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찬합.jpg]] [목차] == 개요 == {{{+1 饌盒 / 饌榼}}} [[반찬]]([[饌]])을 담는 [[그릇]]([[盒]])이라는 뜻으로, 반찬을 여러 층의 그릇에 담아 포개어 들고 다닐 수 있도록 만든 용기를 말한다. 이는 현대의 [[도시락]]과 비슷하다. 옛날 궁중연회 때에는 주방에서 만든 음식을 연회장까지 가져가야 했으므로 찬합이 요긴하게 쓰였다. 이외에도 이동 중에 먹을 수 있는 보관용과 선물용 등으로 쓰였다. 나무로 만든 상자에 반찬을 넣고 층층이 쌓은 뒤 맨 위의 그릇에만 뚜껑을 덮으면 찬합이 된다. 그 외에 [[서랍]]식으로 만들어 음식을 넣고 꺼낼 때 여닫는 형태도 있으며, 이 경우 서랍이 열려 음식이 떨어지지 않도록 앞에 위아래로 여닫는 덮개를 하나 더 덧대는 경우도 있다. 편의상 여러 개의 그릇을 한 번에 들고 다니기 쉽도록 손잡이가 달린 것이 대부분이지만, 그릇만 쌓아서 손으로 들고 다니는 것도 찬합이라고 한다. 집에서 음식은 대개 사기그릇이나 [[놋그릇]]에 담아서 먹지만, 찬합의 경우는 들고 다니기 가볍도록 목재나 자기 등으로 만들었다. 목재의 경우 음식의 보관과 부패 방지를 위해 수분에 강하고 통풍이 잘되는 오동나무, 은행나무 등 수종을 이용했고, 대나무쪽을 잇대어 엮은 죽합(竹盒)이나 박목판(薄木板)으로 짠 구조 위에 등나무줄기로 엮어 만든 등합(藤盒) 등이 있었다. 그런데 물기가 있는 반찬을 담아야 하는데, 이렇게 되면 목재는 썩기가 쉬우니 [[옻칠]]을 하여 방수처리를 하는 것이 필수였다. 술안주 등 마른 반찬을 담는 찬합의 경우, 기름칠을 하기도 했다. 여기에 [[나전칠기]]로 장식하거나 금칠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전, 흑칠, 주칠 등 고급 찬합과 내부에 옻칠이 되어있지 않은 찬합 등도 있어 다양한 계층에서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 역사 == 찬합은 본래 [[중국]]에서 처음 만들어진 것으로, [[조조]]와 [[순욱]]의 일화에서 보듯 이미 오래 전부터 사용되었던 것이 확인된다. [[한국]]보다는 [[일본]]에 먼저 전래된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에서는 [[1421년]]([[세종(조선)|세종]] 3년) [[조선왕조실록]]에 [[일본]] [[규슈]] 총관이 사신을 보내 서신과 함께 식롱(食籠) 한 개를 바쳤다는 기록으로 처음 등장하며, 식롱은 찬합과 같이 포개는 형태의 용기이다. [[1624년]]에 기록된 조천항해록(朝天航海錄)에는 사신 접대를 담당하던 회동관에서 찬합을 보내왔다는 기록이 있다. 이것으로 미루어 보아 우리나라에서는 일찍이 조조와 순욱의 고사로 찬합의 존재를 알고는 있었을 테지만 실제로 사용하기 시작한 건 조선시대부터였음을 알 수 있다. 조선 왕실 기록에서 찬합이 등장한 것은 [[1847년]] '정미가례시일기(丁未嘉禮時日記)'이며, '헌종무신진찬의궤(憲宗戊申進饌儀軌)'에도 연행(燕行)에 사층왜찬합(四層倭饌盒)이 사용된 것이 기록되어 있다. 예로부터 상류층에서는 일본제 찬합(왜찬합)이 뛰어나다고 하여 널리 사용했던 것 같다. 특히 조선 말로 갈수록 화접문양 같은 장식을 넣는데, 일본제 찬합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 사용 == 현대에는 잘 쓰이지 않기는 하지만, 일본에서는 [[1월 1일]]이면 예쁘게 꾸민 찬합에 [[오세치]] 요리를 담아서 먹으며, [[백화점]]에서 아예 코너를 만들고 대량으로 판매하기도 하는데, 이것마저도 수요가 너무 많아 예약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초밥]]도 여기에 포장되어 배달되어 오는 경우가 많다. 한국에서는 [[구절판]]을 여기다 담아 먹는데, 층층이 쌓인 찬합은 아니고, 팔각형의 구절판용 그릇이 따로 있다. 다만 구절판이 흔히 먹는 음식은 아니므로 우리나라에서 전통 찬합을 쓸 일은 거의 없다고 봐야한다. 현대에는 [[철가방]] 등으로 계승되었고, [[피크닉]] 때 들고 가는 피크닉 상자, 혹은 [[소풍]]이나 [[나들이]] 때 들고 가는 도시락 상자가 딱 옛날 찬합 모양이다. 그러나 더 이상 목재를 사용하지 않고, [[알루미늄]]이나 [[플라스틱]] 같은 것으로 만들고 있고, 오세치 요리를 담는 찬합 같은 경우도 요즈음에는 아예 플라스틱으로 만드는 경우도 많다. 오늘날 [[군대]]에서는 [[반합]](飯盒)이라는 형태로 정착했다. 뜻 자체는 찬합과 똑같은데, 찬합에서 조금 더 간소화된 모양이다. == 기타 == * 흔히 찬합이라 하면 [[삼국지]]에서 [[조조]]와 [[순욱]]의 고사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순욱은 본래 조조의 충직한 책사였고, 조조가 천하의 대세를 거머쥐는 데까지의 과정에서 일등공신이라 할 만한 위인이었으나, 조조가 위공(魏公)이 되기 얼마 전부터 조조와 순욱은 조금씩 사이가 벌어져 끝내 갈등이 깊어졌다. 이에 조조는 '''음식을 준비했다'''면서 순욱에게 빈 찬합을 보냈고, 음식은 커녕 텅 비어 있는 찬합을 본 순욱은 어이가 없어서 '승상께서 더 이상 내가 쓸모가 없다 하시는구나!' 하고 탄식하고는 독약을 마시고 자결했다고 한다. 삼국지 정사나 연의에 기록된 내용은 아니고 위씨춘추에 적힌 내용이지만 그 연의에 나온 묘사가 인상적이었기 때문에 현대까지도 찬합=순욱이라는 인식이 박혔다. * 2019년 말에 [[배달거지]]가 사회 이슈로 떠오르면서 이 고사가 배달거지랑 엮이는 경우가 늘었다. 원래는 채워 보냈는데 배달 도중에 수행원이 내용물을 빼먹어서 순욱에게 빈 찬합이 간 것이고 그래서 순욱이 자살했다는 식으로. 당연하지만 이에 맞춰 온갖 변형 패러디들도 등장했다. * 찬합 류([[樏]])라는 글자가 있다. 본래는 欙로 썼으나 간소화된 것이 지금의 樏이다. [[분류:식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