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F2F7B> '''[[룸 술탄국|{{{#ffffff 룸의 술탄}}}]]''' || || 13대 [[알라엣딘 케이쿠바트 2세|케이쿠바드 2세]] || {{{+1 →}}} || 14대 '''클르츠 아르슬란 4세''' || {{{+1 →}}} || 15대 [[케이휘스레브 3세]] || 루큰 앗 딘 킬리지 아르슬란 [[페르시아어]], [[아랍어]] : {{{+1 رکن الدین قلج ارسلان بن کیخسرو }}} [[터키어]] IV. Kılıç Arslan 생애 1237년 ~ 1266년 재위 1249년 ~ 1266년 [목차] == 개요 == [[룸 술탄국]]의 14대 술탄. [[케이휘스레브 2세]]의 차남으로, 본래 [[몽골 제국]]과 권신 페르와네의 지지를 받아 1249년 공동 술탄을 거쳐 1256년 단독 술탄에 올랐다. 다만 1260년대 들어 페르와네의 전횡에 맞서던 그는 결국 전자와 몽골측 총독에 의해 암살되었다. 사후 아들 케이휘스레브 3세가 옹립되었고, 이때부터 룸 술탄들은 완전히 재상과 몽골 총독에 의해 가려져 실권을 거의 지니지 못하게 되었다. == 즉위 == 1246년 부왕의 사후 형 [[케이카우스 2세]]의 즉위에 불복하여 카라코룸으로 향한 그는 [[구유크 칸]]의 대관식에 참석, 대칸의 환심을 사서 술탄으로 봉해졌다. 2년 후 토카트로 돌아온 그는 술탄을 칭하였고, 1249년 대칸의 칙령을 내세워 재상 이스파하니를 소환한 후 처형하였다. (클르츠 아르슬란 4세) 후임 재상 젤랄레틴 카라타이는, 형제들의 분란을 종식시키고자 케이카우스-클르츠 아르슬란-케이쿠바트 모두를 술탄으로 인정하는 협정을 맺게 하였다. 아나톨리아 중북부를 흐르는 크즐으르막 강을 경계로 서쪽은 케이카우스, 동쪽은 클르츠 아르슬란과 케이쿠바트의 영토가 되었다. == 페르와네의 전횡과 죽음 == [[카이세리]]를 중심으로 말라키아와 시바스 일대를 다스리던 클르츠 아르슬란은, 1254년 케이쿠바트가 사망하자 재차 케이카우스와 군사 충돌을 벌였으나 패배하였다. 다만 그를 지지하던 권신 페르와네 (무이뉫틴 쉴레이만)는 [[훌라구 칸]]과 공모하여 바이추의 케이카우스 토벌을 이끌어내었고, 후자가 축출되자 클르츠 아르슬란은 단독 술탄이 되었다. 다만 케이카우스의 잔존 세력은 여전히 저항하였고, 1261년에야 셀주크-몽골군은 콘야를 장악할 수 있었다. 이후 클르츠 아르슬란은 술탄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 [[킬리키아 아르메니아 왕국]]령 [[실리프케]]를 점령하였다. 한편 페르와네는 기존 케이케우스의 영토를 술탄이 아닌 자신의 측근들에게 배분하며 사실상 독자 세력을 구축하였고, 이에 클르츠 아르슬란이 반발하며 둘은 대립하게 되었다. 1265년 페르와네는 [[트라페주스 제국]]에게서 [[시노프]]를 점령하며 군부의 지지를 얻어내었다. 이를 바탕으로 페르와네는 몽골의 룸 총독 나브쉬 노얀에게 클르츠 아르슬란이 비밀리에 [[바이바르스]]와 접촉하며 몽골에 저항할 군대를 양성 중이라 고발하였다. 훌라구 칸의 허가 하에 나브쉬 노얀은 클르츠 아르슬란을 연회에 초청하여 암살하였고, 페르와네는 어린 왕자 [[케이휘스레브 3세]]를 옹립하였다. [[분류:룸 술탄]][[분류:폐위된 군주]][[분류:1237년 출생]][[분류:1266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