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손오의 승상)] [include(틀:오서)] ||<-2>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8B0000 0%, #8B0000 20%, #8B0000 80%, #8B0000)" {{{+1 {{{#fecd21 '''{{{+1 朱據}}}[br]주거'''}}}}}}}}} || ||<:> '''[[작위|{{{#FEDC21 작위}}}]]''' ||<(> 운양후^^(雲陽侯)^^ → 임상후^^(臨湘侯)^^ || ||<:> '''[[직위|{{{#FEDC21 최종직위}}}]]''' ||<(> [[승상]]^^(丞相)^^ 대리 → 신도군^^(新都郡)^^ 승^^(丞)^^ || ||<:> '''[[성씨|{{{#FEDC21 성씨}}}]]''' ||<(> 주^^(朱)^^ || ||<:> '''[[휘|{{{#FEDC21 휘}}}]]''' ||<(> 거^^(據)^^ || ||<:> '''[[자(이름)|{{{#FEDC21 자}}}]]''' ||<(> 자범^^(子範)^^ || ||<:> '''{{{#FEDC21 생몰연도}}}''' ||<(> 194년 ~ 250년 또는 195년 ~ 251년 || ||<:> '''{{{#FEDC21 고향}}}''' ||<(> 양주^^(揚州)^^ 오군^^(吳郡)^^ 오현^^(吳縣)^^ || ||<:> '''{{{#FEDC21 승상 대리 재임기간}}}''' ||<(><#ffffff> 249년 9월 ~ 250년? 251년? || [목차] [clearfix] == 개요 == [[후한]] 말과 [[삼국시대(중국)|삼국시대]] [[오(삼국시대)|손오]]의 인물로 자는 자범(子範). 오의 사성 중 하나인 주씨의 일원으로 양주 오군 오현 출신이며, [[주환]]의 친척 동생[* 주거를 주환의 아들 주이의 숙부[* 친숙부의 뜻이 아니다.]로 부르는 것으로 봐서 주환과 한 집안사람이다.]으로, 아내는 [[손노육]]이다. == 생애 == 의표가 당당하고 근력이 있었으며 변론에 뛰어나 문무를 다 갖추어 [[여몽]]과 [[장온(손오)|장온]]의 뒤를 이을 거라 생각되는 기대주였다. 222년에 오관낭중, 시어사가 되어 당시 선조상서로 있던 [[글염]]이 탐욕스럽고 법을 오염시키는 자들이 관직에 있는 것이 싫어 그들을 씻어내려고 했으나 주거는 그들을 한꺼번에 보충하기는 어려우니 일단은 공으로 허물을 덮은 다음 서서히 능력있는 자들을 뽑아 그들을 대신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글염은 그 말을 듣지 않아 결국 실패했다.[* 이 주거의 제안과 같은 것을 성공적으로 실현한 사람이 위나라의 인물인 초창기의 [[고유(조위)|고유]]다.] 당시 병사들을 인솔할 만한 장수감이 부족해 [[손권]]은 주거가 그 역할을 해줄 것이라 생각해 주거를 건의교위로 임명하고 호숙에 주둔한 병사를 인솔하도록 했다. 229년에 손권은 수도를 건업으로 옮기면서 손노육을 주거에게 시집보내고 그를 좌장군, 운양후로 봉한다. 주거는 재물을 경시하고 베풀기를 좋아해 하사받은 봉록이 많았지만 항상 돈이 부족했다고 한다. 232~238년 사이에 있었던 일인데, 주거의 부대 사람이 받기로 되어 있던 3만 전을 왕수라는 공인이 빼돌리자 여일이라는 손권의 총애만을 믿고 날뛰던 간신배가 그걸 언제나 돈이 부족했던 주거가 했다고 생각해 주거의 재물을 관리하던 자를 고문 끝에 죽인다. 주거는 부하의 억울한 죽음에 어떻게 할 수도 없이 그저 장례만 후하게 치뤄줬는데, 여일은 이것을 보고 주거가 자신을 위해 사실을 숨기고 부하가 주거를 지키기 위해 사실을 말하지 않고 죽자 그를 위해 후히 장례를 치룬 것이라 손권에게 무고한다. 주거는 자신의 무죄를 밝힐 방법도 없고 그저 죄를 기다릴 뿐이었는데, 전군리 유조가 진상을 밝혀 왕수라는 자가 취했다고 했다. 주거는 무죄를 선고받고 유조에게는 1백만 전을 손권이 내리는데, 이 일로 인해 갑자기 노망들었던 손권이 제정신을 차려 간신배 여일을 죽이게 된다. 240년에 은번이라는 자가 위나라에서 항복하자 주거는 [[학보]]와 함께 은번의 재주를 칭찬하면서 그를 계속 고위관직에 두어야한다고 주장하는데, 사실 은번이 매복의 독이라서 반란을 꾀하다 사망하니 학보는 자결을 명받고 주거는 연금되었다가 시간이 흐른 뒤에 사면된다. 246년에 표기장군으로 승진해 249년 9월 승상 대리를 지냈는데, 까마귀 두 마리가 까치를 물어 동관에 떨어뜨리자 승상을 대리해 까치를 태워 제사를 지냈다는 말이 있다. 그 뒤 [[이궁의 변]]에서 [[손화]]의 편을 들자 손권에게 미움을 받는데, 특히 손화가 유폐되자 다음과 같은 상소를 올렸으나 이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머리에 진흙을 바르고 스스로를 결박해 손화를 풀어줄 것을 요청한 것이 결정적으로 작용해 곤장 백대를 맞고 신도군의 승으로 좌천된다. 그런데 그때 [[손홍]]이라는 사람이 손권이 침상에 누워있는 틈을 타 가짜 조서를 써서 주거를 자결에 이르게 하니 이 때 주거의 나이는 57세였다. 그의 두 아들 [[주웅]]와 [[주손]]은 [[손노반]]에게 누명을 쓰고 [[손량]]에게 최후를 맞았으며, 그의 딸 [[주부인]]은 손휴의 황후가 되었다. 그러나 [[손호]]가 즉위한 뒤에 주부인은 핍박을 받아 최후를 맞는다. == 미디어 믹스 == ===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 === || [[파일:external/kongming.net/624-Zhu-Ju.jpg]] || || 삼국지 11 || || [[파일:external/san.nobuwiki.org/0356.jpg|width=400]] || || 삼국지 12, 13, 14 || [[삼국지 6]]에서 처음으로 등장했는데 능력치는 그리 좋은 편까진 아니다. 후기 장수여서 못 써먹을 정도는 아니지만 무력이 60정도로 조금 낮은 대신 나머지 등력치는 평균 70수준. [[삼국지 9]]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78/무력 63/지력 77/정치력 78. 보유한 병법들이 상당히 좋다. 연사, '''투함,''' 정란, 덫을 가지고 있어서 후반부 장수로서는 A급이라고 할 정도. [[삼국지 10]]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74/무력 59/지력 73/정치력 68/매력 72에 명사, 제독 특기를 모두 가지고 있다. 전체적으로 특기는 농업, 화시, 진정, 저지, 유인, 명사, 제독. 총 7개다. [[삼국지 11]]에서의 능력치는 77/57/72/70/76에 특기는 조타. 적성은 창병과 노병 A에 수군이 S다. [[삼국지 12]] PK에서 추가되고 공주와 결혼했다는 것 때문인지 일러스트가 업그레이드 되었다. [[삼국지 13]]에서의 능력치는 통솔 77/ 무력 57/지력 72/정치 70이다. 특기는 상업 1, 문화 1,(손노육 인연 효과) 수영 4로 전수특기는 수영이며 전법은 방어강화. [[삼국지 14]]에서의 능력치는 통솔 75, 무력 57, 지력 72, 정치 70, 매력 71로 전작에 비해 통솔력이 2 하락했다. 개성은 소욕, 조타, 여망, 주의는 왕도, 정책은 공법개혁 Lv 3, 진형은 어린, 안행, 방원, 전법은 화시, 구축, 강습, 시람, 친애무장은 [[은번]], 혐오무장은 [[여일]]이다. 무력이 낮아도 안행진, 방원진형이 있어서 원거리 보조용, 탱커용으로 쓰이고 만능형답게 내정 및 전투용으로 쓰인다. === [[삼국전투기]] === 머리띠를 두르고 긴머리를 뒤로 묶은 청년으로 등장한다. 생김새가 슬램덩크의 [[전호장]]과 유사하다는 의견도 있지만 확실하진 않다. 덤으로 말하면 자식들인 주웅, 주손 역시 비슷한 모양새로 등장. 뒤통수를 맞은 적이 많다고 '''호구왕''' 취급을 받는다. 사망한 이후 국산 전투 (1)편의 타이틀 컷을 장식하기도 했다. 전투외편 1편에서 처음 등장. 238년 기준 좌장군으로 우장군 보즐, 시중 감택과 더불어 오의 파워 랭킹 7위에 위치해 있다고 묘사된다. 포텐셜이 높아서 손권이 전략적으로 밀어주던 장수라고 언급되기도 한다. 감택이 보즐, 주거와 자신을 두고 뭔가 흐릿한 3인이라고 하자 흐릿하긴 뭐가 흐릿하냐며 화를 내기도 했다. 여몽 이상의 임팩트 갑이 될 거라는 포부를 밝힌 건 덤. 여일이 전횡을 부릴 당시에는 여일에 의해 병사들의 월급을 횡령했다는 누명을 쓰고 측근들이 죽어나가는 피해를 입었다. 주거는 크게 슬퍼하며 그들의 장례를 치렀고 그 사실이 여일에게 포착되면서 주거 본인까지 잡혀오게 되었지만, 유조의 활약 덕분에 위기에서 벗어났다. 전투외편 3편에서는 수염을 기른 것으로 묘사된다. 육손과 오찬이 전부 죽으면서 손화파의 리더가 되었고, 주거 본인은 손화에게 자기가 반드시 지켜주겠다고 말했지만 손화는 주거가 뒷통수를 잘 맞으니 안심이 안 된다며 못 미더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실제로 손패파도 주거는 헐렁해서 쉽게 잡을 수 있을 거라고 얕보고 있었다(...)] 전투외편 4편에서는 손권이 손화를 유폐시키자 당시 승상이었던 주거를 비롯한 수많은 신하들이 상소했지만 오히려 이와 관련된 십 수명이 유배를 당하거나 죽고 주거 본인도 지방으로 좌천됐다. 이후 주거는 손홍의 문서조작으로 인해 유배지에서 사약을 받아 죽었다. [각주] [[분류:후한의 인물]][[분류:손오의 부마]][[분류:손오의 승상]][[분류:삼국시대(중국)/외척]][[분류:중국의 자살한 인물]][[분류:장쑤성 출신 인물]][[분류:오군 주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