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헤르손주 부주지사[br]{{{+1 키릴 세르게예비치 스트레모우소프}}}[br]Кирилл Сергеевич Стремоусов''' || ||<-2>{{{#!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스트레무소프.jpg|width=100%]] }}}|| ||<|2> '''출생''' ||[[1976년]] [[12월 26일]] || ||[[소련]]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도네츠크주]] 골리몹스키[br](現 [[러시아]] [[도네츠크 인민공화국]] 골리몹스키) || ||<|2> '''사망''' ||[[2022년]] [[11월 9일]] || ||[[러시아]] [[헤르손주(러시아)|헤르손주]] [[게니체스크]] || || '''정당''' ||[include(틀:데르자바)] || || '''학력''' ||서우크라이나 국립대학교 || || '''직업''' ||정치인 || [목차] [clearfix] == 개요 == '''키릴 스트레모우소프'''는 [[러시아]], [[우크라이나]]의 [[정치인]]이다. == 생애 == 1976년 12월 26일 우크라이나 SSR 도네츠크주 골리몹스키 출신이다. 서우크라이나 국립대학교를 졸업한 이후 수산업에 종사했고 2007년에는 키예프 수산업 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2009년 위원장 직을 사퇴하고 [[헤르손]]으로 이주해 타브리아 TV 회사를 설립했으며 기독민주연합에 가입했다. 2011년 미국 [[시카고]]로 가 잠시 일하다가 자아를 찾고자 [[체 게바라]]의 여정에서 영감을 받아 라틴아메리카 횡단 여행을 했다. 그 이후 친러 성향 블로거로 활동했다. 2013년 12월 친 [[빅토르 야누코비치]] 단체인 '대통령을 위하여'를 설립했고 2014년 3월 1일 헤르손주 청사를 점거했다.[* 우크라이나 측에서는 [[헤르손 인민공화국]]을 설립하려는 의도였다고 주장하나 신빙성은 낮다.] 2016년 1월 28일, 우크라이나 환경자위센터를 설립했다. 2017년 2월 7일, 스트레모우소프 등 6명의 남성들이 당시 [[헤르손]] 시장이었던 볼로디미르 미콜라옌코의 사무실에 들어가 그를 보도로 내던졌다. 이는 헤르손의 제설 작업이 미비해 여러 시민들이 보도에서 걷다가 미끄러져 골절당한 것에 대한 항의 차원으로, 이 사건 이후 제설 작업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자신의 딸의 팔을 잡고 이리저리 돌리는 영상으로 2017년에 유명세를 탔다. [[https://www.thesun.co.uk/news/18540829/ukraine-youtuber-swung-baby-legs-russian-governor-putin/|#]] 2018년 10월 8일, 스트레모우소프가 [[우크라이나 사회당]] 헤르손주당 위원장으로 임명되었다. 2019년 1월 18일, 폭력 사건에 연루돼 노비 덴 신문에서 해고되었고 사회당에서 제명되었다. [[2019년 우크라이나 최고 라다 선거]]에서 제82선거구에 무소속 후보로 출마했으나 1.74%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낙선했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대유행 당시 격리 및 백신 반대 운동을 전개했다. 2020년 지방선거에서 헤르손 시장에 출마했지만 1%대 득표율로 낙선했다. 2021년 친러 정당인 데르자바에 입당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발발하자 [[평화와 질서를 위한 구국위원회]]를 설립했다. 이후 [[헤르손 군민정청]]의 설립을 도왔고 민정부장관으로 부임하였다. [[우크라이나 점령 지역의 러시아 편입에 관한 국민투표]]를 조직하고 준비했으며 러시아 편입 이후 [[헤르손주(러시아)|헤르손주]]의 부지사를 역임했다. 2022년 11월 9일,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2023년 10월 18일, 오데사 법원에서 스트레모우소프에게 종신형을 선고했다. 사망자에게 종신형이 선고된 이유는 우크라이나 정부가 스트레모우소프의 사망을 확인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분류: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사망자]][[분류:1976년 출생]][[분류:2022년 사망]][[분류:러시아의 정치인]][[분류:도네츠크 인민공화국 출신 인물]][[분류:자동차 사고로 죽은 인물]][[분류:의문사한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