당'''}}}}}}]] || '''87석''' || '''38석''' || '''125석''' || '''41.80%''' || || [[평화민주당|{{{#!wiki style="display: inline; margin: 0px -10px;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FADA5E; font-size: .9em" {{{#324a70 '''평화민주당'''}}}}}}]] || '''54석''' || '''16석''' || '''70석''' || '''23.41%''' || || [[통일민주당|{{{#!wiki style="display: inline; margin: 0px -10px;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E60026; font-size: .9em" {{{#FFFFFF '''통일민주당'''}}}}}}]] || '''46석''' || '''13석''' || '''59석''' || '''19.73%''' || || [[신민주공화당|{{{#!wiki style="display: inline; margin: 0px -10px;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59955E; font-size: .9em" {{{#FFFFFF '''신민주공화당'''}}}}}}]] || '''27석''' || '''8석''' || '''35석''' || '''11.70%''' || || [[한겨레민주당|{{{#!wiki style="display: inline; margin: 0px -10px;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FF7F50; font-size: .9em" {{{#FFFFFF '''한겨레민주당'''}}}}}}]] || 1석 || 0석 || 1석 || 0.33% || || [[무소속|{{{#!wiki style="display: inline; margin: 0px -10px;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808080; font-size: .9em" {{{#FFFFFF '''무소속'''}}}}}}]] || 9석 || - || 9석 || 3.01% || [목차] [clearfix] == 개요 == '''[[1988년]] [[4월 26일]]에 실시한 국회의원 선거. 투표율은 75.8%를 기록했다.''' [[대한민국 제6공화국]] 수립 이후 치른, 즉 1987년 제도적 민주주의가 정착된 이후[* 완전한 문민정부는 김영삼 정부 출범 이후부터로 본다.] 최초로 치러진 총선이다. 국회의원의 임기가 4년인 만큼 원래대로라면 [[1989년]]에 치러졌어야 할 선거였지만 [[9차 개헌|1987년 개정된 헌법]]에 따라 조기 실시했다. 이후 [[9차 개헌]]의 영향으로 이후 치러진 국회의원 총선은 매번 [[올림픽|하계 올림픽]]이 치러지는 해에 치르게 됐다.[* 사실 이때 총선은 전두환의 임기가 끝나기 전인 2월 25일에 할 수도 있었지만, 노태우 대통령 당선자가 자신의 공천 몫을 줄 수 없다고 고집을 부려 4월에 치러졌다.][* 다만, [[코로나19]] 때문에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21대 총선]]만 예외로 [[2020 도쿄 올림픽|도쿄 올림픽]]이 2021년에 개최가 되었다.] 이 총선부터 기호를 추첨제로 정하지 않고 원내 다수당 순서대로 상위 순번의 기호를 부여받도록 했다. == 배경 == 의원 정수는 299명으로 [[제12대 국회의원 선거|12대 총선]] 때보다 23명이 늘어났다. 지역구 의원수는 40명이 늘어났고 반대로 전국구 의원수는 17명이 줄어들었다. 선거제도도 [[중선거구제]]에서 [[소선거구제]]로 전환되었다. 이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평화민주당]],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 [[한겨레민주당]], [[민주한국당]], [[신한민주당]], [[한국국민당(1981년)|한국국민당]], [[민중의당]], [[우리정의당]], 제3세대당 등이 참여하였다. 다수당에 의도적으로 유리하게 만든 기존의 선거법은 다소 완화되어 '''지역구 의석수 1위 정당이 전국구의 1/2를 가져갔다.''' 이전까지 2/3에서 1/2로 감소된 것이다. 참고로 [[제14대 국회의원 선거|다음 총선]]부터 이러한 규정은 삭제된다. == 과정 == 민주정의당은 [[제13대 대통령 선거]]에서 [[양김]]의 분열과 [[대한항공 858편 폭파 사건]]으로 정권 재창출에 성공했지만 득표율은 36.64%에 그쳤다. 게다가 대선을 통해 선호하는 당에 대한 지지가 뚜렷한 지역구도가 전면적으로 드러나게 되고, 조금만 뒤틀리면 다시 독재정치를 펼칠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에 노태우 정권은 지지기반이 상당히 불안정했다. 비록 분열로 인해 대선에서는 졌다지만, 통일민주당과 평화민주당, 한겨레민주당이 단일화를 한다면 민주당계가 총선에서는 압승을 거둘 수도 있겠다는 전망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야권이 대선에 이어 총선 단일화에도 실패하며[* 다만 단일화가 반드시 성공을 보장한 것은 아니었다. "정치 1번지"로 상징적 선거구인 [[종로구(선거구)|종로구]]에선 평화민주당의 [[박영숙]] 총재권한대행이 사퇴하면서(불출마 후 전국구 당선) 통일민주당 [[김명윤]] 총재권한대행으로 사실상 야권 단일화가 이루어졌으나 김명윤 후보가 패배했다.] 결국 대부분의 선거구에서 후보를 따로 내면서 분열하자 이에 대한 실망감이 더더욱 커지고 노태우 대통령도 [[5.18 민주화운동]] 강제진압 사과 등 상당히 유화적인 정책을 펼침과 동시에 공천에서 [[대한민국 제5공화국|제5공화국]] 인사 상당수를 배제하면서[* 물론 민정당 내 신주류들의 5공 세력 견제 또는 노태우 전 대통령의 [[박철언]] 정책보좌관 등 자기 사람 심기 의도도 있었다. 실제로 [[권익현]] 전 민주정의당 대표, [[권정달]] 전 민주정의당 사무총장 등을 위시해 [[윤길중]], [[봉두완]], [[정석모]] 등 중진들이 대거 쫓겨났고, 89명의 현역의원 중 27명이 공천에서 학살되었다. 그리고 그 빈자리에는 [[박철언]], [[나창주]], [[강재섭]] 등 노태우의 가신들이 대거 공천되었다.][* 단, [[정석모]] 의원은 나중에 전국구로 구제받았다.] 일부 민주세력의 호감을 받아 이를 기반으로 지지기반을 넓혀갈 것으로 예상되었다. 또한 선거제도가 소선거구제로 바뀌던 것도 (당시로써는) 호재로 여겨졌다.[* 사실 민정당은 민주화 이후 선거제 개정 논의 당시에도 야권이 단일화하면 민정당이 과반은커녕 개헌저지선 이하로 밀릴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중선거구제를 주장했다. 하지만 중선거제를 그대로 유지할 경우에도 전국구 1당 독식 규정 완화 때문에 국회에서 과반에 미달할 가능성이 컸던데다가, 민주당과 평민당이 갈등하며 분열상이 지속되었고 이런 상황에서 소선거구제로 전환할 경우에는 어부지리격으로 수도권 의석을 대거 싹쓸이 하여 의회 과반을 여유있게 차지할 것으로 판단하면서 소선거구제 전환을 당론으로 변경했고 결국 3월 8일에 소선거구제로 변경시키는 안이 통과되었다. 선거운동기간 초반까지만 해도 야권이 분열로 지리멸렬할 것으로 예측되었기 때문에 그 예상이 맞아들어가는듯 싶었지만 결과적으로 보았을 때는 꽤나 큰 판단착오가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총선 선거운동 기간 도중 예전과 같은 관권, 혼탁 선거가[* 대놓고 민정당 후보 선거유세장에 가면 국밥 같은 식사와 몇만원씩 든 돈봉투를 나눠줬고, 현역군인들의 부재자투표는 선거공보물만 받은 채 정작 표는 간부들이 모두 민정당 후보를 찍어서 보내버리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펼쳐지면서 "이번에 민정당에게 몰아주면 다시 [[의원 내각제]] 개헌을 통해 [[대한민국 제5공화국|이전]]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불안감이 커지게 되었고, 설상가상 전두환의 동생 [[전경환]]이 [[새마을운동]] 중앙본부 총재로 재직하면서 저지른 비리가 잇달아 드러나면서 민정당에게 악재로 작용하였고 민주당과 평민당, 공화당 지지층이 결집하며 선거 양상이 복잡해지기 시작한다. 선거 전 각 당의 목표 의석수는 민주정의당 과반수 의석(150석 이상) 확보, 통일민주당, 평화민주당은 제1야당 확보, 신민주공화당 및 기타 정당은 원내교섭단체(20석 이상) 확보였다. 이 당시 노태우와 민정당은 직전 대선에서 대역전극을 만든 것에 너무 도취해 현실감각이 완전히 마비되어 있었다.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에서 자체 여론조사를 돌려본 결과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민정당은 지역구 85~92석을 얻는 것에 불과하다]]는 보고서를 올리자 되려 민정당 지도부가 사기를 꺾는 말을 한다고 크게 질책했다고 한다. 노태우는 뒤늦게야 민심이 심상찮은 것을 알고 총선 3일 전 [[박철언]]과 월계수회에 대책을 마련하란 지시를 내리지만 이미 버스는 지나간 후였다. == 결과 == [[파일:13대 총선 결과 지도.png]] ||<-8> '''제13대 국회의원 선거''' || || 지역 ||<#0A84E9> [[민주정의당|{{{#white 민주정의당}}}]] ||<#FADA5E> [[평화민주당|{{{#324a70 평화민주당}}}]] ||<#E60026> [[통일민주당|{{{#white 통일민주당}}}]] ||<#59955E> [[신민주공화당|{{{#white 신민주공화당}}}]] ||<#EF6A41> [[한겨레민주당|{{{#white 한겨레민주당}}}]] ||<#808080> [[무소속|{{{#white 무소속}}}]] {{{#white , 기타}}}[* 민주한국당, 신한민주당, 한국국민당 등. 군소 정당의 당선자는 전무하다.] || 합계 || ||<#FADA5E> {{{#324a70 서울}}} || 10 || '''17''' || 10 || 3 || 0 || 2 || 42 || ||<#0A84E9> {{{#white 인천}}} || '''6''' || 0 || 1 || 0 || 0 || 0 || 7 || ||<#0A84E9> {{{#white 경기}}} || '''16''' || 1 || 4 || 6 || 0 || 1 || 28 || ||<#0A84E9> {{{#white 강원}}} || '''8''' || 0 || 3 || 1 || 0 || 2 || 14 || ||<#59955E> {{{#white 충남}}} || 2 || 0 || 2 || '''13''' || 0 || 1 || 18 || ||<#0A84E9> {{{#white 충북}}} || '''7''' || 0 || 0 || 2 || 0 || 0 || 9 || ||<#FADA5E> {{{#324a70 광주}}} || 0 || '''5''' || 0 || 0 || 0 || 0 || 5 || ||<#FADA5E> {{{#324a70 전남}}} || 0 || '''17''' || 0 || 0 || 1 || 0 || 18 || ||<#FADA5E> {{{#324a70 전북}}} || 0 || '''14''' || 0 || 0 || 0 || 0 || 14 || ||<#E60026> {{{#white 부산}}} || 1 || 0 || '''14''' || 0 || 0 || 0 || 15 || ||<#0A84E9> {{{#white 경남}}} || '''12''' || 0 || 9 || 0 || 0 || 1 || 22 || ||<#0A84E9> {{{#white 대구}}} || '''8''' || 0 || 0 || 0 || 0 || 0 || 8 || ||<#0A84E9> {{{#white 경북}}} || '''17''' || 0 || 2 || 2 || 0 || 0 || 21 || ||<#808080> {{{#white 제주}}} || 0 || 0 || 1 || 0 || 0 || '''2''' || 3 || || 지역구 || {{{#0A84E9 '''87'''}}} || {{{#FADA5E 54}}} || {{{#E60026 46}}} || {{{#59955E 27}}} || {{{#EF6A41 1}}} || {{{#808080 9}}} || '''224''' || || 전국구 || {{{#0A84E9 '''38'''}}}[* 전술했듯 당시 총선 규정상 지역구 제1당에게 전국구 의석 수의 '''절반'''을 부여하고 나머지 당들이 지역구 의석 수에 따라 전국구 의석이 배분되는 방식이었다.] || {{{#FADA5E 16}}} || {{{#E60026 13}}} || {{{#59955E 8}}} || 0 || 0 || '''75''' || || 합계 || {{{#0A84E9 '''125'''}}} || {{{#FADA5E 70}}} || {{{#E60026 59}}} || {{{#59955E 35}}} || {{{#EF6A41 1}}} || {{{#808080 9}}} || '''299''' || ||<-4> '''전국구''' || || 정당 || 득표수 || 득표율 || 당선인 || || [include(틀:민주정의당)] || 6,670,494 || '''34%''' || 38 || || [include(틀:통일민주당)] || 4,680,175 || '''23.8%''' || 13 || || [include(틀:평화민주당)] || 3,783,279 || '''19.3%''' || 16 || || [include(틀:신민주공화당)] || 3,062,506 || '''15.8%''' || 8 || || [include(틀:한겨레민주당)] || 251,236 || 1.3% || 0 || || [include(틀:신한민주당)] || 46,877 || 0.2% || 0 || || [include(틀:민주한국당)] || 32,799 || 0.2% || 0 || || [include(틀:한국국민당(1981년))] || 65,032 || 0.3% || 0 || || [include(틀:민중의당)] || 65,650 || 0.3% || 0 || || [include(틀:사회민주당(1985년))] || 3,267 || 0.02% || 0 || || [include(틀:우리정의당)] || 25,433 || 0.1% || 0 || || [include(틀:제3세대당)] || 16,148 || 0.08% || 0 || || [include(틀:한주의통일한국당)] || 3,736 || 0.02% || 0 || || [include(틀:기독성민당)] || 2,247 || 0.01% || 0 || || [include(틀:무소속)] || 933,161 || 4.8% || - || || 총합 || 19,642,040 || 100% || 75 || === 지역구 선거 결과 ===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지역구 국회의원]] 항목 참조. === 당선인 === || [[민주정의당|[[파일:민주정의당 심볼.svg|width=30]]]] [[민주정의당|[[파일:민주정의당 글자.svg|width=100]]]] {{{#FFFFFF '''제13대 총선 당선인'''}}}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11px;margin-top:-6px;margin-bottom:-5px" ||<:> [[강성모(1933)|강성모]] || [[강영훈]] || [[강우혁]] || [[강재섭]] || [[권달수]] || || [[권해옥]] || [[김근수(정치인)|김근수]] || [[김기배]] || [[김길홍]] || [[김동인(정치인)|김동인]] || || [[김명섭]] || [[김문기(정치인)|김문기]] || [[김영구(1940)|김영구]] || [[김영선(1932)|김영선]] || [[김완태(정치인)|김완태]] || || [[김용태(1936)|김용태]] || [[김윤환(1932)|김윤환]] || [[김인기(군인)|김인기]] || [[김인영(1939)|김인영]] || [[김일윤]] || || [[김장숙]] || [[김재순]] || [[김정길(1935)|김정길]] || [[김종곤]] || [[김종기(정치인)|김종기]] || || [[김종호(1935)|김종호]] || [[김중권]] || [[김중위]] || [[김진영(1939)|김진영]] || [[김진재]] || || [[김태호(1935)|김태호]] || [[김한규(1940)|김한규]] || [[김현욱(정치인)|김현욱]] || [[나창주]] || [[남재희]] || || [[노인환]] || [[도영심]] || [[류돈우]] || [[박승재]] || [[박우병]] || || [[박재홍(1941)|박재홍]] || [[박정수(정치인)|박정수]] || [[박준규(1925)|박준규]] || [[박준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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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정의당|{{{#ffffff 민주정의당}}}]]''' || || 1석 || 70석 || 62석 || 35석 || 131석 || 선거 결과, [[여소야대]]로 민정당은 지역구 87석(득표 34%)을 확보하는데 그쳐 '''과반 확보에 실패했다'''. 민주당과 평민당의 단일화 실패로 선전할 것이라 여겨졌던[* 실제로 이 때 민주당과 평민당 간의 단일화가 성공했다면 단순 계산만으로는(민주 득표+평민 득표) 민정당이 수도권에서 고작 15석을 얻는다는 계산이 나온다. 다만 민주당과 평민당의 핵심 지지층이 서로 이질적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단일화했더라도 단순 계산만큼의 득표는 나오지 않았을 수 있다. 물론 반대로 단일화 실패에 실망해 투표를 하지 않거나 기권한 표도 있겠지만.] 수도권에서도 민정당은 총 77석 가운데 32석에 그쳤는데, 여당 지지세가 상당한 편인 인천 석권에도 불구하고 서울에서는 10석으로 공동 2당이라는 처참한 성적을 보였으며 공화당으로 득표율이 분산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득표율이 12대 총선보다도 낮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TK의 절대적 지지와 호남을 제외한 각지에서의 고른 의석 획득으로 지역구 1당을 차지했고, 득표율 비례가 아닌 지역구 1당이 전국구(비례대표) 의석 절반을 배정받는다는 --희한한-- 당시 선거규정으로 전국구 75석 중 38석을 챙기면서 총 125석을 획득한다.[* 이러한 규정이 없이 전국구 방식으로 선거가 만약 치러졌다면, 민정당 의석은 전국구에서 12석이 줄어 총 113석(총 의원수의 37.8%에 불과한 값이다.)이 되고, 평화민주당과 통일민주당과 신민주공화당은 각각 5, 4, 3석이 전국구에서 늘어 각각 75석, 63석, 38석이 되었을 것이다. 이는 제1당 1/2 전국구 부여 규정이 사라진 14대 총선의 방식과 같다. 만일 15대 총선의 방식과 같이 지역구 의석 수가 아닌 득표율에 따라 전국구 의석을 나눠가진다면 민정당은 전국구에서 11석이 줄어 114석, 통일민주당과 신민주공화당의 의석이 각각 6석, 5석이 늘어서 65석, 40석이 되었을 것이다.] 한편, 통일민주당은 [[부산광역시|부산]] 지역을 석권하고[* 다만, [[금정구]] 1석을 민정당 후보에게 1% 차이로 아깝게 내줬다. 그 이유는 민정당 후보로 나선 [[김진재]]가 지역 유지였던 점이 컸는데, 그는 이 지역 최대 향토기업인 [[DRB동일|동일고무벨트]]의 사장이었다. 여담으로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20대 총선]]에서도 이 지역구는 그의 아들인 [[김세연(정치인)|김세연]]이 명맥을 이었다. 다만 21대는 불출마.], 그 외에 호남을 제외한 전국에서 고른 득표를 얻어 득표율에서 2위(23.8%)를 기록했지만 소선거구제로 인해 2위로 아쉽게 낙선되는 지역구가 많아서 원내 3당에 그쳤다. 특히 경남의 일부 서부 농촌지역과 당시 경남 소속이던 [[울산시]]를 민정당에 내준게 뼈아팠다.[* 당시 지금의 울산광역시 지역에는 총 4석이 있었는데, [[심완구]]라는 지역거물이 있었던 [[남구(울산광역시)|남구]]를 제외하고는 모두 패하고 말았다. 특히 민정당의 [[김태호(1935)|김태호]]가 있던 [[중구(울산광역시)|중구]]는 아예 후보도 내지 못했으니...] 다만 서울 강남 지역에서의 선전은 눈에 띄었는데, 총 의석 8석 중 무려 4석을 차지했다. 특히 [[서초구]]의 경우 야권 성향 무소속 [[박찬종]] 의원과 함께 여당 후보를 모두 몰아냈다. 반대로 평화민주당은 득표율 3위(19.3%)에 충청도(충남, 충북)와 인천, 제주, 동부 지역(대구, 경북, 부산, 경남, 강원)에서는 듣보잡 신세를 면치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호남 석권과[* 총 37석 가운데 36석을 차지. [[신안군]]에서 한겨레민주당이 의석을 얻었으나 이는 [[한화갑]]이 출마하지 못한 결과였다.] 호남 원적 유권자가 많은 [[서울]]에서의 선전(1당, 17석)만으로 원내 2당을 차지하며 이번 선거의 최대 승리자가 되었다. 서울, 호남을 제외하고는 경기 [[성남시]] 을(현재의 [[성남시 중원구(선거구)|성남시 중원구]])에서만 승리했음에도 불구하고 단숨에 원내 2당이 된 점은 당시의 견고했던 지역주의의 씁쓸한 점을 보여주기도 한다. 신민주공화당은 충청권(충남 13석, 충북 2석)과 경기도 지역(2당, 6석)[* [[수원시]] 을, [[성남시]] 갑, [[의정부시]], [[광명시]], [[파주시|파주군]], [[고양시|고양군]] 등 경기 대도시와 북서부에서 승리를 거뒀다.]에서 선전해 총 35석을 확보했지만, 충북 의석을 민정당에게 대거 내주며 충남 맹주로만 자리잡게 된다.[* 충북은 지리적 특성상 그 이후에도 신민주공화당의 후신격인 [[자유민주연합]]이 큰 힘을 쓰지 못했다.] 사실 충남 맹주라기도 뭐한 게 총 18석(대전 포함) 중 5석을 자당이 아닌 후보에게 뺏기며 확실히 다른 지역주의 정당에 비해선 비교적 충성도가 낮다는걸 보여줬다. 제3야당을 표방한 [[한겨레민주당]]은 군소정당의 한계를 넘지 못하고 1석 확보에 그쳤다. 그나마 당선된 한 명은 전남 신안 지역구의 [[박형오]] 후보인데, 같은 지역구에 후보등록한 평화민주당 [[한화갑]]의 후보등록이 무효 처리되면서[* 당시 한화갑은 [[전두환의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 사건]]으로 인해 피선거권을 박탈당했는데 아직까지도 사면 복권되지 않은 상태였다.] 후보가 민주정의당 [[김복수]] 후보와 박형오 둘만 남게 되자 평화민주당이 박형오를 전면적으로 밀어준 탓이라 자력당선이라 하기 힘들다. 그렇게 당선된 박형오마저 선거 직후 탈당하여 평화민주당에 입당하면서 한겨레민주당은 소멸했다. [[민주한국당]](평택시·송탄시의 [[유치송]]), [[신한민주당]]([[전주시 을]]의 [[이철승]]), [[한국국민당(1981년)|한국국민당]]([[달서구]]의 [[이만섭]]) 등은 아예 당선자조차 내지 못하고 해체 수순을 밟게 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여당인 민정당은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했고, '''[[여소야대]] 정국이 형성'''되어 이에 따라 노태우 전 대통령은 국정 운영에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또 이런 여소야대 정국은 민주화 열풍과 맞물려 광주특위 구성 등으로 5공 비리가 대대적으로 까발려지고 사회 각지에서의 각종 부조리한 문제점 제기가 활발히 이루어지게 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런 여소야대 정국은 1989년 공안 정국과 제2당인 평화민주당의 여당 협조모드로 상당히 기세가 수그러들게 되었고, 특히 1990년 '''[[3당 합당]]으로 인해 압도적 여대야소로 아예 판세가 뒤집어져 버린다.''' [[지역주의]]는 더욱 극대화되었다. 특히 충청권 유권자들의 신민주공화당 지지(15.8% 득표)가 대선에 비해 두드러진 반면, 민주화의 열망으로 양김에게 갔던 표는 많이 떨어졌다. == 여담 == 한편, 이 선거에 [[노무현]] 전 대통령이 처음으로 나와 부산직할시 [[동구(부산 선거구)|동구]]에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고, 이후 [[청문회]] 스타가 되어 대통령 자리에까지 오르는 발판을 마련하게 된다. 또 1990년 3당 합당에 반대하며 김영삼 전 대통령과 결별한 이후 정치인생에서 상기한 지역주의 구도를 타파하려 부단히 노력하였고, 지역분권 및 지방정부 자립문제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된다. 집권 민주정의당의 참패 충격 때문인지 총선 치른 다음 날 증시가 대폭락했다. 당시 [[코스피 지수]]는 25.97포인트 폭락한 618.73포인트로 기록했는데, 이는 당시 증시 사상 최대 당일 하락폭이었다. 그 당시 하한가 종목은 322개로 역시 당시 사상 최다 하한가였고, 전 업종이 하락세로 마감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국회의원 선거에서 각각 1~4위의 득표결과를 낸 '''[[노태우]]의 [[민주정의당]], [[김영삼]]의 [[통일민주당]], [[김대중]]의 [[평화민주당]], [[김종필]]의 [[신민주공화당]]은 법인상 모두 [[한나라당]]으로 이어진다.'''[* 우선 [[민주정의당]]-[[통일민주당]]-[[신민주공화당]]이 1990년의 [[3당 합당]]으로 인해 [[민주자유당]]-[[신한국당]]이 된 후, 그 신한국당이 1997년 [[15대 대선]]을 앞두고 [[평화민주당]]의 후신인(물론 이 시점에서 [[김대중]]을 비롯한 동교동계 대다수는 신당인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해 나갔다) [[통합민주당(1995년)|통합민주당]]과 합당하며 [[한나라당]]이 탄생하였기 때문이다.] 물론 실질적으로는 [[새정치민주연합]]이 [[평화민주당]]의 맥을 잇는다.[* [[김대중]], [[이해찬]] 등 핵심 인사의 소속 여부.] === 초접전 지역구 === 지역별로 각 정당의 우세가 뚜렷했던 만큼, 접전지역도 서울과 수도권 도심지역에 집중되었다. 특히 서울은 1,2위가 2%p 이내로 갈린 지역구가 전체 지역구의 1/3인 14곳이나 되었다. (1,2위 후보 1000표 이내만 기재 권장) * '''경북 경산군·청도군: [[신민주공화당]] [[이재연]] 39.87% VS [[민주정의당]] [[박재욱(정치인)|박재욱]] 39.76% - 108표차''' * 경남 진양군: [[민주정의당]] [[안병규]] 41.18% VS [[통일민주당]] [[김재천]] 40.72% - 209표차 * 강원 횡성군·원성군: [[통일민주당]] [[박경수(정치인)|박경수]] 50.18% VS [[민주정의당]] [[김용대(정치인)|김용대]] 49.81% - 225표차 * 서울 [[은평구 을]]: [[통일민주당]] [[김재광]] 26.13% VS [[민주정의당]] [[박완일]] 25.8% - 340표차[* 참고로 3위를 기록한 평화민주당 [[이원형(1933)|이원형]] 후보도 1위와 불과 542표차를 기록했다.] * 경기 [[부천시 병|부천시 남구]]: [[통일민주당]] [[최기선]] 24.82% VS [[무소속]] [[박규식]] 24.53% - 352표차 * 경북 청송군·영덕군: [[민주정의당]] [[황병우]] 44.54% VS [[통일민주당]] [[김찬우(정치인)|김찬우]] 43.88% - 448표차 * 서울 [[영등포구 을]]: [[민주정의당]] [[김명섭]] 29.15% VS [[통일민주당]] [[이원범]] 28.72% - 465표차[* 참고로 3위를 기록한 평화민주당 [[이용희(1931)|이용희]] 후보도 1위와 불과 551표차를 기록했다.] * 경북 점촌시·문경군: [[통일민주당]] [[신영국]] 43.29% VS [[민주정의당]] 이영화 42.21% - 703표차 * 서울 [[중랑구 갑]]: [[평화민주당]] [[이상수(정치인)|이상수]] 32.3% VS [[민주정의당]] [[이순재]][* 우리에게 잘 알려진 탤런트 이순재가 맞다. 4년 후 14대 총선에서는 이순재 후보가 설욕에 성공한다.] 31.4% - 759표차 * 서울 노원구 을: [[신민주공화당]] [[김용채]] 30.8% VS [[평화민주당]] [[임채정]] 30.0% - 804표차[* 4년 후 14대 총선에서 벌어진 리턴매치에서는 13대보다 더 적은 '''36표차'''로 김용채 후보가 당선되었다가, 재검표 결과 당락이 뒤바뀌어 임채정 후보가 최종 당선되었다.] * 서울 강서구 갑: [[평화민주당]] [[이원배]] 26.93% VS [[통일민주당]] [[이원종(1939)|이원종]][* 서울시장, 충북도지사, 박근혜정부 대통령비서실장을 지낸 [[이원종(1942)|이원종]]과는 동명이인이다.] 25.75% - 962표차 === 선거를 뒤엎은 리허설 해프닝 === > "먼저 제주시 지역에서는 이 시간 현재 개표가 완료돼 민정당의 현경대 후보가 3만 8천 245표를 얻어 득표율 39.9%로 당선이 확정됐습니다. 무소속의 고세진 후보는 2만 8천 739표로 30%, 민주당의 김성범 후보 1만 4천 367표로 15%, 평민당의 강종호 후보 9천 573표로 10%, 공화당의 신두완 후보 4천 764표로 5%의 득표율을 보이고 있습니다." [[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88/1809051_19338.html|당시 방송사고 경위를 보도한 MBC 뉴스데스크의 보도 내용]] 선거를 하루 앞두고 [[제주문화방송|제주MBC]]에서 리허설했는데 그 장면이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714685|송출되는 방송사고]]가 나서 제주도 일대가 완전 난리가 난 적이 있다. 그나마 새벽정파 시간이라면 여파가 덜 했겠지만 오후 방송 시작 직전에 일어난 사고라 후폭풍이 더 거셌다. 이에 MBC에서 사과방송을 하고 문책조치를 내렸고, 수사결과도 단순실수로 결론이 났다. 그러나 방송사고로 인해 제13대 대통령 선거부터 이어진 컴퓨터 여론조작 설이 설득력을 얻어 민주정의당은 제주도에서 전멸했고, 선거운동 중반부터 민정당의 예상의석수가 점차 줄어들던 상황이었는데[* 선거운동 초반 당시에는 수도권에서 민정당이 야권분열로 여유있게 승리할 것으로 예측되었지만, 선거운동 중반부터 민주당과 평민당의 지지율이 오르고 지지층 일부가 공화당으로 쏠리면서 경합지역이 크게 늘어나던 상황이었다.] 이를 완전히 굳혀지게 만들었다. 결국 [[MBC]] 본사에서는 당일 [[뉴스데스크]]를 통해 사과했고 전국 50분 + 지역 10분 단위체계로 진행할 예정이었던 개표방송을 제주 지역에서만은 본사 개표방송을 그대로 방송했다. 또 당시 제주MBC 사장과 상무가 이에 책임지고 사표를 냈으며, 보도국장 등 일부 인사는 대기발령 조치가 내려졌다. [[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88/1809053_19338.html|#]] 실제 제주시 결과는 [[현경대]] 31,720표(33.5%), [[고세진]] 후보 39,329표(41.45%)로 현경대 의원의 3선이 좌절되었다.[* 현경대 후보는 이후로 [[제16대 국회의원 선거]]까지 모두 당선되어 5선 고지에 오르니 리허설 승리 오보로 되려 물을 먹은 뼈아픈 패배라고 할 만하다. 여담으로 [[제17대 국회의원 선거]]부터 19대까지는 줄곳 3연 낙선 중. 이후 2013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으로 임명되었다. 여담으로 통일민주당의 김성범 후보는 13,621표로 14.38%, 평화민주당의 강종호 후보는 7,913표로 8.35%, 신민주공화당의 [[신두완]] 후보는 2,172표 (2.29%)를 얻는 등 실제 선거 결과에서는 리허설보다 적은 득표를 얻었다. 애초에 40:30:15:10:5로 5단위로 떨어지게 리허설을 한 것.] 제주도 전체 결과는 통일민주당 1석, 무소속 2석. 참고로 그 해 [[무소속]]으로 당선된 고세진, [[이기빈]] 의원은 이후 민주정의당에 입당하였다. [[분류:제13대 국회의원 선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