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서진의 후궁]][[분류:300년 사망]] 趙粲 (? ~ 300) [[서진]]의 초대 황제 [[무제(서진)|무제]]의 후궁. 265년에 [[사마염|무제]]가 즉위하고 [[양염]]을 황후로 세웠으며, 양염이 자신을 길러준 외삼촌의 은혜를 생각해 조준을 고관으로 임명하면서 조준의 조카 조찬을 후궁에 들어오게 했다. 진서 무원황후전에는 3번째 부인으로 들어갔다고 되어있지만, 진서 혜가황후에는 9빈 충화로 되어 있다. [[가남풍]]이 투기가 심해 세자 사마충의 첩이 임신한 것을 보고 극을 던져 태아를 죽게 만들었으며, 이에 무제가 분노해 금용성에 가둬 가남풍을 폐위하려고 했다가 조찬이 가비(가남풍)가 나이가 어리고 질투는 부인의 본성이라 자라면 스스로 나아질 것이라면서 이를 살펴야 된다고 말렸다. 조찬과 함께 [[순욱(서진)|순욱]], [[풍담]], [[양요#s-1]]가 가남풍을 폐위하는 것을 말려 가남풍은 폐비되지 않을 수 있었으며, 290년에 [[사마충]]이 즉위하자 가남풍의 신임을 받아 가남풍, [[가오(삼국지)#s-2|가오]]와 함께 자주 상의했다. 296년에 가남풍의 어머니인 [[곽괴]]가 죽기 직전에 조찬, 가오가 반드시 네 일을 어지럽힐 것이니, 자신이 죽은 후에는 다시 받아들이지 말라면서 깊이 새겨두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가남풍은 그 말을 듣지 않았고 300년에 조찬은 가남풍, 가오와 함께 계책을 꾸며서 태자 사마휼을 비방하고 죽이는 일에 참여했으며, [[사마륜]], [[사마경]] 등이 군사를 일으켜 가남풍을 폐위하자 주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