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인문지리]][[분류:제1차 세계 대전]][[분류:전간기]][[분류:체코슬로바키아]][[분류:유고슬라비아]] || [[파일:Czech_corridor_proposal.svg|width=100%]] || ||<-2> 언어별 명칭 || || [[체코어]] || Český koridor || || [[슬로바키아어]] || Český koridor || || [[슬로베니아어]] || Češki koridor || || [[세르비아어]] || Чешки коридор || || [[영어]] || Czech Corridor || [clearfix] == 개요 == 체코 회랑, 또는 체코슬로바키아 회랑은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1919년]]에 열린 [[파리 강화 회의]]에서 제안되었던 지정학적 개편으로, 실행되었다면 [[체코슬로바키아 제1공화국]]와 [[유고슬라비아 왕국]] 사이를 이을 예정이었다. == 상세 ==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생제르맹 조약]]과 [[트리아농 조약]]으로 각각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그 구성국인 [[성 이슈트반 왕관령|헝가리 왕국]]이 해체되었고, 이 과정에서 독립하게 될 국가들 중 [[체코슬로바키아]]와 [[유고슬라비아]]가 있었다. 그런데 체코슬로바키아는 독립 이후 [[내륙국]]이 되는 상황이었기에 같은 [[슬라브]] 국가이고 친한 관계인 유고슬라비아를 이어주기 위해 제안되었다. 슬라브족 전체의 연대를 주장하는 [[범슬라브주의]]자들은 이 안을 대체로 지지했고, 또한 오헝제국이 해체된 상태에서 오스트리아와 헝가리가 국경을 공유할 이유가 없다고 여겼으며 체코 회랑을 통해 양국이 다시 통합할 생각을 품지 않게 하기 위해서 이 안을 지지하던 [[남슬라브]] 민족주의자들이 여럿 존재했다. 특히 이중제국 해체 이후 [[독일계 오스트리아 공화국]]과 [[헝가리 제1공화국]]에 분할합병된 지역이면서 크로아티아인 또한 상당수가 거주하던 [[부르겐란트]]에 살던 크로아티아인 등은 찬성했으나, 이탈리아가 반대하고 당시 인구 110만명 중 다수가 독일인과 헝가리인이라 [[민족자결주의]]에 입각하지 않아 결국 시행되지는 않았다. == 관련 문서 == * [[회랑(지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