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남북조시대/황족]][[분류:503년 출생]][[분류:560년 사망]] [include(틀:진서(남조역사책))] [include(틀:남사)] ||<-2> '''영수정후(永修定侯)[br]{{{+1 陳擬 | 진의}}}''' || || '''작위''' ||영수현개국후(永修縣開國侯) || || '''시호''' ||정(定) || || '''성''' ||진(陳) || || '''이름''' ||의(擬) || || '''자''' ||공정(公正) || || '''생몰''' ||503년 ~ 560년 || [목차] [clearfix] == 개요 == [[남북조시대]] [[진(남조)|남진]]의 종실로 자는 공정(公正). == 생애 == 503년에 태어났으며, 진패선의 먼 친척이다. 어린 나이에 고아가 되어 가난한 환경 속에 자랐지만 성격이 정직했고 기억력이 뛰어났다. 진패선이 교주에서 반란을 일으킨 [[리비|이분]]을 정벌할 때 종군하였다. 진패선이 [[후경]]을 토벌할 때 예장(預章)에 이르러 진의는 나주자사(羅州刺史)로 임명되고 호영(胡穎)과 함께 후방의 사무를 맡으며 진패선에게 군량을 보급하였다. 진패선이 주방(朱方)에 진수할 때 진의는 보병교위(步兵校尉), 곡아현령(曲阿縣令)에 제수되었다. 555년, 정위장군(貞威將軍), 의흥태수(義興太守)로 제수되었다. 다음해인 556년에 입조하여 위위(衛尉)를 맡았고 원외산기상시(員外散騎常侍), 명위장군(明威將軍), 옹주자사(雍州刺史)로 제수되었으며, 감남서주(監南徐州)를 겸하였다. 557년, 진패선이 양나라의 마지막 황제 [[경제(양)|경제 소방지]]로부터 선양을 받아 진(陳)나라를 건국하고 제위에 오르니 이가 초대 황제인 [[무제(남진)|무제]]였다. 진의는 영수현개국후(永修縣開國侯)에 봉해졌고 식읍 500호를 받았다. 뒤이어 진의는 경거장군(輕車將軍)에 제수되고 남서주자사(南徐州刺史)를 겸임하였으며, 원외산기상시는 예전과 같이 받았다. 이후 통직산기상시, 중령군(中領軍)으로 제수되었다. 559년, 다시 감남서주를 맡았다. 같은 해, 무제가 붕어하고 진천이 즉위하니 이가 제2대 황제인 [[문제(남진)|문제]]였다. 진의는 단양윤(丹陽尹)에 제수되고 통직산기상시는 예전과 같이 받았다. 진의는 사건에 연루되어 면직되었지만 무관인 상태로 태수를 맡았다. 진의는 560년에 사망하여 영군장군(領軍將軍)으로 추증되었고 정(定)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561년, 무제의 종묘에 배향되었다. 아들인 진당(陳黨)이 후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