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명 ||차영호(車榮鎬) || || 이명 ||진일수(陳一秀) || || 생몰 ||[[1896년]] [[6월 13일]] ~ [[1926년]] [[8월 8일]] || || [[출생지]] ||[[경기도]] [[가평군]] || || 사망지 ||[[상하이]] || ||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 [목차] == 개요 ==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 생애 == 차영호는 1896년 6월 13일 경기도 가평군에서 태어났다. 그는 보성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반지를 파는 잡화상으로 살아가다가 상하이에서 조선으로 와서 독립운동을 준비하고 있던 고한(高漢)으로부터 조선 독립운동을 준비 중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이에 가담하기로 결심, 1919년 3월 1일 파고다공원으로 들어가 군중과 함께 독립만세시위를 벌였다. 이후 [[장채극]]이 <독립신문> 제17호 등을 발간할 때 용지 조달이 곤란하자 그가 동양용달회사에 의뢰해 백지 2만 매를 준비했으며, 3월 하순에 자신의 상점에서 김유인(金裕寅)에게 백지 16,000매를 넘겨주어 <독립신문>과 임시정부 선포문 간행에 조력했다. 그러나 얼마 후 헌병대에게 체포된 그는 1919년 11월 6일 경성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및 출판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이후 상하이로 건너가 [[김구]] 휘하의 한혈단에 가입하여 친일부호와 일제 고관을 암살하는 역할을 수행하다가 1926년 8월 8일 상하이에서 병사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2년 차영호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분류:나무위키 독립운동가 프로젝트]][[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가평군 출신 인물]][[분류:1896년 출생]][[분류:1926년 사망]][[분류:건국훈장 애족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