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창덕궁)] ---- ||<-3> [[파일:정부상징.svg|width=22]] '''[[대한민국의 사적#s-2|{{{#f39100 대한민국 사적 제122호 창덕궁}}}]]''' || ||<-3> {{{#ffd700 {{{+1 '''창덕궁 홍문관'''}}}[br]{{{-1 昌德宮 藝文館}}}}}} || ||<-3> {{{#!wiki style="margin: -5px -10px" [include(틀:지도,장소=창덕궁 예문관, 너비=100%, 높이=100%)]}}} || ||<-2> {{{#ffd700 '''소재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서울)|율곡로]] 99 ([[와룡동(종로구)|와룡동]] 2-71) || ||<-2> {{{#ffd700 '''건축시기'''}}} || 창건시기 미상[br][[1990년대]] {{{-1 (복원)}}}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20171118_145445_HDR.jpg|width=100%]]}}} || || {{{#gold ''' 예문관 '''}}} ||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EL3ZTZr49M4)] }}} || || {{{#gold ''' 문화재청에서 제작한 3D 영상 '''}}} || [목차] [clearfix] == 개요 == [[창덕궁#s-5.2.2|창덕궁 궐내각사 구역]]에 있는 예문관 [[청사]]이다. 예문관은 [[임금]]의 말이나 [[명령]]을 [[문서]]로 적는 기관이었다. 이외에 외교문서를 쓰고 궁중의식 규율을 관장하는 역할도 했다. [[고려]] 말의 예문춘추관이 전신이다. [[조선]] [[건국]] 직후에도 그대로 이어왔으나, [[태종(조선)|태종]] 때 예문관과 [[춘추관]]으로 나누었다. [[세조(조선)|세조]] 때 [[집현전]]을 없앤 후, 인재 양성 및 학술 연구 기능 일부를 예문관으로 옮겼다. 그러다 [[성종(조선)|성종]] 때는 예전 집현전의 관직을 예문관에 두면서 완전히 집현전 시즌 2가 되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홍문관]]으로 집현전의 직제를 옮겼고, 이후 예문관은 본래의 기능만 수행했다.[[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14XXE0037913|#]] 1894년(고종 31년) [[갑오개혁]] 때 [[홍문관]], [[춘추관]] 등과 함께 경연청에 합쳐졌다.[[http://sillok.history.go.kr/id/kza_13107022_001|#]] == 구조 == * 따로 건물이 있는 게 아니라, [[창덕궁 인정전|인정전]] 서행각의 일부로 있다. 북쪽으로 향실, 남쪽으로 숭범문이 붙어있다. [[순종(대한제국)|순종]] 이어 직후 정부에서 인정전 알현실로 바꾸었다가 [[문화재청]]에서 1990년대 ~ 2000년대에 [[복원]]했다. * 장대석 3단으로 [[기단]]을 쌓고 그 위에 [[건물]]을 올렸다. [[기둥]]은 원형, [[주춧돌]]은 사각형이다. * [[지붕]]은 맞배지붕, [[처마]]는 홑처마, [[공포]]는 초익공이다. 창방과 장여 사이에 소로를 두었다. 용마루와 내림마루, 추녀마루는 [[기와]]로 마감했다. [[용두]]는 용마루 남쪽 끄트머리에 1개 올렸다. [[단청]]은 모루단청으로 칠했다.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예문관 내부 구조.png|width=100%]]}}} || || {{{#gold ''' 예문관 내부 구조 '''}}} || 정면 4칸, 측면 2칸, 총 8칸이다. 실내 구조는 윗 그림 참조. * 서향이므로 정면은 서쪽면이다. 정면의 왼쪽 칸에는 빗살교창과 나무판문을, 나머지 칸에는 띠살 문과 빗살교창을 달았다. 측면은 붉은 나무판으로 마감한 모습이다.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예문관 뒷면1.png|width=100%]]}}} || || {{{#gold ''' 인정전 마당에서 바라 본 예문관 뒷면 '''}}} || 뒷면의 모습은 정면과 다르다. 중인방을 두고 아래엔 붉은 나무판을 설치했다. 그 위에는 문선을 두고 가운데 [[창문]]을 두었으며 나머지는 [[벽]]으로 마감했다. 문선을 중인방과 바로 붙이지 않고 살짝 띄어 놓았다. 다만, 북쪽 칸(보는 사람 기준 오른쪽) 모습은 또 다르다. 아래에서부터 위로 [[벽]], 환풍을 위한 [[창문]], 벽, 빗살교창을 두었다. ---- [[분류:창덕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