小龍景光 [목차] == 오사후네 카게미츠 작의 [[타치]] == [[파일:external/www.tnm.jp/LL_445.jpg]] ||||||||<:><#424242> '''{{{#white 코류 카게미츠(小竜景光)}}}'''|| ||<:><#E0E0E0> '''도공''' ||<:> 오사후네 카게미츠(長船景光) ||<:><#E0E0E0> '''도파''' ||<:> [[오사후네파]] || ||<:><#E0E0E0> '''제작 시기''' ||<:> [[가마쿠라 시대]] ||<:><#E0E0E0> '''종류''' ||<:>[[타치]] || ||<:><#E0E0E0> '''길이''' ||<:> ~~二尺七寸(81.81 ㎝)~~→2尺4寸3分9厘(73.9 ㎝) ||<:><#E0E0E0> '''현존 여부''' ||<:> [[도쿄국립박물관]] 소장 || ||<:><#E0E0E0> '''명문''' ||<:> (앞) 備前国長船住景光[br] (뒤) 元享二年五月日 ||<:><#E0E0E0> '''문화재 등록''' ||<:> [[일본의 국보|국보]] 공예품 제 66호 || [[천황]]의 [[충신]]으로 유명한 [[가마쿠라 시대]]의 무장 [[구스노키 마사시게]]가 사용했다고 전해지는 [[일본도]]이다. 종류로는 [[타치]]로 분류된다. [[오사후네파]]의 유명 도공인 오사후네 카게미츠(長船景光)의 작품인데, 새겨진 명문으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제작시기는 겐코(元享) 2년(1322)이다. 자루 쪽에 정교한 [[쿠리카라]]용을 새겼다. 원래는 용의 모습이 도신에 드러나 있었으나 후일 자루 쪽을 잘라 길이를 줄이는 과정에서 용의 몸이 자루에 가려졌기에 노조키류 카게미츠(のぞき竜景光, 엿보는 용 카게미츠)라는 별명이 생겼다. 용의 반대편에는 밀교에서 [[부동명왕]]을 상징하는 종자자(種子字)[* 밀교에서 특정 부처나 보살, 명왕 등을 상징하는 소리(音), 또는 그 소리를 적은 글자를 말하는데, 밀교 수행자에게는 중요한 상징이다. 종자자는 보통 한 음절이지만 드물게 두 음절일 때도 있다. 소리의 음가는 산스크리트어를 기준으로 하지만, 종자자가 산스크리트어로 어떤 특정한 의미가 있는 단어인 것은 아니다.] 함망(hāmmāṃ)을 실담문자(범자)로 새겼다. [[구스노키 마사시게]]의 검이었다는 점에서 구스노키 카게미츠(楠木景光), 구스카고류노 타치(楠籠龍ノ太刀)라는 별명도 있다. [[도사의 무녀]]의 등장인물인 [[무스미 키요카]]가 원래 이 검에게 선택받아 사용했었던 어도였으나 현재는 이 검에 의해 버림받았다. === 내력 === [[야마다 아사에몬]]의 기록에 의하면 마데노코우지 후지후사(萬里小路藤房)[* 1296~?, [[가마쿠라 시대]] 말과 [[남북조시대(일본)|남북조시대]]에 활약했떤 쿠게(公家)로, 츄나곤(中納言)직에 있었다. [[에도시대]]에는 구스노키 마사시게, [[타이라노 시게모리]]와 함께 일본삼충신(日本三忠臣)으로 불린다.]가 구스노키 마사시게에게 넘겨주었으며, 이후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손을 거쳤다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1719년 쇼군 [[도쿠가와 요시무네]]의 명에 의해 도검 감정의 명가 혼아미(本阿弥)에서 전국의 명검들을 조사해 작성한 교호명물장(享保名物帳)에 등장하지 않는 등, 의심이 가는 부분들이 많다. 코류 카게미츠의 행방은 묘연한 상태였으나, [[에도 시대]] 말에 어떤 [[카와치]]의 농가에서 발견되었다. 이를 한 도검상이 구해다가 혼아미가에 감정을 의뢰했다. 혼아미 측에서는 위작이라 판단하고 감정서 발급을 거부하였다. 이후 나카무라 카쿠타유(中村覚太夫)라는 한 지방관에게 팔렸다. 그가 죽고 나서 1846년에 다른 도검상에게 팔렸다. 이후 [[조슈 번]]의 다이묘인 모리(毛利)가에서 구매했으나 혼아미가 감정서를 발급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반품하였다. 그 다음에는 [[참수형]] 집행 및 도검 감정을 업으로 삼던 [[야마다 아사에몬]]가에 넘어갔다. 6대 야마다 아사에몬인 요시마사(吉昌)는 코류 카게미츠를 다이로 이이 나오아키(井伊直亮)에게 넘겼으며, 대신 나오아키는 야마다 아사에몬 요시마사의 의형제인 미와 토쿠조(三輪徳蔵)를 휘하로 들였다. 그러나 1860년, 나오아키의 아들 [[이이 나오스케]]가 [[사쿠라다 문 밖의 변]]으로 암살당했다. 이 때문에 미와 토쿠조는 해고, 코류 카게미츠는 다시 야마다 아사에몬에게 돌아왔다. [[메이지 유신]]이 일어난 후 1873년에 코류 카게미츠는 [[천황]]가에 헌상되었다. 코류 카게미츠를 [[메이지 덴노]]가 서양의 [[세이버]]식으로 꾸며 패용했다는 일화가 전하지만, 일본의 도검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정말로 메이치가 패용했는지 여부를 두고는 서로 의견이 엇갈린다. [[태평양전쟁]]이 끝난 이후 [[도쿄국립박물관]]으로 옮겨 소장중이고 [[일본의 국보]]로 지정되었다. == [[도검난무-ONLINE-]]의 등장 캐릭터 == [[코류 카게미츠(도검난무)]] [[분류:일본도]][[분류:일본의 국보]][[분류:도쿄국립박물관 소장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