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다른 뜻1, from=게페르트, other1=축구선수, rd1=제바스티안 게페르트,)] [include(틀:역대 서강대학교 이사장)] ---- ||<-2> {{{#fff {{{+1 ''' 테오도르 게페르트'''}}}}}}[br]{{{#fff Fr. Theodor Geppert S.J.}}} || ||<-2>{{{#!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Theodore Geppert.jpg|width=100%]]}}}|| || '''{{{#white 본명}}}''' ||테오도르 게페르트(Theodor Geppert)[* 영어식 표현에 따른 외래어 표기로는 '테오도어 게페르트'다.]|| || '''{{{#white 출생}}}''' ||[[1904년]] [[3월 8일]][br][[독일 제국]] [[베스트팔렌]]|| || '''{{{#white 사망}}}''' ||[[2002년]] [[7월 13일]] (향년 98세)[br][[일본]] [[도쿄]] 로욜라하우스|| || '''{{{#white 국적}}}''' ||[[파일:독일 국기.svg|width=28]] [[독일]]|| || '''{{{#white 학력}}}''' ||아일랜드 [[더블린]] 신학[br]독일 [[베를린]] 동방신학원 일본어[br][[스위스]] [[바젤 대학교]] 경제학/수학 박사|| || '''{{{#white 종교}}}''' ||[[가톨릭]]([[예수회]] 소속 수도사제)|| [목차] [clearfix] == 개요 == [[독일]]의 [[천주교]] [[사제]]. [[예수회]] 소속으로 [[서강대학교]]를 설립하고 초대 이사장을 지냈다. == 생애 == 1904년 [[독일]] 베스트팔렌에서 태어나 1923년 [[네덜란드]] 헤렌버그에서 [[예수회]]에 입회한 뒤 1933년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성품성사|사제서품]]을 받았다. 게페르트 신부는 독일 베를린 동방신학원에서 [[일본어]]를, 더블린에서 [[가톨릭신학]]을 각각 수학했고 1940년 [[스위스]] [[바젤 대학교]]에서 [[경제학]]과 [[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hompi.sogang.ac.kr/s26.jpg|width=100%]]}}}|| ||<:> {{{#fff '''서강대학 설립의 주역들. 좌측 하단부터 반시계 방향으로 테오도르 게페르트 신부, [[케네스 에드워드 킬로렌|{{{#fff 케네스 에드워드 킬로렌}}}]] 신부[* [[서강대학교]] 초대 총장(학장). 훗날 제자 [[조안 리]]와 사랑에 빠져, [[환속]]하여 그녀와 결혼했다.], 헙스트 신부, 진성만 베드로 신부, 프라이스 신부, 데슬렙스 수사'''}}}|| 1954년 한국을 처음 방문했고, [[서강대학교]] 설립 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과 수차례 면담한 끝에 대학 설립 인가를 받아내 1960년 4월 18일 서강대를 개교한 뒤 엄격한 학사관리와 우수 교수 유치 등을 통해 명문 사학의 기틀을 다졌다. 게페르트 신부는 서강대 초대 이사장으로 독일 예수회로부터 자금을 지원받는 등 학교 살림을 챙기는 동시에, 교수로 직접 강단에 서서 [[독일어]]를 가르쳤다. 그의 노력이 바탕이 돼 서강대는 3만여명의 졸업생을 배출한 명문대로 발전했다. 이후 '''서강대가 개교한 지 1년만인 1961년 한국을 떠나 죽기 전까지 줄곧 일본에 머물며 [[조치대학]] 경제학과 교수 겸 [[기숙사]]감 [[수도원]]장 등을 지냈다.''' == 김수환 추기경과의 인연 == [[한국 천주교]] 최초의 [[추기경]]인 김수환 스테파노의 은사이기도 했다. [[일본]] [[조치대학]] 유학생이었던 [[김수환]]이 사제가 되도록 결심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김 추기경은 게페르트 신부에 대해 "사제로서 훌륭했을 뿐 아니라 인간적으로도 자상한 분이었으며, 특히 한국 유학생들에게 늘 자애롭게 대해주었다"고 회고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김 추기경이 학병으로 징집되어 학교를 떠나기 전, 게페르트 신부가 직접 그에게 무사할 것을 기원하는 기도를 올렸다. 그런데 기도 중에 그만 울음을 참지 못하였고, 김 추기경은 게페르트 신부가 자신을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음을 알았다고 회고했다. [[광복]] 후에도 두 사람은 종종 연락을 주고받았다. 김 추기경이 자신의 추기경 서임을 처음 알게 된 것도 게페르트 신부의 전화를 통해서였다. 이후 2002년 게페르트 신부가 향년 98세를 일기로 죽자, 김 추기경은 [[서강대학교/캠퍼스|서강대학교 캠퍼스]] 내의 성당에서 거행된 장례[[미사]]를 직접 집전하여 은사의 넋을 위로했다. == 사후 추모 == 사망 직후 자신이 세운 서강대 내에 안장되었고, 이듬해인 2003년에 그의 동상이 서강대 본관 인근에 세워졌다. 2017년에는 신축된 경제학과 건물을 게페르트 [[남덕우]] 경제관(Geppert Nam Duck-woo Hall)으로 명명했다. 대표적 서강학파이자 전 경제부총리였던 남덕우 전 교수과 함께 붙여진 것이다. [include(틀:문서 가져옴,title=서강대학교/역사,version=66)] [각주] [[분류:독일의 가톨릭 신부]][[분류:예수회 수도자]][[분류:가톨릭 수도사제]][[분류:1904년 출생]][[분류:2002년 사망]][[분류:대학교 설립자]][[분류:서강대학교 재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