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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d5a1e 칼 허벨 관련 틀}}}'''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include(틀: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개막전 선발 투수)] ---- ||
'''{{{#fd5a1e 칼 허벨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
[[파일:뉴욕 자이언츠 엠블럼(1933~1935).png|height=70]][br]'''MLB 월드 시리즈[br]우승반지''' || || '''[[1933년 월드 시리즈|{{{#fd5a1e 1933}}}]]''' || ---- ||<-3>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br]올스타''' || ||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올스타전/1933년|{{{#ffffff 1933}}}]]''' ||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올스타전/1934년|{{{#ffffff 1934}}}]]''' ||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올스타전/1935년|{{{#ffffff 1935}}}]]''' || ||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올스타전/1936년|{{{#ffffff 1936}}}]]''' ||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올스타전/1937년|{{{#ffffff 1937}}}]]''' ||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올스타전/1938년|{{{#ffffff 1938}}}]]''' || ||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올스타전/1940년|{{{#ffffff 1940}}}]]''' ||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올스타전/1941년|{{{#ffffff 1941}}}]]''' ||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올스타전/1942년|{{{#ffffff 1942}}}]]''' || ---- [include(틀: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영구결번)] ---- ||<-2>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파일:MLB 로고.svg|height=20]]]] '''{{{#ffffff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ffffff 명예의 전당}}}]] 헌액자}}}''' || ||<-2> [[파일:external/baseballhall.org/Hubbell%20Carl%20Plaque_NBL.png|width=250]] || ||<-2> '''[[http://baseballhall.org/hof/hubbell-carl|칼 허벨]]''' || || 헌액 연도 || [[1947년]] || || 헌액 방식 || 기자단(BBWAA) 투표 || || 투표 결과 || 86.96% (3회) || ---- ||<-5> [[내셔널 리그|[[파일:MLB 내셔널 리그 로고.svg|width=20]]]] '''{{{#ffffff 1933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MVP}}}''' || || [[척 클라인]][br]([[필라델피아 필리스]]) || → || '''칼 허벨[br]([[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뉴욕 자이언츠]])''' || → || [[디지 딘]][br]([[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 ||<-5> [[내셔널 리그|[[파일:MLB 내셔널 리그 로고.svg|width=20]]]] '''{{{#ffffff 1936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MVP}}}''' || || [[개비 하트넷]][br]([[시카고 컵스]]) || → || '''칼 허벨[br]([[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뉴욕 자이언츠]])''' || → || [[조 메드윅]][br]([[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 ---- ||<-5> [[내셔널 리그|[[파일:MLB 내셔널 리그 로고.svg|width=20]]]] '''{{{#ffffff 1933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다승왕}}}''' || || 론 와네키[br]([[시카고 컵스]]) || → || '''칼 허벨[br]([[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뉴욕 자이언츠]])''' || → || [[디지 딘]][br]([[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 ||<-5> [[내셔널 리그|[[파일:MLB 내셔널 리그 로고.svg|width=20]]]] '''{{{#ffffff 1936년 ~ 1937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다승왕}}}''' || || [[디지 딘]][br]([[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 → || '''칼 허벨[br]([[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뉴욕 자이언츠]])''' || → || [[빌 리(1909)|빌 리]][br]([[시카고 컵스]]) || ---- ||<-5> [[내셔널 리그|[[파일:MLB 내셔널 리그 로고.svg|width=20]]]] '''{{{#ffffff 1933년 ~ 1934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평균자책점왕}}}''' || || 론 와네키[br]([[시카고 컵스]]) || → || '''칼 허벨[br]([[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뉴욕 자이언츠]])''' || → || 사이 블랜튼[br]([[피츠버그 파이리츠]]) || ||<-5> [[내셔널 리그|[[파일:MLB 내셔널 리그 로고.svg|width=20]]]] '''{{{#ffffff 1936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평균자책점왕}}}''' || || 사이 블랜튼[br]([[피츠버그 파이리츠]]) || → || '''칼 허벨[br]([[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뉴욕 자이언츠]])''' || → || 짐 터너[br]([[애틀랜타 브레이브스|보스턴 비스]]) || ---- ||<-5> [[내셔널 리그|[[파일:MLB 내셔널 리그 로고.svg|width=20]]]] '''{{{#ffffff 1937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탈삼진왕}}}''' || || 반 멍고[br]([[로스앤젤레스 다저스|브루클린 다저스]]) || → || '''칼 허벨[br]([[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뉴욕 자이언츠]])''' || → || 클레이 브라이언트[br]([[시카고 컵스]]) || ---- ||<-5> '''{{{#fd5a1e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fd5a1e 뉴욕 자이언츠}}}]] 등번호 10번}}}''' || || 결번 || {{{+1 →}}} || '''{{{#ffffff 칼 허벨[br](1932)}}}''' || {{{+1 →}}} || [[와티 클락]][br](1933) || ||<-5> '''{{{#fd5a1e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fd5a1e 뉴욕 자이언츠}}}]] 등번호 11번}}}''' || || [[프레디 피츠시몬스]][br](1932) || {{{+1 →}}} || '''{{{#ffffff 칼 허벨[br](1933~1943)}}}''' || {{{+1 →}}} || '''[[영구결번/스포츠|영구결번]]''' || }}} || }}} || ---- ||<-2>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Carl Hubbell.jpg|width=100%]]}}} || ||<-2> '''{{{#ccac00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No. 11}}}''' || ||<-2> '''{{{#ffffff {{{+2 칼 오웬 허벨}}}[br]Carl Owen Hubbell}}}''' || ||<|2> '''출생''' ||[[1903년]] [[6월 22일]] || ||[[미주리|미주리 주]] 카시지 || ||<|2> '''사망''' ||[[1988년]] [[11월 21일]] (향년 85세) || ||[[애리조나|애리조나 주]] 스캇스데일 || || '''국적''' ||[include(틀:국기, 국명=미국)] || || '''학력''' ||미커 고등학교 || || '''신체''' ||183cm / 77kg || || '''포지션''' ||[[투수]] || || '''투타''' ||[[좌투우타]] || || '''프로입단''' ||1926년 아마추어 자유계약 ([[디트로이트 타이거스|DET]]) || || '''소속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뉴욕 자이언츠]] (1928~1943)''' || || '''기록''' ||'''[[노히트 노런]] (1929.05.08.)''' || [목차] [clearfix] == 개요 ==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서 활동했던 투수. [[스크류볼]]로 전설적인 위치에 올랐으며, 1930년대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명투수다. MVP를 2번 수상한 투수는 100년이 넘는 MLB 역사에서 그와 [[할 뉴하우저]](1944, 1945) 2명 뿐이다(기자협회 투표가 시작된 1931년 이후). == 선수 경력 == === 독립리그부터 [[디트로이트 타이거스]]까지 === 1923년, 20살 때 독립리그 팀인 오클라호마 시티에 입단한 칼 허벨은 '레프티 토마스'라는 좌완 투수를 만났다. 레프티 토마스는 허벨에게 스크류볼을 전수해줬다. 그 당시 스크류볼은 '페이드어웨이'라는 이름으로 타자의 눈 앞에서 사라지는 마구 취급을 받았고, [[크리스티 매튜슨]]이 간간이 던지는 공이었다. 스크류볼과 강력한 패스트볼이 합쳐지면 최대의 효과를 낼 수 있는데 허벨에겐 강속구가 없었다. 대신 커브를 던질 줄 알았고, 팔이 돌아가는 고통을 참아내며 스크류볼을 마스터하게 되었다. 1925년 [[디트로이트 타이거스]]가 허벨과 2만 달러에 계약했다. 그러나 당시 감독 겸 선수였던 [[타이 콥]]이 스크류볼의 위험성을 미리 알고 마이너리그로 내려가 다른 구종을 연마하라고 3년 동안 마이너리그에 박아두었다.[* 하술할 부상 항목을 보면 타이 콥의 염려는 과학적인 근거가 충분했다고 볼 수 있다.] ===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뉴욕 자이언츠]] === 1928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뉴욕 자이언츠]]가 그를 주목했고 당시 자이언츠의 명감독 [[존 맥그로]]가 그를 보고 [[크리스티 매튜슨]]이 생각난다며 그를 영입했다. 맥그로는 허벨에게 스크류볼을 던져도 된다며 허락했고,[* 스크류볼이 투수의 팔에 위험하다는 얘기에 "[[크리스티 매튜슨]]도 스크류볼을 던졌는데 괜찮았다"며 허락했다고 한다.][* 그런데 [[크리스티 매튜슨]]은 스크류볼을 던질때 마다 고통을 참지 못하여 경기당 10개 내외로 던졌다. 반면 칼 허벨은 밑에도 나와있듯이 스크류볼의 개수를 조절하지 못했고 결국 팔이 뒤틀려버렸다.][* [[김형준(기자)|김형준 기자]]가 출판했던 저서에 따르면 강속구가 없는 칼 허벨의 입장에서는 불가피했던 측면이 있었다고 한다.] 25살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메이저리그 마운드를 밟을 수 있었다. 그 시즌 7월부터 합류했고, 20경기(14선발) 10승 6패 ERA 2.83의 호성적을 올렸다. 1929년 본격적으로 전성기가 열렸다. 이 시즌 성적은 39경기(35선발) 268이닝 18승 11패 ERA 3.69를 기록했는데, 이 시즌 5월 8일 [[피츠버그 파이리츠]]와의 경기에선 1볼넷 [[노히트 노런]]을 기록하기도 했다. 9회 처음 두 타자가 전부 실책으로 출루했음에도 실점 없이 마무리하며 경기를 끝냈다고. 1930, 1931, 1932년을 각각 17승 ERA 3.87, 14승 ERA 2.65, 18승 ERA 2.50으로 마감했고, 1933년 31세 때 몬스터 시즌을 보내게 되었다. 7월 2일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의 경기에선 18이닝을 혼자 무실점으로 틀어막고 팀이 1:0으로 승리해 최장 이닝 완봉승[* 18이닝 동안 무사사구, 6피안타, 12탈삼진.] 기록을 새로 썼으며 4경기 연속 완봉을 포함해 45 1/3 연속 이닝 무실점 기록을 수립하기도 했다. 이 시즌 완투가 22회, 완봉이 10회였는데 이 중 5번의 완봉이 1-0 완봉승이라 이 부문 역시 최고 기록을 세웠다. 1933년 메이저리그에서 역대 최초로 열린 올스타전에도 내셔널리그 소속으로 참가했다. 원래는 선발 투수로 내정되어 있었는데, 하필 이틀 전 그 18이닝 완봉승을 해버린터라 7회에 올라와 두 이닝을 던지고 내려갔다. 예전부터 [[베이브 루스]]와 맞붙고 싶어했던 허벨이었지만 8회에 루스가 교체되며 맞대결은 성사되지 못했다. 시즌 최종 성적은 45경기(33선발) '''308.2이닝''' 23승 12패 ERA 1.66. 다승왕, 평균자책점왕 타이틀을 차지했지만 탈삼진 부문에선 2위를 기록해 삼관왕 달성엔 실패했다. 그래도 그 시즌 리그 MVP를 차지했다. [[1933년 월드 시리즈]]에선 1, 4차전에 선발 등판했다. 1차전에선 9이닝 2실점 무자책 완투승, 4차전에선 11이닝 1실점 무자책 완투승을 거두며 종합 20이닝 무자책, 0.00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그 시즌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뉴욕 자이언츠]]가 월드 시리즈 왕좌에 오르는 데 큰 공헌을 했다. 그리고 그 다음 시즌인 1934년에도 21승 ERA 2.30으로 맹활약했다. 올스타전이 백미였는데, 이번엔 제대로 내셔널리그 선발 투수로 등판했다. 첫 타자에게 안타, 다음 타자에게 볼넷을 내줘 시작부터 무사 1, 2루의 위기에 몰렸고 타석엔 그토록 상대하고 싶었던 [[베이브 루스]]가 들어섰다. 허벨은 스크류볼을 활용해 베이브 루스를 삼진으로 잡아냈고, 이어서 [[루 게릭]]-[[지미 폭스]]-[[알 시몬스]]-[[조 크로닌]]까지 5명의 타자를 '''연속 삼진'''으로 잡아내는 절정의 투구를 선보였다. 이 5명은 모두 후에 명예의 전당에 헌액될 정도로 뛰어난 타자들이었다는 걸 생각해보면 더욱 대단한 기록이었다. 도합 2,218홈런 9,385타점을 기록한 이 5명은 모두 허벨의 스크루볼에 방망이도 맞추지 못했다. [youtube(93qb2SqR-DY)] MLB 역사의 명장면으로 남은 허벨의 1934년 올스타전 5타자 연속 탈삼진. 이 날 허벨은 3이닝 6탈삼진을 기록하며 올스타전 최다 탈삼진 기록을 새롭게 썼다. 1936년 전반기엔 10승 6패로 시작하더니, 이후 16연승을 질주하며 시즌을 26승 6패 ERA 2.31로 마감했다. 역대 투수 최초로 두 번째 리그 MVP도 '''만장일치로''' 수상했다.[* 이는 내셔널리그 역사상 유일한 만장일치 투수 MVP이다. 아메리칸리그도 [[데니 맥클레인]]이 유일하다.] 1937년 8연승을 추가하며 24연승을 달성했고, 그 시즌 159탈삼진을 기록하며 시즌 탈삼진왕에 올랐다. 1933년부터 1937년까지 5시즌 연속 20승 이상을 기록하는 대기록도 달성하게 되었다. 이때 붙은 별명이 'Meal Ticket'. 1936년, 1937년 연속으로 내셔널리그 1위에 오르는데 큰 공헌을 해서 '식권'이라는 식으로 별명이 붙었다고 한다. 허벨이 뛸 당시 내셔널 리그의 평균 타율이 '''3할'''이 넘을 정도로 극 타고투저였다. 그 타고투저에서 스크류볼 하나로 전성기 10년 동안 엄청난 활약을 보였다는 거 자체 만으로도 대단한 선수였던 셈. === 부상, 그리고 은퇴 === 칼 허벨이 그렇게 경계했던 부상은 1938년에 찾아왔다. 24경기 179이닝 13승 ERA 3.07로 그 동안의 커리어에 비해선 조금 부진하더니, 시즌 후 팔꿈치에 부상이 와 수술을 받게 되었다. 수술의 후유증과 나이 등의 여파로 스크류볼의 위력은 떨어졌고, 1939년부터 1942년까지 4년 연속 11승을 기록하며 힘이 약간 떨어진 모습을 보였다. 그래도 15시즌 연속 두 자릿수 승리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1943년, 41세 때 4승 ERA 4.91로 크게 부진한 끝에 은퇴를 선언했다. 커리어 최초 4점대 평균자책점, 한 자릿수 승리를 기록한 시즌이었다. 1944년 등번호 11번은 뉴욕 자이언츠의 영구결번으로 남았고, 1947년 86.96%라는 높은 득표율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이 당시에는 명예의 전당 선수가 넘쳐나기도 했고 첫 번째 헌액에 대해 후하지 않아서 당시에 3~4번째 만에 헌액됐으면 상당히 빨리 헌액된 것이다. [[로저스 혼스비]], [[조지 시슬러]], [[모데카이 브라운]], [[냅 라조이]] 같은 대 선수들도 2수 이상이 걸려 헌액되거나 베테랑 위원회를 통해 헌액됐다. ] 칼 허벨의 커리어 최종 성적은 535경기 3590.1이닝 253승 154패 ERA 2.98. 통산 평균자책점이 3,000이닝 이상 던진 좌완 투수 중 역대 2위다. === [[명예의 전당 통계]](Hall of Fame Statistics) === * [[명예의 전당 통계|블랙잉크]], [[명예의 전당 통계|그레이잉크]], [[명예의 전당 통계|명예의 전당 모니터]], [[명예의 전당 통계|명예의 전당 스탠다드]] || ||블랙잉크||그레이잉크||HOF 모니터||HOF 스탠다드|| || 칼 허벨 || 51 || 252 || 174 || 51 || ||HOF 입성자 평균|| 40 || 185 || 100 || 50 || * [[명예의 전당 통계|JAWS]] - Starting Pitcher (44th) || ||career WAR||7yr-peak WAR||JAWS|| || 칼 허벨 || 67.5 || 47.3 || 57.4 || ||선발투수 HOF 입성자 평균|| 73.9 || 50.3 || 62.1 || === 은퇴 이후 === 은퇴 이후로도 자이언츠의 프런트로 이동해 1977년까지 프런트에서 활동했다. 프런트에서 물러난 후엔 스카우터로 전향해 유망주들을 찾아다녔고, 1985년 82세의 나이까지 아이들이 야구하는 모습을 지켜봤다고 한다. 1988년, [[애리조나]]의 스콧데일의 한 병원에서 8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 기타 == * 투구폼이 대충대충 던지는 듯한 폼이었는데[* [[사첼 페이지]]가 딱 이랬었다.], [[월터 존슨]]의 좌완 버전이라고 생각하면 쉬울 듯. 팔도 상당히 길어서 좌완 [[월터 존슨]]이란 말도 간간이 나왔다. [[파일:/image/224/2007/03/13/1176220090.jpg]] * [[스크류볼]] 그립은 속구 그립과 비슷했지만 던질 때 팔을 위 사진처럼 꺾어서 던졌다. 그래서 은퇴 이후 팔이 완전히 돌아가 버려서 차렷 자세를 하면 손바닥 위치에 손등이 가 있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 손과 팔의 타고난 유연성이 매우 뛰어나 그나마 이 정도에서 그친 것이라고 하며, 유연성 덕분에 스크류볼을 자주 사용했지만 부상을 잘 안 당해서 전문가들도 신기하게 여겼다. * 온라인 야구게임 [[마구마구]] PC버전에서는 블랙 등급의 칼 허벨 카드가 선발투수의 용도로 특이한 투구폼과 특이구질에 힘입어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일명 5대장이라 불리는 투수들이 있다. [[칼 허벨]], [[제리 쿠스먼]], [[테드 라이언스]], [[앤디 페티트]], [[데이브 맥널리]] ] [[분류:미국의 야구 선수]][[분류:MLB MVP]][[분류:1903년 출생]][[분류:1928년 데뷔]][[분류:1943년 은퇴]][[분류:1988년 사망]][[분류:재스퍼 카운티(미주리) 출신 인물]][[분류:좌완 투수]][[분류:좌투우타]][[분류: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은퇴, 이적]][[분류:원클럽맨]][[분류: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 헌액자]][[분류:MLB 영구결번 선수]][[분류:MLB 다승왕]][[분류:MLB 평균자책점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