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창경궁)]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972000, #bf1400 20%, #bf1400 80%, #972000)" {{{#ffd400 '''창경궁 옥천교 관련 틀'''}}}}}}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include(틀:조선 왕궁의 금천교)] ---- ||<-5> [[파일:정부상징.svg|width=30&height=30]] '''[[대한민국의 보물/201~400호|{{{#fff 대한민국의 보물}}}]]''' || || 385호 ||<|2> ← || '''386호''' ||<|2> → || 387호 || || [[창경궁 명정문|창경궁 명정문 및 행각]] || '''창경궁 옥천교''' || 양주 회암사지 선각왕사비 || }}} || ---- ||<-2> [[파일:정부상징.svg|width=28]] '''[[대한민국의 보물|{{{#f39100 대한민국 보물 제386호}}}]]''' || ||<-2> {{{#fff {{{+1 '''창경궁 옥천교'''}}}[br]{{{-1 昌慶宮 玉川橋}}}}}} || ||<-2>{{{#!wiki style="margin: -10px"; margin-top: -5px; margin-bottom: 16px" [include(틀:지도, 장소=창경궁 옥천교, 너비=100%, 높이=100%)]}}}|| || '''{{{#fff 소재지}}}''' ||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경궁로]] 185 (와룡동) || || '''{{{#fff 분류}}}''' || 유적건조물 / 교통통신 / 교통 / 교량 || || '''{{{#fff 수량}}}''' || 1동 || || '''{{{#fff 지정연도}}}''' || 1963년 1월 21일 || || '''{{{#fff 제작시기}}}''' || [[조선시대]], 1484년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창경궁 옥천교.jpg|width=100%]]}}}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창경궁_옥천교_측면.jpg|width=100%]]}}}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창경궁_옥천교_봄꽃_핀_모습.jpg|width=100%]]}}} || || {{{#gold ''' 옥천교[* [[https://m.cha.go.kr/heri/cul/culSelectDetail.do?VdkVgwKey=12,03860000,11&pageNo=77010000|첫 번째 사진 출처 - 문화재청]][br][[http://www.heritage.go.kr/heri/cul/imgHeritage.do?ccimId=6407965&ccbaKdcd=12&ccbaAsno=03860000&ccbaCtcd=11|두 번째 사진 출처 - 문화재청 국가유산포털: 보물 창경궁 옥천교]][br][[http://www.heritage.go.kr/heri/cul/imgHeritage.do?ccimId=6407961&ccbaKdcd=12&ccbaAsno=03860000&ccbaCtcd=11|세 번째 사진 출처 - 문화재청 국가유산포털: 보물 창경궁 옥천교]] ]'''}}} || [목차] [clearfix] == 개요 == ||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iKG_Z_QO-wY)]}}} || || {{{#gold ''' YTN SCIENCE에서 제작한 유튜브 소개 영상'''}}} || [[창경궁]]의 [[금천교(왕궁)|금천교]]이다. [[금천교(왕궁)|금천교]]는 이름대로 [[금천]]을 건너기 위해 세운 [[암석|돌]] [[교량|다리]]이며, [[금천]]은 [[풍수지리|풍수지리적]]인 이유[* [[궁궐]]의 앞쪽에 물을 흐르게 하여 [[풍수]]에서 가장 좋다는 [[배산임수]]를 구현했다.]와 [[밖|외부]]와의 경계[* 물론 실제 [[궁궐]]과 [[밖|외부]]의 경계는 [[문]]과 [[담]]이지만, [[귀신|잡귀]]를 쫓아내고 또 외부인이 궁에 들어갈 때 마음을 경건하게 한다는 의미로 [[금천]]을 상징적인 경계로 두었다.]를 나타내기 위해 궁궐의 [[정문]]과 중문 사이에 둔 [[인공]] [[개천]]이다. 그러나 [[창경궁]]은 [[중문]]이 없기에 [[정문]]인 [[창경궁 홍화문|홍화문]]과 [[정전#s-6]]의 정문인 [[창경궁 명정문|명정문]]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 역사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동궐도 옥천교1.png|width=100%]]}}}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조선고적도보 창경궁 옥천교.png|width=100%]]}}} || || {{{#gold ''' 〈동궐도〉에서 묘사한 옥천교 '''}}} || {{{#gold ''' 〈조선고적도보〉에 실린 옥천교 '''}}} || 1484년([[성종(조선)|성종]] 15년) 옛날 [[태종(조선)|태종]]이 머물던 수강궁 자리에 [[대비]]들을 위해 [[창경궁]]을 창건할 때 함께 지었다. 이름은 창건 당시 의정부 좌찬성[* 議政府左贊成. [[의정부]]에 속해 3의정([[영의정]], [[우의정]], [[좌의정]])을 보좌하는 직책. 오늘의 [[국회부의장]] 격이다.] [[서거정]]이 지었다. 1592년([[선조(조선)|선조]] 25년) [[임진왜란]] 당시 모든 [[궁궐]]의 [[건물]]이 불탔으나 옥천교는 [[암석|돌]]로 지었기에 피해를 입지 않았다. 이후 큰 변화없이 오늘에 이른다. 즉 '''현존하는 궁궐의 금천교 중 [[창덕궁 금천교]]에 이어 두 번째로 오래되었다.''' == 금천 == 옥천교 밑을 흐르던 [[창경궁]]의 [[금천]]은 ''''옥류천(玉流川)''''이다. [[창덕궁]] [[후원]]의 [[창덕궁 옥류천|옥류천]]과는 이름만 같은 다른 [[개울]]이다. 하지만 창경궁 옥류천의 발원지도 창덕궁 후원이다. [[창덕궁 연경당|연경당]] 서쪽과 [[창덕궁 부용정|부용정]], 관람정 권역에서 발원한 것으로 보이는 세 갈래의 물이 [[창경궁 춘당지|춘당지]]에서 합류한 뒤[[https://potter1007.tistory.com/434?category=250914|#]] 남쪽으로 흘러 옥천교를 지난다. 원래는 창경궁 동남쪽으로 물이 빠져나온 뒤 계속 남쪽으로 흘러 [[종로구/행정#s-6|종로 5, 6가동]]을 거쳐 지금의 예지동 [[광장시장]] 인근에서 [[청계천]]과 바로 합류했으나 현재는 [[창경궁]] 경내를 제외한 전 구간이 [[복개]]되었다. 발원지가 [[궁]] 안이고, 또 [[경희궁]]과 달리[* [[경희궁]]의 금천도 [[궁]] 안에서 발원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전부 메워졌다. 지금은 [[복원]]한 [[경희궁 금천교]] 양 옆에 아주 조금 재현해놓은 것만 볼 수 있다.] 궁역 자체에 큰 훼손도 없었기 때문에 현재 궁궐 금천 중 '''유일하게 [[자연수]]가 흐르고 있다.''' == 구조 == * 너비 약 6.6m, 길이 약 9.9m로 [[경복궁 영제교]]와 [[창덕궁 금천교]]보단 규모가 작다. 이는 [[경복궁]], [[창덕궁]]은 평소 [[왕]]이 머물 곳으로 지은 것이지만 [[창경궁]]은 위에 언급했듯 원래 [[대비]][[궁]]으로 지었기 때문이다. 옥천교 뿐 아니라 [[창경궁]]의 [[창경궁 홍화문|홍화문]](정문), [[창경궁 명정전|명정전]](정전), [[창경궁 문정전|문정전]](편전) 등도 다 그렇다. * 좌우에는 [[암석|돌]] [[난간]]을 설치했는데, [[연꽃]] [[잎]] 모양의 하엽동자(荷葉童子) [[기둥]]을 4개씩 세우고, 그 사이에 한 장의 돌로 만든 판석을 끼웠다. 판석에는 도드라지게 새긴 하엽동자기둥을 배치하고 2개씩 구멍을 뚫어내었다. 난간 양 끝에는 법수(法首)라는 돌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서수|상서로운 짐승]]들의 [[조각]]을 새겼다.[[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568645&cid=46656&categoryId=46656|#]] * 얼핏 봐선 모르지만 아주 자세히 보면 가운데가 약간 솟아올라있는데 [[비(날씨)|비]]올 때 빗물이 다리에 고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빠지게 하기 위해서이다. * [[교량|다리]] 아랫 부분에 [[무지개]] 모양의 [[아치(건축)|아치]](전통 건축에선 [[홍예]]라고 표현한다.)를 2개 만들었다. 아치 사이에는 [[괴수]] [[얼굴]], 즉 귀면(鬼面)을 조각한 돌을 끼우고 그 위에 얇은 댓돌을 길게 덮었다. * [[아치(건축)|홍예]] 바깥쪽에는 긴 댓돌을 3단으로 쌓아 하부구조를 마련했으며, 그 위에 긴 댓돌을 깔아 [[바닥]]을 만들고 그 위에 귀틀석과 청판석을 배열하면서 3개의 [[암석|돌]][[길]]을 놓았다. [[왕]]이 다니는 어도(御道)는 가운데에 있는데 가장자리의 [[신하]]들이 다니는 길보다 조금 높고 약간 더 넓게 만들어 [[서열]]을 분명히 나타내었다.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창경궁 명정문과 명정전의 축.png|width=100%]]}}} || || {{{#gold '''홍화문, 옥천교, 명정문, 명정전의 축'''}}} || [[창경궁 명정전]]의 [[정문]]인 [[명정문]]과 명목상으로는 일직선상에 있으나 실제로는 아주 미세하게 약간 축이 맞지 않는다. 이유는 여러 설이 있으나 [[풍수지리]]와 연관지어 해석하는 사람도 있다. [각주] ----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창경궁 명정문, version=15, title2=창경궁 명정전, version2=20, title3=경복궁 영제교, version3=11)] [[분류:창경궁]][[분류:대한민국의 보물]][[분류:금천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