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파일:카슈타의 시툴라.png|width=100%]][* 카슈타 왕과 아메니르디스의 이름이 적힌 청동 시툴라. 미국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의 월터스 미술관 소장.] || || '''이름''' ||카슈타[br](고대 이집트어: k3š-t3, 영어: Kashta)|| || '''출생''' ||미상|| || '''사망''' ||기원전 746년|| || '''직위''' ||쿠시의 왕|| [목차] [clearfix] == 개요 == [[쿠시 왕국]] 나파타 시대 2대 왕. == 행적 == 상부 [[누비아]] 일대를 통합하고 나파타를 수도로 삼은 [[알라라(쿠시)|알라라]] 왕과의 관계는 알려진 바 없지만, 여러 학자들은 두 사람이 형제였을 거라고 추론한다. 그는 페바트마(Pebatjma) 왕비와 결혼하여 두 아들 [[피이(쿠시)|피이]]와 [[샤바카]], 세 딸 켄사, 페크사테르, 아메니르디스를 낳았다. 이 중 켄사와 페크사테르는 훗날 이집트를 정복한 피이와 결혼했다. 당시 [[고대 이집트]]는 [[이집트 제3중간기]] 시대에 접어들면서 극심한 혼란에 휩싸였고, 급기야 여러 왕국으로 쪼개졌다. 그는 이 때를 틈타 나일강을 거슬러 올라가 상이집트의 중심지인 테베를 점거했다. 이후 상이집트의 제23왕조 [[파라오]]이자 아문 대제사장이었던 오소르콘 3세의 딸 셰페누페트 1세를 대신해 자기 딸 아메니르디스를 테베의 "[[아문]] 신의 아내"로 임명했다. 그가 상이집트를 장악했거나 최소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증거는 엘레판티네 섬(현재 아스완)에서 발견된 그의 비문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다만 오소로콘 3세가 이후에도 통치를 행사했고 타켈로트 3세가 왕위를 물려받은 것을 볼 때, 쿠시 왕국의 상이집트 점유는 이때까지는 완전하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746년경에 사망했고, 장남 피이가 왕위를 물려받았다. 여러 학자들은 나파타의 왕실 묘지인 엘 쿠루에 세워진 [[피라미드]]들 중 최남단에 자리잡은 엘 쿠루-8 피라미드가 그와 아내 페바트마의 무덤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분류:쿠시 왕]][[분류:기원전 746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