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천마총)] [[파일:천마총 금반지1.jpg|width=600]] [[파일:천마총 금반지2.jpg|width=600]] [[https://blog.naver.com/mongbbong/220609758985|사진 출처 : 천마총 금관, 금제 허리띠, 유리잔, 금반지 등]] [목차] == 개요 == 1973년 [[경주시|경주]]관광 개발사업의 일환으로 발굴조사한 [[천마총]]에서 발견된 [[신라]]시대 [[황금]] [[반지]] 150여점.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 내용 == [[파일:천마총 금반지4.jpg]] 우측 페이지, 맨 아래 28번이 천마총 금반지이다. 함께 나와있는 황금 유물들은 각각 [[황남대총 남분 금반지]], [[금관총 금팔찌]], [[경주 노서동 금팔찌]], [[경주 부부총 금귀걸이]], [[경주 계림로 금귀걸이]], [[경주 황오동 34호분 금귀걸이]], [[천마총 금귀걸이]]이다. [[천마총]]에서 발견된 신라시대 금반지 150여점으로, [[천마총 금관]], [[천마총 관모]], [[천마총 금제 허리띠]], [[경주 천마총 장니 천마도]], [[천마총 목걸이]], [[천마총 유리잔]], [[천마총 환두대도]], [[천마총 자루솥]], 기타 귀걸이 등 다양한 금제 장신구류 및 [[말갖춤]]류, 무기류, 토기, 유리배, 각종 구슬, 다리미 등과 함께 1973년 출토되었다. 1973년 당시 천마총에서 발굴된 유물의 총합은 장신구류 8,767개, 무기류 1,234개, 마구류 504개, 용기류 226개, 기타 796개, 총합 11,526개였고, 그 중에서 [[황금]]으로 제작된 유물은 785점, 금동제 유물은 227점, [[유리]]제품은 7,735점이었다. 이후 지속적인 유물 연구 결과 약 1,000여점이 순금제 유물인 것으로 최종 확인되었고 그중 금반지류는 약 150여점으로 확정되었다. 유물들의 제작 연대는 [[천마총 금관]]과 동일한 5~6세기(서기 400~500년대)로 추정되고 있다. [[파일:천마총 금반지3.jpg]] [[신라]]는 삼국 중 유일하게 반지 문화가 성행하였던 국가로, [[고구려]]의 경우 안학궁지 제2호분에서 청동제 반지가 출토된 적이 있으나 유물이 많지 않고 형태도 조잡하며, [[백제]] 역시 각종 호화스러운 유물이 출토된 [[무령왕릉]]에서조차 반지는 전혀 출토되지 않은 것으로 미루어 보아 거의 쓰이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556521&cid=46671&categoryId=46671|한국민족문화대백과 : 반지]] 두 국가 모두 반지 유물, 특히 금반지가 발견된 경우는 고구려는 총 2점, 백제는 공주읍 우금리 고분에서 단 1점이 나왔을 뿐이다. 반면에 [[신라]]는 고분을 하나 조사할 때마다 금반지들이 쏟아지는데, 특히 이 천마총에서 출토된 금반지들은 지금으로부터 1,500여년 전 [[지증왕]]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사용하던 왕실 위세품으로, 오직 신라 고분에서만 발견되는 정교한 황금 세공 기술을 보여주는 유물인 동시에 신라시대 금세공기술 및 금속공예사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여겨진다. [[분류:신라의 금제유물]] [[분류:국립경주박물관 소장품]] [[분류:경주시의 문화재]] [[분류:천마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