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춘향전 시리즈)] ||||||||||||<#ED9149><:> '''{{{#000000 [[1955년|{{{#000000 1955년}}}]] 국산 1위 흥행 영화 }}}''' || || [[1955년]][br]춘향전 ||→|| [[1956년]][br][[자유부인(영화)|자유부인]] || ||||<#ED9149> {{{+2 '''춘향전''' }}} (1955)[br]''Chun-Hyang Story'' || ||||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춘향전(1955) 포스터.jpg|width=100%]]}}} || ||<#ED9149> '''감독''' || [[이규환]] || ||<#ED9149> '''제작''' || 이철혁 || ||<#ED9149> '''기획''' || 김재중 || ||<#ED9149> '''제작사''' || 동명영화사 || ||<#ED9149> '''촬영''' || 유장산 || ||<#ED9149> '''조명''' || 고해진 || ||<#ED9149> '''편집''' || 이성파 || ||<#ED9149> '''음악''' || 성경린 || ||<#ED9149> '''출연''' || [[조미령(1929)|조미령]], [[이민(동음이의어)|이민]] || ||<#ED9149> '''상영일자''' || 1955.01.16 || ||<#ED9149> '''개봉극장''' || [[국도극장]] || ||<#ED9149> '''관람인원''' || 150,000명[* [[한국영상자료원]]의 기록이다.] || [목차] [clearfix] == 개요 == [[6.25 전쟁]] 이후 한국 영화 부활에 신호탄을 알린 상징적인 작품. [[춘향]]은 당시 [[김지미]] 이전에 최고의 미녀 여배우로 알려진 [[조미령(1929)|조미령]]이 맡았고, 도령은 당시 미남 배우였던 [[이민]]이 맡았다. 당시 10만 ~ 18만[* 관람인원 수가 들쭉날쭉하다. 당시 서울 인구가 200만도 채 안되던 시절이라 10만만 넘어도 엄청난 대박 흥행이었다.]만 명을 동원하여 해방 이후 최고의 흥행 영화가 되었다. 물론 이 기록은 [[자유부인(영화)|자유부인]]의 흥행으로 곧 깨지게 된다. 당시 전후 침체될 수 밖에 없었던 영화계를 부흥시켜 영화사적인 의미가 있었던 영화라고 한다. == 등장인물 == [include(틀:춘향전 시리즈 등장인물)] * [[조미령(1929)|조미령]] - 성춘향 역 * [[이민(동음이의어)|이민]] - 이몽룡 역 * [[이금룡]] - 변학도 역 * [[전택이]] - 방자 역 * 노경희 - 향단 역 * [[석금성]] - 월매 역 == 내용 == 남원기생 월매의 딸 춘향([[조미령(1929)|조미령]])과 이도령([[이민]])은 백년가약을 언약한 사이로 도령이 부친을 따라 한양으로 올라가자 새로 부임한 변학도([[이금룡]])는 절세의 미녀 춘향을 탐하나 끝내 수청을 거절하는 춘향은 옥고를 겪게 된다. 한편 과거에 급제한 이도령은 암행어사가 되어 남원으로 출도하여 변학도를 처단하고 춘향을 구한다. == 기타 == 이 영화는 필름이 남아있지 않다. 1956년 국내 최초의 영화상인 제1회 [[금룡상]] 녹음상(이경순)을 수상했다. 방자 역의 [[전택이]]와 향단 역의 노경희는 부부였다. [[분류:소설 원작 영화]][[분류:1955년 영화]][[분류:죽기 전에 꼭 봐야 할 한국영화 1001]][[분류:없어진 영화]][[분류:퍼블릭 도메인/영화]][[분류:기타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