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사건사고)] [include(틀:문서가 있는 대한민국의 사망 및 실종 사건사고)] ||<-3> '''{{{+1 제3산록교 추락 사망 사건}}}''' || ||<|2> '''발생''' ||[[2009년]] [[7월 22일]] 오후 2시 12분||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천동(서귀포)#s-2.3|도순동]] [[1115번 지방도|제3산록교]]|| || '''피해자''' ||정은희[* 제도권 언론에서는 가명인 '김은희'로 칭하였다.]|| || '''사인''' ||조기 둔위 추락|| [목차] [clearfix] == 개요 == [[2009년]] [[7월 22일]] 정은희(이하 '피해자')가 [[제주도|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영남동]] [[제3산록교]]에서 [[추락사]]한 사건. == 전개 == 2009년 7월 22일 피해자 일행[* 피해자, 친모, 계부. 총 3명.]은 [[현대 갤로퍼]]에 탑승해 [[한라산]] 아흔아홉골에 위치한 납골당에 가기 전 [[천지연폭포]] 인근의 매운탕집[* 피해자의 이모가 운영하는 가게였다고 한다.]에 들르기로 한다. 그러던 중 제3산록교[* 당시 가완공 상태였으며 개통하기 전이었다. 또한 편도 2차선이며 지금까지도 보행로가 없는 상태이다.]에서 피해자가 돌연 사진 촬영을 하겠다며 차를 정차시켰고, 그의 부모에게 사진 촬영을 부탁하고 난간에 걸터앉다 추락하여 사망하였다. 하지만 몇 가지 의문점들이 있는데, 일단 제3산록교는 교량 약 32m의 높이였으며, 난간이 둥글고 안전장치도 전무하여 사람이 앉기에 부적합했다. 또한 총 7개의 산록도로 중 유일하게 차를 정차시킬 만한 공간이 없으며, 난간 주위에 배관 또한 없다. 지인의 증언에 의하면 피해자는 극심한 [[고소공포증]]으로 인해 철제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조차 두려워했다고 하는데, 사진 촬영 명목으로 난간에 걸터앉을 리가 없다는 모양. 죽은 당일 새벽에도 피해자와 통화를 했다는 전 남편은 사망 당일 피해자의 모친이 함께 매운탕을 먹으러 가자고 했고, 태연하게 식사하던 모습을 의아해했다고 한다. 또한 장례식도 없이 무언가에 쫓기듯 바로 다음날 화장을 진행했던 점도 지적했다.[* 실제로 피해자의 사체는 바로 화장됨에 따라 진실을 밝히는 것은 더욱 어려워졌다. 화장 전 부검도 진행하지 않은 것에 대해 유족들은 경찰이 부검을 한 줄 알았다고 주장했다.] 2011년 단순 변사로 내사 종결 처리했던 [[제주특별자치도경찰청]]은 2018년 12월부터 재수사를 시작했고 2022년 6월 피해자의 부모를 살해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경찰은 일관되지 않은 모친의 증언과 사람이 앉을 수 없는 구조의 난간, 특이한 사체와 추락 지점으로 이 사건이 살인 사건이라 주장했다.[* 이에 모친은 반복되는 심문에 혼란스러워서 진술이 달라지거나 했다고 주장했고, 살인자로 지목되며 이후 일상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며 괴로움을 호소했다고 한다.] 살인의 직접 증거는 없는 이 사건에 검찰은 경찰에게 보강 수사를 지시했다. == 피해자 == ||<-2>
'''{{{+1 정은희}}}[br]Jeong Eun-hee''' || ||<-2>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제3산록교 추락 사망 사건.jpg|width=100%]]}}} || ||<|2> '''출생''' ||[[1986년]] [[2월 6일]]||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 '''사망''' ||[[2009년]] [[7월 22일]] (향년 23세)|| || '''국적''' ||[include(틀:국기, 국명=대한민국)]|| || '''신체''' ||164cm, 49kg|| ||<|2> '''가족''' ||의붓아빠, 어머니, 이부동생 2명[* 재혼 후 출생되었다.]|| ||배우자^^(2009년 사별)^^|| || '''종교''' ||[[무속|무교(巫敎)]][* [[모태신앙|유년기까지는 개신교 신자]]였다고 한다.]|| || '''직업''' ||[[무당]]|| 1986년 2월 6일생인 피해자는 중학생 때 모친의 재혼[* [[1999년]] 즈음으로 추정된다.]으로 보육 시설에 맡겨졌고, 보육 시설에서 나온 후 모 24시간 [[다방]]에서 일을 했었다. 실제로 피해자가 엄마처럼 따르던 다방 업주는 [[2000년]] 당시 중학교 2학년임에도 [[위장취업|나이를 속여]] 일자리를 구하던 피해자를 보고 바로 모친에게 연락했다고 했다. 그런데 연락을 받고 찾아온 모친은 딸을 데려가기커녕 유흥업소인 것을 알면서도 고용을 허락하는 서약서에 서명했다고 한다. 그렇게 가정의 실질적 가장이 된 피해자는 다방 업주를 따라 고향인 제주도로 내려왔고[* 제주도로 귀향하기 전에는 [[서울특별시]]와 [[경기도]] [[안산시]]에 거주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에도 계속 다방 일을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모친이 찾아와 저금 명목으로 피해자가 번 돈을 죄다 가져갔다. 이 때문인지 지인들은 피해자를 부모에게 사랑받지 못한 아이로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후 신내림을 받았는데, 개신교 집안이라 신내림을 반대했던 모친이 살인을 염두에 두고 집에 [[도시가스]]를 틀어놓은 적이 있다고 한다. 사망 며칠 전 마지막으로 모친과 함께 기념촬영차 제주 관내 모 사진관에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 붉은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고 한다. [[분류:2009년/사건사고]][[분류:대한민국의 미제사건]][[분류:서귀포시의 사건사고]][[분류:추락사한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