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요 == 鎭撫營 [[조선]] 시대 [[강화도]]에 설치되어 [[강화도]]와 [[한강]] 수로를 지키던 군영. [[강화도]]와 [[경기도]] 연안 뿐 아니라 [[충청도]] 일부도 위수지역으로 하였다. 지휘관은 진무사(鎭撫使)[* 종2품]라 하였으며 진무사는 강화유수가 겸하였다. == 역사 == [[숙종(조선)|숙종]] 4년(1678) [[강화도]]의 경계를 강화하기 위해 강화유수가 진무사(鎭撫使)를 겸하게 하였고, 숙종 26년(1700) 진무영(鎭撫營) 본영을 설치하면서 진무영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진무영 설치의 계기는 [[병자호란]] 당시 경험으로 미루어보아 [[남한산성]]의 군사적 가치에 대한 회의가 제기되었고 반대급부로 [[강화도]]의 전략적 가치가 올라갔기 때문이다. [[정조(조선)|정조]] 대인 1779년 국가 재정이 많이 소요된다는 이유로 통어영[* [[조선]] 후기 [[황해도]], [[경기도]], [[충청도]] 지역 수군을 지휘하던 군영으로 정식 이름은 삼도수군통어영(三道水軍統禦營)이다. 통어영 본청은 [[교동도]]에 위치하였다.]과 병합되었으나, 10년만인 1789년 다시 분리되었다. [[고종(대한제국)|고종]] 즉위 시에는 [[병인양요]], [[신미양요]]를 겪으면서 서양 열강의 군대와 직접 싸워본 몇 안되는 군영 중의 하나이다. [[흥선대원군]]이 집권하던 시기 [[경기도]] 연안 일대 육군과 수군을 총지휘하고 진무사가 외등단에 해당되는 등 그 지휘과 영향력이 크게 증가하였으나 고종이 친정한 이후에는 격하되었다. 1883년 친군기연해방영(親軍畿沿海防營)을 설치하면서 그 예하로 들어갔고, 1887년 친군심영(親軍沁營)으로 개칭되었다. == 편제 == ||품계||관직||비고|| ||종2품||진무사(鎭撫使)||강화유수가 겸임|| ||정3품||중군(中軍)||부사령관, 참모장 역할|| ||정3품||진영장(鎭營將)||5개의 영(營)의 지휘관|| ||군영||지역||비고|| ||전영(前營)||부평부(富平府)||전영장(前營將)은 부평부사가 겸하였다.|| ||후영(後營)||연안부(延安府)||후영장(後營將)은 연안부사가 겸하였다.|| ||중영(中營)||미상||중영장(中營將)은 진무영 중군이 겸하였다.|| ||좌영(左營)||통진부(通津府)||좌영장(左營將)은 통진부사가 겸하였다.|| ||우영(右營)||풍덕부(豊德府)||우영장(右營將)은 풍덕부사가 겸하였다.|| ||별중영(別中營)|| [[충청도]] 12개 읍||해미에 군영이 위치하였다.|| [[분류:조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