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로마 황제)] ||||
'''로마 제국 106-4대 황제[br]{{{+1 Κωνσταντίνος Δούκας | 콘스탄티노스 두카스}}}''' || ||<|2> '''출생''' ||1074년 || ||[[로마 제국]] [[콘스탄티노폴리스]] || ||<|2> '''사망''' ||1095년 또는 1097년 || ||[[로마 제국]] 마케도니아 세레스 인근 || ||<|2> '''재위''' ||<#8b0000> '''{{{#fff 로마 황제}}}''' || ||1074년 ~ 1078년(1차 재위)[br]1081년 ~ 1094년(2차 재위) || ||||<#fff,#222>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1> '''제호''' ||콘스탄티노스 두카스 {{{-1 Κωνσταντίνος Δούκας}}} || ||<|1> '''휘''' ||콘스탄티노스 {{{-1 Κωνσταντίνος}}} || ||<|1> '''성''' ||두카스 {{{-1 ΔΟΎΚΑΣ}}} || || '''가족''' ||[[미하일 7세]](아버지)[br][[알라니아의 마리아]](어머니) || || '''아내''' ||[[안나 콤니니]] || || '''종교''' ||[[기독교]] {{{-2 ([[동방 정교회]])}}} || || '''왕조''' ||[[두카스 왕조]] ||}}}}}}}}} || [목차] [clearfix] == 개요 == [[동로마 제국]] [[두카스 왕조]]의 황제. 태어난 직후 아버지 [[미하일 7세]]의 공동 황제가 되었다가 1078년 아버지가 폐위된 후 제위에서 물러났다. 1081년 [[알렉시오스 1세]]에 의해 공동 황제로 복위했지만 1095년에 요절했다. == 행적 == 1074년 [[미하일 7세]]와 [[알라니아의 마리아]]의 외아들로 출생했다. 태어난 직후 아버지와 공동 황제가 되었으며, [[로베르 기스카르]]의 딸인 헬레나와 약혼했다. 그러나 1078년 1월 [[니키포로스 3세]]의 반란에 직면한 아버지가 콘스탄티노폴리스 [[원로원]]의 압력을 받고 물러났을 때 함께 폐위되어 부모와 함께 수도원에 들어갔다. 얼마 후 어머니가 새 황제 [[니키포로스 3세]]와 결혼하면서 후계자로 지명되는 듯했으나, 니키포로스 3세는 콘스탄티노스를 황궁에 데려와서 편히 살게 해주면서도 그가 아닌 조카인 니키포로스 시나디노스(Nikephoros Synadenos)를 후계자로 삼고 보타니아티스 혈통에 기반한 왕조를 세우려는 계획을 세웠다. 이에 분개한 마리아는 콤니노스 및 두카스 가문과 연계하여 정권을 뒤엎으려 했다. 1081년 초 알렉시오스 콤니노스가 이끄는 반란군이 콘스탄티노폴리스에 접근하자, 사전에 내통하고 있던 수비대는 성문을 활짝 열었다. 이후 니키포로스를 지지하는 시민군과 반란군 간의 참혹한 시가전이 벌어진 끝에 반란군이 승리를 거두었다. 니키포로스는 제위를 포기하고 페리블렙토스(Peribleptos) 성당 부속 수도원에 은거하여 1081년 말 병사하였다. 이리하여 황위에 오른 [[알렉시오스 1세]]는 마리아가 자신을 도와준 것을 잊지 않고 그녀의 아들 콘스탄티노스를 공동 황제로 지명했다. 1083년 12월 [[안나 콤니니]]가 태어나자, 알렉시오스는 안나를 콘스탄티노스와 약혼시켰다. 그러던 1087년 9월 13일, 알렉시오스 1세와 이리니 두케나 황후 사이에서 [[요안니스 2세]]가 출생했다. 알렉시오스는 콘스탄티노스 두카스의 지위를 당장 거두지 않았지만, 알렉시오스의 친족들은 아들이 아닌 사위가 후계자가 되는 게 말이 되냐며 결단을 내리라고 촉구했다. 이로 인해 콘스탄티노스의 입지는 갈수록 불안해졌고, 1092년 요안니스 2세가 공동 황제로 공표되었다. 1094년 콘스탄티노스 두카스가 중병에 걸리자, 알렉시오스는 이를 이유로 콘스탄티노스와 안나의 약혼을 파기하고 콘스탄티노스를 퇴위시킨 뒤 니키포로스 브리엔니오스와 안나를 결혼시켰다. 마리아 황후와 두카스 가문은 알렉시오스의 처사에 불만을 품었다. 1094년 6월, [[니키포로스 디오예니스]]는 [[미하일 타로니티스]], 카타칼론 케카브메노스와 함께 알렉시오스를 암살하기로 결의하고 황제가 마케도니아의 세레스 지역에 있는 콘스탄티노스 두카스의 집에서 목욕할 때 또다시 암살을 시도했지만 도중에 발각당해 경호원들에게 체포되었다. 니키포로스는 체포 직후 마리아 황후가 이 음모를 잘 알고 있었으며, 알렉시오스를 죽이지 말고 축출하기만 하라고 부탁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알렉시오스는 일이 커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에 마리아 황후의 건은 불문에 붙이고, 음모를 주동한 세 사람을 추방한 뒤 유배지에 도착하는 즉시 실명시키라는 명령을 내렸다. 지시는 즉시 이행되었지만, 미하일 타로니티스만은 그의 아내이자 알렉시오스의 누나인 마리아가 간절히 호소한 덕분에 눈이 멀지 않았다. 콘스탄티노스 본인은 자신을 복위시키려는 음모에 개입하지 않았던 듯하다. 그는 마케도니아 중부에 있는 세레스 인근 영지에서 조용히 지냈으며, 알렉시오스가 세르비아 공작 부칸을 징벌하기 위해 원정을 단행하다가 자신의 영지에 들렀을 때 음식을 정성껏 대접했다. 그러다가 1095년 또는 1097년에 영지에서 사망했다. 마리아는 아들이 사망하자 매우 낙심했고, 속세를 떠나 수녀원에 들어갔다. [[분류:동로마 황제]][[분류:두카스 가문]][[분류:폐위된 군주]][[분류:1074년 출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