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통가인]][[분류:통가의 총리]][[분류:1824년 출생]][[분류:1879년 사망]][[분류:투포우 가문]] [[파일:800px-Tēvita_ʻUnga.jpg|width=30%]] [* 근대화 시절의 일본과 비슷하게, 서구권과 비슷한 인상으로 그려졌다. 후손들의 사진을 보면 이 초상화는 실제 통가인의 인상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Tēvita ʻUnga 테비타 웅가는 통가의 [[왕세자]]이자 [[총리]]였다. 1824년 아버지 [[조지 투포우 1세|타우파하우]]와 후궁 Kalolaine Fusimatalili 사이에 태어났다. 아직 전통적 통가의 부족 혼례를 따르던 시절이라, 왕은 여러 첩실을 두었다. 이후 통가가 근대화하면서 서구식으로, 정식 왕비의 자녀만 계승권을 인정하고 [[사생아]]의 계승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그는 계승에서 배제되었다. 그러나 투포우 1세의 왕비인 [[살로테 루페파우]]의 두 아들이 모두 일찍 죽으면서, 통가엔 왕위 계승권자가 없어졌다. 1875년 통가 헌법을 도입하면서, 사생아의 계승 권한은 없다고 해뒀지만 테비타 웅가만은 예외적으로 왕세자로 책봉되었다. 1835년, 11세의 나이로 피피타 바바우(Fifita Vavaʻu)와 결혼하여 세 자녀를 두었다. 장녀는 엘리시바 공주[* ʻElisiva Fusipala Taukiʻonetuku. 1850-1889]였다. 그 외에 장남 윌리아무 왕자[* ʻUiliamu ʻUelingatoni Ngū Tupoumālohi 1854-1885]와 차남 날레소니 왕자[* Nalesoni Laifone. 1859-1889]를 두었다. 이후 피피타가 죽자 테이사 팔루(Teisa Palu)와 재혼하였고, 후처와 자녀는 없었다. 1876년 1월 1일부터 통가의 왕세자가 되었고, [[통가 총리]]를 지내다가 1879년 뉴질랜드 오클랜드에서 사망하였다. 그의 사망 후에 그의 장남인 윌리아무가 왕세손이 되었다. 그러나 윌리아무도 1885년에 사망하면서, 그 동생인 날레소니가 왕세손이 되었으나 그 역시 1889년에 사망하였다. 엘리시바 공주도 같은 해에 사망하면서, 엘리시바 공주의 아들인 [[조지 투포우 2세|시아오시]]가 왕세증손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