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표절, version=6, source=http://m.blog.daum.net/osu0582/612)] [include(틀:인도의 역사)] ||||||<:> {{{+3 '''촐라 왕조''' [br] '''சோழப் பேரரசு'''}}} ||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94px-Karikala_territories.png]] || ||<-3><:> 기원전 3세기 ~ 기원후 3세기 || ||<:> [[수도(행정구역)|수도]] ||||우라이우르→카베리파타남 || ||<:> [[언어]] ||||[[타밀어]] || ||<:> [[종교]] ||||드라비다교 || ||<:> 성립 이전 ||||[[드라비다인]] || ||<:> 멸망 이후 ||||[[칼라브라 왕조]] || [목차] [clearfix] == 개요 == 남인도에서 [[타밀족]]이 세운 고대 해양국가. 보통 초기와 중후기가 따로 존재하는데 이 문서에는 초기 촐라 왕조를 다룬다. == 역사 == 인도 원주민인 [[드라비다인|드라비다족]]의 일족인 타밀족이 [[기원전 2세기]]경에 남인도의 타밀 지역 동쪽 코로만델(Coromandel) 해안[* 사실 유럽인들이 인도 남동해안을 부르는 역사적 명칭인 "코로만델" 자체가 촐라 왕국이라는 뜻의 "촐라만달람"(Colamaṇḍalam) 또는 이 축약형 "초로만달"(Coromaṇḍal)에서 유래한 것이었다.]의 [[면화]] 무역지 우라이유르(Uraiyur)를 수도로 해 촐라 왕국을 세웠다. 기원전 2세기경 촐라 왕조의 엘라 왕은 [[실론]]을 점령한 후 약 50년 가량 지배했다. 그러나 촐라 왕조의 확실한 역사는 기원후 2세기에 왕국을 다스렸던 카리칼라 왕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카베리파타남으로 수도를 옮긴 후 실론에서 잡아온 포로 12,000명을 동원하여 카베리 강에 160km에 이르는 거대한 제방을 쌓아 관개농사를 짓도록 했다. 왕국의 수도인 카베리파타남에서는 거대한 부두의 유적이 발굴되어 이곳이 무역과 상업의 중심지였음을 알 수 있다. 이웃의 [[체라 왕조]]나 [[판디아 왕국]]과는 사이가 매우 나빴으며 서로 치고박고 싸우기를 반복했다. 한때 [[체라 왕조]]의 공격으로 카리칼라 왕의 아버지 리암체체니가 사망하기도 했다. 촐라 왕조도 다른 남인도 국가들과 같이 [[로마 제국]]과 같은 서방과 무역을 했는데 그들은 주로 면화를 수출했다. 해상 무역의 안전을 위하여 상당히 잘 짜여진 해군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카리칼라 왕의 사후 급속히 쇠락하기 시작했으며 [[판디아 왕국]]과 [[체라 왕국]]의 압박이 심해져 더더욱 약화되기 시작했다. 이후 이 지역의 패권을 얻는 [[칼라브라 왕조]]와 북쪽의 [[팔라바 왕조]] 등의 영향으로 촐라 왕국은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 기원후 4세기에서 9세기경에는 그저 남인도 어느 구석탱이에 쳐 박히게 되는 쩌리 국가로 전락했다. 이후 9세기경 촐라 왕조가 다시 그 세력을 펼치게 되는데 해당 부분은 [[촐라 제국]] 문서를 참조. 사도 토마스가 순교했다는 산인 토마스 산이 당시 촐라 왕국 땅이었다. [[분류: 인도의 역사]] [[분류:아시아의 왕국]] [[분류:타밀족]] [[분류:3세기 멸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