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일본 남성 코미디언]][[분류:일본 남배우]][[분류:일본의 남성 방송인]][[분류:하카타구 출신 인물]][[분류:1942년 출생]][[분류:1967년 데뷔]][[분류:2020년 사망]][[분류:간암으로 죽은 인물]] ||<-2> '''{{{+2 코마츠 마사오}}}[br][ruby(小松, ruby=こまつ)][ruby(正夫, ruby=まさお)] | Masao Komatsu''' || ||<-2>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코마츠_마사오_02.jpg|width=100%]]}}} || || '''본명''' ||마츠자키 마사오미(松崎雅臣)|| ||<|2> '''출생''' ||[[1942년]] [[1월 10일]]|| ||[[후쿠오카현]] [[후쿠오카시]] 카와라마치 || || '''사망''' ||[[2020년]] [[12월 7일]] (향년 78세)|| || '''국적''' ||[include(틀:국기, 국명=일본)] || || '''활동 시기''' ||1962년~2020년 || || '''신체''' ||A형 || [목차] == 개요 == [[파일:코마츠_마사오_01.jpg|width=350]] [[일본]]의 [[코미디언]], [[탤런트]], [[배우]]. 일본의 전설적인 연예인 [[우에키 히토시]]의 [[매니저]]로 채용되었다가 특유의 끼를 살려 예능계에 입문하여 큰 인기를 끈 [[입지전적]]의 인물. == 생애 == === [[세일즈맨]] 시절 === 7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난 그는 13살 때 사업가이자 지역 [[토호|유지]]이던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가세가 급격히 기울었고, 홀어머니가 어렵게 집안 살림을 꾸려 나가는 와중에도 마츠자키는 밝은 천성의 소유자로 주변 사람들을 웃기는 데 능한 소년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마츠자키는 고향의 과자가게[* 돌아가신 아버지의 지인이 경영하던 가게였다.] 점원으로 일했고, 본격적으로 [[배우]]가 되기 위해 [[RKB마이니치 방송]] 산하의 극단을 거쳐 1961년 큰형의 도움으로 [[요코하마]]로 와서 몇 군데 극단의 테스트를 받았지만 연기 수강료가 상당히 비쌌는지라 마츠자키는 일단 배우의 꿈을 접은 후 꽃집이나 [[참치]]가게 점원, 제약회사 영업사원, [[복사기]] 제조업체 직원 등으로 생계를 이어 나갔다. 이후 요코하마 [[토요페트점|토요펫]] [[세일즈맨]] 으로 취직한 마츠자키는 [[승용차]]가 굉장한 고가품이던 1960년대 초반임에도 특유의 말빨과 붙임성으로 한달에 차를 22대나 팔기도 했고 심지어 [[운전면허]]도 없는 사람[* 물론 운전면허 교습소까지 확보하여 5일 만에 면허를 따게 했다고 한다.]에게 차를 팔 정도의 탑 세일즈맨으로 군림했다. 당시 대기업 신입사원 초봉이 월 1만엔 정도였을 때 마츠자키의 월 수입은 12만엔에 달했다고. === [[우에키 히토시]]의 매니저 시절 === 그러던 어느 날 한 잡지에서 당시 최고의 예능인으로 명성을 날리던 [[우에키 히토시]]의 [[매니저]] 겸 운전기사를 뽑는다는 '''와타나베 프로덕션''' 명의의 조그마한 광고를 발견한 마츠자키는 바로 모집에 응하였고, 그가 원래 배우 지망생이었다는 것을 고려한 우에키와 [[하나 하지메와 크레이지 캣츠]] 멤버들에 의해 마츠자키는 6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1964년 1월, 우에키의 매니저로 채용되었다. [[파일:코마츠_우에키.jpg]] [[우에키 히토시]]와 함께 찍은 사진 마츠자키와의 첫 만남에서 우에키는 "나를 뭐라고 부를 생각인가? [[선생님]]이라고 부르면 때릴 테다" 라며 반 농담조로 마츠자키의 긴장을 풀어 주었고, "자네는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으니 앞으로 나를 아버지라고 부르라"고 하여 고민 끝에 마츠자키는 우에키를 '''아버지(オヤジさん)'''라고 부르기로 하였다. 본격적으로 우에키의 매니저가 된 마츠자키는 월급이 7천엔으로 확 줄고 자는 시간이 일주일에 10시간 남짓 될 정도로 힘들고 바쁘게 뛰어다녔지만, 정작 마츠자키는 '''"힘들기는 커녕 존경하는 [[스승님]]을 도와드린다는 생각에 매일매일 즐거웠다"''' 며 행복해했다고 한다. 마츠자키는 우에키 뿐 아니라 [[하나 하지메와 크레이지 캣츠|크레이지 캣츠]] 멤버들도 종종 도와주면서 '''하나 하지메''', '''타니 케이''' 등에게 많은 귀여움을 받았다. 우에키와 크레이지 캣츠가 고정 출연 중이던 '''비눗방울 홀리데이(シャボン玉ホリデー)'''[* 1961~1972년(1기), 1976~1977년(2기) 방영된 [[닛폰 테레비]]의 버라이어티 쇼.]의 레귤러 멤버 중 [[배우]] '''마츠자키 마코토(松崎真)'''가 있었는데, 방송 현장에서 우에키 또는 크레이지 캣츠 멤버가 "마츠자키~!" 라고 부르면 우에키의 매니저 마츠자키와 배우 마츠자키가 동시에 "예!!" 라며 뛰어오는 경우가 잦아서 이를 보다못한 우에키는 "헛갈려서 안되겠다, 마코토는 큰 마츠자키 라는 뜻으로 오오마츠(大松), 마사오미는 '''작은 마츠자키''' 라는 의미로 '''코마츠(小松)'''라고 부르자" 라며 제안했다. 이를 계기로 마츠자키는 '''코마츠 마사오(小松政夫)''' 라는 예명을 얻게 되었고 가끔 비눗방울 홀리데이의 [[콩트]]에 단역으로 출연하면서 조금씩 얼굴을 알리기 시작했다. === 본격적인 연예계 데뷔 === 1967년, 코마츠가 자신의 매니저로만 머무르기엔 재능이 아깝다고 생각한 우에키는 [[하나 하지메와 크레이지 캣츠]]의 [[오사카]] 공연 때 '''"5분간의 막간 무대에 코마츠를 올려보자"''' 며 동료들에게 부탁하여 허락을 얻었고, 그렇게 코마츠는 막간 공연에 출연했지만 관객들의 반응은 영 시원치 않았다. 고민 끝에 코마츠는 3일째 공연 때 자신의 [[주특기]]인 영화 평론가 [[요도가와 나가하루]] [[성대모사]]를 선보였고, 관객들은 물론 우에키와 크레이지 캣츠 멤버들까지 포복절도 시키는 성과를 이끌어 냈다. 코마츠의 연기에 감동한 크레이지 캣츠 멤버들은 코마츠에게 끈을 당기면 눈썹이 씰룩씰룩 움직이는 뿔테 안경[* [[요도가와 나가하루]]의 트레이드 마크인 뿔테 안경과 짙은 눈썹을 본딴 것이었다.]과 [[텔레비전]] 프레임 세트까지 만들어 주며 그의 코미디 연기가 더욱 빛날 수 있도록 도와 주었다. 그리고 마침 오사카 공연을 보러 온 와타나베 프로덕션의 사장 '''와타나베 신(渡辺晋)'''이 코마츠의 막간 연기를 보더니 '''"저 녀석 소질 있는데? 우리 회사의 정식 연기자로 채용하고 싶다"'''라고 우에키에게 제안하기에 이르렀다. 그 일이 있은 후, 스케줄을 마치고 귀가하던 차 안에서 우에키는 코마츠에게 아래와 같이 말하게 된다. > [[우에키 히토시|우에키]] : 코마츠, 너 내일부터 나한테 올 필요 없어. > 코마츠 : 네? 제가 뭐 잘못한 거라도 있나요 아버지? 말씀해 주시면 고치도록 하겠습니다! > 우에키 : 그게 아니야! (와타나베)사장님이 너 재능 있다고 정식으로 계약하고 싶다더라. 별도로 자네 매니저도 구했고 급료도 이미 정해 놓았어. 내일부터는 코마츠 스스로 독립하는 거야. 우에키의 이 말에 코마츠는 차를 세우고 감격에 겨워 [[운전대]]에 얼굴을 묻은 채로 눈물을 펑펑 쏟았고,[* 이 때 코마츠는 '''눈에 와이퍼를 달고 싶을 정도''' 였다며 회상했다.] 우에키는 "천천히 가도 좋으니까 실컷 울어라. '''그런데 눈물은 부르지 않았는데 말이지...'''"[* 아래에도 언급된 것 처럼 우에키의 "나 안불렀어?" 라는 [[유행어]]는 코마츠의 실수와 우에키의 [[순발력]]이 어우러지면서 탄생한 것이었다.] 라며 [[농담]]을 섞어 다독여 주었다고 한다. 그렇게 한 사람의 예능인으로 데뷔한 코마츠는 세일즈맨 시절의 경험을 살린 개그라던가 학교 선생님, [[캬바쿠라]] [[접대부]] 등의 말투 흉내, 그리고 전매특허인 [[요도가와 나가하루]]의 [[성대모사]] 등을 주요 [[네타]]로 하여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서 대활약 하며 스타로 발돋움 하였다. 정식으로 콤비를 짠 것은 아니었지만 '''이토 시로(伊東四朗)'''[* 우에키와 코마츠의 에피소드를 다룬 드라마 [[우에키 히토시와 노보세몬]]에 우에키의 아버지인 테츠죠 역할로 출연했고, 7화 막판 해설 역할인 코마츠의 장면에 난입하여 익살을 선보였다.]와 합을 맞춘 개그는 1970년대 시청자들에게 제법 인기를 끌기도 했다. == 이후 == 1980년대 들어 코마츠는 예능 프로 뿐 아니라 [[드라마]], [[영화]], [[연극]] 등 다방면에서 지속적으로 활약했고 '''코마츠 [[오야붕]](小松の親分)''' 이란 애칭으로 팬들과 동료들에게 사랑받았다. 2011년 6월에는 '''사단법인 일본 희극인협회'''의 10대 회장으로 선출되어 활동한 바 있다. 자전적인 소설 '''노보세몬야켄(のぼせもんやけん)'''을 집필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2017년 [[NHK 종합]]의 8부작 [[드라마]]로 제작된 [[우에키 히토시와 노보세몬]]이 방영되었다. [[시손 쥰]]이 코마츠 역할을 맡았고 스승인 [[우에키 히토시]]는 [[야마모토 코지(배우)|야마모토 코지]]가 연기하였으며, 코마츠 자신은 [[요도가와 나가하루]] 분장을 하고 드라마의 [[해설역]]으로 출연했다. 2020년 12월 7일, [[도쿄도]] 소재 병원에서 [[간암|간세포암]]으로 [[별세]]했다. 향년 78세. == 여담 == * [[우에키 히토시]]의 대표적인 [[유행어]]인 '''나 안불렀어? 안 부른거지... 이거 또 실례했습니다!(お呼びでない?...お呼びでない、ね。こりゃまた失礼いたしました!)'''를 본의 아니게 탄생시킨 사람이 코마츠였다. 그가 매니저이던 시절 우에키가 '''비눗방울 홀리데이'''에 출연할 때 코마츠가 순서를 착각하여 "아버지 차례입니다" 라고 말했고, 아무 의심없이 우에키가 무대에 나오자 출연자와 스태프들은 순식간에 [[갑분싸]] 되고 말았다. 그러나 우에키는 재치를 발휘하여 '''"응? 나 안부른거야? 이거 실례했습니다!"''' 라며 [[애드립]]을 치고 자리를 피하면서 주변 사람들은 폭소를 터뜨렸고, 이 애드립은 우에키의 유행어로 굳어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