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창덕궁]] [include(틀:창덕궁)] ---- ||<-3> [[파일:정부상징.svg|width=22]] '''[[대한민국의 사적#s-2|{{{#f39100 대한민국 사적 제122호 창덕궁}}}]]''' || ||<-3> {{{#ffd700 {{{+1 '''창덕궁 희우정'''}}}[br]{{{-1 昌德宮 喜雨亭}}}}}} || ||<-3> {{{#!wiki style="margin: -5px -10px" [include(틀:지도,장소=주합루, 너비=100%, 높이=100%)]}}} || ||<-2> {{{#ffd700 '''위치'''}}}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서울)|율곡로]] 99 ([[와룡동(종로구)|와룡동]] 2-71번지) || ||<-2> {{{#ffd700 '''건축시기'''}}} || [[1645년]] {{{-1 (창건)}}}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창덕궁 희우정.png|width=100%]]}}} || || {{{#ffd700 ''' 희우정[* [[https://map.naver.com/v5/search/%EC%A3%BC%ED%95%A9%EB%A3%A8/place/18668455?c=14136732.3750336,4520356.5138508,17,0,0,0,dh&p=LKoYQ1jlUk4cV89ASrGE8g,4.52,10.03,47.75,Float|사진 출처 - 네이버 지도.]]] '''}}} ||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D-MblA1_F10)]}}} || || {{{#gold ''' 문화재청에서 제작한 3D 입체 영상.[br]주합루, 서향각, 사정기비각, 천석정과 같이 소개한다. '''}}} || [목차] [clearfix] == 개요 == [[창덕궁]] [[정원|후원]]의 [[건물]]이다. [[창덕궁 주합루|주합루]]의 서북쪽, [[창덕궁 서향각|서향각]]의 북쪽에 있다. 현재 일반 관람객의 출입은 금지되어있다. == 현판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희우정 현판.jpg|width=100%]]}}} || || {{{#gold ''' 희우정 현판[* [[http://m.cha.go.kr/cop/bbs/selectBoardArticle.do;jsessionid=jEoc199UvtVuXCm6zr1aWX86cFMc2Vaso1fMuNqeciQC5ydsU7KQTElpbBlVe53s.cha-was01_servlet_engine2?nttId=3831&bbsId=BBSMSTR_1006&pageUnit=10&searchCnd=&searchWrd=&ctgryLrcls=&ctgryMdcls=&ctgrySmcls=&ntcStartDt=&ntcEndDt=&searchUseYn=&mn=|사진 출처 - 문화재청 《궁궐의 현판과 주련 - 창덕궁》: 〈주합루 권역 2〉.]]] '''}}} || 현재 [[현판]] 글씨는 1903년([[광무]] 7년)에 창덕궁 후원의 감독직을 맡았던 [[김가진|동농 김가진]]이 썼다. 현판 위치가 [[조선시대]]와 달리 [[온돌|온돌방]] 쪽 칸 위에 걸려있어 [[고증오류|고증 논란]]이 일었는데 2016년 [[문화재청]]에서 각 [[궁궐]]의 현판 원형에 대한 [[고증]] [[조사]]를 실시할 때 밝혔고[[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605130956579102|#]] 현재는 원형대로 [[대청]] 쪽 칸 위에 걸어두었다. == 역사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동궐도 희우정.png|width=100%]]}}}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PS01001001_pan000_2019_0911102605085_pan035238-000-01.jpg|width=100%]]}}} || || {{{#ffd700 '''〈동궐도〉 희우정 '''}}} || {{{#ffd700 ''' 일제강점기 희우정[* [[https://www.museum.go.kr/site/main/relic/search/view?relicId=81386|사진 출처 - 국립중앙박물관.]]] '''}}} || 1645년([[인조]] 23년)에 세웠으며, 원래 이름은 '취향정(醉香亭)'이었고 [[초가집|초가]] 형태였다. 그러다 1690년([[숙종(조선)|숙종]] 16년)에 오랜 가뭄으로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냈는데, 곧 [[비(날씨)|비]]가 내리자 왕이 기뻐하며 이름을 '비(雨)가 내려 기쁘다(喜)'는 뜻의 '희우정(喜雨亭)'으로 바꾸고[[http://sillok.history.go.kr/id/ksa_11604028_001|#]] [[기와집]]으로 새로 고쳐 지었다. 비슷한 유래로 이름붙은 [[건물]]로는 같은 [[창덕궁]]의 [[창덕궁 성정각|성정각]] 영역에 있는 '희우루(喜雨樓)'가 있다.[* 여기 배경은 [[정조(조선)|정조]] 시기. 1777년(정조 1년)에 매우 가물었는데, 희우루 건물을 중건할 때와, 완성한 후 [[임금]]이 처음 행차할 때 비가 내려 이를 기념하기 위해 '희우(喜雨)'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숙종은 희우정으로 개칭하면서 동시에 〈희우정명병서(喜雨亭銘幷序)〉란 글을 지었다. 여기에는 '오랜 가뭄 끝에 비가 와서 백성들이 기뻐하니 이를 기념하고자 정자 이름을 바꾼다'는 내용과 함께 매년 풍년이길 바란다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https://ncms.nculture.org/pavilion/story/2347|#]] [[정조(조선)|정조]]는 희우정을 신하들과 정치적 안건을 토의하고 논하는 공간으로 자주 사용했다.1880년(고종 17년)에 [[창덕궁 서향각|서향각]]을 보수할 필요성이 생기자 [[고종(대한제국)|고종]]은 서향각에 있던 [[어진]]을 희우정으로 옮겨놓기도 했다. == 구조 == * 정면 2칸, 측면 1칸, 총 2칸의 간소한 단층 [[건물]]이다. [[지붕]]은 우진각 지붕, [[처마]]는 홑처마에 [[공포]]를 올리지 않았고 [[단청]]도 칠하지 않았다. * 서쪽 1칸은 [[온돌]]방, 동쪽 1칸은 [[마루]]방이다. [[기단]]이 없는 대신 건물의 동, 남, 북쪽의 외곽엔 쪽마루를 두었다. 서쪽엔 [[책]]을 보관하는 책장을 가퇴 형식으로 설치했으며 책장의 아랫 부분은 [[목재]]를 낙양각 형태로 만들어 놓았다. 북쪽 담장에 희우정 영역의 [[정문]]이 일각문 양식으로 있는데 이름은 '희우문(喜雨門)'이다. == 여담 == *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창덕궁관리소에서 2021년 4월 28일부터 5월 8일까지 〈후원에서 만나는 한 권의 책〉 행사를 개최했다. 이때 그동안 일반인들의 관람이 제한됐던 [[창덕궁 서향각|서향각]], 희우정, 천석정의 실내를 한시적으로 개방해 시민들이 책을 읽을 수 있게 했다. 매주 수요일부터 토요일까지 1일 2회 운영했으며 티켓[[11번가]]에서 예매를 해야 했다. 참가비는 후원 입장료를 포함한 15000원이었다.[[http://biz.khan.co.kr/khan_art_view.html?artid=202104301516001&code=900370&utm_campaign=rss_btn_click&utm_source=khan_rss&utm_medium=rss&utm_content=total_news|#]] 2021년 11월 14일부터 17일까지는 하루에 2번 예약자들에 한해 [[창덕궁 주합루|주합루]], 서향각, 희우정, 천석정을 개방했고 특히 서향각은 내부까지 공개했다. [[독서]]의 계절인 [[가을]]을 맞아 서향각 이름 뜻 그대로 책 향기를 사람들과 나눈다는 의미였다.[[https://go.seoul.co.kr/news/newsView.php?id=20211115011035&wlog_tag3=daum#csidxb2b768a7870bc45975e455ceb0c6247|#]][[https://www.news1.kr/photos/view/?5069546|#]] * 희우정을 소재로 임금들이 지은 시가 몇 편 있다. 정확하게는 희우정 이름에 담긴 뜻인 반가운 비가 온 후의 모습을 노래한 것. [[숙종(조선)|숙종]]의 〈희우범주(喜雨泛舟)〉, 숙종의 시를 보고 [[순조]]가 읊은 시 〈경차숙묘어제희우범주운(敬次肅廟御製喜雨泛舟韻)〉가 대표적이다. 그리고 [[정조(조선)|정조]]는 자신의 [[책|저서]] 《[[홍재전서]]》에 실은 [[시]] 《상립십경(上林十景)》에서 희우정을 언급했다. 《상립십경》은 창덕궁 후원에서 경치가 가장 빼어난 곳 10곳을 주제로 쓴 시이며, 희우정은 다섯 번째로 나온다.[* 나머지는 '관풍춘경(觀豊春耕: 관풍각에서의 봄갈이)', '망춘문앵(望春聞鶯: 망춘정에서 꾀꼬리 소리듣기)', '천향춘만(天香春晩: 천향각의 늦봄 경치)', '어수범주(魚水泛舟: 어수당)', '소요유상(逍遙流觴: [[창덕궁 소요정|소요정]] 물굽이에서 술잔 띄우고 마시기)', '청심제월(淸心霽月: [[창덕궁 청심정|청심정]]에서 보는 개인 날의 맑은 달)', '관덕풍림(觀德楓林: [[창경궁 관덕정|관덕정]]의 단풍)', '영화시사(暎花試士: [[창덕궁 영화당|영화당]]에서 시험보는 선비들)', '능허모설(凌虛暮雪: [[창덕궁 능허정|능허정]]의 저녁 눈)'이다.] 제목은 '희우상련(喜雨賞蓮)'이며 내용은 다음과 같다. >不須雕飾乃全天(불수조식내전천) >자연은 꾸미지 않은 그대로인데 > >時透香來好雨邊(시투향래호우변) >좋은 빗속에서 수시로 향기를 스며들게 하는구나 > >千古濂翁惟解愛(천고염옹유해애) >오래 전부터 염옹만이 사랑할 줄을 알았으니 > >欲編花史壽其傳(욕편화사수기전) >화사에 엮어 넣어서 오래도록 전하고 싶도다 >[[https://blog.naver.com/moa2004/220855822705|#]] 이외에도 정조 때의 실학자 [[이덕무]]가 〈희우정의 봄빛(喜雨韶光)〉이라는 시를 짓기도 했다.[[https://ncms.nculture.org/pavilion/story/2347|#]] * [[서울특별시]] [[마포구]] [[망원동]]에 있는 정자 망원정(望遠亭)의 첫 이름도 희우정이다. 가뭄을 걱정하던 [[세종(조선)|세종]]이 이 곳에 거둥했을 때 기다리던 비가 내려 세종이 매우 기뻐하여 정자의 이름을 희우정(喜雨亭)이라 지었다. 상술한 희우정, 희우루(성정각 보춘정의 다른 이름)와 이름의 유래가 같다. == 대중매체에서 == * 1998년 [[MBC]] 드라마 《[[대왕의 길]]》에서는 [[동궁]]의 별당 [[창경궁 낙선당|낙선당]] 촬영지로 등장했다. [각주] ----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창덕궁 주합루, version=64, title2=창덕궁 서향각, version2=6, title3=망원정, version23, title4=창경궁 낙선당, version5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