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창덕궁)] ---- ||<-3> [[파일:정부상징.svg|width=22]] '''[[대한민국의 사적#s-2|{{{#f39100 대한민국 사적 제122호 창덕궁}}}]]''' || ||<-3> {{{#ffd700 {{{+1 '''창덕궁 한정당'''}}}[br]{{{-1 昌德宮 閒靜堂}}}}}} || ||<-3> {{{#!wiki style="margin: -5px -10px" [include(틀:지도,장소=한정당, 너비=100%, 높이=100%)]}}} || ||<-2> {{{#ffd700 '''위치'''}}}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서울)|율곡로]] 99 ([[와룡동(종로구)|와룡동]] 2-71번지) || ||<-2> {{{#ffd700 '''건축시기'''}}} || [[1910년]] 이후 {{{-1 (창건)}}}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cafe.cha.go.kr/16.jpg|width=100%]]}}} || || {{{#gold ''' 한정당[* [[http://www.cha.go.kr/newsBbz/selectNewsBbzView.do;jsessionid=HbY4KVUrHXCxQXawdmkzsbHfFBD1PoTOitE2nQlPqABlBeuc49VwMVWlhYIoARaL.cha-was02_servlet_engine1?newsItemId=155687391§ionId=ocp&pageIndex=11&mn=NS_01_02&strWhere=&strValue=&sdate=&edate=|사진 출처 - 문화재청 《궁궐의 현판과 주련-창덕궁_낙선재 권역 2》. ]]] '''}}} ||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taAVweHfYQs)]}}} || || {{{#gold ''' 문화재청에서 제작한 3D 영상 '''}}} || [목차] [clearfix] == 개요 == [[창덕궁 낙선재|창덕궁 낙선재 구역]]에 있는 [[건물]]이다. [[창덕궁 석복헌|석복헌]] 뒤편에 있다. 한정당의 위치는 취운정과 더불어 낙선재 권역에서 가장 높은 곳이다. 비공개 구역이라 일반 관람객들은 가까이서 볼 수 없다. == 이름 == '한정(閒靜)' 뜻은 '한가롭고(閒) 고요하다(靜)'이다. == 역사 == [[순종(대한제국)|순종]] 재위기에 그린 《동궐도형》에도 보이지 않는 것을 보아, [[일제강점기]]에 건립한 듯 하다. 현재 대부분 [[궁궐]] 자료에서는 1917년 이후에 지은 것으로 소개한다.[[http://www.cha.go.kr/newsBbz/selectNewsBbzView.do;jsessionid=HbY4KVUrHXCxQXawdmkzsbHfFBD1PoTOitE2nQlPqABlBeuc49VwMVWlhYIoARaL.cha-was02_servlet_engine1?newsItemId=155687391§ionId=ocp&pageIndex=11&mn=NS_01_02&strWhere=&strValue=&sdate=&edate=|#]] == 구조 == * 남향(南向)한 1층[* 보통 [[전통]] [[건축]]에선 단층이라고 표현한다.] [[목조]] [[건물]]로 1고주 5량가 [[구조]]이다. 장대석 2단으로 [[기단]]을 쌓고 그 위에 [[건물]]을 올렸다. [[기둥]]과 [[주춧돌]]은 사각이다. 기단 앞에는 두 단 짜리 [[계단]]을 두 벌 놓았다. * [[지붕]]은 팔작지붕, [[처마]]는 홑처마, [[공포(동음이의어)#s-2|공포]]없는 민도리집이다. 용마루와 내림마루, 추녀마루는 [[기와]]로 마감했다. [[용두]], [[잡상]], 취두를 올리지 않았으며, [[단청]]도 칠하지 않았다. 합각은 [[벽돌]]로 마감했으며 가운데에는 '쌍희 희(囍)'자를 역시 벽돌로 만들어 설치해두었다. * [[현판]]은 정면 가운데 칸에 걸려있으며 흰 [[바탕]]에 검은 [[글씨]]이다. * 정면 3칸, 측면 2칸이다. (보는 사람 기준) 오른쪽 칸은 누마루이고, 누마루가 북쪽으로 조금 더 나와있는 형태이다. 누마루 겉면에는 문상방을 두고 아래는 창, 위에는 벽을 설치했다. [[온돌|온돌방]] 앞의 툇간은 밖으로 통해있으며, 가운데 칸을 통해 실내로 출입할 수 있다. 온돌방 정면 외벽은 문선을 두고 그 안에 창(제일 왼쪽 칸)과 문(가운데 칸)을 둔 모습이다.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한정당 내부 구조.png|width=100%]]}}} || || {{{#gold ''' 한정당 내부 구조 '''}}} || 내부 구조는 윗 그림 참조. * 창호 살은, [[온돌|온돌방]] 바깥쪽은 띠살, 온돌방 안쪽 미닫이문 및 나머지는 모두 '아(亞)' 자살이다. * 누마루 [[창문]]에는 창호지를 붙이지 않고, [[유리]]를 덧대었다. 또한 [[기단]] 바닥에는 [[서양|서양식]] [[타일]]을 깔았다. [[근대]] 이후에 지은 건물임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한정당 온돌방 내부 창문.png|width=100%]]}}} || || {{{#gold ''' 한정당 온돌방 내부[* [[http://www.cha.go.kr/newsBbz/selectNewsBbzView.do;jsessionid=HbY4KVUrHXCxQXawdmkzsbHfFBD1PoTOitE2nQlPqABlBeuc49VwMVWlhYIoARaL.cha-was02_servlet_engine1?newsItemId=155687391§ionId=ocp&pageIndex=11&mn=NS_01_02&strWhere=&strValue=&sdate=&edate=|사진 출처 - 문화재청 《궁궐의 현판과 주련-창덕궁_낙선재 권역 2》. ]]] '''}}} || [[기둥]]마다 [[시]]를 적은 주련을 걸어두었고, [[온돌|온돌방]] 내부의 [[창문]]에도 [[시]]를 써두었다. 내용은 [[http://www.cha.go.kr/newsBbz/selectNewsBbzView.do;jsessionid=HbY4KVUrHXCxQXawdmkzsbHfFBD1PoTOitE2nQlPqABlBeuc49VwMVWlhYIoARaL.cha-was02_servlet_engine1?newsItemId=155687391§ionId=ocp&pageIndex=11&mn=NS_01_02&strWhere=&strValue=&sdate=&edate=|이곳]]을 참조. * 남면을 제외한 나머지 칸 바깥에 전부 [[마루|쪽마루]]를 두었다. 쪽마루 서북쪽에는 계단이 있어 마루로 오르내릴 수 있게 했다. 쪽마루 가장자리에는 [[난간]]을 설치했다. 난간은 '아(亞)'자 형 교란으로, 그 위에 하엽동자 형태의 난간기둥과 돌란대를 얹은 형태이다. * 난간 하단부 끄트머리에 고정시킨 철물에 [[대한제국/황실|대한제국 황실]]을 상징하는 [[이화문|오얏꽃 문양]]을 새겨놓았다.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한정당 괴석분 정료대.png|width=100%]]}}} || || {{{#gold ''' 한정당 마당에 있는 괴석분과 정료대[*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31452#modal|사진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수석(壽石)〉]]] '''}}} || 마당에 괴석분 4개가 있고, 정면 계단 사이에 정료대 1개가 있다. 정료대는 [[불]]을 피우기 위해 뜰에 설치한 대이다. [[암석|돌]]로 만든 받침[[기둥]] 위에 6각형으로 깎은 돌을 얹은 형태이다. 윗돌에는 장식을 해두었다. * 동, 서, 북쪽에 [[담|담장]]이 있고 서쪽과 북쪽 담장에 작은 일각[[문]]이 하나씩 있다. 그러나 남쪽은 트여있어 [[창덕궁 석복헌|석복헌]] 뒤편과 화계를 장애물 없이 볼 수 있다. [[분류:창덕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