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관련 문서, top1=속어 유행어 관련 정보)] ##누락된 저작자들은 [[http://rigvedawiki.net/w/콩가루 집안?action=info|이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목차] == 개요 == >'''Q: [[63빌딩]]에서 일가족이 [[자살]]을 시도했으나 아무도 죽지 않았다. 왜일까?'''[br]'''A: 아빠는 [[기러기 아빠]], 엄마는 [[계모|새(bird)엄마]], 큰아들은 [[일진|비행(飛行)청소년]], 작은아들은 [[날라리]]''' > >-콩가루 집안과 관련된 [[블랙코미디]] 중 하나.[* 80~90년대 버전으로 똑같은 상황에서 아빠는 바람둥이 혹은 강남 제비, 엄마는 날라리, 딸은 비행청소년, 아들은 덜떨어진 애...라는 것도 있다.] 오래전부터 존재했던 단어로 본래 [[오합지졸|가족 간의 사이가 매우 나쁘고 화합이 되지 않아]] [[가정불화]]를 겪는 가족을 뜻한다. [[콩가루]]는 웬만해선 서로 뭉치지 않기 때문에 보통 [[떡]]이 서로 들러붙지 않도록 콩고물로 쓰이는데, 콩가루의 이런 성질에 빗대서 '콩가루 집안'이란 말이 생겼다. 하지만 현재는 그 의미가 확장되면서 정상적인 범주에서 아주 심하게 벗어난 가족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가족을 모두 싸잡아 콩가루 가족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아졌다. 콩가루를 넘어선 막장 집안 경우엔 [[베지밀|베*밀]] 가족, 또는 [[두유]] 가족이란 낱말을 쓰기도 한다. 물론 콩가루 집안의 최종 진화 단계로는 '유기농 검은콩깨 두유 가족'이 있으나, 이 단계에 들어선 때에는 이미 [[파탄국가|국가가 망했거나 막장화되었을 터]]라 사실상 논외다. 또한 똥통 집안, 짬통[* 군 용어로 음식물 쓰레기통] 집안, 양아치 집안으로도 통용된다. == 유형 == 콩가루 가족의 몇 가지의 유형으로 분류해놨는데 심한 경우엔 저 유형 중 둘 이상이 나타날 때도 있다. 특히 옛날의 [[왕조]]들에게서는 저 세 가지의 부류를 모두 발견할 수 있으며 '''한 사람이 모든 케이스를 섭렵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특히 2.1.과 2.3.은 비상식적인 행동을 일삼아 평판이 나쁜 경우가 있다. 거의 매일 [[패륜]]과 [[가정폭력]]을 동반한 [[고성방가]]와 [[층간소음]]을 일으키고 소음 피해자한테 적반하장으로 굴기도 한다. [[명절]]날 비정상적인 인원을 집에 두고 정상적이라고 자칭하는 인원끼리 친척집에 갈 경우 남은 문제의 인원이 가족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일탈의 기회랍시고 [[본드]]를 빨거나 [[취객]]이 된다. 취객이 되었는지 술병 소리가 달그락거리기도 한다. 밤낮 안 가리고 마셔대는지 판단력을 완전히 상실해 새벽까지 [[씨발]]이 기본인 [[욕설]]을 퍼부어대는 [[고성방가]]와 [[층간소음]]을 일으킨다. 진정한다면 모를까 진정하지 않는 경우가 대다수라 꾸역꾸역 참거나 112에 신고하게 된다. === 가족 구성원 간의 사이가 좋지 않을 경우 === 가족 간에 분란이 일정 수준을 지나치면 [[욕설]]을 하거나 [[폭력]]을 휘두르는 경우 혹은 부모가 자식을 [[학대]]하거나 자식이 부모에게 [[패륜]]을 저지르는 경우이다. 심지어는 가족 구성원끼리 서로 [[고소(법률)|고소]]하고 가장 극단적인 경우로 존·비속상해, [[존속살해]][* 형법에서 천륜을 저버리는건 있을 수 없다며 매우 중하게 형벌을 부과한다.], [[참척|비속살해]] 등을 서슴지 않는 [[막장]]으로 치닫는 경우도 드물게 나타난다. 이런 부류의 가정은 가족들이 가정에 애착을 갖지 못하고 어른들은 [[불륜]]을 서슴지 않고 아이들은 [[가출]]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해 서로 따로 노는 상황이 발생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이 케이스가 '콩가루 가족'의 본래 의미다. 즉, [[막장|혈연으로 이루어져 있으나 남보다 못한 경우를 말한다.]] === 가족의 관계가 비정상적인 경우 === 가족 간의 [[항렬]]이나 촌수 등이 엉켜 일반인이 보기에 심히 불쾌감을 느낄 지경일 때 이 표현을 쓴다. 이는 사람마다 취향이나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에[* 구성원들 간의 사이만 괜찮다면 위의 경우보단 낫지 않느냐고 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거나 저거나 도긴개긴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다.] 어느 쪽이 옳다고 정의하기는 힘들다. 한 가지 예로 [[겹사돈]][* 한 집안이 다른 집안이랑 두 명 이상의 혼인 관계를 맺는 것.]이 있는데 유전적으로나 법적으로나 문제가 없지만[* 이 때문에 유교의 영향으로 근친 문제에서 가장 엄격했던 조선시대에도 겹사돈의 사례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겹사돈에 대해 불쾌감을 가지고 있으며 [[보고 또 보고]]나 [[넝쿨째 굴러온 당신]] 등의 드라마에서도 소재가 되었다. 그나마 이는 그래도 상식적인 범주이지만 몇몇 [[막장 드라마]]에서 나오는 [[출생의 비밀]]급의 이야기까지 나오게 되면 이런 집안을 흔히 ''''[[개족보]]'''' 라고 부르기도 한다. 게다가 이보다도 더 시궁창으로 떨어질라 치면 가족 구성원 사이의 [[근친상간|육체적 관계]]까지 가게 된다면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근데 따지고보면 지금이야 근친혼이 금기시되지만[* 사촌간 결혼이 법적으로 허용되는 국가들도 어디까지나 '''법적으로 가능은 하다'''일 뿐이지, 사회적으로는 경멸과 지탄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올라프 5세]]처럼 특수 신분에 속하는 인물은 당연히 논외다--] 옛날에는 동서를 막론하고 특히 왕족 및 귀족 계층에서 '''권력의 유지를 목적으로 한''' 근친결혼이 성행했다는 점이나, 문화권마다 근친혼으로 인식하는 범위에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가령 사촌간의 결혼은 법적으로 가능하더라도 꺼리는 문화권이 적지 않지만(유럽권의 경우 과거에는 드물지 않았지만 현대에는 상당히 감소) 이슬람권의 경우에는 전혀 꺼리지 않는 것이 보통이고 오히려 흔하다.] 마냥 창작물 속의 얘기는 아니다. === 가족 구성원들이 악할 경우 === 위의 두 경우가 아니더라도 가족 구성원들이 모두 악질이라거나 아예 가족 단위로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에도 이 표현을 쓰기도 한다. [[가문에 흐르는 악의 피]]와도 관련 있는 경우일 수 있다.[* 단, 이는 어디까지나 도시전설에 불과하다.] 사실 이 경우는 콩가루 가족이란 말에는 맞지 않는다. 왜냐하면 가족 단위의 범죄자들은 가족 구성원들끼리 잘 지내는 경우가 많은데, 그래야 공범으로서 행동하기가 더 수월하기 때문이다. 다만 이런 의미로 쓰이고 있는 것은 사실이기에 기술한다. == 현실 속의 콩가루 집안들 == 목록을 보면 [[왕족]], [[귀족]], [[재벌]], [[정치인 가문]] 등 사회 지도층에 속하는 콩가루 집안 사례가 많은데, 이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돈과 권력 앞에 부모, 형제, 자식도 없다는 말이 왜 나왔는지 보여준다. 물론 [[높으신 분들]]이 다 [[막장]]이라서 그렇다기 보다는, 워낙 대중의 주목을 받기 쉬운 자리에 있다 보니 그만큼 [[구설수]]에 오르내리기도 쉬워서 그런 측면이 있긴 하다. 특히 재벌 가문들을 보면 상속 문제나 경영권 문제로 형제자매끼리 사이가 나빠지는 일이 흔한데, 돈과 권력 말고도 부모가 자녀들을 [[편애]]한 결과 성인이 된 자녀들 사이에 상속문제가 생기기 이전부터 사이가 안좋았던 경우도 많다. 편애가 없었다면 서로 타협점을 찾기가 그나마 수월했겠지만 편애로 인해 서로 타협은 커녕 법정 싸움으로 이어진 것이다. === 주요 사례 === ==== [[대한민국]]의 콩가루 집안 ==== ===== [[연개소문]] 일가 ===== 연개소문은 [[642년]] [[영류왕]]과 100여명의 중신들을 한꺼번에 살해하는 [[쿠데타]]로 정권을 잡고, [[고씨]]의 나라인 [[고구려]]를 사실상 [[연씨]]의 나라로 만들었다. 연개소문 본인이 살아있는 20여년 동안은 어떻게든 나라를 유지했지만, 문제는 그가 늙어 죽은 후에 터졌다. 연개소문 1인에게 권력이 집중된 상황에서 구심점이었던 그가 사라지자, 연개소문의 세 아들을 비롯한 연씨 일가는 서로 의심하며 싸웠는데, 차남 [[연남건]]과 삼남 [[연남산]]이 승리하자, 장남 [[연남생]]은 [[당나라]]에, 삼촌 [[연정토]]는 [[신라]]에 성을 바치며 항복했다. 결국 이들이 불러들인 나당연합군에 의해 고구려의 700년 사직이 무너지는 건 연씨 일가가 집권한 지 불과 26년만의 일이었다. ===== [[신라]] 하대 [[신라/왕사|국왕]] 일가 ===== [[통일신라]]의 지배층인 [[진골]]은 모두 혈연으로 엮여 있었는데, 이는 [[김알지]][* [[삼국사기]], [[삼국유사]], [[족보]]에서 언급되는 시조] 또는 [[성한왕|김성한]][* [[금석문]]에서 언급되는 시조]을 시조로 하고 18대 [[내물마립간]] 이래 왕위를 독점하던 기존 신라계 [[김씨]] 일가는 물론이고, 이전의 왕실인 [[박씨]] 일가[* 8대 [[군주]] [[아달라 이사금]] 이후로는 군주를 배출한 적 없지만 꾸준히 [[왕비|왕후]]를 배출하는 [[외척]]으로서 세력을 유지했다.]와 [[김유신]][* [[태종 무열왕]]의 아내이자 [[문무왕]]의 어머니인 [[문명왕후]]가 그의 [[여동생]]이었다.]으로 대표되는 [[금관국|금관가야계]] 김씨 일가도 마찬가지였다.[* 김씨, 박씨와 함께 돌아가면서 [[이사금]]을 배출하던 [[석씨]]는 통일되기 훨씬 이전에 중앙정계에서 영향력을 상실했다.] 통일 이전의 28대 [[태종 무열왕]]부터 시작된 신라 중대 왕실은 36대 [[혜공왕]] 치세까지 부계 혈통으로 세습을 이어갔고, 덕분에 신라는 200여년에 걸친 평화를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혜공왕 치세에 일어난 온갖 사건사고로 인해 정국이 불안해졌고, 급기야 왕이 살해되기에 이르렀다. 혜공왕이 누구에게 살해당했는지는 불분명하지만[* [[정사(역사)|정사]]에는 김지정에 의해 살해당했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그를 진압하고 즉위했다고 기록된 [[김양상]]과 [[김경신]]이 혜공왕 살해의 진범이고 김지정은 죽은 뒤에 억울하게 뒤집어썼다는 설도 있다.], 이로써 신라 중대는 막을 내리고 신라 하대가 시작되었다. 신라 하대의 첫번째 왕인 37대 [[선덕왕]] 김양상이 후사를 남기지 않고 죽은 후, 38대 [[원성왕]] 김경신은 석연치 않은 이유로 왕위 계승 서열이 더 높았던 [[김주원(신라)|김주원]]을 제치고 즉위했으며[* [[홍수]]로 인해 입궐을 못하는 바람에 왕위를 포기했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선수를 쳐서 조정을 장악한 김경신에 의해 반강제로 포기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의 아들인 39대 [[소성왕]]이 요절한 후 즉위한 어린 손자인 40대 [[애장왕]]은 삼촌인 41대 [[헌덕왕]]에 의해 살해당했다. 헌덕왕의 동생으로서 왕위를 계승했던 42대 [[흥덕왕]]이 후사를 남기지 않고 사망했을 때는 [[김균정]]과 김제륭이 왕위를 다투다가, 김제륭이 김균정을 살해하고 43대 [[희강왕]]으로 즉위했으나, 협력자였던 김명이 쿠데타를 일으켜 그를 살해하고 44대 [[민애왕]]으로 즉위했다. 그런데 김균정의 아들 김우징이 [[청해진]]을 이끌던 [[군벌]] [[장보고]]에게 의탁하며 [[와신상담]]하고 있었고, 그가 장보고와 함께 [[달벌대전|민애왕의 군대를 격파하고]] 45대 [[신무왕]]으로 즉위했다.[* 덕분에 장보고는 신무왕의 아들과 자신의 딸을 혼인시킨다는 약조를 받았으나, 정작 신무왕의 아들 [[문성왕]]에 의해 암살당해서 실현되지 않았다.] 이후에는 [[유혈사태]]를 동반한 왕위 계승권 분쟁이 더이상 벌어지지 않았으나, 이미 중앙정부의 지방 통제력이 크게 약화된 상태였고, 결국 [[호족]]이 급성장하여 문무왕 이래 통일국가를 유지하던 신라는 [[후삼국시대|다시 셋으로 쪼개졌다.]] 그리고 셋으로 쪼개진 신라에서는 52대 [[효공왕]] 사후, 왕위가 53대 [[신덕왕]] 박경휘에게 넘어가며, [[아달라 이사금]] 이후 '''728년만에''' 박씨 왕이 즉위했다. 이후에는 박씨 일가가 신라를 지배했지만, 55대 [[경애왕]]이 [[서라벌 기습|서라벌을 침공한 후백제 국왕 견훤에 의해 살해당하는 참사가 터진]] 후, 다시 왕위가 김씨에게 넘어갔다가, 56대 [[경순왕]] 김부가 [[935년]] [[고려 태조]] 왕건에게 나라를 바치며 [[박혁거세]] 이후 천여년을 이어온 신라의 사직을 마감했다. ===== [[견훤]] 일가 ===== 3대에 걸친 콩가루 집안이다. 아들 견훤이 [[후백제]]를 세우고 [[왕]]이 된 이후에도 아버지 [[아자개]]는 [[사벌주|상주]][* 지금의 [[경북]] [[상주시]]보다는 범위가 넓은 지역이었다.] 일대에서 독립 세력을 유지하다가, 아들의 [[라이벌]]인 [[고려 태조]] 왕건에게 그 땅을 바쳤다. 견훤 본인도 장남 [[견신검]] 대신 넷째 [[견금강]]을 후계자로 삼으려다가, 결국 신검이 그 동생을 죽이고 아버지 견훤까지 [[금산사]]에 유폐시켰다. 곧 견훤은 금산사를 탈출하여 과거의 [[주적]]인 왕건에게 귀순했고, [[일리천 전투|왕건과 함께 고려군을 이끌고 출정하여 본인이 세운 나라를 스스로 멸망시켰다.]] 이후 신검은 왕건에 의해 [[사면]]받았지만 더이상 기록에 등장하지 않아서 비밀리에 제거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한편 견훤은 후백제 멸망 이후 [[등창]]이 악화되어 사망했다고 하는데, 신검이 사면받은 것에 울분이 터져서 그랬다는 설이 잘 알려져 있지만,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다. ===== [[백두혈통]] 김씨 일가 ===== '''백문이 불여일견.''' 해당 문서로. ===== 일부 [[재벌]] ===== 재벌은 그 지나치게 큰 재산과 이권을 가족의 확대로 나눠갖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재산권 분쟁이 발생하고, 이중 상당수는 이후 그룹이 찢어지고 나서 원수지간이 된다. [[왕자의 난]]으로 유명한 [[삼성그룹]] 2세 승계, [[현대그룹]] 2세 승계 등이 그러하고, 형제들끼리 일일이 그룹을 이리 찢고 저리 찢은 [[롯데그룹]]의 [[신격호]]와 그 형제 및 아들들 분쟁도 잘 알려져 있다.[* 다만 [[롯데그룹]]의 [[신격호|창립자 분]]은 존경을 받지만 형제들과 아들들은 오만 쌍욕은 다 들어먹는다.] 다만 이들은 [[조양호]] 일가에 비하면 '''약과'''다. 한진그룹 [[조양호]] 일가는 콩가루 재벌 가문 중 가장 극심한데, 아버지 조양호부터 비리를 저질러서 전혀 깨끗하지 못한 인물인데다 [[조남호(기업인)|조남호]]를 비롯한 동생들과의 분쟁으로 [[한진그룹]]이 찢어지게 만든 과오를 저질렀다. [[장녀]] [[조승연(기업인)|조현아]]는 [[대한항공 086편 이륙지연 사건|땅콩 회항]]으로 [[대한항공]]의 명예에 먹칠을 했고, 아들 [[조원태]]는 [[누나]]보다 더 심각한 울트라 막장 행실을 보여줬다. 막내 겸 [[차녀]] [[에밀리 리 조|조현민]]은 [[언니]]의 행패를 임직원 전부에게 [[책임전가]]를 하는 듯한 발언 같은 경박하고 무책임한 언행들로 물의를 빚었고, [[내부고발]]에 대한 복수를 암시하는 문자를 보내 비판을 받았다. 그러다가 회사 직원과 광고대행사에 [[갑질]]과 욕설로 물의를 일으켰다. 특히 콩가루 집안의 끝장은 그룹 오너가 노쇠해서 경영을 못 하게 될 때 2세로 승계하는 과정에서 [[비리]], [[횡령]] 등이 만천하에 드러나면서 검/경에서 수사할 때 적나라하게 드러나는데, 오너가 고령에 노쇠하면 형 집행을 하기 어렵다는 점을 악용해 자식들이 __아버지에게 비리혐의를 다 떠넘기고__ 치사하게 자기들만 살려는 [[후레자식]]들이 재판정에서 속출한다. 대표적으로 [[최순실 게이트]] 이후 [[뇌물]] 혐의로 수사를 받던 [[신동빈]]이 청탁과 [[뇌물]] 출처에 대해 아버지 신격호가 시켰다고 떠넘기거나, 지난 [[2008년]], 차명계좌 비자금 수사 때 돈의 출처를 아버지 [[이병철]]의 돈이라고 떠넘긴 [[이건희]] 등이 있다. 이건희는 [[아이러니]]하게도 [[2014년]]에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이후 2020년에 작고하기까지 6년 동안 공식석상에 모습을 전혀 드러내지 못한 가운데 3세 승계 과정에서 불거진 다스 소송비 대납 사건 수사 과정에서 아들 [[이재용]]이 대납한 다스 소송비의 자금 출처를 아버지의 것이라고 떠넘기면서 [[자업자득|10년 전 자신이 했던 걸 고대로 돌려받았다]]. * [[범삼성가]] - [[이병철]] 대에 장남 [[이맹희]]와 차남 [[이창희(기업인)|이창희]]가 아버지를 [[청와대]]에 고발하면서 관계가 틀어졌다. 이건희는 훗날 자신의 큰형을 두고 "어디 감히 내 이름을 함부로 부르냐? 내 얼굴도 똑바로 못 보고 집안에서 내쳐진 사람."이라고 비난했다. 이맹희의 자서전을 보면 별장에서 칩거하는 자신에게 [[원조교제]] 혐의를 씌워서(동네 어린이들에게 용돈을 줬는데 이걸 가지고 별장에서 음란 파티를 벌였다고 음해했다고 한다.) [[정신병원]]에 집어넣을려고 했으나, 이맹희가 사냥용 엽총으로 강하게 저항하면서 무산되었다고 한다. 이때 이창희가 여러차례 전화를 걸어서 위험을 경고했다고 쓰여져 있다. 이건희의 누이 중 한 명은 이건희를 향해서 '엘리베이터걸의 자식'이라고 비난을 하기도 했고, 이덕희는 이복누이이며, 이덕희의 남편인 이종기도 [[우울증]]으로 [[자살]]했다. [[LG그룹]]으로 시집간 이숙희 역시 삼성의 전자 사업 진출로 남남이 되었다고 한다. 이건희는 이숙희를 향해서 "우리 집안의 애녀였는데 금성으로 시집을 가더니 같은 전자 쪽을 한다고 그 쪽에서 구박을 많이 받았다."라며 "우리 집에 와서 떼를 쓰고, 보통 정신 가지고 떠드는 정도가 아니었다."라고 비난한 바 있다. 이 외에도 확인된 것들로는 이병철 회장은 최소한 3명의 부인이 있었고 그중 일본인 첩 사이에서 아들 한명과 딸 한명을 낳았다느니, 이맹희와 이창희는 이 일본인 첩에게 대들다가 이병철 회장에게 얻어 맞았다느니 등의 일화가 자서전에 쓰여 있다. 이후 3세대에도 콩가루 집안은 이어져서 아들과 장녀는 모두 [[이혼]], 막내딸은 자살, 조카도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한 자살, 또다른 조카는 미행을 붙이고 검찰에 비리 혐의를 고소함으로서 현재 [[CJ그룹]]의 [[이재현(기업인)|이재현]] 회장은 재판을 받고 있다. 이맹희 회장(+누이, 시누이) 사후까지 이건희는 유산 상속 소송으로 치고 받았고, 현재 CJ와 삼성 일가는 제사도 따로 지낼 정도로 심각하게 틀어졌다. 이건희는 2016년 기준, [[성매매]] 혐의가 사실상 인정되고 있으며, 삼성그룹에서는 급하게 선긋기를 하고 있는 형국이다. 참고로 이건희의 막내딸인 [[이윤형]]도 일반인 남자친구를 사귀는 것을 집안에서 결사반대한 탓에 [[미국]]에서 자살하였고, 외아들 [[이재용]]과 장녀 [[이부진]]도 이혼하였다. * [[범롯데가]] - [[롯데그룹/경영권 분쟁]] 문서로. * [[범현대가]] - 역시 [[왕자의 난]] 문서로. * [[범한진가]] - [[한진그룹]] 문서로. ==== [[로마 왕국|로마 왕족]] 및 [[로마 제국|황족]] 상당수 ==== [[로마 문명|로마]]는 [[기원전 8세기|기원전 753년]][* [[로마 신화|로마 건국 신화]] 기준]부터 기원후 [[1453년]]까지 '''2,206년'''에 이르는 오랜 [[로마사|역사]]를 가진 나라였고, 그만큼 다양한 형태의 콩가루 집안이 있었다. * [[로마 왕국]]: 기원전 753년~ [[기원전 6세기|기원전 509년]] * 타르퀴니우스 일가: 로마의 5대 [[로마 국왕|국왕]] [[타르퀴니우스 프리스쿠스]]의 [[사위]][* 로마는 왕위를 반드시 부계 혈통으로 세습해야 한다는 원칙이 없었고, 타르퀴니우스 프리스쿠스는 [[세습]]이 아니라 [[선거군주제|선거로 뽑힌 왕이었다.]] 후대의 [[로마 제국]]은 [[로마 황제|황제]]를 선거로 뽑진 않았지만, 사위가 장인의 뒤를 이어 즉위하는 게 합법적인 계승으로 인정받았고, [[오현제|피가 섞이지 않은 양자에게 물려주는 것도 가능했으며]], [[동로마 제국]]에선 황제가 죽은 후 황후가 재혼하여 새 남편을 황제로 추대하는 것도 가능했다.]로서 왕위를 계승한 6대 국왕 [[세르비우스 툴리우스]]는 타르퀴니우스 일가의 [[타르퀴니우스 수페르부스]]에게 살해당했다. 그렇게 7대 국왕이 된 수페르부스에겐 [[섹스투스 타르퀴니우스]]라는 아들이 있었는데, 섹스투스가 같은 타르퀴니우스 일가에 속한 [[타르퀴니우스 콜라티누스]]의 아내 [[루크레티아]]를 [[겁탈]]하는 사건이 있었고, 격분한 콜라티누스가 [[루키우스 유니우스 브루투스]]와 함께 왕정을 타도하여 [[로마 공화국]]이 수립되었다, * 고대 [[로마 제국]](동서 분열 이전): [[기원전 27년]] ~ 기원후 [[395년]] * [[클라우디우스 1세]] 일가 - 로마의 4대 황제 클라우디우스 1세는 조카 [[칼리굴라]][[칼리굴라 암살 사건|가 암살당한]] 이후 [[로마 황제|황제]]로 추대되었는데, 본인이 사전에 암살 음모를 알았던 건 아니라서 여기까진 그나마 괜찮았다. 그러나 그의 아내 [[발레리아 메살리나]]는 [[원로원]] 의원 가이우스 실라누스와 [[불륜|바람을 피고]] 쿠데타 음모까지 꾸미다가 처형당했고,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가정사가 꼬이기 시작했다. 그의 친아들 [[브리타니쿠스]]는 사실상 후계자로 간주되긴 했으나 어머니가 바람 피고 처형당한 메살리나라서 지지 기반이 취약했고, [[후처]] [[소 아그리피나|아그리피나]]는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얻은 아들 [[네로]]를 후계자로 만들기 위해 정치 공작을 펼쳤다. 그리고 클라우디우스가 [[독살]] 의혹이 있는 [[의문사|의문의 죽음]]을 당한 후, 아그리피나는 재빠르게 정권을 장악하고 네로를 황제로 옹립하여 섭정이 되었다. 그러나 황제가 된 네로는 아그리피나와 사이가 틀어져서 대립했고, 아그리피나는 [[이이제이|친아들을 견제하기 위해 제위 계승에서 밀려났던 브리타니쿠스를 띄워주었으나]], 정작 그를 보호할 안전장치는 전혀 마련해두지 않아서 네로에 의해 독살당하게 만들었다. 이후에도 아그리피나와 네로 모자의 갈등은 지속되다가, [[존속살해|어머니가 아들에 의해 살해당하면서 종식되었고]], 네로는 폭정을 일삼다가 [[자살]]하여 [[아우구스투스]] 이래 5대를 이어 온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는 막을 내렸다. * [[콤모두스]]와 [[루킬라]] 남매: 콤모두스 황제는 재위 초반까지만 해도 무난한 능력과 성격을 보여줬으나, 그의 누나 루킬라는 콤모두스의 아내 [[브루티아 크리스피나]]를 시기하다가 급기야 황제 암살 음모를 꾸미기에 이르렀다. 이는 사전에 발각되어 루킬라가 그녀의 딸 및 측근들과 함께 처형되는 것으로 종식되었으나, 본인의 잘못이 없는데도 누나가 자신을 죽이려 했다는 것에 충격을 받은 콤모두스는 [[흑화]]하여 로마 최악의 [[폭군]] 중 하나로 이름을 남기게 되었다. * [[세베루스 왕조|세베루스]] 일가 * [[카라칼라]] 황제는 [[공치제|공동 황제]]로서 함께 제국을 통치하던 친동생 [[게타]]를 어머니 [[율리아 돔나]]가 보는 앞에서 칼로 찔러 죽였다. * [[엘라가발루스]] 황제는 어린 나이에 즉위했음에도 불구하고 온갖 [[기행]]을 일삼다가 보다 못한 할머니 [[율리아 마이사]]에 의해 제거되었고, 그의 사촌동생 [[알렉산데르 세베루스]]가 새 황제로 옹립되었다. * [[콘스탄티누스 왕조|콘스탄티누스]] 일가: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자신의 장남 [[크리스푸스]]를 처형했고, 그가 죽은 후 제국을 나눠 가진 세 아들 중 차남 [[콘스탄티누스 2세]]는 막내 [[콘스탄스]]에 의해 제거되었다. 콘스탄스 사후 단독 황제가 된 삼남 [[콘스탄티우스 2세]]는 사촌동생 [[콘스탄티우스 갈루스]]를 [[부황제]]로 임명했으나 4년만에 처형했다. * [[서로마 제국]]: 395년 - [[476년]] * [[호노리우스]] 일가: 호노리우스 황제는 [[여동생]] [[갈라 플라키디아]]의 남편이자 공동 황제였던 [[콘스탄티우스 3세]]가 죽은 후, 여동생과 조카들을 숙청하려 했고, 이에 생명의 위협을 느낀 갈라 플라키디아는 자식들을 데리고 [[콘스탄티노폴리스]]로 도피했다가, 호노리우스 사후에야 서로마로 돌아와 자신의 아들 [[발렌티니아누스 3세]]를 황제로 만들 수 있었다. * [[동로마 제국]]: 395년 ~ [[1453년]] * [[이라클리오스 왕조|이라클리오스]] 일가: [[641년]] 한 해 동안 [[바실레프스|황제]]만 4명, 즉 황제 교체가 3번이나 일어나는 막장 집안 싸움을 벌였다. * [[이리니]]와 [[콘스탄티노스 6세]] 모자: 이리니는 어린 아들 콘스탄티노스 6세의 섭정을 맡았다가, 콘스탄티노스가 성년이 되자 물러났다. 그러나 어머니의 섭정 당시 열렸던 [[제2차 니케아 공의회]]의 결과를 아들이 부정하고 [[성상 파괴주의]]를 옹호하는 행보를 보이자, 이리니는 친아들의 눈을 뽑아 수도원에 유폐시키고, '''로마 제국 최초의 [[여제]]'''로 즉위했다. 그러나 이후 이리니는 [[신성 로마 황제|새로운 서로마 제국의 황제]]를 자칭한 [[프랑크 왕국]][* [[로마인|동로마인]]들은 프랑크 왕국을 비롯한 [[게르만족|게르만]] [[왕국]]들을 '야만 왕국'이라 부르며 멸시하고 있었다.]의 [[카롤루스]]와 재혼을 추구하다가 [[민심]]을 잃어서 즉위한지 5년만에 [[니키포로스 1세]]의 쿠데타로 인해 폐위되어, 콘스탄티노스 6세의 증조부 [[레온 3세]] 시대부터 시작된 [[이사브리아 왕조]]는 막을 내리고 [[니키포로스 왕조]]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니키포로스 왕조는 [[크룸 전쟁|불가리아와의 전쟁]]에서 초대 황제 니키포로스 1세가 전사하는 등 온갖 불운에 시달리는 바람에 겨우 11년만 존속했다.] * [[마케도니아 왕조|마케도니아]][* 고대 [[마케도니아 왕국]]이나 [[북마케도니아]]와는 상관 없으며, [[성씨]]가 [[마케도니아]]인 게 아니라 [[바실리오스 1세|시조]]의 고향이 '마케도니아 [[동로마 제국/군관구|테마]]'라는 [[행정구역]]이라서 붙은 명칭이다.] 일가 * [[로마노스 1세]]는 쿠데타를 일으켜 섭정이 되었다가 [[마케도니아 왕조]]의 황제 [[콘스탄티노스 7세]]의 장인으로서 공동 황제가 되었고, 자신의 아들들 역시 공동 황제로 만들었다. 그러나 바로 그 아들들에 의해 폐위되어 수도원에 유폐되었고, 아들들은 콘스탄티노스 7세에 의해 폐위된 후 아버지와 같은 수도원으로 보내져(...) 모두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이 과정에서 콘스탄티노스 7세를 전폭적으로 지지하며 단독 황제가 될 수 있게 해준 인물은 아이러니하게도, 로마노스의 딸이며 그가 공동 황제로 즉위하는 명분이 된 콘스탄티노스 7세의 황후 [[엘레니 레카피니]]였다. * [[니키포로스 2세]]의 황후 [[테오파노(10세기)|테오파노]]는 [[내연남]] 요안니스 쿠르쿠아스와 함께 남편을 살해하고 요안니스를 황제 [[요안니스 1세]]로 추대하는 [[막장 드라마]] 급 사건을 일으켰으나,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총대주교]]의 반대로 인해 요안니스의 황후가 되지 못하고 ~~[[토사구팽]]~~유배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니키포로스 2세와 요안니스 1세는 둘다 뛰어난 군사적 업적으로 동로마의 [[중흥]]을 이끌었다고 평가받는 황제다.] 이후 [[로마노스 3세]]의 황후 [[조이(로마)|조이]]가 내연남 미하일과 함께 로마노스를 살해하고 미하일을 황제 [[미하일 4세]]로 추대하는 유사한 사건을 일으켰는데, 그녀는 테오파노와 달리 황후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 * 미하일 4세와 조이의 [[양자(가족)|양자]]로서 즉위한 황제 [[미하일 5세]]는 [[패륜|양어머니를 숙청하려다가]] 역으로 본인이 폐위되어 [[고자되기|거세까지 당했고]], 조이는 여동생 [[테오도라(11세기)|테오도라]]와 함께 여제로 즉위했다가 [[콘스탄티노스 9세]]와 재혼한 후 [[양위]]했다.[* 조이는 콘스탄티노스 9세보다 먼저 사망했고, 콘스탄티노스 사후에는 테오도라가 여제로 복위했는데, 테오도라의 죽음을 끝으로 마케도니아 왕조가 단절되었다.] * 마케도니아 왕조 단절 이후의 동로마 황제 일가: 마케도니아 왕조 단절 이후 동로마를 지배한 다섯 왕조([[콤니노스]], [[두카스]], [[앙겔로스 왕조|앙겔로스]], [[라스카리스 왕조|라스카리스]], [[팔레올로고스]])는 모두 수백년간 통혼하며 혈연으로 엮인 친척 가문이었는데, 그들은 협력할 때도 있었지만 유혈사태를 동반한 권력투쟁을 벌일 때도 있었다. * [[알렉시오스 2세]]와 [[안드로니코스 1세]]: 콤니노스 일가는 [[알렉시오스 1세]] - [[요안니스 2세]] - [[마누일 1세]] - 알렉시오스 2세의 4대에 이르는 부자 세습을 통해 100년 이상 집권했고, 알렉시오스 2세는 어린 나이임에도 [[포르피로게니투스|엄청난 정통성]]을 갖고 즉위했다. 그러나 알렉시오스 2세의 어머니로서 섭정을 맡은 [[안티오키아의 마리아]]가 실정을 거듭하자, 안드로니코스 1세가 [[여론]]을 등에 엎고 쿠데타를 일으켜 마리아를 제거하고 공동 황제로 즉위했으며, 알렉시오스 2세는 안드로니코스에 의해 살해당한 후 [[마르마라 해]]에 던져졌다. 그러나 알렉시오스 2세는 타고난 정통성과 후술할 안드로니코스 1세의 폭정으로 인해 동정을 받았고, [[가짜 알렉시오스 2세|그의 이름을 사칭한 반란자들이 나오기도 했다.]] * 콤니노스 - 앙겔로스 교체: 안드로니코스 1세는 황권 강화를 위한답시고 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학살을 자행하고 외교까지 말아먹어서 민심을 잃었는데, [[살생부]]에 오른 친척 이사키오스 앙겔로스가 우발적으로 자신을 체포하러 온 관료를 죽이고 [[하기아 소피아]]로 도피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를 기점으로 하여 분노한 시민들이 불의에 항거한 [[의사(동음이의어)#s-4|의사]](?) 이사키오스를 황제 [[이사키오스 2세]]로 추대하며 봉기를 일으켰는데, 근위대마저 진압 명령을 거부하고 이사키오스를 지지했다. 결국 안드로니코스 1세는 온갖 [[고문]]과 [[조리돌림]]을 당하며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고, 이로써 황제의 관은 콤니노스 일가에서 앙겔로스 일가로 넘어갔다. * 앙겔로스 일가의 내분과 [[4차 십자군]]: 이사키오스 2세가 즉위한 후 온갖 [[삽질]]을 일삼으며 나라를 망치자, 그의 형 [[알렉시오스 3세]]는 동생의 눈을 뽑아 감옥에 가두고 황제가 되었다. 그러나 이사키오스 2세의 아들 [[알렉시오스 4세]]가 이에 맞서 4차 십자군이라는 외세를 끌어들였고, 알렉시오스 3세가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탈출하자 이사키오스 2세가 복위[* 물론 [[장님]]이라서 실권을 행사할 순 없었다.]하고 알렉시오스 4세가 공동 황제가 되었다. 그러나 집안 싸움에 외세를 끌어들인 행위는 단 한 번도 함락을 허용한 적 없는 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가 십자군에게 약탈당하는 대참사를 초래했고, 이후 콘스탄티노폴리스에는 [[라틴 제국]]이라는 [[십자군 국가]]가 들어섰다. 라틴 제국에 맞서 동로마 부흥운동을 이끈 세력[* [[니케아 제국]](라스카리스), [[트라페준타 제국]](콤니노스), [[이피로스 전제군주국]](앙겔로스의 방계)]들은 모두 혈연으로 엮인 친척이었지만, 서로 간에 전쟁을 벌이기도 했다. * 라스카리스 - 팔레올로고스 교체: 팔레올로고스 일가의 [[미하일 8세]]는 쿠데타를 일으켜 섭정에 취임했다가 공동 황제가 되었고, [[제14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방전|콘스탄티노폴리스를 수복하여 로마 제국을 재건하는 업적]]을 달성한 후, 기존 황제이자 친척인 [[요안니스 4세]]를 폐위시키고 눈을 뽑아 수도원에 유폐시킴으로써, 라스카리스 왕조를 끝장내고 팔레올로고스 왕조를 열었다. * 팔레올로고스 일가: [[안드로니코스 3세]]는 조부 [[안드로니코스 2세]]와의 [[팔레올로고스 내전|내전]]을 거쳐 즉위했고(1차 내전), 그의 아들 [[요안니스 5세]]는 장인 [[요안니스 6세]]와의 내전(2~3차 내전), 장남 [[안드로니코스 4세]]&장손 [[요안니스 7세]]를 상대로 한 내전(4차 내전)을 겪었다. 요안니스 5세는 끝내 4차 내전에서 승리했지만, 내전 후유증으로 [[국력]]이 극도로 약화되어 [[오스만 제국]]의 갑질에 시달리다 [[화병]]으로 죽었다. 이후 그의 차남 [[마누일 2세]]와 손자 [[요안니스 8세]], [[콘스탄티노스 11세]]는 제국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했지만, 결국 [[1453년]] [[제20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방전|오스만 제국에 의해 콘스탄티노폴리스가 함락당함으로써 멸망했다.]] 그리고 요안니스 8세와 콘스탄티노스 11세의 동생이자 동로마의 [[번국]] [[모레아 전제군주국|모레아]]의 [[데스포티스|군주]]였던 [[디미트리오스 팔레올로고스|디미트리오스]]와 [[토마스 팔레올로고스|토마스]]는 서로 협력하지 않고 반목하다가, [[1460년]] 디미트리오스가 동생 토마스를 축출하기 위해 오스만 제국을 끌어들이면서 제국의 잔재마저 사라졌다.[* 이후 디미트리오스는 오스만 [[파디샤|황제]] [[메흐메트 2세]]에게 [[토사구팽]]당해 가택연금 상태로 살다가 죽었고, 토마스는 [[교황령]]으로 [[망명]]하여 명목상의 황제 대접은 받았으나, 그의 아들 [[안드레아스 팔레올로고스|안드레아스]]가 생활고를 이기지 못해 로마 황제 작위를 [[프랑스 왕국|프랑스]] 국왕 [[샤를 8세]]와 [[스페인]]의 [[이사벨 1세]]&[[페르난도 2세]] 부부왕에게 [[매관매직|팔아넘기고]] 후사를 남기지 않고 사망하여, 명목상의 계승권마저 단절되었다.] ==== [[측천무후]] 일가 ==== 측천무후 본인은 물론이고, 3대에 걸쳐 아들, 딸, 손자, 손녀 할 것 없이 정치적 암투와 숙청으로 얼룩진 집안이다. 측천무후 본인은 자신의 소생인 장녀 [[안정공주]]와 장남 [[의종(당 추존)|의종]]을 죽였다는 의혹을 받고 있으며,[* 다만 의종의 건강이 악화되자 [[고종(당)|고종]]과 측천무후가 지극정성으로 보살피고, 의종이 죽자 고종 부부가 크게 상심하여 황제로 추존했다는 기록도 있어 말 그대로 의혹으로 남아있다.] 차남인 [[장회태자]]를 쫓아냈다. 그 이후 끝내 자신의 아들들인 삼남 [[중종(당)|중종]]과 사남 [[예종(당)|예종]]을 차례로 폐위하고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다만 중종은 후술하듯 위황후 때문에 참작의 여지가 있었다.] 측천무후가 노쇠하자 신하들이 그녀를 태상황으로 물러나게 하고, 중종을 재옹립하며 안정을 찾아가는가 싶더니, 이번에는 중종의 황후인 [[위황후]]가 막내딸 [[안락공주]]와 모의하여 태자 이중준을 모함 끝에 죽이고 정치를 어지럽히기 시작한다. 급기야 모녀는 남편이자 아버지이고 황제인 중종을 독살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위황후와 안락공주는 정치적 능력은 측천무후에게 뒤떨어졌고, 이번에는 예종의 아들인 [[현종(당)|이융기]]가 고모인 [[태평공주]]와 손을 잡고 쿠데타를 일으켜 위황후와 안락공주를 제거한 후 아버지인 예종을 다시 옹립한다. 그 이후 이융기는 태평공주마저 정치적 암투 끝에 숙청해 버리고 최후의 승자가 되어 [[현종(당)|당 현종]]으로 즉위한다. 이후 현종은 [[개원지치]]라는 태평성대를 열었으나, 웃기게도 현종 말년에 이르러 당나라는 [[양귀비|점점]] [[안사의 난|기울기 시작한다]]. ==== [[사담 후세인|후세인]] 일가 ==== * [[사담 후세인]]([[1937년]] [[4월 28일]] ~ [[2006년]] [[12월 30일]]) [[이라크]] 전직 [[대통령]](재임: [[1979년]] ~ [[2003년]]). 어렸을 때 양아버지에게 두들겨 맞고 산 기억 때문에 아들에게 손찌검도 제대로 못하고 거의 방목 수준으로 놓아 기를 정도로 아들을 너무 사랑하며(물론 옳은 선택은 아니었다) 딸들 결혼도 손수 챙겨주는 등 자상한 남자. 그러나 한편으론 이미 [[유부녀]]에게 청혼하여 둘째 부인으로 만들어 버리고 자기 뒷통수를 쳤다고 딸네미들의 [[사위]]들을 총살해버리고 뇌내망상으로 [[쿠웨이트]]를 점령했다가 나라를 통째로 말아먹고 그것도 모자라 [[걸프전]] 당시 뒷통수를 쳤다고 [[쿠르드족]] 씨를 말려버린 희대의 [[독재자]]였다. 결국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으로 권좌에서 축출당했고 [[2006년]] 연말, 약 10여개의 인륜범죄 유죄 판결을 받고는 교수형에 처해졌다. * 사지다 탈파 사담 후세인의 첫번째 아내. 1963년 사담 후세인과 맞선으로 결혼했다. 힘 있는 바트당 수뇌부 가문 출신이라 사담이 권좌에 오르는데 큰 힘이 되었다. 이 [[아줌마]]도 남편 뺨치는 만만찮은 [[인간 말종]]이어서 우다이가 카멜 한나를 증오하다 못해 살해하게 된 것도 사지다가 옆에서 계속 원수를 갚아달라고 충동질한 탓. 그 외에 자기 정적들을 고문하라고 지시하는 등 이쪽도 심히 무시무시한 아줌마. 2003년 이후 행적을 감추었다. 현재 이라크 반군을 금전적으로 지원한 혐의를 받고 있다. [[탈세|미국이 침공할 당시 이라크 중앙은행 금고를 싹싹 긁어갔다고 한다.]] * [[우다이 후세인]]([[1964년]] [[6월 18일]] ~ [[2003년]] [[7월 22일]]) 사담 후세인의 장남. 사실상 '''현대판 [[순화군]]'''이라고 할 만한데, 나이트클럽에서 춤추다가 천장에 총질하는 건 기본. 아버지의 둘째 아내를 소개시켜줬다며 파티장(그것도 [[이집트]] 대통령 영부인까지 참석한 파티서)에서 자기 아버지 최측근 카멜 한나를 '''지팡이로 죽어가기 직전까지 구타한 다음 죽어가는 카멜 한나를 전기톱에 가까운 전동식 음식 자르는 칼로 숨통을 끊어버렸으며''' 이라크 [[올림픽]] 위원장 시절에는 경기에서 진 선수들을 고문하는 게 '''취미'''였다고 한다.[* [[축구선수]]들에게 맨발로 몇 시간씩 콘크리트 [[축구공]]을 차라고 했다고 한다.] 거기다가 자기 집 지하에 감옥을 만들곤 정치범들을 수시로 고문하였으며, 반송장이 된 수감자를 바로 옆의 개인 동물원 [[표범]]들에게 던져주며 즐거워했다고 한다. 어찌나 추악한 악행들을 해댔는지 참다 못한 [[아버지]] 사담조차도 카멜 한나 사건 때는 개인 감옥에 4년 처박은 후[* 그나마도 죽이겠다고 펄펄 뛰는 걸 아내 사지다와 요르단 국왕이 뜯어말려서 겨우 참았다고 한다.] [[스위스]] 대사관 직원으로 쫓아냈지만, 얼마 후 우다이는 어느 [[레스토랑]] 직원을 찔러 죽이겠다고 위협한 죄로 재송환당했고, 결국은 1996년 총알을 한 다발 얻어맞고는 절름발이 신세가 되었다.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당시 동생 쿠사이와 함께 도피생활 도중 발각, 치열한 교전 중 [[미국군]]이 발사한 미사일에 맞아 사망. 참고로 최후는 비참했는데, 죽은 후 [[미국군]]은 죽은 우다이와 동생 쿠사이 후세인의 시체의 사진과 동영상을 찍어 전세계 기자들에게 배포했다. * [[쿠사이 후세인]]([[1966년]] [[5월 17일]] ~ [[2003년]] [[7월 22일]]) 사담 후세인의 차남. 그나마 이 콩가루 집안에선 상대적으로 제정신인 사람. 여자를 매일 갈아치운데다 부인과도 [[이혼]]한 우다이와는 달리 결혼 생활도 나름 평온했고, 아들도 셋이나 낳았다. 그러나 잔학성 자체는 부모는 물론 지 형과 마찬가지로 만만치 않아서 1991년 걸프전 직후 벌어진 [[시아파]] 반란 분쇄와 남부 습지대 파괴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언젠가는 감옥이 꽉 들어찼다고 수천 명에 달하는 정치범들을 '''빈 공간 만들려고''' 쓸어버리는 짓을 감행한 적도 있다. 역시 2003년 우다이와 함께 도피 중 폭사. 당시 14살(!)이었던 장남 무스타파도 아버지와 같이 미국군 장병들을 향해 AK를 난사하다가 그때 같이 죽었다. * 후세인 카멜&사담 카멜 형제 사담 후세인의 사위들이자 먼 친척. 각자 사담의 삼녀 라그하드 후세인, 그리고 사녀 라나 후세인과 1986년 결혼했다. 우다이를 바보라며 멸시하고 우다이도 벼락출세한 이 둘(특히 이라크 무기 개발 책임자가 된 후세인)을 "골든 보이"라고 부르며 이죽대긴 했어도 사이가 그렇게까지 나쁘진 않았지만, 88년 발생한 카멜 한나 사건 당시 후세인이 카멜 한나 사건과 그 이전에 우다이가 벌인 기행을 죄다 일러바치면서 사이가 급격히 틀어졌다. 그 후에는 우다이가 사사건건 후세인에게 총을 들이대는 등 목숨이 위험해지자 1996년 전격적으로 아내들을 데리고 [[요르단]]으로 망명했다. 물론 좋은 의도는 아니었고, 실상은 [[미국]]에게 이라크 무기개발 정보를 넘겨주고 CIA의 도움을 받아 장인 사담 대신 권좌를 차지하려는 속셈이었다. 그러나 그 후 사태가 꼬이면서(정확히 말하자면 사담이 무기개발 혐의를 죄다 카멜 형제에게 전가하면서 제대로 역관광을 태워버렸다) 오갈 데가 없어지자 '''목숨만은 살려주겠다'''는 사담의 꼬임에 넘어가 다시 이라크로 돌아왔다. 그 직후 '''강제로 이혼''' 당했으며, 얼마 후 같은 집안 사람들이 "'''배신자를 처단하러 왔다'''"며 총을 난사하며 그들의 집에 쳐들어와 둘을 사살했다. '''사담 본인'''은 지켜주겠다고 약속을 한 터라 죽일 수 없으니 '''같은 집안 사람이 너희 명예에 똥칠을 했으니 너희가 처리해라'''며 둘의 가문인 알 - 마지드 가문을 협박한 것. * 영국 [[BBC]]와 [[HBO]] 합작의 4부작 [[하우스 오브 사담]]에서 이상의 내용들(의 일부)의 재연극을 볼 수 있다. ==== 고대 아일랜드 [[밀레시안]] 왕가: 기원전 1700년(?)~(?)[* [[에린 침략의 서]]가 출전인데, 오늘날에는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기독교색이 들어간 [[아일랜드 신화|신화]]라고 보는 게 [[학계의 정설]]이다. 밀레시안 부분은 완전히 기독교적인 부분.] ==== 밀레시안은 [[투어허 데 다넌]]을 축출한 뒤 [[에린]]의 패권을 잡았지만 데 다난과 싸우는 도중 왕인 에베르 돈이 [[마나난 막 리르]]의 마법에 걸려 사망해버렸다. 그래서 이후 에베르 돈의 동생인 [[에레원]]과 에베르 핀이 공동으로 통치를 했는데 에베르 핀이 반쪽 왕으로는 만족을 못하고 형을 공격했다가 패배, 모가지가 잘린다. 이후 에레원계와 에베르계가 피똥싸게 싸우며 서로서로 번갈아 왕위를 차지하게 된다. * 에후르 막 쿠일, 테오르 막 케흐트, 카이호르 막 그레네 (투어허 데 다넌) * 에레원, 에베르 핀 (공동 통치) * 에레원 (단독 통치, 에레원계) * 뮈네, 루인, 라인 (에레원계) * 에르, 오바, 페론, 페르그나 (에베르계) * 이리얼 파이스 (에레원계) * 에스리엘 (에레원계) * 콘마엘 (에베르계) * 취허른마스 (에레원계)[* [[크룸 크루어히]]에게 살해. 이후 7년간 왕위 공석.] 자세한 사항은 위키백과([[http://ko.wikipedia.org/wiki/%EC%97%90%EB%B2%A0%EB%A5%B4_%ED%95%80|#]])에 나온다. 에베르 핀에서부터 후임자 링크를 타고 계속 내려가면 된다. ==== [[양무제]] 소연 [[양(육조)|일가]] ==== * [[무제(양)|고조(高祖) 무황제(武皇帝) 소연(蕭衍)]] * [[소통(양나라)|소명태자(昭明太子) 소통(蕭統)]] * [[소종(양나라)|예장군왕(豫章郡王) 소종(蕭綜)]] * [[간문제(양)|진안군왕(晉安郡王) 소강(蕭綱)]] * 남강군왕(南康郡王) 소적(蕭績) * 여릉군왕(廬陵郡王) 소속(蕭續) * [[소윤(양나라)|소릉군왕(邵陵郡王) 소윤(蕭綸)]] * [[효원제|상동군왕(湘東郡王) 소역(蕭繹)]] * [[소기(무릉정헌왕)|무릉군왕(武陵郡王) 소기(蕭紀)]] 앞서 [[이궁지쟁|황족들끼리 황위를 노리고 논쟁을 벌였던 사건과]] 유사한 모습을 보이며 양나라는 이를 겪고 얼마인가 무너졌다. 황태자로 임명된 소통은 문학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으나 황제에 오르지 못하고 요절했으며 소종은 [[북위|북쪽]]으로 망명했다. 때문에 삼남인 소강은 [[후경|후경(侯景)]]에 의해 즉위했으며 소적과 소속은 그전에 죽었다. 한편 소윤과 소역, 소기는 황위를 다투었고 이 과정에서 소윤이 후경에 의해 피살되었고 소역과 소기는 황위를 위해 다투어 이때 소기는 소역에게 피살되었다. 후에 소강이 살해되고 소역이 황제로 올랐으나 얼마 안 가 서위에 의해 피살되었다. ==== [[프랑크 왕국|프랑크]] 국왕 [[메로베우스 왕조|일]][[카롤루스 왕조|가]] ==== [[프랑크 왕국]]은 [[게르만족]]의 분할 상속 관습으로 인해 초대 국왕 [[클로비스 1세]] 사후 아들들이 넷으로 갈라먹었고, 이후에도 여러 차례 분열과 통합이 반복되었다. 이 과정이 절대 평화적이진 않아서, 분할 상속으로 나눠 먹은 영토를 통합하는데는 [[내전]]이 수반되었고, 그렇게 내전에 승리한 자도 아들들에게 분할해서 물려주고, 그 아들들이 또(...) 내전을 거쳐 다시 합치는 과정이 [[무한루프|반복되었다.]] 그렇게 왕족들이 [[땅따먹기]]에 열중하는 동안 [[왕궁]]의 [[집사|집사장]]에 불과했던 [[궁재]]의 권한이 강화되어, 나중에는 궁재가 왕을 허수아비로 만들고 실권을 장악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궁재 [[카롤루스 마르텔]]은 [[투르-푸아티에 전투]]에서 승리함으로써 [[우마이야 왕조|이슬람 제국]]의 [[서유럽]] 정복을 저지하는 업적을 세워 군사적 명성과 [[기독교]]의 수호자라는 종교적 권위를 동시에 획득했고, 그의 아들 [[피피누스 3세|피핀]]이 [[교황]]의 승인을 받아 왕위를 [[찬탈]]함으로써, 기존 왕실인 [[메로베우스 왕조]]를 대체하는 [[카롤루스 왕조]]를 세웠다. 카롤루스 왕조는 피핀 - [[카롤루스 대제]] - [[루도비쿠스 1세]]의 3대에 걸친 세습을 이어갔으나, 루도비쿠스의 아들들이 내전을 벌인 끝에 [[베르됭 조약|나라를 셋으로 쪼갰다.]] 이때 형성된 세 왕국 가운데 [[서프랑크]]는 [[프랑스]], [[동프랑크]]는 [[독일]], [[중프랑크]]는 [[이탈리아]][* 남부는 [[동로마 제국]]의 지배를 받아서 프랑크 왕국과 접점이 없었지만, [[이탈리아 통일|통일]]을 주도한 건 [[사보이아 가문|북부 세력]]이었다.]의 기원이 되었고, 지금까지 세 나라는 각자의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 [[오스만 제국|오스만]] [[파디샤|황제]] 일가 ==== [[1402년]] [[앙카라 전투]]에서 [[술탄]] [[바예지트 1세]]가 [[티무르]]에게 [[포로]]로 잡힌 후, [[오스만 공위기|그의 다섯 아들들이 각자 술탄이라 주장하며 내전을 벌였는데]], 그 중에서 [[메흐메트 1세]]가 모든 [[형제]]들을 처단하고 내전을 종식시켰다. 그러나 이게 영 좋지 않은 교훈을 남겨서 이후의 오스만 술탄들은 내전 가능성을 없애기 위해 즉위하자마자 남자 형제들을 모조리 살해해야 한다는 [[악법]]이 생겼고[* 그래서 술탄 [[메흐메트 2세]]의 이복동생 오르한 첼레비는 [[동로마]]로 [[망명]]한 후, [[동로마군]] 소속으로 [[제20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방전|콘스탄티노폴리스 공방전]]에 참전했다가 함락 이후 처형되었다.], 이는 [[1453년]]에 오스만 군주가 술탄에서 황제[* [[로마 황제]]라는 의미를 가진 '카이세리 룸'과 [[페르시아어]]로 '왕들의 주인'을 뜻하는 [[파디샤]]를 칭했다. 또한 기존 군주의 칭호였던 술탄은 황족이나 고위 귀족에게 하사하는 칭호가 되었고, 여성 황족들도 수여받을 수 있었는데, 그 중에서 '발리데 술탄'은 황제의 어머니가 받은 칭호였다.]로 격상된 이후에도 지속되었다. 이는 당장 황제의 [[정통성]]을 위협할만한 형제가 없다는 점 덕분에 황권 강화에 도움이 되었으나, 정작 황제가 갑자기 후사를 남기지 않고 사망해서 황실의 혈통이 끊어지는 참사가 언제든지 생길 수 있다는 단점이 있었다. 그래서 [[17세기]] 초에 즉위한 [[아흐메트 1세]]는 형제들을 죽이진 않는 대신 [[새장]]이라 불리는 밀실에 유폐시킨 후, 황족으로서의 품위를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의식주]]만 제공하여 정치에 개입할 가능성을 차단하도록 법을 개정했다. 그러나 100% 죽음 뿐이었던 이전에 비해 나아졌을 뿐, 밀실에 감금된 남자 황족은 언제든지 황제의 입맛에 따라 처형될 가능성이 존재했고, 실제로 밀실에 감금됐다가 끌려나와 처형된 황족도 꽤 있었다. 또한 황제가 갑자기 후사를 남기지 않고 사망하는 바람에 밀실에 감금되었던 황족이 새 황제로 즉위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는데, 수십년 동안 [[히키코모리|방구석 폐인]]으로 살아서 [[정치]] 이전에 일상생활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기대할 수 없는 인물이 황제가 돼서 [[삽질]]을 일삼는 바람에 오스만 제국이 쇠퇴하는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이러한 형제 간 [[골육상쟁]]과는 별개로 모자 간 갈등과 [[고부갈등]]도 오스만 제국 정치를 막장으로 몰아간 원인 중 하나가 되었는데, [[이브라힘(술탄)|이브라힘]] 황제의 어머니이자 [[섭정]]으로서 통치하던 [[쾨셈 술탄]]은 친아들과 권력투쟁을 벌이다가 그를 살해하고 손자 [[메흐메트 4세]]를 옹립했다. 그런데 쾨셈 술탄의 며느리이자 메흐메트 4세의 어머니인 '투르한 하티제 술탄'이 '아들도 죽였는데 손자라고 못 죽이겠냐'라고 생각하며 불안에 떨다가, [[이판사판]]이라는 심정으로 쿠데타를 일으켰는데 그게 성공하여 쾨셈 술탄은 자신의 며느리에 의해 살해당했다. === 그 외 === * '''[[헤롯왕|헤롯 왕가]]'''[* 성경에 언급되는 내용으로는 에서와 야곱 형제 중 에서의 후손 측인 에돔 족속의 후예로 나와 있다.] - '''이 분야의 [[주인공]]급'''. 성적으로도 많이 문란했고, 도덕적으로도 많이 더러웠다. [[헤롯 대왕|초대 헤롯왕]]의 경우는 베들레헴 내의 아기들을 모조리 학살하는 것으로 악명 높았으며, [[헤롯 안티파스|2대 헤롯왕]]의 경우는 자기 이복동생(헤롯 빌립보 1세)의 아내(헤로디아)와 짜고[* 헤로디아 역시 멀쩡히 살아있던 남편을 버리고 [[헤롯 안티파스]]에게로 갔다.] 불륜을 저질렀다. 이것 때문에 [[세례 요한]]에게 저격당하자 헤로디아에게 사주받아 그를 참수한다. [[헤롯 아그리파스 1세|3대 헤롯왕]]의 경우는 사도 야고보를 죽이고 사도 베드로를 투옥시키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안 돌려 갑자기 건강했다가 벌레먹혀서 즉사했다고 나온다. * [[헨리 2세]] : 정식 왕비인 [[아키텐의 엘레오노르]]와 사이가 나빠 진작에 연금 시키고 바람을 피웠다. 여기에 아들들이 한창 자랄 시기에 잉글랜드엔 코빼기도 비추지 않아서 당대 [[캔터베리 대주교]]가 '아무리 비정한 부모라도 폐하보단 나을 겁니다.' 고 꼬집었을 정도로 아들들에겐 신경을 개뿔도 안 썼다. 이러다보니 아들들은 만날 수 없는 아버지에 애정을 가질 수 없었고, 유폐된 어머니와 자연스럽게 사이가 좋아질 수 밖에 없었다. 여기에 기름을 부은 게 헨리 2세는 나름대로 아들들을 챙겨준다고 후계자 교육을 하긴 했으나 영지 분배도, 권한 분배도 제대로 해주질 않아서 아들들이 더욱 반감을 품었다. 여기에 오랜 기간의 연금생활에 질린 엘레노오르가 아들들에게 바람을 살짝 넣어주니 적자 4명 중 3명이 친아버지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켰다가 박살났고 첫째와 셋째가 급사한 후엔 둘째인 [[리처드 1세]]가 어머니의 영지인 아키텐 문제를 두고 이전부터 쌓였던 불만이 폭발해 다시 반란을 일으켰는데, 리처드가 이전에 어머니의 연금생활이 지나치게 길다고 아버지한테 분노해서 다툰 전력이 있었다. 이번 반란에는 막내아들 [[존 왕]]까지 가담해서 평상시 아꼈던 그가 배신했다는 것이 크게 상심하여 실의에 빠진 끝에 죽었다. * 조선 [[태조(조선)|태조]] - 두 번째 부인이자 조선 최초의 왕후인 [[신덕왕후]] 소생의 왕자이자 막내인 [[의안대군(이방석)|이방석]]을 세자로 삼고, 정도전이 사병 혁파 등을 비롯하여 [[신의왕후]] 소생의 왕자들을 견제 및 숙청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신의왕후 소생의 왕자들은 [[1차 왕자의 난]]을 일으켜 정도전을 주살하고 세자였던 이방석과 우유부단하게 굴던 [[무안대군|이방번]]을 죽였다. 이후에는 [[회안대군|이방간]]이 권력욕 때문에 멍청하게 [[2차 왕자의 난]]을 일으키자 2대 임금인 [[정종(조선)|정종]]이 '어디서 헛소리를 듣고 형제를 죽이겠다니 너 미쳤냐? 그만둬라.'라고 꾸짖고, 이방석을 죽인 일로 [[태종(조선)|이방원]]과 앙숙이던 태조까지도 '방원이 그놈은 적어도 동복형제는 안 죽였는데 넌 무슨 미련한 짓거리냐!'라고 탄식할 정도였다. 그리고 2차 왕자의 난이 진압되고 얼마 안 지나서 이성계의 사주로 [[조사의의 난]]이 일어나면서 이성계와 이방원 두 부자가 서로 전쟁을 펼치는 일이 벌어졌다. 그나마 말년에는 화해하면서 좋게 끝난 편. * 조선 [[고종(대한제국)|고종]] - 이 쪽은 고종의 부친 [[흥선대원군]]과 자신의 부인 [[명성황후]]가 대립한다. 며느리는 아버지를 [[중국]]으로 납치시키고, 시아버지는 멀쩡히 살아있는 며느리의 장례식 치르고...[* 백성의 노여움을 산 며느리를 보호하려 한 움직임일지도 모른다는 시각도 있다.] 설상가상으로 흥선대원군이 정권에서 물러나게 된 후에는 고종과 명성황후는 본격적으로 나라를 멸망의 구렁텅이로 밀어넣었다. * [[야곱]]의 가족 - 어렸을 때 아버지 [[이사악]]의 쌍둥이 형 [[에사오]]를 편애하고, 어머니 리브가에게 편애를 받고 성장한 원인이었다. 외삼촌이자 장인어른인 [[라반]]에게 약 20년 동안 이용당하다가 말년에 두 번째 아내인 [[라헬]]과 그녀의 아들들인 요셉과 베냐민을 편애하여 의도치 않게 나머지 아들들을 [[가해자가 된 피해자]]가 되게 만들어버렸다. 장남 르우벤은 서모 빌하와 근친상간을 하여 장자권을 박탈당하고, 차남 시므온과 삼남 레위는 친여동생 디나를 강간한 세겜 일가를 학살했고, 사남 [[유다(창세기)|유다]]는 큰며느리 다말과 근친상간을 하여 쌍둥이 아들을 얻었다. 게다가 자신이 가장 아끼는 아들이자, 최대 피해자인 [[요셉(창세기)|요셉]]은 이복 형들의 질투로 이집트의 노예로 팔려가다가 이집트 시위대장의 아내를 성폭행했다는 누명을 받아 감옥에 갇히게 되었고, 또 다른 피해자인 디나는 히위 족속 수장의 아들 세겜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다행스럽게도 요셉이 이집트의 총리가 된 후에 아들들과 화해하게 된다.[* 물론 장남 르우벤과 차남 시므온은 완전히 저주를 받았고, 삼남 레위는 두 형과 마찬가지로 저주를 받긴 했지만, 후손 [[모세]]와 아론의 대활약으로 약간의 저주를 빗나가게 되었고, 사남 유다와 11남 요셉은 다른 형제들과 달리 많은 축복을 받았다.] * [[다윗]]의 가족 - 다윗은 초반에 정상적이였지만, 자기 부하인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와 [[불륜]]을 저지르고 만다. 장남 암논은 이복 여동생 다말을 [[강간]]해 그 여동생의 오빠 [[압살롬]]이 죽여버렸고, 나중에 그 압살롬은 [[내전]]을 일으켰다.[* 압살롬이 죽은 이후 다윗은 너무나 슬퍼했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그 이후 넷째 왕자 아도니야가 쿠데타를 준비하려다가 다윗의 지지를 얻은 [[솔로몬]]이 먼저 왕으로 등극해버렸으며, 그 아도니야도 나중에는 [[솔로몬]]에 의해 처형당했다. 그나마 다행스런 점은 솔로몬을 끝으로 막을 내리긴 했지만, 말년에 솔로몬이 우상 숭배를 하는 바람에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로 분열되는 원인을 제공했다. * [[일본 황실]] 중 아키시노노미야 일가([[후미히토]] 친왕, [[키코 비]], [[코무로 마코]][* 역시 콩가루인 [[코무로 케이]]와 결혼했다.], [[카코 공주]], [[히사히토]] 친왕)[* [[나루히토]] 천황과 [[마사코 황후]], [[아이코 공주]]와 [[아키히토]] 상황과 [[미치코 상황후]], [[마사히토]] 친왕과 [[하나코 비]] 등은 가족관계가 원만하므로 해당하지 않는다.] * [[통일교]] [[문선명]] 일가 - 문선명 본인도 이혼 및 재혼. 결혼 생활 중 불륜으로 낳은 혼외자식 2명.[* 문희진, 박사무엘.] 자식 중 6명이 이혼함. 장남의 알콜 • 마약 중독, 가정폭력, 갑질. 3녀의 불륜 및 사생아 출산. 3남의 갑질 및 폭행, 재산 먹튀. 7남의 패드립 및 총기 숭배 논란. 4녀, 3남, 4남, 7남은 부모와 연을 끊고 삶. 6남의 투신 자살 논란. 10남 7녀의 자녀 중 장래 후계자 전무. 통일교 내부 파벌 싸움과 분열. * [[조선일보]] 일가 - 조선일보 인수자이자 일가의 먼 조상인 [[방응모]]는 친일 행적이 있고, 사장 [[방상훈]]과 차남 방정오는 [[장자연 사건]]에 연루되었고, 전 코리아나호텔 사장 [[방용훈]]은 자식들과 함께 아내를 폭행에 시달리게 하여 죽게 했다. 사장 방상훈의 손녀이자 방정오의 장녀는 운전기사에게 갑질하여 비난을 받았고, 이에 조선일보는 침묵으로 일관하다 아버지 방정오가 결국 대국민 사과를 해야 했다. * [[유병언]] 일가 * [[장윤정]]의 가족: [[장윤정 친족 재산탕진 논란]] 문서에 잘 나와 있다. 이 때문에 장윤정은 친가와는 거의 절연하다시피 했고, 장윤정의 남편 [[도경완]]은 처음엔 복권 당첨자 같다는 비아냥을 받았으나, 이후엔 이런 가정불화까지 감수하며 결혼을 결정한 [[성인군자]] 같다는 씁쓸한 평가를 받았다. * [[삼국지]]에 나오는 원씨네 가족 - 특히 [[원소(삼국지)|원소]] 사후의 원씨 형제. * [[오(삼국시대)|오나라]] 황실 - [[이궁지쟁]] 문서로. * [[서진]]의 황족들 - [[팔왕의 난]] 문서로. * [[육조시대]] [[유송]] 왕조 - 단 한 줄 요약하자면, '''남자 친척은 죽이고 여자 친척은 겁탈하는 가문'''. 물론 정상인도 나오긴 했지만 얼마 안 되었고, 슬프게도 유송의 뒤를 이은 남제도 유송 못지않게 막장이었다. 이후 들어선 양나라도 막장이었지만, 그래도 앞서 나온 두 왕조보다는 나았다. * [[수문제|양견]]의 아들들 - [[수양제|양광]] 포함. * [[겐페이 전쟁]] 시기의 [[미나모토]] 집안. 특히 [[미나모토노 요리토모]]가 [[미나모토노 요시나카|사촌]]이랑 [[미나모토노 요시츠네|친동생]]을 담궈버린 게 유명하다.[* 사실 미나모토는 그 이전에도 이후에도 내분이 이어진 집안이다.] * [[박정희]] 일가([[박근혜]], [[박근령]], [[박지만]] 등 [[박정희]]와 [[육영수]]의 자식 3남매와 [[신동욱(1968)|신동욱]]) - 1979년,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이 [[김재규]] 중앙 정보부장에 의해 [[10.26 사건|피살된]] 이후 자신들에게 넘어간 [[육영재단]]의 운영권을 두고 범죄 조직, 용역업체를 동원해 두 차례씩이나 싸움을 벌였으며, 이 과정에서 박지만의 살인 교사, 범죄 개입 의혹이 나도는 등 상당히 시끄러웠다. 뿐만 아니라 한때 육영재단 이사장직을 역임했던 박근혜의 여동생인 박근령은 재혼한 남편인 신동욱과 함께 언니 박근혜를 사사건건 방해하였거나 박근혜를 맹렬히 비난하였다.[* 박근령이 류청 [[풍산그룹]] 회장과 이혼 이후 신동욱과 [[재혼]]하려고 하자 박근혜는 여동생 박근령이 신동욱과 재혼하려는 것에 대해 결사반대하였다.] 그리고 박지만은 [[김영삼 정부]] 및 [[김대중 정부]] 시절에 상습적으로 사창가에서 [[마약]] 범죄를 저지르다가 6번이나 구속되었던 마약사범이었고, 박근령은 여러 망언과 폭언들로 비난을 받은 바 있고, 육영재단 이사장 시절에도 부정부패와 범법 행위를 저지르는가 하면, 2018년에는 사기죄 혐의로 대법원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다. 박근령의 [[재혼]]한 남편인 신동욱은 여러 극우적 언행들과 많은 논란들로 인해 아내 박근령과 함께 정신나간 부부 취급을 받았다. 박근혜는 정치인 시절에 비판과 논란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제18대 대통령이 되어서 성공하나 싶었지만, 대통령 집권 기간 내내 여러 논란과 사건사고들, 부패와 무능함으로 국민들의 분노를 자아내어 결국 2016년 [[제20대 총선]]에서 자신이 속한 [[새누리당]]이 완패하면서 완전히 국민들로부터 민심마져 잃어버림과 동시에 동년 [[가을]]에 터진 대한민국 헌정 사상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최악의 정치 스캔들]]로 인해 이듬해인 2017년 3월, 헌법재판소의 탄핵 선고를 받고 대통령직에서 쫓겨나게 되어 [[정치인]]으로서 완전히 파멸했다. 그나마 박정희와 전처인 [[김호남]] 소생의 [[장녀]]인 [[박재옥]]과 박근혜, 박지만, 박근령, 박재옥의 사촌누나/언니이자 박정희의 형 [[박상희]]와 형수 [[조귀분]]의 딸인 [[박영옥]][*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부인이다.][* 다만 박영옥과 박계옥, [[박준홍]] 등 박상희와 조귀분의 자녀들도 박정희와 육영수의 자녀들처럼 부모가 사망한 이후에 콩가루 집안 수준으로 싸워대지 않아서 그렇지 이들 자식 3남매들도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 특히 박상희의 외동아들인 박준홍은 그 동안 뻑하면 사고를 치며 매형 김종필과 누나 박영옥과 박계옥, 어머니 조귀분의 속을 썩일 정도로 행실에서도 문제가 많은 인물이었는데, 자세한 건 [[김종필/사건사고 및 논란]], [[박준홍]], 박상희 문서로... 다만 박준홍은 비리 혐의로 [[교도소]]에 갔다 온 후 말년에 노환으로 죽어가는 누나 박영옥, 매형 김종필 부부와 화해하고 누나 박영옥이 사망했을 때 누나의 장례식에서 [[상주(장례)|상주]] 역을 담당하는 등 어느 정도 개념 있는 행보를 보였다.], 육영수의 여동생, 박정희의 [[처제]]이자 박근혜와 박근령, 박지만의 작은이모 [[육예수]], [[육영수]]의 언니, 박정희의 처형이자 박근혜와 박근령, 박지만의 큰이모 육인순의 딸, 이종사촌언니/누나인 [[홍소자]]는 현재 이들과 달리 별다른 구설수나 논란거리 없이 조용히 살았거나 살고 있지만,[* 박영옥은 2015년에 노환으로 투병 중 사망했다. 이어 박재옥도 2020년에 타계했으며, 육예수와 홍소자는 아직 모두 생존 중이지만, 이들도 나이가 무척 많은 고령의 노파들인지라(육예수 - 1929년 생, 홍소자 - 1939년 생) 박영옥과 박재옥처럼 언젠가 노환으로 임종할지도 모른다.] 이들 박정희 가문과 육영수 가문의 여인 4명은 박근혜, 박지만, 박근령 등 박정희 - 육영수 소생의 자식 3남매들과는 거의 남남 수준으로 거리를 두었거나, 1979년 암살당한 박정희와 1974년 [[문세광]]이 저지른 [[박정희 저격 미수 사건|총격 테러 사건]]에 휘말려 사망한 육영수 여사가 남긴 국가 재산들을 놓고 일으킨 그들의 싸움에 불개입으로 일관했다. 그나마 박지만과 박근령은 현재에 와서는 논란과 비판거리를 일으키지 않고 어느 정도 개선되었지만, '''최악의 국정농단 사태를 초래하고 [[구치소]]에 투옥된 박근혜는 여전히 [[답이 없다]]'''[* 현재는 사면되어 사실상의 고향인 [[대구광역시]]로 낙향해서 거주 중이다.]. * [[전두환]] 일가 - 전두환은 [[12.12 쿠데타]]와 [[5.17 쿠데타]]를 일으켰고, [[5.18 민주화운동]] 때 유혈 진압을 주도했으며 이에 대해 사과를 하지 않고 있다.[* 결국 본인이 사망하기 전까지도 끝까지 사과 한마디 없이 사망해 죽기 전에 아들을 통해 뒤늦게나마 사과의 뜻을 전한 절친 [[노태우]]보다도 인식이 훨씬 좋지 않다. 전두환의 손자 [[전우원]]이 사죄의 뜻을 전한 것도 할아버지의 사망으로부터 1년도 더 지난 후의 일이다. 게다가 MBC PD수첩의 취재에 응하면서 집안 실태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아내 [[이순자]]와 동생 [[전경환]]은 비리를 저질렀고, 자식들의 경우를 보면 위의 박정희 일가 자식들처럼 인성이 영 안 좋은데, 장남 [[전재국]]은 시공사와 북스리브로 사장으로 있으면서 [[횡령]] 및 배임을 저질렀고, 차남 [[전재용]]은 두 번 [[이혼]]하고 배우 [[박상아]]하고 세 번째로 [[재혼]]했으며, [[전효선]]은 [[서경대학교]] [[교수]]로 있으면서 예습을 안 해 왔다는 이유로 예습 안 한 학생들을 강의실 밖으로 쫓아낸 뒤 결석 처리하여 논란이 일었다. * [[네팔]] 왕가 - [[비렌드라]] 국왕과 아이슈와라 왕비가 [[디펜드라]] 황태자의 결혼을 반대하자 격분한 [[디펜드라]]가 술을 마시고 [[네팔]] 왕실 연회장에서 총기를 난사하고, 자신도 권총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무엇보다 [[존속살해|부모를 아들이 직접 죽였기 때문에]] 가장 극단적인 케이스이자, 다시 같은 일이 벌어지지 말아야 하는 참극. [[비렌드라]], [[디펜드라]], [[네팔 왕실 학살]] 문서로. * [[모나코]] 공국을 통치하는 그리말디 가문 - [[http://blog.daum.net/ydiana1234/18095682|#]] [[모나코]] 문서로. 아예 13세기 이후로 결혼 실패의 저주가 흐르는 집안이다. * [[예카테리나 2세]], [[표트르 3세]] 부부와 [[파벨 1세]] - 가정 폭력을 휘두르는데다가 국정을 무능하게 이끌던 표트르 3세는 부인 예카테리나 2세의 쿠데타에 의해 제위에서 쫓겨난뒤 의문사, 부부의 아들인 파벨 1세는 아버지를 쫓아낸 어머니와 평생 다투었고 파벨이 표트르의 친자식이 아니라 예카테리나 2세의 정부에게서 난 핏줄이라는 소문이 당대부터 돌았다. 예카테리나 2세는 싫어하던 아들 대신 손자인 알렉산드르에게 제위를 물려주려 시도하나 알렉산드르의 거절로 무산. 어머니를 증오한 파벨은 즉위하자 마자 여자가 러시아 제국의 제위에 오를 수 없도록 법을 뜯어 고쳤다.[* 다만 이는 시대적 필요도 존재했는데 예카테리나 2세까지만 해도 차르 계승은 지명제라서 차르가 지명하면 아내가 즉위하는 것도 가능한 시대였다.(예시로 표트르 대제 사후 즉위한 이는 그의 아내였다.) 문제는 이렇다 보니 힘 좀 있으면 즉위하는 것도 가능해서 앞서 말했듯 예카테리나 2세 역시도 그런 식으로 즉위했고 때문에 당대 볼테르는 이를 두고 '점령제' 라고 비웃었을 정도로 또 러시아의 귀족들도 이건 좀 아니다 싶을 정도로 러시아의 계승방식이 후졌던건 사실이다. 물론 프랑스와 혈연적 근친도가 없다시피했던[* 보통 살리카 법은 프랑스 혈통의 왕조에서 나왔다. 애초에 살리카 법에 근거한 계승 방식부터가 프랑스왕 필리프 5세가 침소붕대하여 만든것이라...] 로마노프 왕조에서 살리카 법을 도입한 것은 정말 파벨 1세가 어머니를 싫어했기 때문일 수는 있지만...[* 이것과 관련해서는 또 파벨 1세의 부계가 독일계인 것과 연관짓기는 한다.]] * [[이반 4세]]의 가족들 - 이반 4세가 워낙 성질이 괴팍한 나머지 임신한 며느리가 얇은 복장을 했다고 폭행해서 [[유산(의학)|유산]]하게 만들고 그걸 두고 아들이 불만을 가지자 때려죽였다(...) 결국 얼마 안 가 류리크 왕조는 단절되고 로마노프 왕조가 열린다. * [[최충헌]]&[[최우]]&[[최항]]&[[최의]] - 4대에 걸쳐 [[무신정권]]을 연장시켜(60년) [[고려]]를 막장으로 몰아넣은 최악의 역적들이다. * [[구용서]]의 가족 - '''친가, 외가, 처가가 모두 악질 [[친일반민족행위자]]와 연계되었다.''' 아버지 구연수(具然壽, 1866~1925)는 [[을미사변]] 당시 [[우범선]]의 부하로서 일본인 낭인들을 안내하고 시신 소각을 감독했으며, [[일진회]]의 어용시위를 조장해 고종 퇴위에도 관여했고, [[한일합방]] 직후에는 [[조선총독부]] 경무총감부의 유일한 조선인 [[경무관]]이자 중추원 참의를 역임했다. 뿐만 아니라 아내는 무려 '''[[송병준]]'''의 외손녀였다.[* 가끔씩 송병준이 구용서의 외할아버지라고 언급하는 기사가 있는데, 정확히는 '''처외할아버지''', 즉 처의 외할아버지다.] 어머니 사카이 와키는 우범선의 처제[* 구용서의 아내가 우범선의 아내의 여동생이었다. 그리고 우범선의 아내는 [[우장춘]]의 어머니이기도 한데, 우장춘도 친일 행위와는 무관한 삶을 살았으며, 오히려 유명한 [[생물학자]]로서 가문의 영광이 되었다.]였기에 이모부도 악질 친일파였던 셈이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히도 본인은 어떠한 친일 행위에도 참여한 적이 없다.[* [[조선은행]]의 도쿄 지점에서 근무하긴 했으나 이 정도로는 [[친일인명사전]]에 올라오지 않는다. 시인 [[이상(작가)|이상]]이 한때 조선총독부에서 공무원으로 일했음에도 친일인명사전에 오르지 않은 것과 비슷하다.] * [[임택근]] 아나운서의 가족 - 임택근은 여자 관계가 상당히 문란했다. [[손지창]]은 아예 아들로 인정을 하지도 않았고, [[임재범]] 역시 정실 부인 소생이 아니다. *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 가족 - 프로이센 2대 국왕인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는 프로이센 역대 국왕들 중에서 '''최악의 남편이자, 막장 아버지'''이었다. 아내 [[하노버의 조피 도로테아|조피 도로테아 왕비]][* 조피 왕비는 영국 국왕이었던 [[조지 1세]]가 어머니랑 강제로 이혼하여 오빠 [[조지 2세]]와 함께 아버지를 원망했다고 한다.]를 폭행하고, '''자기 자식들에게 무자비하게 폭행을 가했다.'''[* 특히 삼남 [[프리드리히 대왕]]과 장녀 빌헬미나 공주가 피해를 많이 입었다.] 심지어 장남 프리드리히 루트비히 왕자의 세례식 때 강제로 머리에 왕관을 씌워서 머리에 생채기가 나도록 죽게 만들거나 차남 프리드리히 빌헬름 왕자가 대포 소리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황당한 이유로 대포를 쏴서 쇼크사에 이르게 만들었다. 이 때문에 가족들에게 증오를 받았고,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가 사망하자마자 가족들 전체 다 국민들과 함께 기뻐했다. * [[프란츠 요제프 1세]] 가족 - 프란츠 요제프 일가는 존재 자체가 '''콩가루 집안의 대명사'''이다. 프란츠 요제프 1세 본인은 국민들에게 존경받는 선량하고 성실한 군주였지만, 가정사는 '''[[막장 드라마]]를 초월한 환상적인 콩가루 집안'''이었다. 동생 [[막시밀리아노 1세]]는 멕시코 황제가 되었다가 총살, [[엘리자베트 폰 비텔스바흐|아내 시씨]]는 엄격한 가풍에 적응하지 못하고 자식들을 내팽겨친 채로 여행만 다니다가 [[암살]], 어머니 [[조피 대공비]]는 자식들 교육한답시고 엄격하게만 키우기만 하지, 외아들 [[루돌프 황태자|루돌프]]는 이런 할머니와 부모님 밑에서 자라면서 정신적으로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았고 특히 아버지인 요제프 1세, 아내인 스테파니와 매우 심각한 갈등을 겪다가 외도녀와의 충격적인 동반자살, 후계자로 선택한 조카인 [[프란츠 페르디난트]]는 [[제1차 세계대전|전대미문의 대전쟁]]의 서막을 [[사라예보 사건|자신의 죽음으로 열었다.]] 손녀딸은 사민당원과 사귀다가 황족 신분을 버리는 자유로운 영혼이었던 건 덤. 오죽하면 요제프 본인도 "나는 운이 없는 놈이야!"라고 셀프 디스를 했다는 에피소드가 있을까? 심지어 프란츠 요제프 1세는 이런 비극적인 가족사를 연속으로 겪고도 86세까지 장수했으니 '''[[악운|보통이 아니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로... * [[헐크 호건]]의 가족 * '''[[김일성]]&[[김정일]]&[[김정은]] 등 북한 독재일가''' - 상술한 최씨 4대와 민병석 부자도 따위로 만들 정도로 극악한 악행을 저지른 것은 말할 필요도 없으며, [[김일성 암살설]] 같은 괴소문까지 돌 정도로 가족 구성원 간의 불화가 매우 심한 데다가 비정상적인 관계도 여럿 있다. 다만 현재 김정은과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은 김정은이 요직에 앉힐 정도로 사이가 좋으므로 예외. * 응게마 일가 - 2대째 [[적도 기니]]의 대통령을 역임한 집안인데, 초대 대통령인 [[프란시스코 마시아스 응게마]]는 별명이 '아프리카의 [[폴 포트]]'가 별명이었을 정도로 극악무도한 독재자였고[* 얼마나 악랄했는지 그가 집권할 동안 인구가 30만 명 남짓이던 적도 기니에서 '''그 어떠한 전란도 없이''' 5만 명이 죽고 10만 명이 해외로 도피하여 인구가 24만 명이 될 정도였다. 참고로 응게마가 집권한 기간은 고작(?) 11년이었다.], 조카인 [[테오도로 오비앙 응게마 음바소고]]는 그런 응게마의 최측근으로서 악명 높은 [[정치범수용소]] '블랙 비치' 교도소의 소장을 역임하며 수많은 정치범들에 대한 고문과 처형을 명령한 악인이었다. 그런데 삼촌인 마시아스 응게마가 조카인 오비앙의 막내동생이 수개월간 밀린 임금을 줄 것을 요청하자 응게마는 가차없이 그 조카를 처형하도록 명령했고, 이에 분개한 오비앙은 삼촌에 대한 충성심을 접고 [[쿠데타]]를 일으켜 삼촌을 몰아내고는 적도 기니의 새로운 대통령이 되었으며, 삼촌을 군사재판에 회부한 후 처형시키고는 무덤도 공동묘지 근처 구덩이에 던져놓고는 표식도 없이 대충 파묻는 것으로 처리했다. 참고로 오비앙 응게마는 2023년 현재까지도 '''44년'''째 현역 독재자로 집권하고 있다. 심지어 삼촌의 사생활도 막장 그 자체였는데, 응게마의 첫째 아내는 10대 소년과 불륜을 저지른 게 발각되어 이혼당했고, 응게마는 둘째 부인과 결혼한 후에도 첩을 두다가 첩과 사랑에 빠져 정실부인과 이혼하고 첩과 다시 결혼했는데, 셋째 아내와도 사이가 좋지 않아 부부끼리 한 방에 자는 적도 거의 없던 것은 물론이고 [[가정폭력]]을 일삼았던 데다가 심지어는 국민들에게 아내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 것도 금지시키기까지 했다. * [[민병석(1858)|민병석]] & [[민복기]] 부자: 2대가 다른 체제[* [[일제강점기]] & [[대한민국]]]에서 최고위직[* 궁내부대신 & 대법원장]을 역임하며 악행[* [[한일합방]] & [[인민혁명당 재건위 사건]]]을 주도했다.[* [[이용구]] & [[이석규(1910)|이석규]] 부자, [[조병갑]] & [[https://ko.wikipedia.org/wiki/%EC%A1%B0%EA%B0%95%ED%9D%AC|조강희]] 부자도 다른 체제(여기서는 [[조선]] & [[일제강점기]])에서 악행을 저지른 부자들이지만, 적어도 이들은 2대가 최고위직을 역임한 사람까지는 아니다.][* 그나마 매국노의 후손이 최고위직에 오른 경우는 민복기를 제외하면 사실상 없으며, 나머지 매국노 후손들은 '''모두''' 해방 후 일제강점기 시절의 입지를 완전히 잃었다. 정미칠적 [[이재곤]]의 아들 [[이순용]]이 내무부 장관에 오르긴 했으나 애초에 이순용은 [[한국광복군]]과 협업한 독립운동가였기에 논외.] * [[정윤회]]&[[최순실]] 일가: 정윤회와 최순실은 현재는 이혼. [[정윤회 국정개입 의혹|비선실세 의혹]]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통해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악의 국정농단 사건이 드러났으며, 딸인 [[정유라]]도 희대의 교육 특혜 비리를 저지르다가 [[덴마크]]에서 체포되었다. 일단 정유라부터 '''딴 사람도 아니고 자기 엄마인 최순실에게 셀프 [[패드립]]을 날리고''', 게다가 정윤회와 최순실 간의 관계도 대단히 나쁜데, 그 과정에서 벌어진 일도 매우 복잡하다. 그나마 정윤회가 전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인 [[정우식(배우)|정우식]]은 평범한 배우 활동을 하는 듯 했지만, 이 쪽도 정윤회가 방송사에게 특혜를 강요했다는 의혹이 있다. 정윤회와 정우식의 관계도 이전부터 매우 험악한 편이라서 정우식은 이 특혜가 자신도 모르게 이루어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 마디로 여기서 언급된 3가지 유형에 모두 속하는 셈. *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와 가족들: 나폴레옹의 형제들은 재능은 그저 그러면서도 정치적 야심만큼은 대단해서 나폴레옹과 권력 싸움을 계속했다. 이는 나폴레옹이 혈족에게 제대로 지원받지 못하고 사실상 자신의 능력만으로 정치를 해야 하는 상황을 만들었다. 두 아내와의 관계도 매우 나빴는데, 첫번째인 [[조제핀 드 보아르네|조제핀]]은 인품은 선량했지만 사치가 심하고 바람도 심하게 피워서 결국 이혼했고, 두번째인 [[마리 루이즈]]는 처음부터 강제로 한 정략 결혼이라서 순탄치가 않았다. 결국 나폴레옹이 몰락하자 관계도 끝난다. 정작 나폴레옹 본인도 지독한 [[바람둥이]]여서 여자가 여럿 꼬여 있었고, 직접 아들을 2명이나 뒀다. 그나마 끝까지 나폴레옹을 지지하고 따라 준 가족은 아이러니하게도 그와는 혈연 관계가 없었던 의붓자식(조제핀이 전남편 사이에서 낳은 자녀들)인 [[외젠 드 보아르네]]와 오르탕스 보아르네 남매 뿐이었다. 유일한 적통인 [[나폴레옹 2세]]의 경우 나름대로 친부 나폴레옹을 좋게 생각하긴 했지만, 너무 어릴 때 헤어진 뒤 다시는 만나지 못해서 제대로 된 관계고 뭐고 없었다. 이 콩가루 집안의 성격은 그 뒤에도 이어져서, [[나폴레옹 3세]]는 명목상으로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조카(나폴레옹의 동생인 [[루이 보나파르트]]의 아들)로 알려져 있지만 유전자 검사 결과 친모인 오르탕스가 다른 남자와 만나서 낳은 자식임이 밝혀졌다. * [[고구려]] [[유리명왕]]과 아들들: 유리명왕 문서로... 이에 대해 [[김부식]]은 [[삼국사기]]에서 '아비가 아비답지 못하고 자식이 자식답지 못한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하였다. * 베이클랜드 가문: 세계 최초의 인공 [[합성수지]]인 [[베이클라이트]]를 만든 레오 베이클랜드가 이끌던 가문이다. 이 가문의 상속자인 브루스 베이클랜드는 아내 바바라 몰래 아들의 여자친구랑 [[불륜]]을 저질렀고 이 때문에 아내랑 별거를 하게 되었다. 남편에게 버림받은 고통을 잊기 위해 바바라는 아들 안토니에게 많이 의지하게 되었다. 하지만 나중에는 그 정도가 아들을 연인으로 여길 정도로 매우 심해졌고[* 심지어 아들에게 동성 연인이 생기자 이를 질투해 그 동성 연인을 유혹해 둘 사이를 갈라놓기까지 했다.] 결국 바바라는 그녀의 엄청난 집착에 괴로워한 자기 아들 안토니에게 잔인하게 살해당하고 만다. 게다가 안토니는 어머니를 죽인 혐의로 감옥에 들어갔다가 출소한 후에는 할머니까지 죽이려고 했고 결국 다시 감옥에 들어가 그 안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 [[마츠카타 히로키]]와 자녀들 : 아버지는 '''일본판 [[신성일]]'''이라고 불릴 정도로 여성 편력이 심했고, 이는 아들 중 하나에게도 이어져 '''불륜 현행범으로 잡히기도 한다'''. 하필 여동생이 소개시켜준 여자를 냅두고 불륜하던 거라 여동생과 거의 의절까지 갔다. * [[이재선(1959)|이재선]]과 [[이재명]] - 해당 문서로... 둘은 결국 이 생애에서는 화해하지 못했다. * [[말론 브란도]]의 집안 - 아내도 자식도 사생아도 많았던 말론 브란도다. 그 중 압권은 심각한 [[우울증]] 환자인 [[타히티]] 혼혈 딸 샤이엔의 말만 듣고 애인을 죽여버린 장남 크리스천. 정작 애인을 죽이고 난 후 샤이엔의 상태에 대해서 알게 되자 후회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게 샤이엔은 [[유복자|당시 만삭]]이었다. 결국 샤이엔도 그 아기가 5살 때 자살해버렸다. * 조선 [[선조(조선)|선조]]의 집안 - [[광해군]]은 어머니로 모셔야 할 [[인목왕후]]보다 9세 연상이었다.[* 다만 원래 내명부의 수장인 왕비는 비워두면 안 되는 자리여서 [[영조]]도 60 넘은 나이에 새왕비를 들였다.] 또한 [[덕흥대원군]]에서 선조, 그에서 [[정원군]], [[인조]]로 이어지는 4대는 그야말로 '''[[답이 없다]]'''. 또한 [[인조]]도 [[소현세자|자기 아들]]의 얼굴에 물건을 집어던지는 만행을 저질렀다.[* 다만 이는 [[야사(역사)|야사]]다.] * [[조비]]와 남매들 - 조비는 동생 [[조식(삼국지)|조식]]을 못살게 굴었다.[* 단, 조식은 조비와 계승 문제로 얽혀 있어서 좀 그럴 만한 사유가 있긴 하다.] [[조창]]도 형 조비를 알현하고 얼마 안 지나 갑자기 의문사를 당했다. 누이 [[청하공주]]는 [[하후무]]에게 시집보내라고 아버지 조조에게 부추겨 나중에 조조가 후회하게 만들었다. [[덕양향주 조씨]]가 첩 때문에 남편 [[하후상]]에게 외면받자 그 첩을 죽여버리는데, '''[[하후상]]이 첩의 무덤까지 파서 슬퍼해''' [[네크로필리아]]라는 놀림을 받게 만들었다. 그리고 조비는 [[곽여왕]]의 모함만 듣고 [[문소황후]]를 죽여버린다. 여기에 더해 누이인 [[헌목황후 조씨]]와 헌제를 겁박해서 끝내 황제 자리를 찬탈하였다. * [[마우로 이카르디]]의 집안 - 이카르디는 그의 친가와 거의 연락하지 않는데 이게 모두 다 [[불륜]]으로 결합한 현 아내 완다 때문이다. 완다가 대놓고 시댁 식구들과 남편을 이간질시키는 건 물론, 자기 시누이에 대한 악성 소문을 퍼뜨리고 다닐 정도. 그리고 마침내 자신은 물론 남편의 경력까지 끝장내려고 하고 있으나, '''본인들은 모르고 있다'''. 완다는 궁지에 몰리자 기어코 [[입페미]]가 되어버리기까지 했다. * [[델레 알리]] - 델레에게는 4명의 이부 남매들이 있는데 모두 각자 다 아버지가 다르다. 심지어 '''델레의 친부는 델레 친모가 델레를 배고 있던 사실조차 몰랐다'''고 한다. 친모는 델레를 잘 키우기는커녕 알코올 중독에 빠져버려 델레는 결국 친모와 격리돼 친구 집에 얹혀살게 된다. 다행히 친구네 집안 사람들이 정말 잘해줘서 사이가 친가족 못지않게 매우매우 좋다.[* 다만 정식 입양은 안했다. 친구 아빠가 사업가인데 혜택 받으려고 입양한다는 시선이 싫었다고...] 한편 친모는 갑자기 나타나 계약에 개입하려고 했고 이게 법정 공방으로까지 가서 델레가 매우 짜증냈다. 지금도 델레는 친모와 이부남매들에게 도리상으로 생활비를 보내주긴 하지만 직접 접촉은 전혀 안하고 있다. 다만 친부와는 저런 사연을 감안해 연락을 하고 있다. * [[엠마누엘 아데바요르]]의 집안 - [[장윤정]]의 [[아프리카]] 버전이나 다름없다. 해당 문서로... * [[머라이어 캐리]]의 친정 - 미국판 장윤정. 해당 문서로... * [[박수홍]]의 집안 - 자신의 친형 가족이 박수홍의 매니저 노릇하며 그가 데뷔부터 지금까지 벌어들인 100억을 웃도는 재산을 가지고 온갖 부동산을 사들이고, 재산을 쌓고, 명의도 박수홍의 명의가 아닌 본인들 명의로 설정하고, 심지어 그 조카들도 자기 재산도 아닌 삼촌의 돈으로 사치를 부렸다. 그리고는 한 푼도 그 재산을 넘겨주지도 않았고, 박수홍의 편을 든 가족은 한 명도 없었으며 친형 일가는 해당 폭로가 밝혀지자 [[미국]]으로 도피했다고 한다. 이것 말고도 박수홍이 진지하게 만남을 갖던 연인과 이별하게 된 것도 그렇고 여러모로 박수홍의 인생에서 도움되기는 커녕 태클만 걸고 있다. 다만 박수홍의 부모는 장남이 차남에게 벌인 짓을 모르고 살았다고 하니 정상참작의 여지가 있어도 비판을 피하긴 힘들 것으로 보였으나 결국 박수홍과 그 형 & 형수 내외는 서로 법정에서 선전포고하기에 이른다. 허나 어머니는 과거 박수홍이 어릴 적에 두부 심부름 늦게 갔다왔단 이유로 두부를 박수홍의 얼굴에 던진 적이 있었고, 대질 조사 과정에서 부친은 폭언을 내뱉고 검찰 출석 때는 아예 폭행까지 저지른 것으로 확인되어 그 정상참작의 여지마저 사라졌다. 자세한 것은 [[박수홍 횡령 피해 의혹 논란]] 항목으로. * [[안정환]]의 집안 - [[이혜원(1979)|이혜원]]과 결혼하기 전 어머니와의 관계를 의미한다. * [[놀리토]]의 집안 - [[스페인]]판 [[안정환]]. 해당 문서로... * [[라이언 긱스]]의 집안 - 참고로 긱스는 [[가해자가 된 피해자]]이기도 하다. 해당 문서로... * [[디에고 마라도나]] - 본인이 인정한 [[사생아]]만 2명이고, 친권 소송 중에 있는 사람들도 아직 몇 명 있다. 그래서 차녀 지아니나가 '''아예 이럴 거면 애들로 축구팀을 짜라'''고 화를 낼 정도. * [[마리오 발로텔리]] - [[가나]]에서 [[이탈리아]]로 이민 온 친부모는 어릴 때 병약했던 마리오의 치료비를 감당할 돈이 없어 동생과 함께 입양을 보냈고, 마리오는 동생과 함께 현지인 발로텔리 일가로 입양돼 국가대표팀 축구선수까지 됐다. 친부모가 그제야 나타나 돈을 요구하자 마리오는 강력하게 이들을 거부했다. 그럼에도 발로텔리가 [[맨체스터 시티]]로 이적하자 친부모는 몰래 [[영국]]까지 따라왔다. 그러나 발로텔리도 이탈리아인 애인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자기 딸을 한동안 딸로 인정하지 않았다. * [[이은석(범죄자)|이은석]]의 집안 - 부모가 어느 정도로 악랄했냐면 형이 동생의 범행을 알았을 때 동생을 이해한다고 한 것은 물론, 심지어 '''[[미국]]에서는 이은석의 살인이 [[정당방위]]로 판결되어 [[무죄]]를 선고받았을 것이다'''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였다.[* 형뿐만 아니라 동창들도 이은석의 형과 입장이 비슷했다. 결국 당대로서는 사형선고를 받아도 모자랄 범죄인데도 사정이 감안되어 [[무기징역]]이 내려졌다.] 참고로 형도 부모에게 시달렸지만, 동생보다는 그래도 덜 시달렸다.[* 부모가 형 쪽만 편애해서는 아니고 그냥 형 쪽이 좀 더 부모에게 반항해서 부모도 반항 안 하는 동생 쪽을 학대했고, 특히 아버지 쪽은 정말로 형 쪽을 지나치게 편애했다.] 그런데 부모만 자식들을 학대한 게 아니라 부부간에도 사이가 엄청나게 나빴다.[* 이유는 사랑 없는 중매혼이었던 데다가 남편 쪽의 잦은 출장 및 출타+적은 봉급+성격차+나이차+아내 쪽의 과한 욕심이 맞물렸기 때문이다.] 심지어 부모라는 작자들도 둘 다 정상인이 전혀 아니었다.[* 아버지 쪽은 전형적인 군인스타일(직업 자체가 [[대한민국 해병대]] [[군인]]이었다. 이은석의 어머니는 군인이라는 점을 보고 결혼했는데, 당시가 군사정권 시절이라 영부인 자리를 노리고 결혼한 거였다고... 하지만 해병대 출신인 이상 그럴 일은 없었고, 그마저도 전역해버려 그 대신이라고 선택한 게 자식들의 출세였다고...)+원칙주의+자기중심적+가부장적+나르시시즘+내로남불+이기주의+결벽증, 어머니 쪽은 [[사이비 종교]] 신자(그래서 남편을 사탄이라 욕한 적이 있고 자식들에게 회개 기도를 강요하기도 했다.)+자존심 강한 성격+원칙주의자+욕구불만과 그에 따른 좌절과 분노+히스테릭+스파르타식 교육][* 이런 막장 인간이 된 이유도 가관인데, 이들도 이들 못지않은 [[막장 부모]] 밑에서 컸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들 뒤에 숨겨진 진짜 원흉들은 조부모들과 그 친척들이다. 실제로 이은석의 형이 동생의 구명활동을 벌일 때 친척들은 모두 모른 척 했다고 한다. 이쯤 되면 친척 전체가 콩가루 집안.] 그나마 자식들은 서로 관계가 좋았다. * [[안토니오 카사노]] - 아버지가 부재중이라 [[한부모 가정]]에서 커 축구선수가 되고 나서야 아버지가 찾아오자 욕까지 하면서 쫓아냈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카사노 본인도 별명이 [[카사노바]]였을 정도로 사생활이 상당히 문란했다. * [[미키 바추아이]] - 애인이었던 여성에게 사생아의 양육비를 제대로 안 줬다고 고소당했는데, 그녀의 말에 의하면 바추아이는 그 아이의 친부임을 부정한다고 한다. 그 여성을 만나기 전에 다른 여성과의 사이에서도 아이를 봤다. * '''[[조형기]], [[조민기]]''' - 이 둘은 사촌형제로 각각 '''[[조형기 음주운전 뺑소니 시신유기 사건|음주운전 및 뺑소니 사건]], [[조민기 성범죄 사건|자신의 제자와의 사건]]'''에 말려들어 몰락하였다.[* 조형기의 경우 풀려난 뒤로 한동안 잊혀졌으나, [[인터넷]]의 발달로 이 사건이 재조명되어 입지가 점점 좁아지다 [[조민기|사촌 동생]]이 [[대한민국의 미투 운동|미투 사건]]에 말려듦과 동시에 연예계에서 사실상 매장되었다. 그 후 [[조민기|사촌 동생]]이 [[자살|스스로 죽음을 택했다]].] * [[제이크 로버츠]]의 집안 - 제이크 로버츠의 아버지 그리즐리 스미스는 애인의 12살 짜리 딸 폴라를 강간하여 제이크 로버츠를 낳았고, '''즉 그리즐리 스미스는 제이크 로버츠의 아버지 겸 할아버지이자 어떤 의미로는 매제가 된다. 그리고 폴라는 제이크 로버츠의 누나이자 엄마가 된다'''. 훗날 폴라는 그리즐리 스미스의 강간으로 인해 딸 조린 스미스까지 낳게 되는데 '''이렇게 되면 조린은 제이크 로버츠의 여동생이자 조카가 된다'''. 그러나 이런 막장 가정 환경 속에서도 제이크 로버츠는 꿋꿋하게 성장하여 세계적으로 유명한 프로레슬러가 되었다. * [[이탈리아 통일|이탈리아 통일운동]] 시기 이탈리아 각국의 왕공실들 - 이탈리아 통일운동 과정에서 멸망한 모든 나라의 세습군주들이 통일을 주도한 [[사르데냐 왕국]]의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국왕]]과 혈연관계였다. * [[바텐베르크의 공녀 앨리스]]의 사위들과 [[필립 마운트배튼|아들]] - 구 독일 왕족/귀족이었던 사위들은 나치에 가담하였고, 아들은 연합군의 일원으로 나치와 싸웠다. * [[이규현(피겨 스케이팅)]], [[이규혁]]: 이규현은 과거 음주운전을 하다 행인을 쳐 사망에 이르게한 전과가 있고 나중에 미성년자인 제자 강간미수를 저질렀다. 그의 형 이규혁도 성폭행 의혹이 있고 아버지 이익환도 과거 강간미수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전과가 있다. 유일하게 어머니 이인숙만 사건사고가 없다. * [[르펜]] 일가 - [[프랑스]] [[극우]] [[정당]] [[국민전선(프랑스)|국민전선]]을 이끌던 [[장 마리 르펜]]은 정계에서 은퇴하며 딸 [[마린 르펜]]에게 당권을 물려줬는데, 마린 르펜이 [[중도우파]] 노선을 수용하여 당을 이전보다 온건하게 만들자 장 마리 르펜은 딸을 비난하며 갈등을 빚었고, 마린 르펜이 아버지를 출당시키면서 장 마리 르펜은 본인이 만든 당에서 친딸에 의해 쫓겨나고 말았다. * [[2차 세계 대전]] 직후 세계에 공산주의가 퍼지던 시절에는 멀쩡했던 집안들이 이념 차이로 인해 한순간에 콩가루 집안이 되는 사례들이 매우 많았는데, 공산주의인 자녀가 자신들한테 반대되는 부모를 반동분자로 몰아서 죽게 만드는 식인 경우가 많았다. 특히 [[6.25 전쟁]] 당시 북한군 점령지에서는 자기 부모를 밀고해서 인민재판으로 죽게 만든 일들이 많았다. * 중국에서는 [[홍위병]]들이 판치던 시절에는 이 홍위병들이 자기 부모에 대해 자신들 또는 당에 조금이라도 반대된다는 이유로 상부에 고발해서 죽거나 장애가 생기게 만드는 식의 콩가루 집안들이 많았다. == [[콩가루 집안/창작물|픽션 속의 콩가루 집안들]]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콩가루 집안/창작물)] === [[프로레슬링]]에서 === 프로레슬링에서도 콩가루 집안 각본들이 꽤나 많은데, 주로 형제, 자매끼리 그런 사례들이 많고, 사촌간에도 그러하고, 부모와 자녀 사이에 그리되기도 한다. 프로레슬링에서의 콩가루 집안 각본들은 갈등과 화해가 반복되는 경우가 많이 있다. 그러나 이들도 실제로는 원만한 가족이거나, 각본상 가족이라도 실제로는 매우 친한 경우가 많다. 진짜 콩가루 그 자체인 [[헐크 호건]]은 예외이다. 보통 프로레슬링에서 콩가루 집안 각본이 나올 경우 어느 한쪽 또는 구성원 모두한테 싱글로서의 푸쉬를 주거나 하이 미드카더 또는 메인이벤터로 키우기 위해 그러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이 경우는 비혈연 [[태그팀]]이나 [[스테이블(프로레슬링)|스테이블]]에 대해서도 어느 한명 혹은 구성원 모두한테 싱글로서의 푸쉬를 주거나 하이 미드카더 또는 메인이벤터로 키우기 위해 태그팀이나 스테이블을 해체 시키는 일들이 많다. 특히 [[WWE]]에서는 이런 콩가루 집안 각본이 잊을만하면 나오곤 했다. 프로레슬링에서의 대표적인 콩가루 집안 각본 사례들은 다음과 같다. * [[맥맨]] 일가: WWE에서 대표적인 사례. 부모와 자녀 사이, 사위와 장인 사이에 대립과 화해가 반복적으로 일어나곤 했었다. 물론 실제로는 매우 원만한 집안이다. * [[파괴의 형제]]: 역시나 WWE에서 대표적인 사례들중 하나. 대립과 화해를 반복적으로 해왔지만 실제로는 사실상 의형제다. * [[더들리 보이즈]]: 서로 이복형제들인 이들 또한 특히 핵심 3인방인 버버레이, 디본, 스파이크는 서로 대립과 화해를 반복했는데, 이들의 태그팀 기술인 3D에 처음 맞은 사람도 바로 [[스파이크 더들리]]다. * 사모아 선수들: 서로 사촌지간인 [[더 락]]과 [[리키쉬]]가 대립과 화해를 반복하기도 했고, 이들 다음 세대들인 [[우소즈]]와 [[로만 레인즈]]도 사촌끼리 서로 대립과 화해를 반복했다. * [[하디 보이즈]]: 형인 매트가 동생인 제프한테 열폭하다가 공격하며 갈라졌다가 화해하고 다시 재결합 하기도 했다. * E&C: 형인 [[에지]]가 우승 욕구에 눈이 멀어서 동생인 [[크리스찬]]을 배신했다. * 스모킹 건즈: 동생인 [[빌리 건]]이 형인 [[바트 건]]을 배신했다. * 도미노, 체리: 각본상 남매로 체리는 동생이 속한 [[태그팀]]인 듀스&도미노 태그팀의 매니저였으나 동생인 도미노가 팀 파트너인 듀스랑 합심해서 누나인 체리를 내쳤고, 체리는 이 팀과 대립중이었던 팀인 제시&페스터스에 붙었었다. * 롤러 부자: [[제리 롤러]]가 가족들을 잘 챙기지 못해 상처받고 자란 아들인 브라이언이 아버지한테 자식이 받은 상처를 알기나 하냐면서 화를 내며 갈라섰다. * 로즈 형제: [[골더스트]]와 코디가 대립과 화해를 반복했으며, 특히 골더스트는 과거 코디 이전에 또다른 동생인 [[블루 미니]]랑도 대립과 화해를 했었다. 반면 블루 미니와 코디는 그렇다할 묘사가 없다. * 디비아시 부자: 롤러 부자와 비슷하게 가족한테 무책임했던 아버지인 [[테드 디비아시]]로 인해 상처받은 주니어가 아버지를 폭행할 정도로 큰 갈등을 맺었다. * 로스 게레로스: 조카가 삼촌을 배신한 케이스인데, 조카인 차보가 삼촌인 에디와 태그팀 전선에서 활동하면서 자꾸만 손해를 보다가 결국 폭발한 차보가 악역 전환하면서 삼촌을 배신한 경우였다. * 스타이너 브라더스: 동생인 스캇이 챔피언 욕심에 형인 릭을 배신했다. * 미스테리오 부자: 아들인 [[도미닉 미스테리오|도미닉]]이 아버지인 [[레이 미스테리오|레이]]를 배신했다. == 관련 문서 == * [[헬리콥터 부모]] [각주] [include(틀:포크 누락 문서)] [[분류:콩가루 집안]][[분류:포크 누락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