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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로즈웰.jpg|width=100%]]}}} || ||<-2> '''{{{#ffffff 켄 로즈웰}}}'''[br]'''{{{#ffffff (Kenneth Robert Rosewall)}}}''' || || '''{{{#ffffff 생년월일}}}''' || '''[[1934년]] [[11월 2일]] ([age(1934-11-02)]세)''' || || '''{{{#ffffff 국적}}}''' || '''[[파일:호주 국기.svg|width=25]] [[호주]]''' || || '''{{{#ffffff 출신지}}}''' || '''[[호주]] [[시드니]]''' || || '''{{{#ffffff 프로데뷔}}}''' || '''1956년''' || || '''{{{#ffffff 신장}}}''' || '''170cm (5 ft 7 in)''' || || '''{{{#ffffff 사용 손}}}''' || '''오른손 (원핸드 백핸드)[* 원래는 왼손잡이이지만 테니스는 오른손으로 쳤다.]''' || || '''{{{#ffffff ATP 싱글 랭킹}}}''' || '''최고 2위''' || || '''{{{#ffffff ATP 더블 랭킹}}}''' || '''최고 34위''' || || '''{{{#ffffff 단식 통산 성적}}}''' || '''545승 192패(73.95%)''' || || '''{{{#ffffff 복식 통산 성적}}}''' || '''206승 113패(64.58%)''' || || '''{{{#ffffff 단식 타이틀 획득}}}''' || '''40회''' || || '''{{{#ffffff 복식 타이틀 획득}}}''' || '''14회''' || || '''{{{#ffffff 통산 상금 획득}}}''' || '''$1,602,700''' || [목차] == 소개 ==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세계 테니스계를 주름잡은 호주 출신의 위대한 선수이다. 아마추어 시절 4개의 [[그랜드슬램(테니스)|그랜드 슬램]]을 차지했고, 프로 전환 이후에는 프로들만의 메이저 대회인 프로 슬램에서 15개의 우승, 그리고 그랜드 슬램이 프로 선수들에게 문호가 개방된 오픈 시대 이후로 다시 4개의 그랜드슬램을 추가한 어마어마한 커리어를 자랑한다. 특히 [[1963년]]에는 프로 슬램 토너먼트 3개의 대회에서 모두 우승하여 한 해에 프로 슬램 토너먼트를 '''최초로''' 모두 석권한 남자 선수이다.[* 이후 [[1967년]]에 [[로드 레이버]]가 이 기록을 재현했다.] [[1971년]] [[호주 오픈]]에서는 그랜드 슬램 사상 남자 선수로는 '''최초로''' 무실 세트 우승을 거머쥐었으며, [[1972년]] 호주 오픈에서 다시 우승하면서 역대 최고령(37세 2개월) 그랜드 슬램 우승 기록을 세우게 된다.[* [[로저 페더러]]가 2위인 36세 5개월인데 [[2019년]] 호주 오픈 이후로 우승하면 이 기록을 경신하게 된다. [[라파엘 나달]]은 [[2023년]](...) [[US 오픈]] 이후 우승하면 된다.] 또한 [[1974년]] [[윔블던]]과 [[US 오픈]]에서 준우승하면서 역대 최고령(39세 310일) 결승 진출자의 기록도 함께 세우게 된다.[* 로저 페더러는 [[2020년]] 윔블던부터 결승 진출하면 된다.] 같은 호주 선수인 [[로드 레이버]]와 함께 세계 남자 테니스계를 양분하면서, 여자부의 [[마거릿 코트]][* 통산 그랜드 슬램 24회 우승으로 역대 최다이며 오픈 시대 이후 여자 선수로는 최초로 [[1970년]]에 캘린더 이어 슬램을 달성했다.]와 더불어 이 3명은 막강한 호주 테니스의 위세를 떨쳐 호주 테니스의 위상을 드높였다. == 커리어 == '''켄 로즈웰의 연도별 메이저대회 성적표''' || '''{{{#white 연도}}}''' || '''[[호주 오픈|{{{#white 호주}}}]]''' || '''[[프랑스 오픈|{{{#white 프랑스}}}]]''' || '''[[윔블던|{{{#white 윔블던}}}]]''' || '''[[US 오픈|{{{#white US}}}]]''' || || 1951 || 1라운드 || 불참 || 불참 || 불참 || || 1952 || 8강 || 2라운드 || 2라운드 || 8강 || || 1953 || '''{{{#white 우승}}}''' || '''{{{#white 우승}}}''' || 8강 || 4강 || || 1954 || 4강 || 4라운드 || '''{{{#black 준우승}}}''' || 4강 || || 1955 || '''{{{#white 우승}}}''' || 불참 || 4강 || '''{{{#black 준우승}}}''' || || 1956 || '''{{{#black 준우승}}}''' || 불참 || '''{{{#black 준우승}}}''' || '''{{{#white 우승}}}''' || || 1957~1967[* 프로 진출에 의한 아마추어 대회 참가 불가] || X || X || X || X || || 1968 || 불참 || '''{{{#white 우승}}}''' || 4라운드 || 4강 || || 1969 || 3라운드 || '''{{{#black 준우승}}}''' || 3라운드 || 8강 || || 1970 || 불참 || 불참 || '''{{{#black 준우승}}}''' || '''{{{#white 우승}}}''' || || 1971 || '''{{{#white 우승}}}''' || 4강 || 불참 || 불참 || || 1972 || '''{{{#white 우승}}}''' || 불참 || 불참 || 2라운드 || || 1973 || 2라운드 || 불참 || 불참 || 4강 || || 1974 || 불참 || 불참 || '''{{{#black 준우승}}}''' || '''{{{#black 준우승}}}''' || || 1975 || 불참 || 불참 || 4라운드 || 불참 || || 1976 || 4강 || 불참 || 불참 || 불참 || || 1977 || 4강[* 이는 1977년 1월에 열린 AO-1의 기록이며 연말에 열리던 대회 일정을 1월로 변경함에 따라 12월에는 AO-2도 개최되었다. 로즈웰은 AO-2 대회에서는 8강에 진출했으며 AO-2 대회는 일정 변동으로 인해 임의적으로 개최된 대회였으며 1977년 딱 한 해만 개최되었고 현재는 챌린저 투어로 분류한다. ] || 불참 || 불참 || 3라운드 || || 1978 || 3라운드 || 불참 || 불참 || 불참 || * 그랜드 슬램 우승 8회. 오픈 시대 이전/이후 각각 4회 * 그랜드 슬램 준우승 8회. 오픈 시대 이전/이후 각각 4회 * 프로 슬램 토너먼트 우승 15회[* 참가한 27개의 대회 중 15회 우승으로 우승 확률이 50%가 넘는다.] * 프로 슬램 토너먼트 준우승 4회[* 참가한 27개의 대회 중 결승 진출이 19회라는 얘기] * 호주 오픈 최고령 우승자(1971년 37세 2개월) * US 오픈 최고령 우승자([[1970년]] 35세 10개월) == 선수 경력 == 프로 슬램 토너먼트 중에서는 특히 프랑스 프로 챔피언쉽에 강했는데 [[1960년]]부터 [[1966년]]까지 7년 연속 우승을 거머쥐었고, [[1958년]]의 우승까지 포함해서 총 8번 우승했다. 4번은 롤랑 가로스의 클레이 코트에서, 4번은 실내 우드 코트에서 우승했다. 웸블리에서도 5번의 우승이 있는데, 유독 US 프로에서는 2번밖에 우승을 못했는데 [[1958년]]부터 [[1962]]까지 참가하지 않은 탓이 컸다. 로드 레이버랑 60년대를 양분하면서 프로 슬램에서는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기도 했는데, 켄 로즈웰이 4살 빠른데다 최초 그랜드 슬램 우승 나이도 켄 로즈웰이 18세(1953년)이고, 로드 레이버가 21살(1960년)이었기 때문에 아마추어에서는 라이벌리가 생길 수 없었다. [[1956년]] 로드 레이버가 4개 그랜드 슬램에서 1라운드 광탈하는 동안, 켄 로즈웰은 3개의 결승에 올라가 1개의 우승을 거두고 있었고, 이듬해 프로로 전향해버렸기 때문에 로드레이버가 프로로 전환하는 [[1963년]]이 되어서야 맞붙을 수 있었다. 그리고 오픈 시대 직전인 [[1967년]]까지 15개의 프로 메이저 대회 전부를 이 둘이서 양분했다.(로드 레이버 8개, 켄 로즈웰 7개) 1963년 로드 레이버가 막 프로로 전환하자마자 프로 슬램 토너먼트 2개의 대회에서 결승에 올라갔지만, 이 해에 켄 로즈웰은 로드 레이버와의 결승 2번 포함 '''3개 프로 메이저 대회를 모두 우승'''하는 최절정기를 자랑했다. 이후 [[1964년]] ~ [[1966년]] 3년 동안 켄 로즈웰은 프랑스 프로를 모두 먹고, 로드 레이버는 웸블리를 모두 먹는 가운데 US 프로를 누가 따느냐 싸움으로 진행됐다. 그리고 [[1967년]] 로드 레이버가 모든 대회를 우승하면서 1963년 켄 로즈웰이 달성한 한 해 3개 프로 메이저 대회 우승을 두 번째로 달성했다. [[1968년]] 오픈 시대가 열리자 켄 로즈웰은 [[프랑스 오픈]], 로드 레이버는 [[윔블던]]을 각각 차지하면서 프로 시절의 라이벌리를 계속 가져가나 했으나 [[1969년]] 로드 레이버는 오픈 시대 이후 최초이자 남자부 마지막의 캘린더 이어 슬램 달성으로 천하통일을 완성했다. 하지만 로드 레이버는 이후 [[1971년]] 윔블던 8강에 오르는 것 외에는 신통치 못한 메이저 대회 성적을 올렸지만 켄 로즈웰은 [[1971년]]과 [[1972년]]에 홈의 이점을 안고 호주 오픈 우승, [[1974년]] 윔블던과 US 오픈 준우승으로 젊은 선수들 못지 않은 기량을 뽐냈으며, [[1976년]](41세), [[1977년]] 호주 오픈 첫 번째[* 이 해 호주 오픈은 1월에 한 번 치른 후에 1월 일정을 12월로 변경하기 위해 12월에 한 번 더 치렀다. 대신에 [[1986년]]에 다시 1월로 되돌아가기로 결정하면서 1986년 대회를 치르지 않고 [[1987년]]에 1월에 치렀다.] 대회(42세)에서 4강, 1977년 두 번째 대회(43세)에서 8강까지 올라가는 등 노익장을 한껏 발휘했다. 결국 그의 메이저 대회 참가는 44세였던 [[1978년]] 호주 오픈을 3라운드까지 진출하는 것으로 마감되었으며, 이후 [[1980년]] 국제 테니스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 4개 그랜드 슬램 대회에서 호주 오픈, 프랑스 오픈, US 오픈은 모두 두 번 이상 우승했으나 윔블던만큼은 4개의 준우승밖에 없다. 당시 호주 오픈이나 US 오픈 모두 잔디 코트였고 윔블던도 준우승을 4번할 정도였기 때문에 잔디 코트에 약한 것은 아니고 그저 운이 따르지 않았던 것으로 볼 수 있다. 프로 데뷔 초창기에는 베이스 라이너 스타일이었으나 빠르게 네트 플레이를 배웠고, 키는 170cm로 당시 기준으로도 작았으나 발이 굉장히 빨라 서브 앤 발리 플레이가 일품이었으며, 강인한 체력까지 갖추고 있었다, 이는 이후 40대까지 장수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또한 테니스 역사상 가장 강력한 백핸드를 가진 선수 중 하나로, 백 스핀을 먹인 한손 백핸드는 그야말로 파괴적인 파워를 자랑했다. 본래 왼손잡이지만 어린 시절 아버지에 의해 오른손으로 테니스를 치게 되었는데, 이 탓인지 서브는 정확도는 높았으나 파워가 다소 아쉬운 편이었다. ||<-2>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p_0300_06_A1_009_o2.jpg|width=100%]]}}} || || '''현역 시절 모습''' || [[분류:호주의 테니스 선수]][[분류:1934년 출생]][[분류:1956년 데뷔]][[분류:시드니 출신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