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카스파 다비트 프리드리히}}}[br]Caspar David Friedrich''' || ||||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카스파다비트프리드리히.jpg|width=100%]]}}} || ||<|2> '''출생''' ||[[1774년]] [[9월 5일]] || ||[[파일:신성 로마 제국 국기(후광 포함).svg|width=25]] [[신성 로마 제국]] [[파일:스웨덴 해군기.svg|width=25]] [[스웨덴 제국|스웨덴령]] [[포메른]] [[그라이프스발트]]|| ||<|2> '''사망''' ||[[1840년]] [[5월 7일]] (향년 65세)|| ||[[파일:작센 왕국 국기.svg|width=25]] [[작센 왕국]] [[드레스덴]]|| || '''국적''' ||[[파일:독일 국기.svg|width=25]] [[독일]] || || '''직업''' ||[[화가]]|| || '''사조''' ||[[낭만주의]]|| || '''가족''' ||아돌프 고틀리프 프리드리히 {{{-2 (아버지)}}}[br]소피 도로테아 베흘리 {{{-2 (어머니)}}} {{{#!folding [형제 자매] 카타리나 도로테아 프리드리히 {{{-2 (누나, 첫째)}}}[br]마리아 도로테아 프리드리히 {{{-2 (누나, 둘째)}}}[br]요한 크리스티안 아돌프 프리드리히 {{{-2 (형, 셋째)}}}[br]--요한 다비트 프리드리히 {{{-2 (형, 넷째)}}}--[* 화가가 태어난 해의 2년 전에 태어났지만, 출생 한 달도 안 되어서 일찍 세상을 떠났다.][br]요한 자무엘 프리드리히 {{{-2 (형, 넷째)}}}[br]요한 크리스토퍼 프리드리히 {{{-2 (남동생, 여섯째)}}}[br]요한 하인리히 프리드리히 {{{-2 (남동생, 일곱째)}}}[br]크리스티안 요아힘 프리드리히 {{{-2 (남동생, 여덟째)}}}[br]바바라 엘리자베트 요한나 프리드리히 {{{-2 (여동생, 막내)}}}}}} || || '''배우자''' ||카롤리네 프리드리히[* 혼전 이름은 '크리스티아네 카롤리네 봄머'. 당시 푸른색 염료로 옷감 및 각종 직물들을 물들이는 염색장 '크리스티안 봄머'의 딸.]|| || '''자식''' ||엠마 요한나 프리드리히 {{{-2 (딸, 첫째)}}}[br]아그네스 아델하이트 프리드리히 {{{-2 (딸, 둘째)}}}[br]구스타프 아돌프 프리드리히 {{{-2 (아들, 셋째)}}}|| [목차] [clearfix] == 개요 == [[독일]]의 [[낭만주의]] 화가. 강렬하고 웅혼한 마티에르 속에 쓸쓸하고 고독한 분위기를 담아낸 오묘하고도 서정적인 작품들을 선보여 '''독일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거장'''으로 평가받고 있다. == 미술 철학 == 종교적이면서도[* 흔히 낭만주의 미술은 종교적 색채를 탈피하여 인간의 본연적인 상상력,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모토로 하는 미술이라 생각하는 경우가 많으나 독일의 낭만주의는 민족주의와 합쳐져 15세기 화가인 [[알브레히트 뒤러]]와 [[신성 로마 제국]]을 모티브로 하여 고전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인다. 그렇기에 프리드리히의 그림엔 종교적 색채가 짙은 작품이 많다. 독일뿐 아니라 다른곳도 마찬가지다. 종교적 색채를 탈피하려 한 건 오히려 그 전 시대의 계몽주의의 영향을 받은 신고전주의 미술이다. 낭만주의는 이에 반발하여 다시 강렬한 종교성으로의 회귀를 추구했다.] 인간과 자연의 강렬한 대비가 돋보이는 그림을 주로 그렸다. 이는 인간과 자연을 구분하고 자연을 인간이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바라본 근대적 세계관에 기초했으며, 또한 칸트의 진/선/미 구분에 기초하여 미술의 존재 의의를 '이성으로 설명할 수 없는 세상의 일면을 인간에게 전달하는 작업'으로 보았다. == 대표작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안개바다위의방랑자.jpg|width=100%]]}}} || || '''{{{#36383e,#36383e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 {{{-1 ''(Der Wanderer über dem Nebelmeer)''[br]독일 쿤스트할레 함부르크}}}}}}''' || 카스파의 그림 중 가장 유명한 작품. 설령 화가에 대해선 몰라도 그림만큼은 안다는 사람이 많을 정도로 익히 알려져 있으며, 낭만주의 전체를 대표하는 작품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광대한 자연과 그 앞에 독자에게 등을 보이고 굳게 선 인간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카스파 다비트 프리드리히의 철학이 가장 잘 드러난 작품이며 이 등을 보이고 선 사람과 그 앞에 펼쳐진 거친 세상이라는 아이코닉한 구도는 인간 정신의 상징이 되어 오늘날까지 여러 그림에서 --특히 오만가지 철학책들의 표지로-- 오마주되고 있다. 참고로 해당 작품의 배경이 된 장소는 [[독일]] [[작센]] 지방과 [[체코]] [[보헤미아]] 지방에 걸쳐진 엘베 사암 산맥이며, 그림 속 사람이 서 있는 곳은 독일 작센에 있는 카이저크로네 언덕이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바닷가의수도승.jpg|width=100%]]}}} || || '''{{{#36383e,#36383e 바닷가의 수도승 {{{-1 ''(Der Mönch am Meer)''[br]독일 베를린 구 국립미술관}}}}}}'''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얼음의바다.jpg|width=100%]]}}} || || '''{{{#36383e,#36383e 얼음의 바다 {{{-1 ''(Das Eismeer)''[br]독일 쿤스트할레 함부르크}}}}}}''' || [[북극]]의 삭막한 풍경을 담은 이 작품은 '북극해의 난파선'이란 제목으로도 알려져 있다. 얼음 사이에 난파선이 보이는데, 실제 있었던 해난 사고를 바탕으로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작품이 완성된지 얼마 안 되었던 초창기에는 '수북한 빙괴 위의 난파선이 있는 북극해의 이상화된 풍경'이라는 제목으로 전시회에 공개되었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뤼겐의백악절벽.jpg|width=100%]]}}} || || '''{{{#36383e,#36383e 뤼겐의 백악 절벽 {{{-1 ''(Kreidefelsen auf Rügen)''[br]스위스 빈터투어 예술 박물관}}}}}}'''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까마귀들의나무.jpg|width=100%]]}}} || || '''{{{#36383e,#36383e 까마귀들의 나무 {{{-1 ''(Krähenbaum)''[br]프랑스 [[루브르|루브르 박물관]]}}}}}}''' || [[분류:독일의 화가]][[분류:1774년 출생]][[분류:1840년 사망]][[분류:낭만주의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