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파일:카림 바게리.jpg|width=100%]] || ||<-2> '''{{{#ff0000 이란 축구 국가대표팀}}}''' || ||<-2> '''{{{#ffffff 카림 바게리 [br] (Karim Bagheri /کريم باقری) }}}''' || || '''생년월일''' ||[[1974년]] [[2월 20일]] ([age(1974-02-20)]세) || || '''국적''' ||[include(틀:국기, 국명=이란)] || || '''출신지''' ||[[타브리즈]] || || '''신체''' ||185cm || || '''포지션''' ||[[공격형 미드필더]], [[수비형 미드필더]], '''[[리베로]]''' || || '''소속팀''' ||[[트락토르 사지]] (1992~1994) [br] 케샤바즈 FC (1994~1996) [br] [[페르세폴리스 FC]] (1996~1997) [br] '''[[DSC 아르미니아 빌레펠트]] (1997~2000)''' [br] 알 나스르 CSC (2000) [br] [[찰턴 애슬레틱 FC]] (2000~2001) [br] [[알 사드 SC]] (2001~2002) [br] [[페르세폴리스 FC]] (2002~2011) || || '''지도자''' ||[[페르세폴리스 FC]] (2012~2013 / ^^수석코치^^) [br] [[페르세폴리스 FC]] (2015~ / ^^수석코치^^) [br] [[이란 축구 국가대표팀]] (2020~ / ^^수석코치^^)|| || '''국가대표''' ||[[이란 축구 국가대표팀|[[파일:이란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width=25]]]]87경기 50골 ^^([[이란 축구 국가대표팀|이란]] / 1993~2010)^^|| [목차] [clearfix] == 소개 == 이란의 축구감독. 현역 시절 [[알리 다에이]], [[호다다드 아지지]], [[메흐디 마다비키아]] 등과 함께 이란을 대표하는 선수로 유명했다. [[자바드 네쿠남]] 이전 이란 대표팀의 중원을 지배했던 선수. == 선수 경력 == === 클럽 경력 === 고향 팀 [[트락토르 사지]]와 케샤바즈 FC를 거쳐 1996년 이란 명문 팀인 [[페르세폴리스 FC]]에 입단했다. 페르세폴리스에서 데뷔 시즌부터 인상적인 활약을 펼치며 해외 구단들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고, 팀 동료 [[알리 다에이]]와 함께 1997년 [[DSC 아르미니아 빌레펠트]]에 입단하며 [[분데스리가]] 진출에 성공한다. 첫 시즌 18경기 3골로 무난한 활약상을 보였으나 팀이 [[2. 분데스리가]]로 강등되고 말았다. 2부리그 첫 시즌부터 그는 팀에서 '''리베로''' 역할을 맡아 팀의 중심 선수가 되었고, 22경기 2골을 기록하며 팀을 승격시키는 일등공신이 되었다. 이 시즌 키커지가 선정한 2부리그 베스트일레븐에도 선정되며 가치를 인정받았다. 승격 후에도 그는 전반기를 주전으로 소화했지만, 애초에 독일로 진출할 때 페르세폴리스 측에서 삽입한 계약 조항 때문에 다시 페르세폴리스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페르세폴리스 복귀 직후 아랍에미리트 단기 임대를 소화한 그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중위권 팀인 [[찰턴 애슬레틱 FC]]에 이적료 40만 파운드로 완전이적한다. 그러면서 그는 '''이란인 최초의 프리미어리거'''로 기록된다. 하지만 찰턴에서 그는 한 시즌 동안 철저히 후보로 밀려 1경기 출장에 그쳤고, 시즌 종료 후 카타르 알 사드로 이적한다. 알 사드에서 11경기 5골로 폼을 되찾은 바게리는 전격적으로 친정팀 [[페르세폴리스 FC]]에 복귀한다. 2002-03 시즌부터 2010-2011 시즌까지 여덟 시즌 동안 팀의 핵심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178경기 29골의 기록을 남겼다. 특히 2007-08 시즌 주장으로써 팀의 여섯 시즌만의 리그 우승을 이끌었고, 2008-09 시즌 팀의 감독 [[넬루 빙가다]]와의 불화 때문에 많은 경기를 뛰지 못했으나 이듬해 2009-10 시즌 다시 주전자리를 되찾고 나서는 22경기 10골로 팀 내 최다득점자가 되는 노익장을 과시하기도 했다. 그렇게 2010-2011 시즌 중반이 되고, 현역은퇴를 발표했다. === 국가대표 경력 === 1993년 6월 파키스탄과의 [[1994 FIFA 월드컵 미국]] 아시아 예선 경기에 처음 A매치 데뷔전을 가졌다. 이후 빠르게 이란 대표팀의 주전 미드필더로 성장해 [[1996 AFC 아시안컵 아랍에미리트]]부터 쭉 국제대회에서 주전 선수로 활약한다. 특히 1997년 몰디브와의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아시아 2차예선 경기에서 무려 '''7골'''을 몰아넣어 당시 월드컵 예선 한 경기 최다골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이 기록은 4년 뒤 호주의 아치 톰슨이 아메리칸 사모아전에서 13골을 넣어 깨진다.] 당시 이란이 몰디브, 키르기스스탄 등 약체들과 한 조에 속한 덕에, 바게리는 특유의 정확한 킥으로 1997년 한해에만 A매치 '''20골'''을 넣는 기염을 토한다. 바게리의 공격수 뺨치는 A매치 통산 골 기록이 완성되는데는 이 시기 기록한 골들이 컸다. 이란은 대륙간 플레이오프까지 간 끝에 호주를 제치고 본선에 진출했고, 호주전에서 바게리는 0-2에서 추격하는 골을 넣으며 경기를 뒤집는데 일조했다.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대회 대륙간 플레이오프에서 이란이 아쉽게 아일랜드에게 득실차로 밀려 탈락했고, 이 경기를 끝으로 바게리도 국가대표팀에서 은퇴 선언을 했다. 그러다가 2008년, 과거 팀 동료였던 [[알리 다에이]]가 이란 대표팀 감독에 오르고, 팀의 주전 미드필더 [[안드라니크 테이무리안]]이 부상으로 장기 결장하게 되자, 알리 다에이 감독은 바게리에게 복귀 요청을 했다. 이를 바게리가 전격적으로 받아들여 2008년 11월 그는 7년만에 이란 대표팀에 복귀했다.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 최종예선에서 아랍에미리트, 대한민국과의 경기에도 출장하며 다시 월드컵 본선에 도전했으나 이번에도 실패했고, 바게리는 다시 대표팀에서 멀어졌다. 그 후 2010년 10월, 브라질과의 친선경기에서 대표팀을 공식 은퇴했다. == 코치 경력 == 2012년부터 친정팀 [[페르세폴리스 FC]]의 코치직을 맡았고 야히야 골모하마디 감독과 합을 맞췄다. 이후 2015년부터 수석코치직을 맡고 있으며, 2020년부터는 [[이란 축구 국가대표팀]]의 코치까지 겸직하고 있다. == 플레이스타일 == 중앙 미드필더로 전천후로 활약이 가능했다. 특히 킥력이 일품이라 그가 때리는 중거리는 상대팀의 경계대상 1호 무기였다. 지금으로 따지면 박스투박스 미드필더의 역할을 수행한 선수였고, 수비적 위치선정과 공격적인 공간파악이 다 되던 선수이었다. 특히 독일에서 뛰던 시절에는 팀의 구심점으로 활약해야 하는 리베로 포지션을 맡을 정도로 전술적 이해도가 상당했다. == 여담 == * 대한민국과의 경기에서 강한 모습을 보여준 선수다. 특히 1996년 그 유명한 [[식스투 참사]] 때의 이란 대표팀의 일원이기도 했고, 당시 한 골을 기록했었다. 2000년 아시안컵 8강에서도 그 어마어마한 중거리 선제골을 집어넣으며 대한민국을 패배 직전까지 몰고간 장본인이다. 2009년 대표팀에 복귀해서도 주장완장을 차고 [[아자디 스타디움]]에서 대한민국을 맞아 중원을 지휘하며 활약했다. 당시에도 대한민국은 어려운 경기 끝에 [[박지성]]의 동점골로 겨우 승점을 챙겨갈 수 있었다. [[분류:1974년 출생]][[분류:이란의 축구선수]][[분류:미드필더]][[분류:수비수]][[분류:트락토르 SC/은퇴, 이적]][[분류:페르세폴리스 FC/은퇴, 이적]][[분류:DSC 아르미니아 빌레펠트/은퇴, 이적]][[분류:찰턴 애슬레틱 FC/은퇴, 이적]][[분류:알 사드 SC/은퇴, 이적]][[분류:이란의 FIFA 월드컵 참가 선수]][[분류: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참가 선수]][[분류:이란의 AFC 아시안컵 참가 선수]][[분류:1996 AFC 아시안컵 아랍에미리트 참가 선수]][[분류:2000 AFC 아시안컵 레바논 참가 선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