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러시아어]] : Кяхтинский договор * [[만주어]] : ᠵᡠᠸᠠᠨ ᡝᠮᡠ ᡥᠠᠴᡳᠨ ᡳ ᠪᡳᡨᡥᡝ(Juwan emu hacin i bithe) * [[중국어]] : 布連斯奇條約 또는 恰克圖條約 [목차] [clearfix] == 개요 == [[1727년]] [[8월 23일]] 동[[시베리아]]의 도시 [[캬흐타]]에서 [[청나라]]와 [[러시아 제국]] 사이에 맺은 국경 조약이다. 앞서 맺어진 [[네르친스크 조약]]과 마찬가지로 원본은 한문을 배제하고 [[러시아어]], [[라틴어]], [[만주어]]로만 작성되었다. 1915년 6월 [[북양정부|중화민국]], [[복드 칸국]], [[러시아 제국]] 3자 간에 체결된 [[캬흐타 협정]]과는 별개이니 유의할 것. == 배경 == 러시아의 진출 이전에 [[북아시아]] 지역은 소수 원주민이 거주하고 있었지만 사실상 국가권력의 공백지나 다름없었고 [[중국]]도 전통적으로 신경을 쓰지 않았지만 러시아 정복자들의 갑툭튀로 졸지에 [[전방]]이 되었고, 이후 청나라와 러시아는 [[나선정벌]]을 비롯해 여러 방면에서 충돌한 끝에 1689년 [[네르친스크 조약]]을 맺어 [[아무르 강]] 인근 지역의 국경선을 확정한다. 이후, 지금의 [[몽골]] 역시 당시에는 청나라 영토였기 때문에 몽골과 러시아 사이의 국경선을 정하기 위해 추가로 1727년 [[캬흐타]]에서 조약을 맺었다. == 내용 == 조약의 내용은 국경선을 확정하고, 중국과 러시아 간에 교역의 기준을 정했다. == 의의 == 네르친스크 조약과 마찬가지로 이 때 정한 국경선이 대부분 지금의 러시아와 몽골의 국경선이 되었다. 이후 청나라가 [[아편전쟁]]에서 패배하고 열강의 [[동네북]]이 될 때까지는 러시아와 큰 충돌 없이 지낼 수 있었다. == 여담 == 캬흐타 조약의 청측 대표였던 정황기 만주 출신 [[이번원]] 관료 툴리션(Tulišen)은 강희제 시절부터 활동한 러시아통으로, 툴리션이 강희 51년(1712년)부터 54년까지 만 3년에 조금 못 미치는 오랜 기간에 걸쳐 몽골 사막, 초원과 시베리아를 횡단하여 카스피해 북쪽에 자리잡은 토르구트부의 아유키 한을 만나 강희제의 칙서를 전하러 갔다오며 쓴 여행기인 [[http://aladin.kr/p/52HP4|이역록]]은 네르친스크-캬흐타 체제 사이 청몽러의 정세를 파악하는데에 좋은 사료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툴리션은 캬흐타 조약 체결 후 [[옹정제]]에게 숙청되어 목이 달아날 뻔 했는데, 아무래도 옹정제가 부담스러운 외숙부인 롱코도를 숙청하면서 마찬가지로 이번원 업무를 보며 교류하던 툴리션에게까지 화가 미쳤던 것으로 보인다. 다행히 가택연금되어 사망한 롱코도와 달리 툴리션은 곧 사면을 받았고, 훗날 건륭제가 즉위한 후 다시금 공로를 인정받으며 말년을 평안히 보낼 수 있었다. [[분류:몽골의 역사]][[분류:조약, 협약, 협정]][[분류:청나라의 역사]][[분류:러시아 제국의 역사]][[분류:청러관계]][[분류:중러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