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極 1932년 ~ 대한민국의 전 정치인이다. 일제강점기 경찰 [[최난수]]의 아들이다. 1932년 충청북도 [[영동군]] 심천면 용당리에서 태어났다. [[대전고등학교]], [[동국대학교]]를 졸업하였다. 6.25 전쟁 때 학도의용군으로 참전하였다.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1967년)|신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 [[정구중]]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73년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충청북도 [[충주시]]-중원군-제천군-단양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의 복수공천을 받은 [[이해원(1930)|이해원]], [[이종근(1923)|이종근]]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이용희(1931)|이용희]]와 [[신민당(1967년)|신민당]] 복수공천을 받아 [[충청북도]] [[보은군·옥천군·영동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 [[육인수]] 후보와 신민당 이용희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한민주당]] 후보로 [[충청북도]] [[보은군·옥천군·영동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정의당]] [[박준병]] 후보와 민주한국당 이용희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1991년)|민주당]] 후보로 [[충청북도]] [[보은군·옥천군·영동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자유당]] [[박준병]]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합민주당(1995년)|통합민주당]] 후보로 [[충청북도]] [[보은군·옥천군·영동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자유민주연합]] [[어준선]]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분류:대한민국의 남성 정치인]][[분류:영동군 출신 인물]][[분류:1932년 출생]][[분류:대전고등학교 출신]][[분류:동국대학교 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