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당 황후)] [목차] == 개요 == 태목황후 두씨(太穆皇后 竇氏, ? ~ ?) [[당]] [[고조(당)|고조]]의 [[황후]]이자 당 [[태종(당)|태종]]의 모후이다. 그 외의 자녀로는 은태자 [[이건성]]과 위왕 이현패(李玄霸)[* 생몰년이 599년 ~ 614년으로 당 건국 전에 사망], 소왕 [[이원길]]과 평양소공주(平陽昭公主)가 있다. 아버지는 기숙공(杞肅公) 두의(竇毅)이고 어머니는 [[북주]]의 황녀인 양양장공주(襄陽長公主)이다. == 생애 == 두씨는 어린 시절을 북주의 황궁에서 지내며 외숙부 [[무제(북주)|무제]]의 총애를 받았는데 어려서부터 책을 좋아하고 기억력이 좋았다. 무제는 정략결혼의 일환으로 돌궐의 공주를 아내로 맞이하고도 그녀를 소홀이 대했는데 두씨는 이를 보고 외삼촌에게 말했다. "중국은 아직 통일되지 않았고 돌궐의 힘은 막강합니다. 그러니 외삼촌께서는 황후 마마께 잘 대해주셔야 합니다. 돌궐의 도움이 있어야 강남과 북제에 맞설 수 있지 않겠습니까." 무제는 어린 조카의 충고를 받아들였다고 한다. 581년 [[문제(수)|양견]]이 북주를 멸하고 [[수나라]]를 건국하자 두씨는 외숙부를 구할 수 없는 것을 한탄하며 자신이 남자가 아닌 것을 분개했다. 두씨의 부모는 이런 딸의 비범함을 일찍부터 알아보고 그에 걸맞은 신랑감을 고르기 위해 만전을 기했다. 그리고 대문에 두 마리의 공작을 그린 그림을 걸어두고 화살로 공작의 눈을 정확히 맞추는 사람에게 딸을 주겠다고 했다. 수십 명의 젊은이가 도전했지만 모두 실패하고 유일하게 성공한 것이 이연이었다. 두씨는 이연과 결혼해 4남 1녀를 두었다. 그녀는 남편에게 자주 조언을 하며 정치 고문 역할을 했다. >'''''이외에 이연이 이전부터 천하의 큰 뜻을 품고 있었다는 것은 부인 두씨의 말에서도 확인된다. 당시 이연은 얼굴에 주름이 많았는데, 수 양제가 대놓고 그를 '할머니'라고 부르며 농을 하자 기분이 많이 상한 이연은 집에 돌아와 의기소침해 있었다. 두씨가 그 연유를 묻자 이연은 "황제께서 나를 보고 할머니 얼굴이라고 했다네."라고 말하자 두씨는 곧바로 그를 향해 "이것은 길조(吉兆)입니다. 당신께서는 당국공이라는 봉작을 계승하셨는데, '당(唐)은 곧 집을 뜻하는 '당(堂)'과 발음이 같으니 할머니의 얼굴이라는 것은 집의 주인(당주(堂主), 즉 당(唐)의 주군(主君))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라고 축하의 말을 했다. 두씨가 '집주인(당주-당시 풍속에 따르면 노부인이 한 집안의 중심이 된다)'라는 말로 이연에게 축하 인사를 한 것은 이들 부부 사이에 이미 공통의 비밀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임사영 <황제들의 당제국사> 일찍부터 두씨의 소문을 들었던 수나라의 상서 장손치는 동생 장손성에게 "그런 여인이 낳은 아이는 범상치 않을 테니 사돈을 맺도록 하라."고 충고했다. 장손성은 자신의 딸 장손씨[* [[문덕황후 장손씨]]]를 두씨의 아들 [[태종(당)|이세민]]과 혼인시켜 사돈을 맺었다. 현명했던 장손씨는 두씨에게도 인정을 받아 원만한 고부관계를 쌓았다. 두씨는 남편이 제위에 오르는 것을 보지 못하고 죽었다. 다만 봉호가 당국공비(唐國公妃)인 것을 보아 남편이 당국공이었을 때까지는 생존한 모양이다. 고조 이연은 즉위한 뒤 두씨에게 목(穆)이라는 시호를 내리고 다시 황후를 두지 않았다. == 참고문헌 == 임사영, 류준형 옮김, 『황제들의 당제국사』, 푸른역사, 2016. == 둘러보기 == [include(틀:구당서)] [include(틀:신당서)] [[분류:수당시대/황후]][[분류:생년 미상]][[분류:몰년 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