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1 '''출하점 전투[br]出河店之戰'''}}} || || '''시기''' ||<-2>[[1114년]] || || '''장소''' ||<-2>[[중국]] 출하점 근방 압자하 북안[* 지린성과 헤이룽장성 사이에 있는데 정확히 어느 지점인지는 불명이다. 일단은 헤이룽장성에서 기념하고 있다.] || || '''원인''' ||<-2>완안아골타의 요(遼)에 대한 반기. || || '''교전세력''' ||{{{+1 [[여진]]}}} ||{{{+1 [[요나라|요]]}}} || || '''지휘관''' ||'''[[금태조]] [[완안아골타]]''' ||'''[[천조제]] 야율연희''' || || '''병력''' ||3,700 명 ||100,000 명 || || '''피해''' ||피해 규모 불명 ||포로 다수 발생[br]물자 다수 망실 || || '''결과''' ||<-2>[[완안아골타]]의 대승. || || '''영향''' ||<-2>[[완안아골타]]의 세력 확장. 금(金)제국 기틀을 마련. || [목차] [clearfix] == 개요 == 당시의 강국이었던 요나라의 [[천조제]]가 이끄는 군대가 출하점에서 후에 [[금나라]]를 개창한 [[완안아골타]]가 이끄는 완안부 여진에게 말 그대로 [[개박살]]난 전투로 [[광무제]]의 [[곤양대전]]이나 [[항우]]의 [[팽성대전]], 그리고 [[탁발규]]의 [[참합피 전투]]와 비교될 정도의 엄청난 승리, 고작 3700명의 군사로 무려 10만 명의 요나라군을 무너뜨림으로써 27배에 달하는 병력의 열세를 끝내 극복하고 대승을 거둔 [[전투]]다. 이 전투는 출하전투, 출하점 전투, 출하점 대첩 이라고도 한다. == 발단과 전개 == 사건의 발단은 요나라 [[천조제]]가 여진의 각 족장들을 한데 모아 연회를 열어준 것에서 시작된다. 요나라가 여진 족장들을 한데 모아서 연회를 열었다. 그런데 연회에 모인 여진족장에게 춤을 요구하는 등 무례한 요구를 했고, 이에 완안아골타는 완강한 태도로 거부해 버렸다. 이에 천조제는 그를 죽이려고 했지만, 신하들이 만류했기 때문에 그만두었다(굴욕을 참고 춤을 췄다는 말도 있다). 이로 인해 당시 초청되있던 수많은 족장들 중의 한 명인 [[금태조]] [[완안아골타]]는 잔치가 끝나고 돌아간 후 본격적으로 요나라에 반기를 들었고, 강녕주 전투를 거치면서 자신의 병력을 2,500명에서 3,700명으로 불리는 등 점점 자신의 세력을 확장하기 시작한다. 이에 천조제는 10만 대군을 보내면서 [[완안아골타]]를 공격할 것을 지시한다. 당시 완안아골타가 사용할 수 있는 병력은 3,700명이었다. 이에 주변 부족은 동요하였다. 완안아골타는 10만 병력이 모두 모이면 승산이 없다고 판단했고 적들이 다 모이기 전에 적의 급소를 찌르기로 결정하였다. 전투가 벌어질 당시는 한 겨울이었고 특히나 만주 지방은 굉장히 추운 상태였다. 교전 직전에 완안아골타는 병사들의 사기를 끌어올리기 위해서 병사들에게 거짓말을 하였는데. >완안아골타: "내가 잠을 잤네.'' >병사들: '...?' >완안아골타: "근데 누가 내 머리를 흔들더라." >병사들: '.....' >완안아골타 : "3번이나 흔들더군.'' >병사들: '.....' 그때 사만교가 말하길, >사만교: '''"이는 하늘의 계시입니다. 밤중에 기습하여 승리할 것이며 다른 때에 공격하면 주군이 패배한다는 뜻입니다."''' 저렇게 [[잔 다르크|신의 계시를 받았다면서]] 사기가 올라 밤에 요나라의 진영으로 기습했다. 완안아골타와 기병은 눈길을 뚫고 새벽 출하점 근방의 압자하 북안에 도착했다. 그 때 당시 요나라 군대의 정예부대는 얼음을 깨고 있었는데, [[곤양대전|갑자기 기습한 금나라 군대에 의하여 완전히 아수라장이 되었고]],[* 이들은 고작 3천여 명이 10만여 명을 공격하기 위해 기습전을 할 것이라고 생각을 못했겠고, 게다가 그것도 한밤중에 기습공격을 할 줄도 몰랐을 것이다.] 이후 완전히 [[모랄빵|와해된 상태]]에서 금나라 기병들에게 신나게 각개격파를 당하였다. == 결과 == 이 전투에서 여진족 병사들이 포로로 잡은 요나라 병사와 수레, 말, 양초가 수도 없이 많았다고 하며, 이 전투로 [[완안아골타]]는 일약 여진족내에서 높은 명성을 얻었고 주변 부족들이 잇달아 부하가 되기를 자처, 휘하 여진족 병사들이 약 1만 명에 달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커진 세력을 바탕으로 요의 요충지인 황룡부를 점령해 금제국의 기반을 다지게 되었다. 이때 '''철부도'''(여진 중장갑기병)의 우월성을 세상에 알렸다. 이 당시 철부도는 동양 최고수준의 방어력을 갖춘 기병대였다. 그리고 요나라는 또 한번 호보답강에서 출하대첩 못지 않은 참패를 겪으면서 사실상 멸망의 길을 걷게 된다.[* 호보답강 전투 때 요나라의 군대 수는 70만, 금나라의 군대 수는 2만(요나라의 군대는 20만이라고 하기도 한다)이었다.] [[파일:external/thumbnail.egloos.net/a0048039_51a84c8fb6093.jpg|width=250]][br]▲[[헤이룽장성]]에 있는 출하점 대첩 기념비 [[분류:만주의 역사]][[분류:요나라]][[분류:지상전]][[분류:금나라/전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