趙嬈 (? ~ 178년 7월 이전) [[후한]] 말의 여성으로 [[영제(후한)|영제]]의 [[유모]]. 167년, 영제가 즉위하자 영제의 유모 조요는 [[조절(삼국지)|조절]], [[왕보(후한)|왕보]] 등과 같이 섭정 [[환사황후]]에게 아첨을 일삼았고, [[진번]]은 조요 등을 죽이라는 상소를 올렸다.[* 출처: 후한서 진번열전.] 2차 [[당고의 금]] 때 조절이 영제를 덕양전으로 뛰어가게 하면서 유모 조요 등으로 하여금 영제를 호위하게 했다.[* 출처: 후한서 두무열전.] 178년 7월, 재앙이 연이어 일어나는 이유에 대해 [[채옹]]이 올린 상소 내용에서 조요가 언급되는데, 유모 조요는 살아서는 재물 곳집이 천자의 곳집과 같았고 죽어서는 무덤이 왕릉을 넘었고 가족들도 벼슬을 받았다고 한다.[* 출처: 후한서 채옹열전.] 이 기록을 보아 조요는 떵떵거리며 살다가 178년 7월 이전에 죽었다. 훗날 [[동진]]의 [[진성제]]가 그의 보모 주씨(周氏)에게 명호를 주고 싶어했는데, 고화가 그러한 선례는 후한의 영제가 그의 유모 조요를 평씨군(平氏君)으로 봉한 일 뿐이라면서 반대했다.[* 출처: 진서 고화열전.] 이 기록을 보아 조요는 생전에 영제로부터 평씨군(平氏君)이라는 봉호를 받았었다. 참고로 영제의 아들 [[헌제]]도 자기 유모 [[여귀]]에게 조요의 봉호와 똑같은 평씨군(平氏君)이라는 시호를 줬다. [[분류:후한의 인물]][[분류:중국사/여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