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한 황제)] ---- ||<-2>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810E0E 0%, #A11 20%, #A11 80%, #810E0E); color: #ece5b6" '''한 제25대 황제[br]{{{+1 효질황제 | 孝質皇帝}}}'''}}} || ||<|2> '''출생''' ||[[138년]][* 대중들에게 잘 알려진 [[삼국지]] 극초반의 인물들인 [[하진]], [[황보숭]], [[주준]], [[노식]], [[동탁]], [[사섭]]과 같은 세대인데 훨씬 앞 세대에 황위에 있었다. 동한이 얼마나 어린 황제가 많은 국가였는지 알게 해주는 점.] || ||[[후한]] [[허난성|하남군]] [[뤄양시|낙양]][br](現 [[허난성]] [[뤄양시]]) || ||<|2> '''즉위''' ||[[145년]] [[3월 6일]] || ||[[후한]] [[허난성|하남군]] [[뤄양시|낙양]] 황궁[br](現 [[허난성]] [[뤄양시]]) || ||<|2> '''사망''' ||[[146년]] [[2월 26일]] (향년 8세) || ||[[후한]] [[허난성|하남군]] [[뤄양시|낙양]] 낙양궁[br](現 [[허난성]] [[뤄양시]]) || || '''능묘''' ||[[정릉]](靜陵) || ||<|2> '''재위기간''' ||'''{{{#ece5b6 후한의 황제}}}''' || ||[[145년]] [[3월 6일]] ~ [[146년]] [[2월 26일]] || ||<-2>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성씨''' ||[[유(성씨)|유(劉)]] || || '''휘''' ||찬(纘) || || '''부모''' ||부왕 발해효왕[br]모후 발해효왕비[* 질제는 방계로서 들어와 제위를 계승하였는데 양씨가 정권을 장악하고 있었으므로 존숭받지 못하다가, 희평 4년에 발해효왕비로 격상되었다.] || || '''형제자매''' ||외아들 || || '''시호''' ||'''효질황제(孝質皇帝)''' || || '''연호''' ||본초(本初, [[146년]]) || }}}}}}}}} || [목차] [clearfix] == 개요 == 한나라(漢)의 제25대 황제이자, [[후한]](後漢)의 황제로서는 제10대 황제. 휘는 찬(纘). [[장제(후한)|장제]]의 현손으로 천승정왕 유항의 증손, 낙안이왕 유총의 손자, 발해효왕 유홍의 아들이다. 즉위 기간 동안 [[연호]]는 본초(本初)를 썼다. == 생애 == 145년, 충제가 3세의 나이로 요절했을 때, 태위(太尉) [[이고(후한)|이고]](李固)를 비롯한 대신들은 외척이 정사를 농락하지 않기 위해서 연장자를 [[황제]]로 세우려고 하였으나, [[간신]]이자 [[권신]]인 [[양기(후한)|양기]]는 자신이 손바닥안에서 가지고 놀 수 있는 어린 황제를 삼기 위해 질제를 세웠다. 질제가 어리긴 하였지만 총명하여 세상 돌아가는 이치는 알고 있었다. 양기의 권세를 불편하게 여긴 그는 어느 날 양기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이 사람이 바로 발호장군이군!"[* 嘗因朝會 此 跋扈將軍也(이 사람이 바로 제멋대로 행동하는 대장이군!)라는 정도의 뜻이다.] 양기는 이 말을 듣고 두렵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해 질제를 없애버릴 음모를 꾸몄다. 그리하여 새해 떡에 [[독극물|독]]을 넣어서 질제에게 바쳤다. 그걸 먹은 질제가 괴로워하자 태위 이고가 물어보니 질제는 물이 먹고 싶다고 말했다. 양기는 실패할까 봐 물을 마시지 말라고 말했고 머지 않아 질제는 붕어했다. 거꾸로 보면 총명하지만 신중하지 못한 행동으로 인해 요절한 사례로, 혹은 권력이나 인간의 악의가 얼마나 무서운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할 수도 있다. 이렇게 어린 나이에도 보여준 총기로 보아 한 황실을 바로 잡을 수 있었던 마지막 인물로 여겨지며, 주위에 좀 신중하라고 충고해 줄 신하가 있었다면 이후 한 황조가 어떻게 되었을 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거꾸로 이런 신하가 이미 전멸해 있었다는 것이 당시 한왕조의 실상이기도 했으니. 한 황조가 거꾸러지기 시작한 [[동탁]]의 집권 당시까지만 살아있었어도 52세이니,[* 질제는 동탁과 연배가 비슷하다.] 질제가 독살당하지 않고 성장할 때까지 황위를 유지했으면 동한을 재건한 [[중시조]]로써 평가받을 여지가 있었다는 것은 절대로 억측이 아니다. == 미디어 믹스에서 == <[[삼국연의(1994)]]>에 단역으로나마[[https://mblogthumb-phinf.pstatic.net/MjAxNzA3MjZfNjIg/MDAxNTAxMDI1MTcxMjc4.h_ckJZwlcnDVgYPVUv81mMuONMVnlNpL2sCmJcl0HqUg.8suIVv5_wiRSxyBLETncfp3Pqsw_tZjIFYycKlbBv4gg.JPEG.kwac1981/한질제.png?type=w420| 잠시 나왔다.]] 양기에게 독살당하는 장면이다. 실제로 《삼국지》 최고령 세대인 [[동탁]], [[황보숭]], [[주준]], [[노식]], [[유표]], [[사섭]] 등과 연배가 비슷하며[* 이 중에 나이가 확실히 알려진 인물들 중 사섭보다는 1세 연하, 유표보다는 4세 연상이다.] 이들은 질제를 죽인 양기가 몰락할 때 벌써 성년이었다. 2000년 중국에서 《팔세용야뇨동경》(八歲龍爺閙東京, 8세 황제가 낙양을 흔들다)이라는 사극으로 만들어졌다. 중국에서 가끔 나오는 어린 천재물로, 여기서는 질제가 죽지 않고 양기 일파를 타도하여 한황실을 바로 잡는다는 결말이다. == 둘러보기 == [include(틀:후한서)] [include(틀:후한기)] [각주] [include(틀:문서 가져옴,title=질제,version=16)] [[분류:한나라의 황제]] [[분류:138년 출생]] [[분류:146년 사망]][[분류:독살된 인물]][[분류:뤄양시 출신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