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창덕궁)] ---- ||<-3> [[파일:정부상징.svg|width=22]] '''[[대한민국의 사적#s-2|{{{#f39100 대한민국 사적 제122호 창덕궁}}}]]''' || ||<-3> {{{#ffd700 {{{+1 '''창덕궁 사정기비각'''}}}[br]{{{-1 昌德宮 四井記碑閣}}}}}} || ||<-3> {{{#!wiki style="margin: -5px -10px" [include(틀:지도,장소=창덕궁 사정기비각, 너비=100%, 높이=100%)]}}} || ||<-2> {{{#ffd700 '''위치'''}}}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서울)|율곡로]] 99 ([[와룡동(종로구)|와룡동]] 2-71) || ||<-2> {{{#ffd700 '''건축시기'''}}} || [[1690년]] {{{-1 (창건)}}}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사정기비각2.png|width=100%]]}}} || || {{{#gold ''' 사정기비각 '''}}} ||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D-MblA1_F10)]}}} || || {{{#gold ''' 문화재청에서 제작한 3D 입체 영상. 주합루, 서향각, 희우정, 천석정과 같이 소개한다. '''}}} || [목차] [clearfix] == 개요 == [[창덕궁#s-5.4.1|창덕궁 후원 부용지 권역]]에 있는 [[비각]]이다. [[창덕궁 부용정|부용정]]의 서북쪽, [[창덕궁 주합루|주합루]]의 서남쪽에 있다. == 역사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동궐도 사정기비각.png|width=100%]]}}} || || {{{#gold ''' 〈동궐도〉 사정기비각과 우물 '''}}} || 1460년([[세조(조선)|세조]] 6년)에 세조가 [[창덕궁]]으로 거처를 옮겼을 때, [[조카]]들을[* [[임영대군]]의 [[장남]] 오산군, [[광평대군]]의 장남 영순군.] 시켜 이 일대에서 [[샘|샘물]]을 찾게 했다. 그리고 [[샘]] 4곳을 발견하여 [[우물]]을 만들고 각각 ‘옥정(玉井)’, ‘마니(摩尼)’, ‘유리(流璃)’, ‘파려(玻瓈)’란 이름을 붙였다. 그러다 세월이 흘러 [[우물]] 4개 중 절반은 없어지고 2개만 남았다. 그런데 그마저도 망가졌다. [[숙종(조선)|숙종]]이 이를 안타깝게 여겨 남은 우물 2개를 수리한 뒤[[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08/12/23/2008122300523.html|#]] 우물의 역사를 담은 [[비석]]과 비각을 1690년(숙종 16년)에 지었다. 그래서 이름이 ‘4개(四)의 우물(井)에 대해 기록한(記) 비각(碑閣)’인 사정기비각(四井記碑閣)인 것이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사정기비각 우물.png|width=100%]]}}} || || {{{#gold ''' 현재 남은 우물[* [[http://www.k-heritage.tv/brd/board/256/L/CATEGORY/615/menu/254?brdCodeField=CATEGORY&brdCodeValue=615&bbIdx=4036&brdType=R&tab=|사진 출처 - 문화유산채널.]]] '''}}} || == 구조 == * 1층[* 보통 [[전통]] [[건축]]에선 단층이라고 표현한다.] [[목조]] [[건물]]이다. 칸 수는 정면 1칸, 측면 1칸으로 총 1칸이다. [[기단]]은 장대석으로 쌓았으며 [[기둥]]은 원기둥이다. * 건물 주위를 [[암석|돌]][[담]]으로 둘렀고, 정면(동쪽 면) 앞에 작은 [[문]]을 두었다.--하지만 문 바로 앞에 [[창덕궁 부용정#s-4|연못]]이 있다.-- --왜 만든거야-- 문은 일각문으로, 문짝 하단부는 초록색 [[나무]][[판]]이고 중간부와 상단부는 초록색 나무 살을 세워놓은 형태이다. * [[지붕]]은 팔작지붕, [[처마]]는 겹처마로, [[공포]]는 초익공 양식이며 도리 사이에 소로를 두었다. 용마루와 내림마루, 추녀마루는 양성바름을 하고 그 위에 [[용두]]를 두었다. [[단청]]은 모로단청[* 가칠단청 위에 선 만 그어 마무리한 단청이다.]으로 칠했다. * 정면(동쪽 면)은 비각 실내로 들어갈 수 있게 출입문을 두었다. 문 양 옆에는 [[벽]]을 두었다. 문짝과 벽의 하단부는 초록색 [[나무]][[판]]이며 중간부와 상단부, 그리고 문상방 위에는 초록색 나무 살을 세워놓았다. 하지만 측면과 후면은 다르다. 벽의 하단부를 [[벽돌]]로 쌓았고, 중인방 위에 초록색 나무 살을 세운 형태이다.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부용지 용머리.png|width=100%]]}}} || || {{{#gold ''' 용머리 조각 '''}}} || 비각 북쪽에 돌로 만든 [[용두|용머리]] [[조각]]이 있다. 근처 [[우물]]과 [[계곡]]에서 흐르는 [[물]]이 용머리 입을 통해 [[창덕궁 부용정#s-4|부용지]]로 흘러든다. 용 머리 조각 양 옆에는 네모난 돌이 있다. 대한제국 황실을 상징하는 문장 [[이화문]]이 새겨진 것을 보아 [[순종(대한제국)|순종]] 이어 이후에 설치한 듯 하다. [[분류:창덕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