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진서(남조역사책))] [include(틀:남사)] ||<-2> '''남진의 반신[br]{{{+1 陳叔陵 | 진숙릉}}}''' || || '''작호''' ||강락현후(康樂縣侯) → 시흥군왕(始興郡王) || || '''성''' ||진(陳) || || '''이름''' ||숙릉(叔陵) || || '''자''' ||자숭(子嵩) || || '''생몰''' ||554년 ~ 582년 || || '''부친''' ||[[선제(남진)|진욱]](陳頊) || || '''모친''' ||귀인(貴人) 팽씨(彭氏) || || '''주군''' ||[[진패선|진무제]](陳武帝)[br][[진천(남진)|진문제]](陳文帝)[br][[진백종|진폐제]](陳廢帝)[br][[진욱|진선제]](陳宣帝) || [목차] [clearfix] == 개요 == [[남북조시대]] [[진(남조)|남진]]의 황족으로 자는 자숭(子嵩). == 생애 == 제4대 황제인 [[선제(남진)|선제]] 진욱의 2남으로 모친은 귀인 팽씨(彭氏)이며, [[양(남조)|양나라]] 승성 연간에 강릉에서 태어났다. 진욱이 관우(關右)로 이동할 때 진숙릉은 양성(穰城)에 머물렀고, 진욱이 돌아온 뒤에는 형인 진숙보와 함께 인질이 되었다. 562년에는 진숙보와 함께 조정으로 돌아와 강락현후(康樂縣侯)로 책봉되고 식읍 5백 호를 받았다. 567년에는 중서시랑(中書侍郞)으로 제수되었고, 568년에 지절(持節), 도독강주제군사(都督江州諸軍事), 남중랑장(南中郞將), 강주 자사를 맡았다. 569년, 시흥군왕(始興郡王)으로 책봉되어 시흥소열왕 진도담의 제사를 받들었다. 또한 사지절(使持節), 도독강영진3주제군사(都督江郢晉三州諸軍事), 군사장군(軍師將軍)으로 진위되고 자사는 예전과 같이 받았다. 571년, 시중(侍中)이 더해졌다. 572년, 도독상형계무4주제군사(都督湘衡桂武四州諸軍事), 평남장군(平南將軍), 상주 자사로 승진하였으며, 시중과 사지절은 예전과 같이 임명되었다. 579년에 생모인 팽씨가 죽자, 진숙릉은 매령(梅嶺)에 자신의 모친을 장사지내려고 했다. 그리고 매령에 안장된 [[사안(동진)|사안]]의 무덤을 파헤쳐 팽씨의 시신을 그곳에 매장하였다. 처음 팽씨의 장례를 지내는 날에 진숙릉은 거짓으로 애통해하는 모습을 보였고 자신의 피로 열반경을 지었다는 거짓말도 한다. 진숙릉의 죄상이 보고되자, 선제는 어사중승 왕정(王政)을 견책하여 면직시켰다. 582년 선제가 죽을 때, 진숙보가 엎드려 곡을 했는데 진숙릉은 약칼을 꺼내 진숙보의 목을 찌르려고 했지만 진숙보를 죽이지는 못했다. [[소마하]]가 이끄는 군대에 의해 반란은 실패하였고 자신도 전사하였다. 그리고 모친인 팽씨는 무덤이 파헤쳐졌다. [[분류:남북조시대/황족]][[분류:554년 출생]][[분류:582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