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미국의 군인]] [[분류:미국 상원의원]] [[분류:미국 국방장관]] [[분류:1946년 출생]] [[분류:링컨 카운티(네브래스카) 출신 인물]] [[분류:베트남 전쟁/군인]] [[분류:욱일대수장]][[분류:브라운 대학교 출신]][[분류:미국 공화당 소속]][[분류:폴란드계 미국인]][[분류:군인 출신 정치인]][[분류:기업인 출신 정치인]] [[분류:오바마 행정부/인사]] [include(틀:역대 미합중국 국방장관)] ----- ||<-2>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176183 0%, #1A7299 30%, #1A7299 70%, #176183)" '''[[미합중국 국방부|{{{#ffc224 제24대 미합중국 국방장관}}}]][br]{{{#ffc224 {{{+1 찰스 티머시 척 헤이글}}}[br]Charles Timothy "Chuck" Hagel}}}'''}}} || ||<-2>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Secretary_of_Defense_Chuck_Hagel._130227-A-SS368-001.jpg|width=100%]]}}}|| ||<|2> {{{#ffc224 '''출생'''}}} ||[[1946년]] [[10월 4일]] ([age(1946-10-04)]세)|| ||[[미국]] [[네브래스카 주]] 노스플렛 || || '''{{{#ffc224 국적}}}''' ||[include(틀:국기, 국명=미국)]|| || '''{{{#ffc224 학력}}}''' ||[[네브래스카 대학교]](역사/석사)[br][[브라운 대학교]]|| || '''{{{#ffc224 정당}}}''' ||[include(틀:공화당(미국))]|| ||<|2> '''{{{#ffc224 재임기간}}}''' ||제24대 [[국방장관]] || ||[[2013년]] [[1월 27일]] ~ [[2015년]] [[1월 17일]] || [목차] [clearfix] == 개요 == [[미국]]의 24대 [[국방장관]]. [[리언 패네타]]가 계속 실언을 하는 등 반응이 안 좋자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두 번째 임기에 맞춰서 2013년 2월 27일에 새로 장관으로 선임되었다. == 생애 == [[네브래스카]] 주 노스플랫 출신의 폴란드계 미국인으로 1967년 [[미 육군]]에 자원입대하여 [[보병]] [[병장]]으로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다. 즉 미국의 국방장관 중 유일하게 '''[[사병]]''' 출신인 장관이다.[* 10대인 멜빈 레이어드 장관이 해군에서 [[수병]]으로 1년을 근무하긴 했지만 OCS로 장교가 되는 바람에 해군 중위가 최종 계급이다.] 미국은 국방장관을 철저히 [[문민]] 중심으로 돌리기 때문에 군인 출신들은 대부분 [[소위]]나 [[중위]] 출신인데 [[로버트 게이츠]]가 소위 출신이었고 [[리언 패네타]]는 중위 출신이었다. [[딕 체니]]는 ~~행불체니~~ 징병 유예로 정말 군대 간적이 없고 [[도널드 럼즈펠드]]는 해군 대령 출신이다.[* 하지만 럼즈펠드는 워낙 삽질을 해놓은지라, 그리고 워낙 어린 나이로 국방장관까지 오른지라 럼즈펠드도 [[미필]]로 오해받곤 한다. 해군 항공대 예비군 신분으로 40대 초반에 대령까지 올랐다가(예비군 부대도 진급이 이어지기 때문에 가능) 예비역에서 물러남과 동시에 국방장관에 선임된 사례. '문민' 국방장관으로서 대령까지 달고 퇴역한 뒤 국방장관에 올랐다는 것 자체는 럼즈펠드의 국방장관으로서의 행적과 관계없이 앞으로도 다시 찾아보기 힘들 레어한 사례다. 문민이란 조건이 군인 물 빠지는 기간 10년이라고 안하고 현역 물 빠지는 기간 10년이라고 정해놓은 것에서 기인한 것. 제도적 허점은 아니다. 왜냐 하면 어느 나라든 간에 병사와 달리 장교는 현역에서 물러나더라도 예비역기간이 아주 길기 때문이다. 이것은 유사시 군대를 확대할 때 장교를 갑자기 늘리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장교했으면 아예 공직맡지 말라고 할게 아니면 현역을 기준으로 둘 수밖에 없다.] 아무튼 그와 별개로 척 헤이글은 징병관이 입대 대신 대학에 진학할것을 추천하였지만 거절하고 자원입대였고 육군 병 신분으로 참전한 베트남전에서 상당히 열심히 싸웠는지 [[퍼플 하트]] 훈장을 두 번 받고, [[부사관]] 신분인 "Sergeant"로 전역했다. [[파일:external/media.cmgdigital.com/010813_hagel_brothers003.jpg]] 베트남전 당시의 척 헤이글 병장. 오른쪽이다. 왼쪽은 척과 같이 베트남전에 참전한 척의 동생인 토머스 헤이글이다. 16세에 아버지를 여의었고 동생을 부양했는데 베트남전에서 동생과 같은 소대에서 근무했다. 당시 입은 부상으로 심장에 들어간 파편은 아직도 꺼내지 못 한 상태이다. 전역 후인 1969년에 네브라스카 주립대학에서 입학하여 역사학을 전공하였고 졸업후에 [[공화당(미국)]]에 들어가 네브래스카의 연방하원의원인 존 매콜리스터의 보좌관으로 일했다. 1977년부터는 [[로비스트]]로 일했고 [[로널드 레이건]]의 선거캠프에 들어가 일했다. 1982년에 [[미국 제대군인부|제대군인부]]에 들어갔으나 상관과 갈등을 빚어 사직하고 사업을 했다. 당시 장관이었던 밥 니모(Bob Nimmo)가 재향군인단체를 "탐욕스러운 자들"이라고 표현하거나 [[고엽제]]가 청소년 [[여드름]]보다 나쁘지 않다고 말한 것 때문이었다. 베트남전 참전용사였던 헤이글의 입장에선 받아들이기 힘든 상관이었다. 나와서는 휴대폰 회사인 뱅가드 셀룰러를 열었는데 이 회사는 뒤에 [[AT&T]]에 합병될 정도로 성장했다. 1996년엔 네브래스카 연방상원의원 투표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08년 대선엔 [[버락 오바마]]를 지지하였고 2013년 국방장관이 되었다. 베트남 전쟁 참전용사로는 첫 국방장관이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800px-Barack_Obama_announces_new_defense_secretary_Chuck_Hagel.jpg]] 왼쪽이 척 헤이글이고 가운데는 버락 오바마, 연단에 선 이는 전임 국방장관이었던 리언 패네타이다. == 활동 == 2013년 10월에 [[치도리가후치 전몰자 묘원]]을 참배한 바 있다.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에 대한 무언의 압박이라고 보는 평가. 2014년 4월 7일에 [[중국]]을 방문했는데 [[중국인]]이 아닌 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랴오닝함]]에 승선했다. == 사임 == 2014년 11월 24일 공식 사임했다. 이슬람국가(IS) 등에 대한 대응 부족에 따른 문책이라는 것이 외견상의 이유지만, 공화당에 대한 의회 중간선거에서 여당 민주당이 패배한 데 따른 정국 쇄신 차원이라는 평가가 중론. 8년 전 부시 행정부가 도널드 럼스펠드를 경질한 것도 중간선거 패배 직후였던 점과 유사하다. 후임자가 임명될 때까지는 일단 직무는 계속할 예정. 후임자는 [[애슈턴 카터]]이다. == 성향 == [[공화당(미국)|공화당]] 소속이지만 [[자유주의]] 성향에 가깝고 [[참전용사]] 출신인데도 [[반전|전쟁에 상당히 부정적이다.]] [[조지 W. 부시]] 때문에 [[버락 오바마]]를 지지했다. 인준 당시에 공화당의 집중포화를 맞아 인준이 50일 가량이 걸렸다. 특히 같은 참전용사 출신인 [[존 매케인]]의 견제가 심했다. [[리언 패네타]]의 경우 상원의 만장일치로 통과됐지만 헤이글은 반대표가 40표 가량이 나왔다. 사실 반전 성향 등을 문제삼는 게 아니라 2006년에 유대계 [[로비스트]]들을 반대한 발언 등을 한 그를 [[반유대주의]]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본 [[유대인]] 단체들의 견제 때문이란 설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