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쿠바의 역사)] [include(틀:제1차 세계 대전 참전국)] [include(틀:제2차 세계 대전 참전국)] ||<-3><#00BFFF><:> {{{#fff {{{+2 '''쿠바 공화국'''}}}[br]'''República de Cuba'''}}}|| ||<:><-2>[[파일:쿠바 국기(1902-1906, 1909-1959).svg|width=150]]||<:>[[파일:쿠바 국장.svg|width=120]] || ||<#b2202c><:><-2> {{{#fff '''국기'''}}} ||<#b2202c><:> {{{#fff '''국장'''}}} || ||<-3><#ffffff><:> '''{{{#00BFFF Viva Cuba Libre}}}[br]{{{#b2202c 자유 쿠바 만세}}}''' || ||<-3><:>[[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480px-Cuba_%28orthographic_projection%29.svg.png|width=300]] || ||<-3><#00BFFF><:> {{{#fff '''1902 ~ 1906'''[br]'''1909 ~ 1959'''}}} || ||<#b2202c><-2><:> {{{#fff '''독립 이전'''}}} ||<#b2202c><:> {{{#fff '''공산화 이후'''}}} || ||<#002664><-2><:> [[미국 통치기 쿠바|{{{#fff '''재쿠바 미군사령부 군정청'''}}}]] ||<#002A8F><:> [[쿠바|{{{#fff '''쿠바 제2공화국'''}}}]] || ||<#00BFFF><:> {{{#fff '''위치'''}}} ||<-2> [[쿠바]] || ||<#00BFFF><:> [[국가(노래)|{{{#fff '''국가'''}}}]] ||<-2> [[바야모 행진곡]] || ||<#00BFFF><:> [[수도(행정구역)|{{{#fff '''수도'''}}}]] ||<-2> [[아바나]] || ||<#00BFFF><:> {{{#fff '''정치체제'''}}} ||<-2> [[대통령제]] || ||<#00BFFF><:> {{{#fff '''국가원수'''}}} ||<-2> [[대통령]] || ||<#00BFFF><:> [[언어|{{{#fff '''언어'''}}}]] ||<-2> [[스페인어]] || ||<#00BFFF><:> [[통화|{{{#fff '''통화'''}}}]] ||<-2> [[쿠바 페소]] || [목차] [clearfix] == 개요 == [[쿠바]]에 존재했으나 [[쿠바 혁명]]으로 무너진 옛 국가. [[쿠바 제1공화국]]이라고 한다. 현 쿠바에서는 이 시기가 [[스페인]]에 이어서 [[미국]]이 식민통치한 시기라며 신식민 공화국(República Neocolonial)이라고 부르고, 쿠바 반공주의자들이나 망명한 쿠바인에게는 자유쿠바([[쿠바 리브레|Cuba Libre]])라고 불린다. 이 시기의 쿠바 공화국 국장과 국기는 (국기의 파란 줄이 조금 진해진 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 역사 == 1898년에 일어난 [[미국-스페인 전쟁]] 이후 [[미국]]은 [[쿠바]]에 [[군정]]을 실시하고 3년뒤인 1902년 쿠바를 [[스페인 제국]]으로부터 독립시켰다. 초대 대통령으로는 쿠바의 [[독립운동]]가이자 [[친미]]주의자인 [[토마스 에스트라다 팔마]](Tomás Estrada Palma)가 선출되었다. 그러나 독립한 쿠바의 헌법에는 미국이 재정·외교문제를 감독할 권리를 주고 플랫 수정안(Platt Amendment)을 승인해[* 미국이 쿠바 국내의 문제에 대해 미국이 개입할 수 있도록 한다, 미국에게 [[관타나모 만]]을 영구 양도한다. 등의 내용이였다.] 완전한 독립국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미국은 쿠바를 [[설탕]] 공급 기지 및 경제적 요충지로 삼았다. 1906년 팔마는 재선에 성공하지만 부정선거 의혹에 휩싸이고 이에 따라 [[반란]]이 일어나고 정부군이 패배를 거듭하고 있었다, 팔마는 미국에 도움을 요청했고, 미국은 이를 빌미로 쿠바를 재점령한다. 1909년 쿠바는 다시 독립하지만, 미국의 영향력은 그대로였다. 1917년에는 [[독일 제국]]의 [[무제한 잠수함 작전]]에서 피해를 입었으며 이에 따라 [[미국]]이 독일에 선전포고한 다음날인 1917년 4월 7일, 독일 제국에 선전포고하였다. 이후 쿠바는 승전국이 되었지만 쿠바에게 돌아온 것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쿠바의 경제는 [[사탕수수]]를 중심으로 한 [[농산물]] 산업과 [[관광]] 산업으로 경제가 꾸준히 발전하고 있었다. 그런데 [[대공황]]이 터지자 미국의 영향이 컸던 쿠바의 경제도 나락으로 떨어졌다. 1933년에는 군사쿠데타가 일어났으며, [[라몬 그라우 산 마르틴]](Ramón Grau San Martín)의 급진적 정부가 들어섰다. 이들은 플랫 수정안을 무효라 선언하고 미국의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나려 하였다.[* 실제로 플랫 수정안은 미국의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회유책으로 1930년대에 무효가 된다.] 그런데 이 정부도 100일만에 [[풀헨시오 바티스타]]를 주축으로한 쿠데타로 무너졌으며 [[카를로스 멘디에타 이 몬테푸르]](Carlos Mendieta y Montefur)의 임시 정부도 바티스타에 의해 무너졌다. 그 이후 대통령인 [[마누엘 마르케스 스털링]](Manuel Márquez Sterling)도 무려 '''6시간'''만에 실각했고 그 뒤 집권한 [[카를로스 멘디에타]], [[호세 아그리 피노 바넷]], [[미겔 마리아노 고메즈]]는 하나같이 임기가 2년을 넘기지 못하고 실각하였으며, [[페데리코 라레도 브루]]의 3년동안의 집권을 거쳐 1940년 [[풀헨시오 바티스타]]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바티스타는 교육 기관 확대, 경제 발전으로 쿠바 국민들의 지지를 받았다. [[제2차 세계 대전]]에는 [[연합국]]의 일원으로 참전하였다. 그리하여 1944년에는 [[라몬 그라우]](Ramón Grau)가, 1948년에는 [[카를로스 프리오 소카라스]](Carlos Prío Socarrás)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으며, 이 기간동안 쿠바의 경제는 크게 발전하여 도시의 중산층이 부유해졌으나 [[빈부격차]]가 심해졌다. 소카라스의 임기 말에 바티스타가 선거를 통해 재집권을 시도하나, 뜻 대로 되지 않자 쿠데타를 일으켜 다시 집권한다... 바티스타의 재집권 이후 경제지표는 발전되었으나[* 이때 쿠바는 [[라틴 아메리카]]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였으며, 일부 [[유럽]] 국가들보다도 더 나은 수준이였다. 실업률이 40%이고 문맹률이 20%대라는 상황을 감안할때 이 당시 부유층은 미국 부자만큼 잘살았고, 혜택받은 중산층들도 왠만한 미국 중산층급으로 잘살았지만 인구의 다수는 후진국 수준으로 먹고살았다는 의미이다.], 빈부격차는 더 심화되고 실업률이 40%까지 오르며 [[비밀경찰]]을 이용한 감시 및 [[부정부패]] 등으로 국민들은 바티스타에 등을 돌렸다. 1954년 바티스타는 정통성을 부여하기 위해 다시 선거를 한다고 하였고, 바티스타가 선출된다. 그러나 이 선거는 [[부정선거]] 의혹이 많았다. 중산층들도 미국과 쿠바를 비교하며 실업문제로 바티스타를 지지하지 않았다. 반면 특이하게도 [[노동조합]]은 끝까지 바티스타를 지지하였는데, 이는 바티스타가 해고와 공장의 기계화를 금지하는 등 노동자들을 우대해준 탓이 크다. 부패한 바티스타 정권은 점차 무능해졌으며, [[쿠바 혁명]]이 일어나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바티스타의 무능함을 파악한 미국이 쿠바 정부군 지원을 중단하는 등 점차 버거워져 갔고, 농촌의 지지를 받으며 기세가 등등했던 혁명무력에 정부군이 점차 밀렸다. 결국 바티스타가 1959년 1월 1일, [[도미니카 공화국]]으로 망명하였다. [[안셀모 알리에그로 밀라]](Anselmo Alliegro y Milá)와 [[카를로스 마누엘 피에드라]](Carlos Manuel Piedra)가 하루씩 정권을 잡았다가 [[피델 카스트로]]에 의해 실각하고 쿠바의 [[자본주의]] 체제는 무너진다. == 역대 대통령 == [include(틀:역대 쿠바 대통령)] [[분류:쿠바의 역사]][[분류:20세기 멸망]][[분류:과거의 독재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