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 親庭 == 아내의 본가. [[결혼]]한 [[여자]]가 태어나서 결혼하기 전까지 자란 집. 남편 입장에서는 [[처가]]라는 표현을 쓴다. === [[운동선수]]의 과거 소속 팀 === [[현대]]에는 위의 의미가 확장되어 운동선수가 [[FA 제도|FA]]나 [[트레이드]], [[이적]] 등으로 인해 떠난, 자신의 전 소속팀을 친정 또는 친정팀이라 부른다. '''고향팀'''과는 의미가 전혀 다르다. 고향팀은 '선수 입장에서 자신의 [[고향]]을 [[연고지]]로 삼고 있는 팀'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 둘을 헷갈리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데, 이유는 당연히 겹치는 경우가 많으니까... 선수입장에서 아무래도 자신의 집과 가까우니까 또는 고향에 위치하고 있으니 애착이 많이 가니까[* 애착에서는 [[한대화]]의 경우가 딱 알맞다. 고향팀의 감독까지 지냈으니까 다만, 한대화의 친정팀은 [[한화 이글스]]가 아니다. 대전 연고 시절의 [[OB 베어스]]에서 데뷔하여 [[해태 타이거즈]], [[LG 트윈스]]를 거쳐 [[쌍방울 레이더스]]에서 선수 커리어를 마감했다.],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응원하게 되고 많이 접해본 팀이니까[* [[양준혁]]이 매우 좋은 예시다.] 프로 커리어의 시작을 고향팀으로 원하는 경우가 매우 많다.[* 하지만 [[KBO 리그]]의 경우 2023년 이후로는 전면 드래프트의 재도입으로 프로 커리어의 시작을 고향팀에서 시작하기가 어려워졌다.] 또한 팀의 프런트에서도 고향이 연고지인 선수를 뽑고 잘하기까지 하면 인기가 늘어나니[* [[이대호]]가 좋은 예시이다.] 그런 선수들을 뽑는 경우가 많다. 축구에서는 타 팀으로 이적한 선수가 친정팀을 상대로 득점을 했을시 세레모니를 자제하는 편이다. 물론 [[엠마누엘 아데바요르|몇몇]] [[루이스 수아레스|예외]]는 있는데 당연히 좋은 소리는 듣지 못한다. 반대로 [[FA 제도|FA]], [[트레이드]], 방출 등으로 소속팀을 옮긴 선수가 전 소속팀과의 경기 도중 실책 등으로 친정팀에 도움이 되는 플레이[* [[병살타]], 수비실책 , [[자책골]] 등.]를 하거나, 오히려 친정팀 상대로 맹활약을 할 때[* 홈런이나 호수비, 결승골 등.]에는 이중적인 의미를 내포한 '''친정사랑'''이라고 부른다. == 親政 == 친히 정치한다는 뜻으로, 임금이 나라를 직접 다스리는 것.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임금이 나라를 직접 다스리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에 굳이 친정이란 표현을 사용하지 않으나, 주로 어린 나이에 즉위하거나 허수아비로 즉위하여 한동안 [[태후]]나 [[권신]]이 [[섭정]]을 행하다가, 임금이 성년이 되어 권력을 돌려받거나 정변 등으로 권력을 되찾아와서 직접 정치를 하게 되면 친정이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요즘에는 [[대통령]]이 장차관이나 여당의 의견을 따르기보다 직접적으로 의견을 피력하여 운영하는 것을 친정 체제라고 하기도 한다. == 親征 == 친히 정벌한다는 뜻으로, [[군주]]나 [[국가원수]]가 직접 [[군대]]를 이끌고 전장에 나서는 것. [[알렉산드로스 대왕]]이나 [[리처드 1세]],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영락제]], [[광개토대왕]], [[태조(고려)|왕건]] 등이 대표적 사례. [[근대]] 이전에는 군주의 친정이 흔히 있는 일이었다. 특히 [[창업군주]]나 정복 군주들은 친정이, 즉 내정보다는 [[전쟁]]이 본업이나 마찬가지라 재위 기간의 대부분을 전장에서 보내는 군주들도 적지 않았다. [[한국사]]에서도 전쟁이 잦았던 [[삼국시대]]까지는 친정 [[능력]]은 [[임금]]의 기본 덕목이었다. 유능한 장수에 지휘를 맡기는 일도 많았지만, 왕이 굳이 나가서 지휘한 기록도 상당히 많고 [[고국원왕]]이나 [[성왕(백제)]]은 결국 그러다 전사했다. [[신라]]에서 유독 3명 [[여왕]]의 재위기간에 주변국의 공격이나 내부 [[반란]]에 크게 시달린 것도 친정을 할 수 없는[* 실제로 여왕들은 친정 기록이 전혀 없다. 반면 전후로 [[진평왕]]은 친정을 했고, [[김춘추]]도 젊을 때는 전장을 [[김유신]]에 맡겼지만 오히려 [[나이]]들어 왕에 오른 뒤에는 친정을 여러 번 했다.] [[여자]]가 임금에 올랐으니 신라를 흔들기 좋은 시기라고 봐서라는 설도 있을 정도. 정치적인 면에서도 친정은 군주의 덕목이자 [[왕권]] 강화의 일환이기도 하였으며, 왕이 직접 군대를 이끈다는 것은 병사들에게 사기면에서도 큰 영향을 줬다. 언뜻 생각하기엔 '그냥 유능한 장수에게 맡기면 되는 거 아닌가?' 싶겠지만, 이는 정치적으로 매우 부담되는 선택이다. 패전해도 문제지만, 이겨서 공훈을 세운 총사령관은 기존 권력에게 잠재적 위험요소이기 때문이고, 극단적으로는 [[위화도 회군|전쟁 시작도 전에 아예 사령부 전체가 반란군으로 돌변할 수도 있다.]] 게다가 반란을 경계한답시고 군대를 쪼개 수도 방위에 남겨두면, 당연히 작전의 성공률은 바닥으로 가라앉는다. 반면 군주가 친정을 하면 군공을 독점할 수 있고, 수도 방위는 최소한으로 남긴 채 온 나라를 긁어모아 대외원정도 할 수 있는 것이다. 군주의 친정은 [[국가]]의 총력을 기울인 전쟁을 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심지어 양진영이 모두 친정일 경우 그 무게감은 더욱 엄청나져서 말 그대로 [[캐삭빵|양국의 운명을 건 건곤일척의 전투]]가 되곤 한다. 아래 사례들을 보면, 패전한 쪽은 정말로 나라가 망하거나 심각한 위기에 빠진다. 앞 [[문장]]에 예시된 인물들 처럼 군주 본인이 최고의 장수, [[지휘관]]이어서 직접 군을 전투를 지휘 하기도 하지만, 여러가지 정치적 의미까지 염두에 두고 군주가 참전하되 실제 작전 입안이나 전투 지휘는 [[직업군인]]에게 맡기는 경우가 더 많다. 군주의 친정은 장점 못지 않게 단점도 크다. 전세가 불리해져 왕이 도망가거나([[다리우스 3세]]) 살해당할([[성왕(백제)|성왕]])경우 충분히 버틸 수 있었던 상황이라도 병사들이 모두 무너지는 양날의 검과 같았다. 더군다나 전쟁 와중에 왕이 [[전사]]하거나([[해럴드 2세]], [[리처드 3세]], [[세바스티앙 1세]]) 사로잡히는 일([[장 2세]], [[정통제]], [[무함마드 샤]])이라도 벌어진다면 [[왕조]]가 망하거나 흔들릴 판이니 근대 이후로는 거의 사라졌다. 군주들 중에는 지휘관으로서 능력이 우수한 군주도 있지만 전쟁과는 맞지 않는 군주들도 있으며, 친정을 하는 것만이 유일한 국가존속 수단이 아니고서야 기본적으로 군주의 덕목은 국가를 견실하게 운영하는 능력이 우선이기도 하니까. 한국사에서는 [[조선]] 개국 초기인 [[1402년]] 발생한 [[조사의의 난]]을 진압하기 위해 태종 [[이방원]]이 친정한 사례가 마지막이다. 조선만으로 따지면 처음이자 마지막 [[국왕]]의 친정이다. 이는 조사의의 난을 일으킨 조사의 배후에 건국자이자 부왕인 태조 [[이성계]]가 있었기 때문에, 친정을 하지 않고 그냥 신하들만 보내기에는 어려운 상황이었어서도 있다. [[세자]] 시절 [[광해군]]도 [[임진왜란]] 때 직접 군을 이끈 적이 있기는 하다. [[세계사]]에서는 [[프랑스 제2제국]]의 [[나폴레옹 3세]]가 [[보불전쟁]]에 친정한 사례가 전통적 의미의 친정으로서는 마지막일 것이다. 나폴레옹 3세는 이 전쟁의 [[스당 전투]]에서 [[프로이센군]]에 패배하여 포로가 되고, 이로서 프랑스 제2제국은 멸망한다. 재미있게도 [[미국 대통령]]도 친정을 한 적이 있다. [[조지 워싱턴]]이 그 주인공으로 [[미국 독립 전쟁|독립전쟁]]을 끝내고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임기]]를 수행할 때 벌어진 [[위스키]] 반란에 친히 토벌군을 이끌고 반란을 진압한 적이 있었다. [[20세기]] 이후 국가의 체계가 고도화 되면서부터는 전통적인 의미에서 국가원수의 친정, 즉 전체 전쟁의 지도를 넘어서 개별 전투에 까지 참여한다는 [[개념]]은 성립하지 않게 되었다. 국가원수가 전쟁을 직접 지도하는 경우도 20세기 이후로는 극히 드문데, [[1차 대전]]에서 [[알베르 1세]]의 [[벨기에군]] 지휘, [[2차 대전]]에서 [[히틀러]]의 [[독일군]] 지휘, 2차대전과 [[국공내전]]에서 [[장제스]]의 [[국민당군]] 지휘 등의 예를 들 수 있고, [[21세기]]에 가장 유사한 사례로는 [[압둘라 2세]]의 [[요르단군]] 지휘가 있다 === 사례 === 한 쪽만이 친정이었던 사례는 매우 많아서 이루 다 열거하기 어렵기에, 양진영이 모두 친정이었던 사례만 기록한다. * [[테르모필레 전투]] - [[크세르크세스 1세]] vs [[레오니다스 1세]]. 스파르타의 패배와 레오니다스 1세 전사. * [[가우가멜라 전투]] - [[알렉산드로스 3세]] vs [[다리우스 3세]] - 마케도니아의 결정적 승리,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 멸망 * [[평양성 전투|평양성 전투(371)]] - [[근초고왕]] vs [[고국원왕]]. 백제의 승리. 고국원왕 전사. * [[공산 전투]] - [[태조(고려)|왕건]] vs [[견훤]]. 왕건의 주력 군대가 괴멸당하고, 왕건을 따라 종군한 8명의 장수들이 전사한다. 이후 고려는 한동안 소극적으로 지키는데 급급한 모습을 보이고, 이 전투에서 왕건을 지키기 위해 여덞 장수가 전사했다고 하여 공산은 이후 팔공산으로 불리게 된다. * [[고창 전투]] - [[태조(고려)|왕건]] vs [[견훤]]. 공산 전투의 리벤지로 고려는 여기서 대승을 거두며 주도권을 빼앗아온다. 또한 고창은 동쪽을 안정시켰다는 의미로 안동시가 된다. * [[운주성 전투]] - [[태조(고려)|왕건]] vs [[견훤]]. [[후삼국시대]]의 결과를 사실상 결정한 전투로, 견훤은 이 전투에서 [[공주시|웅진]] 이북의 땅과 정예병력 5천의 60%를 상실하게 된다. 또한 [[고창 전투]] 이후 심화되어가던 후백제의 후계자 분쟁은 이 전투의 패배로 더욱 극심해져 [[견신검]]의 쿠데타로 이어지게 된다. * [[일리천 전투]] - [[태조(고려)|왕건]] + [[견훤]] vs [[견신검]]. [[후삼국시대]]를 종결지은 전투. 다만 후백제군의 사기 저하와 배신으로 인해 최후의 전투 답지않게 싱겁게 끝났다. * [[전연의 맹|요 성종의 북송 정벌]] - 999년에서 1004년에 걸친 [[요성종]]의 북송 정벌에 맞서 [[송진종]]도 친정에 나서 이에 대항. '전연의 맹'이 맺어졌다. * [[스탬퍼드 브리지 전투]] - [[하랄 3세 하르드라다]] vs [[해럴드 2세]] * [[헤이스팅스 전투]] - [[윌리엄 1세]] vs [[해럴드 2세]] * [[제3차 십자군 원정]] - [[리처드 1세]] vs [[살라흐 앗 딘]] 전술적으로는 리처드 1세의 승리, 전략적으로는 살라흐 앗 딘의 승리. * [[메안데르의 안티오키아 전투]] - [[테오도로스 1세]] vs 카이쿠스로 1세.[* 룸 술탄국의 술탄] 테오도로스 1세가 지휘한 로마군의 승리. 특히 이 전투에서는 테오도로스 1세가 카이쿠스로 1세와 직접 싸워 카이쿠스로 1세를 전사시켰다. 무려 '''황제와 술탄의 [[일기토]]'''(...) * [[앙카라 전투]] - [[티무르]] vs [[바예지트 1세]] - 티무르의 결정적 승리. 바예지트 1세는 포로로 잡힘. 오스만 베이국의 팽창 저지. * [[토목의 변]] - [[정통제]] vs [[에센 타이시]] - 명나라의 대패. * [[제20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방전| 콘스탄티노폴리스 공방전]](1453) - [[메흐메트 2세]] vs [[콘스탄티노스 11세]] : 콘스탄티노스 11세의 전사와 로마 제국 멸망 * [[파비아 전투]](1525) - [[카를 5세]] vs [[프랑수아 1세]] 카를 5세의 대승. 프랑스왕 프랑수아 1세가 포로로 잡히고 이탈리아의 패권은 신성로마제국으로. * [[크사르 엘케비르 전투]](1578) - 일명 세 왕의 전투로 [[포르투갈 왕국]] [[세바스티앙 1세]], 찬탈당한 모로코 술탄(압둘라) vs 찬탈한 모로코 술탄(마르완)의 전투. 공교롭게도 전투에서 [[동귀어진|3명 모두 죽었다.]][* 이후 모로코 술탄은 같이 참전한 마르완의 동생인 [[아흐마드 알 만수르]]가 잇는다.] '''포르투갈 역사상 최악의 패전'''으로 여겨지며 포르투갈 식민제국 몰락의 기점이 되었다. 세바스티앙 1세의 갑작스런 전사로 포르투갈 국왕 자리는 공석이 되었고, 이후 포르투갈은 [[이베리아 연합]]이라는 이름으로 [[스페인 제국]]에 합병되는 수모를 겪고, 아시아 무역거점인 [[믈라카]]를 비롯해 동남아시아 무역거점을 [[네덜란드]]에 뺐기고 쇠퇴의 길로 들어섰다. * [[강희제]]의 [[준가르]] 원정(1690, 1695, 1697) - 강희제 vs [[준가르]] 갈단 칸. 강희제의 3차에 걸친 친정으로 내몽골까지 쳐들어온 준가르군을 격파하고, 준가르의 동진을 저지시켰다. * [[카르날 전투]](1739) - [[나디르 샤]] vs [[무함마드 샤]] - 이 전투로 [[무굴 제국]]은 사실상 식물 정권이 되버리고 만다. * [[아우스터리츠 전투|삼제회전(三帝會戰)]](1805) - [[나폴레옹 보나파르트|프랑스 황제]] vs [[알렉산드르 1세|러시아 황제]], [[프란츠 2세|신성로마제국 황제]]. 나폴레옹의 가장 완벽한 승리. 신성로마제국 해체. 한 전장에서 세명의 황제가 맞붙었다. [[분류:동음이의어]][[분류:가족]][[분류: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