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천은사(삼척).jpg]] 天恩寺 [[강원도]] [[삼척시]] 미로면 두타산(頭陀山)에 있는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에 속하며 [[월정사]]의 말사이다. 구례에도 동명의 사찰이 소재한다. 신라 경덕왕 17년([[758년]])에 인도에서 용(돌로 만든 배라고도)을 타고 온 '두타삼선(頭陀三仙)'이라 불리는 세 명의 승려가 두타산의 네 모퉁이를 돌며 연꽃 한 송이씩을 가지고 절 지을 자리를 잡았는데, 푸른 연꽃을 가지고 동쪽에 지상사(池上寺)를, 금색 연꽃을 가지고 남쪽에 영은사(靈隱寺)를, 검은색 연꽃을 들고 북쪽에 삼화사(三和寺)를[* 삼화사는 지금도 남아 있으며, 구한말 삼척 의병들의 거점으로 쓰였고 이를 이유로 일본군에 의해 불살라지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https://access.visitkorea.or.kr/ms/detail.do?cotId=824385a7-d73c-40fd-8bb7-f189322a5d66|#]] ], 흰 연꽃을 가지고 서쪽에 '''백련대(白蓮臺)'''를 지었다고 한다. ~~왠지 한 명이 더 있는 거 같은데~~ 이후 문성왕 1년(839년) 범일국사(梵日國師)가 극락보전(極樂寶殿) 등을 건립해 규모를 키우면서 사찰로서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고 전한다. 천은사라는 이름은 백련대>간장사>흑악사를 거쳐 붙여진 이름으로, 사찰의 역사에 비해 그 유래가 얼마 안 된다. 광무 3년([[1899년]]) [[이성계|태조]]의 고조부인 [[이안사|목조(穆祖)]] 아버지, 즉 태조의 현조부인 [[이양무]](李陽茂)의 묘소가 어디인지를 찾으라는 왕명이 있었는데, 그렇게 해서 이양무와 그 부인 삼척 김씨의 무덤을 비정해 수축하고 각각 준경묘와 영경묘라 불렀으며, 나아가 이 절을 준경묘와 영경묘 제사에 쓰일 두부를 만드는 조포사로 삼으면서 당시 영건청당상관 이중하(李重夏)에 의해 '천은사'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https://www.sejongking.co.kr/news/articleView.html?idxno=303|#]] 그 전까지는 흑악사(黑岳寺)라고 불렀는데, [[1598년]]에 [[서산대사]]가 이 절을 중건하면서 서남쪽의 봉우리가 검푸른 것을 보고 '흑악사'라고 부른 것이다. 숙종 32년(1706년)에 화재가 발생하여 그 이듬해 중건되었으며, 순조 31년(1831년)과 헌종 7년(1837년) 두 차례에 걸쳐 중수되었다. 흑악사 이전에는 '''간장사(看藏寺)'''라고 불렀는데, [[고려]] [[충렬왕]] 때의 문신 [[이승휴]](李承休)에게서 비롯되었다. 이승휴는 이곳에 들어와서 지금의 천은사 경내에 용안당, 지락당, 보광정, 표음정 같은 부대시설을 짓고 머물렀으며, 삼화사에서 [[대장경]] 1천 권을 구해 읽으면서 자신의 처소를 간장암(看藏庵)[* 대장경을 본 암자라는 뜻이다.]이라 칭했다. 나이 71세 되던 [[1294년]]에 그가 머무르던 용안당(容安堂)의 현판을 내리고 이름을 간장사로 바꾸어 사찰로 희사했으며, 자신의 전답 등을 시주했다고 한다. 이승휴의 유명한 저술 [[제왕운기]]가 저술된 것도 이 절이 있는 용계(龍溪)에서의 일이다. 충숙왕 9년(1322년)에도 이승휴의 맏아들 이임종(李林宗)과 승려인 차남 담욱(曇昱)이 중수하였다고 하니 이승휴의 집안과도 연고가 깊었다고 할 수 있다. 제왕운기가 집필된 장소라는 인연으로 1995년에 이승휴를 기리는 사당 동안사(動安祠)가 세워졌으며, 2000년에 '사적 이승휴 유적'으로 지정되었다. 지금도 해마다 10월 3일이면 동안사에서 동안대제라는 이름으로 이승휴에 대한 제향을 올리고 있다. 천은사 극락보전의 목조아미타삼존불좌상[* 아미타여래, 관음보살, 지장보살로 구성된 삼존불이다.]은 조선 전기인 15세기 후반에서 16세기 전반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며, [[1976년]] 개금불사에서 나온 복장(腹藏)에서 이 불상이 1596년에 중수되었고 ‘가경 3년 무오 4월 16일 개금(嘉慶三年戊午四月十六日改金)’했다고 쓴 글이 나와서 가경 3년 즉 정조 3년([[1779년]])에 개금된 것임을 알 수 있다. 해방 뒤인 [[1948년]] 동짓달에 천은사에 화재가 나서 주요 법당이 소실되고 산신당, 조사전, 화엄암만 남았을 때 이 불상을 삼척 시내에 있는 삼장사(三藏寺)로 옮겼던 적이 있는데, 그로부터 2년 뒤에 [[6.25 전쟁]]이 터졌다. [[6.25 전쟁]] 때 불탄 뒤 명맥만 유지해 오다가 주지 문일봉(文一峰)이 부임하여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극락보전을 비롯하여 약사전 · 육화료(六和寮) · 영월루(映月樓) · 삼성각(三聖閣) 등을 신축하고, 요사채를 중수해 다시 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천은사 경내에서는 신라 시대에 조성된 금동약사여래입상도 발굴되었는데, 이건 지금 월정사 성보박물관에서 보관 중이라고 한다. [[분류:불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