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몽골 제국]][[분류:조직관리]] ᠻᠦᠷᠦᠯᠳᠠᠶ (Хуралдай/Quriltai) [목차] == 개요 == [[중세]]~[[근대]]에 [[칸]]의 명에 의해 개최되었던[* 물론 칸의 자리를 계승하는 문제는 예외, 특히 쿠빌라이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독자적으로 쿠릴타이를 개최할 수도 있다.] [[몽골]]의 정책 결정 기관이자 회의이다. [[흉노]], [[선비족]], [[오환]], [[거란]] 등도 쿠릴타이가 있었다. 현재도 [[헝가리]]에서 전통 보전 차원에서 주기적으로 열리고 있다.[* 대한민국도 참여한다. [[https://www.facebook.com/photo/?fbid=122457363221054&set=pcb.122457756554348|#]] 카자흐의 [[고려인]] 관련으로 참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유목민족 한가운데에서 태극기가 휘날리는 것이 워낙 [[병신같지만 멋있어|병신같지만 멋있다]] 보니 역사 커뮤니티에서는 고려는 몽골의 부마국이었으니 [[칸국|고려 칸국]]으로 몽골제국의 정당한 후계자라는 드립부터 우리는 유목민족을 지배했다며 고구려, 발해, 환국(...) 드립까지 나온다.][* 참고로 일본과 핀란드가 참여한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실제 기마민족 자격으로 참여하는 한국과 달리 관전자 수준의 위치로 참여한다. 그리고 참여 빈도수 역시 한국보다 현저히 낮다.] == 상세 == 새로운 칸을 선발하는 일이나 법을 제정하는 일, 주변 국가에 대한 침략 계획을 수립하는 일 등 중요한 사안은 거의 쿠릴타이를 통해 이루어졌다. 실제로 [[몽골 제국]]의 모든 칸은 공식적으로 쿠릴타이를 통해 선출되었다. 다만 [[유목 제국]]의 특성 상 온갖 곳에 퍼져있는 여러 부족들의 수장들을 모아 집합시키는 것은 영 어렵고 번거로운 일이었던지라, 칸의 재위 기간 동안 겨우 두세 번 정도 개최되는 것이 보통이었다. 대충 5~6년 정도의 간격을 두고 이루어지는 행사였기 때문에 칸의 숙소(오르두) 근처 목초지에서 큰 규모로 열리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쿠릴타이가 끝난 다음에는 약 일주일 동안 이어지는 축제[* 토이(toi)라고 부른다.]가 열렸다. 한자로는 忽里勒台, 忽鄰塔[* 원조비사] 등으로 표기되어있으며, 페르시아어 자료에는 قوريلتاى로 표기되어있다. '모이다'를 뜻하는 몽골어 동사 quri-에 접미사 lta가 붙어 명사형이 된 것으로, 직역하자면 '모임'이라는 단순한 뜻이 된다. 다만 단순히 모이기만 하는 것은 아니고, 정확히는 가족이나 혈연끼리 모이는 일을 칭한다. 몽골에 복속된 시기의 고려왕들도 황제의 사위 자격으로 참석하였다. [[킵차크 칸국]]의 소 쿠릴타이에는 [[러시아]]의 [[보야르]]들이나 종속된 국가의 사신들이 오기도 했다. 한민족은 유목민족도 아니긴 하지만, 고려시절에 칭기즈 칸의 혈족과 고려 왕족이 결혼했었기 때문에, 고려 왕족들이 정식으로 원나라 쿠릴타이에 참석하였었다. 가령 [[충선왕]]이 쿠릴타이에 참석하여 [[원무종]]의 즉위를 지지하기도 했다.[* 다만 충선왕은 '''[[쿠빌라이 칸]]'''의 외손자였던 관계로 목소리가 더 컸던 감도 있다. 충자돌림의 대부분의 군주나 공민왕의 아내(노국대장공주)를 보면 대부분이 방계왕족의 자식인 반면 충렬왕은 유일하게 현직 황제의 딸과 결혼하여 그 사이에서 나온 충선왕은 다른 이들보다 원나라 내에서 목소리가 클 수 밖에 없었다.] 쿠릴타이, 특히 후계자 선정을 위한 쿠릴타이가 개최되면 모든 일이 올스톱되는지라 [[오고타이 칸]]의 죽음으로 유럽 정복이 멈췄고 [[몽케 칸]]의 죽음으로 남송 정복이 미뤄지기도 했다. 게다가 쿠빌라이와 아라크부카의 사례처럼 적당히 명분만 있다 싶으면 기존에 선출된 지배자를 무시하고 자기 파벌 사람들로만 구성된 쿠릴타이를 열어 즉위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