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상위 문서, top1=중화민국)] [include(틀:중국의 역사)] [include(틀:타이완섬의 역사)] [목차] == 개요 == 중화민국은 1911년에 일어난 [[신해혁명]]을 바탕으로 [[청나라]]의 뒤를 이어 1912년 세워졌다. [[국부]]는 [[쑨원]]. [[위안스카이]]와 [[장제스]] 등이 지도자로 있었다. == 역사 == 중화민국의 역사는 크게 다음과 같이 다섯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 [[중화민국/임시정부|임시정부]]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중화민국/임시정부)] [[신해혁명]]으로 [[청나라]]가 타도되고 중국 대륙에 세워진 최초의 공화정. [[쑨원]]이 [[위안스카이]]와의 협상에서 총통직을 넘겨주면서 북양정부가 수립된다 === [[중화민국/북양정부|북양정부]]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중화민국/북양정부)] 총통이된 [[위안스카이]]의 독재를 위해 전제군주제 [[중화제국(1915~1916)|중화제국]]을 수립되면서 [[호국전쟁]]이 일어나 나라가 뒤집혔고 위안스카이가 이를 수습하기도 전에 사망하면서 대권을 쥔 [[북양군벌]]은 [[직예군벌]], [[안휘군벌]], [[봉천군벌]]로 갈라져 권력투쟁을 벌이고 남방에선 군벌들이 쑨원을 초빙해 [[호법전쟁]]을 일으키는 등 나라가 개판이 되었다. 결국 [[군벌/중화민국|군벌]]들이 각 지방마다 할거하여 독립왕국을 건설하고 아귀다툼을 벌이게 되었다. 막판에 [[장쭤린]]의 봉천군벌이 주도권을 쥐었으나 [[장제스]]가 영도하는 [[중국 국민당]]의 [[국민당의 1차 북벌]]을 맞이하였고 1928년 [[국민당의 2차 북벌]] 이후 [[동북역치]]를 통해 난징 국민정부에 복종하게 되면서 북양정부는 사라졌다. === [[중화민국/국민정부|국민정부]]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중화민국/국민정부)] [[국민혁명|북벌]]로 대륙 각 지역의 군벌을 형식상 [[중국국민당]]에 복속시킨 [[장제스]]가 북양정부를 대폭 개편하여 세운 정부. 공화정과 민주정을 지향했지만 여전히 군벌은 장제스 말을 안 듣고 내전을 벌였고 장제스는 민주주의 이전에 강력한 국가 정당, 즉 중국국민당이 우선 국가 안정을 확보해야 한다는 논리에 따라 헌법도 갖추지 못한 채 일당 독재적 통치를 펼쳤다. 그래도 국민당은 계속되는 군벌 약화와 [[중일전쟁]]의 승리로 어느 정도 안정을 찾을 수 있었고 1946년에 [[대만 헌법|중화민국 헌법]]을 제정해 정식으로 민주주의 정치 체제를 채택했다. 그러나 [[중국 공산당]]과의 갈등이 터져 [[국공내전]]이 일어났다. === 중화민국 정부 === 1948년 4월 20일 [[제1대 중화민국 정부총통 선거]]에서 총통으로 [[장제스]], 부총통으로 [[리쭝런]]이 취임하고, 같은해 5월 20일 [[대만 헌법|중화민국 헌법]]의 시행으로 총통제를 실시하고 정부 조직을 개편하면서 기존의 국민정부가 폐지되고 '중화민국 정부'가 새로이 수립되었다. 하지만 [[중일전쟁]]으로 중화민국의 경제 기반이 모조리 파괴된 터라 초 인플레이션이 중화민국을 강타했다. 이를 무마하기 위해 1948년에 [[상하이]]에서 [[장징궈]]가 법폐 300만 위안을 금원권 1위안으로 교환하는 [[재정경제긴급처분령]]을 시행하였고, 이후 1949년에도 금원권 5억 위안을 은원권 1위안으로 교환하는 대륙 화폐개혁을 실시했지만 실패하였다. 경제가 수습되지 않은 상태에서 대규모 내전을 개시한 국민정부는 나락으로 치달았다. 결국 만주에 이어 화북이 함락되고 장강까지 돌파되면서 쓰촨, 윈난의 오지로 내몰렸다. 대륙 각지에서 [[중국 공산당]]에 밀린 중국 국민당은 더 이상 대륙을 사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1949년 [[국부천대]]를 단행한다. 이 입헌 체제는 [[대만]]에서도 그대로 유지된다. === [[대만|국부천대 이후]]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중화민국/역사/대만)] ||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STbu97ZcHCY)]}}} || || British Pathé가 1959년에 제작한 '대만-자유의 10년' 영상[* 자유세계의 최전방 중 하나로써 대륙의 공산 중국에 대항하며 경제적으로도 발전하는 중화민국의 모습을 담았으나, 그 이면의 인권 탄압에 대해서는 어떠한 언급도 없다.] || [[타이완 섬]]과 [[푸젠성(대만)|푸젠성]] 소속 부속 도서에서 장제스가 세계 최장의 [[계엄령]]을 통해 종신토록 지도자를 하다가 사후 아들 [[장징궈]]를 거쳐 민주화가 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이 기간동안 아시아의 4마리 용 중 하나라고 불릴 정도로 높은 경제 성장을 이룩하였으나, 외부적으로는 1971년 중화인민공화국에 유엔 상임이사국 지위를 빼앗긴 이래 지속적으로 외교적 고립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고전하고 있다. 오늘날 [[중국]]과 [[대만]]은 간 서로 입장이 다르다보니 [[시대구분]]에 관하여 인식차이가 있다. 중화인민공화국에서는 1912년부터 1949년 10월 신중국 수립 전까지의 기간을 '민국시대'(民國時代)라고 칭하거나, '[[신중국]]'(新中國)인 중화인민공화국과 대비하기 위해 [[청나라]] 시기와 합쳐 '구중국'(舊中國)이라고 칭하며, [[중국 국민당]] 체제 다음을 바로 [[중화인민공화국]]으로 본다. 중화인민공화국의 입장에선 중화민국은 1912년에 건국되어 1949년 멸망한 '과거의' 나라이며 그 지위는 중화인민공화국이 [[국가승계|이어받았고]], 현재 [[타이완]] 일대를 다스리는 중화민국은 그 '멸망한' 중화민국의 지위를 '참칭(僭稱)'한 단체라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대만에서는 스스로 [[중화민국]] 그 자체로 여기므로, '민국시대'는 1945년부터 현재까지로 간주하며, [[신해혁명]] 이후 즉 중화민국을 '신중국'으로 부르고 청나라까지를 구중국으로 칭한다. 이에 관련된 내용은 [[하나의 중국]], [[신중국]] 등 관련 문서를 참고할 것. == 영토 변화 == ||<-3> '''중화민국 영토의 변천'''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www.libertytimes.com.tw/87.jpg|width=100%]]}}}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www.libertytimes.com.tw/121.jpg|width=100%]]}}}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www.libertytimes.com.tw/122.jpg|width=100%]]}}} || || 1912~1945년 || 1945~1949년 || 1949년~현재 || 1912년부터 1949년까지 북양정부와 국민정부 시기에 중화민국은 중국 대륙을 영토로 차지했으며, 1945년 일본 패망 이후 일본의 식민지인 타이완을 돌려받은 것이 그 사이에 있었던 유일한 차이었다. 1949년 국공내전에서 국민당이 패배한 이후부터 중화민국은 현재처럼 타이완 섬과 그 근처 섬만 차지하게 되었다. 현재 '''[[대만/영유권 주장 지역|중화민국의 영토는 명목상 11,077,380km²로 러시아에 이어 세계 2위이지만,]]''' [[현시창|실제론 35,980㎢]]. 대략 '''[[한반도]]'''에 비해 1/6 정도로 작고 [[경상도]]보다 조금 더 큰 사이즈라고 보면 된다. 다만 위의 중국 대륙을 차지할 당시의 영토는 당시에도 명목상에 가까웠다. 중화민국은 티베트, 동투르키스탄(위구르) 등의 서쪽 지방을 자국 영토로 간주는 했으나, 티베트에는 사실상 실제 주권이 미치지는 못했다. 오히려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후에야 티베트는 다시 중국의 실질적 영토가 되었다. == 둘러보기 == [include(틀:대만 관련 문서)] [각주]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중화민국, version=1214)] [[분류:중화민국의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