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상위 문서, top1=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 [include(틀: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 [include(틀: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2014년 4월)] [목차] [[파일:2014.04.15 세월호.png|width=100%]] 사고 하루 전인 2014년 4월 15일, 세월호가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사고배편]]을 항해하기 위해 [[인천항]] [[연안부두|연안 여객터미널]]에서 준비를 하고 있다. 육안으로 보기에도 시정이 굉장히 나쁜 것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평상시의 시정이라면, 세월호의 뒤로 인천항의 [[등대]]와 바다 건너 [[영종도]]가 선명하게 보여야 한다. [[https://naver.me/FSObszjT|#]] ] [[파일:세월호 지연.jpg|width=100%]] 위 사진보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난 뒤 인천항 연안여객터미널에서 세월호에 탑승하기 위해 기다리던 생존자 박모 씨가 촬영한 사진.[[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14480987&code=61121111&sid1=al|출처]][* 이 생존자는 나중에 군입대 이후 [[제1보병사단]] 수색대대에서 의무병생활을 하다 수색작전중 '''[[DMZ 목함지뢰 매설 사건]]을 또 겪었다'''. 현장에서 하재헌 하사와 김정원 하사의 응급조치를 한 의무병이 바로 박씨였다.] 18시 30분에도 분명히 안개로 인해 출항이 지연되고 있다고 나오고 있다. == 타임라인 == ||<-2>{{{#white 4월 15일}}}|| ||{{{#white 18시 30분}}}||출발 예정 시각. 그러나 짙은 안개로 출항이 지연되었다.|| ||{{{#white 21시경}}}||2시간 30분의 지연 이후 인천항에서 출항했다.|| == 상세 ==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가 사실상 시작된 날로, 지연 중 출발과 학교 측의 대응 등 여러 석연찮은 부분이 많은 시기이기도 하다. 6시 30분 출항하기로 했던 배가 안개로 인해 짧아진 가시거리[* 위의 사진을 보면 어떤 상황이었는지 한 눈에 볼 수 있다. 안개로 인해 세월호 뒤로 인천항의 다른 접안시설이나 선박들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당시 가시거리가 800m였는데, 해무로 인해 가시거리가 1km 미만으로 떨어진 상황에서는 규정상 항구에서 '''절대''' 출항할 수 없다. 문제는 세월호'''만''' 그러한 상황에서도 출항했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뇌물 의혹이 있다.]로 인해 출항은 11시까지 대기 후 가시거리를 확인하여 결정하기로 했으며 학생들은 버스를 통해 일단 학교로 돌려보낸 후 수학여행을 재계획하기로 했다고 한다. '''이렇게 되었다면 이 끔찍한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세월호의 선사 [[청해진해운]]이 단원고 학생들이 탑승하지 않으면 적자를 볼 것을 우려해 학생들을 탑승시키고[* 이때가 7시 20분이다.] 저녁식사를 먹게 한 후 9시에 갑자기 출항을 결정했다. 11시에 결정하기로 한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처음부터 그냥 출항할 예정이었던 것이다.[* 결국 그 날 안개를 뚫고 출발을 강행한 여객선은 '''세월호 단 하나뿐'''이었다고 한다.] '''[[청해진해운]]이 돈벌이에 미쳐 학생들을 강제로 태우고 출항하지만 않았어도 이런 끔찍한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이 항해에서 담당 선장은 실제 선장인 신보식이 돌연 휴가를 가게 되어 대리 선장인 [[이준석(선장)|이준석]]이 담당했다. 후에 실제 선장이 갑자기 휴가를 가게 된 이유가 밝혀졌는데, 실제 선장은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이 사고]]가 발생할 것을 이미 예상했다고 한다. 이유인 즉 배가 처음 일본에서 들여왔을 당시에는 페리 나미노우에급이 자매선이 4척이나 건조되었고 비슷한 형태의 카페리도 많이 건조된 나름대로 베스트셀러 카페리였던 데다 [[마루에이 페리]]에서도 많이 오래 잘 쓰인 만큼[* 당연히 이는 마루에이 페리의 철저한 항해규정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럭저럭 괜찮았는데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선박개조|이 배를 개조하는 과정에서 배의 균형을 무시한 채 개조를 했고]], 처음에 신 선장은 회사측에 선박을 개조하지 말라고 계속 의견을 제시했으나 그때마다 묵살당했다. 그래서 신 선장은 세월호를 몰기에는 너무 불안해서 휴가를 냈다고 한다. [[http://www.mydaily.co.kr/new_yk/html/read.php?newsid=201404210814135525&ext=na|#]] 결과적으로 신 선장의 선견지명은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정확히 맞아 떨어졌다.]]''' [[분류: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일지/201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