趙酆 생몰년도 미상 [[삼국시대(중국)|삼국시대]] 위나라, [[서진]]의 인물이며 자는 군초(君初)로 [[조자(후한)|조자]]의 아들. 사례 하내군 온현 출신으로 249년에 [[고평릉 사변]]으로 [[사마의]]가 [[조상(삼국지)|조상]]을 몰아내면서 사마씨가 정권을 장악하고 252년에 [[사마사]]가 집권해 대장군, 시중, 도독중외제군, 녹상서사를 겸하고 가절을 받으면서 [[종회]], [[하후현]], [[왕숙]], [[진본#s-2]], 맹강, [[장집]] 등과 함께 조정의 회의에 참여했다. 이후 진나라에서 표기장군을 지내고 동평릉공에 봉해졌다. 아버지 조자가 사마씨와 같은 고향 출신인데다가 함께 피난을 간 인연으로 사마씨 세력에 든 것으로 보이는데, 과거에 한나라 때 [[동탁]]이 집권하자 [[사마랑]]이 하내에서 전쟁이 날 것을 우려해 현 사람들에게 피난갈 것을 이야기했지만 응하지 않고 오로지 조자만이 사마랑을 따라갔다. [[분류:조위의 인물]][[분류:서진의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