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진서(남조역사책))] [include(틀:남사)] ||<-2> '''남진의 대신[br]시평충백(始平忠伯)[br]{{{+1 趙知禮 | 조지례}}}''' || || '''시호''' ||충(忠) || || '''작호''' ||시평현백(始平縣伯) || || '''성''' ||조(趙) || || '''이름''' ||지례(知禮) || || '''자''' ||제단(齊旦) || || '''부친''' ||조효목(趙孝穆) || || '''출생''' ||519년 ~ 565년 || || '''출신''' ||천수군(天水郡) 농서현(隴西縣) || || '''국적''' ||양(梁) → 진(陳) || [목차] [clearfix] == 개요 == 중국 [[남북조시대]] [[양(육조)|남량]]과 [[진(육조)|남진]]의 대신이다. 자는 제단(齊旦). == 생애 == 천수군(天水郡) 농서현(隴西縣) 출신으로 조효목의 아들로 태어났다. 조지례는 문학과 사학을 섭렵하였고 예서에 뛰어났다. [[진패선]]이 원경중(元景仲)을 토벌할 때 어떤 사람이 조지례를 진패선에게 천거하여, 조지례는 진패선의 기실참군(記室參軍)으로 기용되었다. 조지례는 글을 쓰는 속도가 민첩하였고 군서를 말로 전할 때 바로 붓으로 써서 완성할 만큼 문장에 뛰어났다. 이를 통해 조지례는 진패선으로부터 매우 신임을 받았고 진패선의 계획에 참여하였다. [[후경]]의 난이 평정된 뒤, 조지례는 중서시랑으로 제수되고 시평현자(始平縣子)라는 작위를 받았다. 진패선이 사공이 되자 조지례는 종사중랑이 되었고, 이후 급사황문시랑, 위위경을 역임하였다. 진패선이 선양을 받아 진나라를 건국한 이후 조지례는 통직산기상시가 되었고, 태상경을 맡았으며 영군을 대리하였다. 560년에는 작위가 백으로 올라갔고 왕림의 난이 평정된 뒤에는 지절(持節), 독오주제군사(督吳州諸軍事), 명위장군(明威將軍), 오주 자사로 제수되었다. 이후 조지례는 명위장군, 태자우위솔을 맡았고 우위장군으로 옮기고 전군장군을 겸하다가 565년에 사망하여 시중으로 추증되고 충(忠)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분류:남북조시대/인물]][[분류:519년 출생]][[분류:565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