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스폴레토 공작)] ||<-3><:>{{{+1 '''Theodicius''' }}}|| ||<-2> '''생몰년도''' ||<(> 미상 ~ 774년 || ||<-2> '''출생지''' ||<(> 미상 || ||<-2> '''사망지''' ||<(> [[파비아]] || ||<-2> '''재위 기간''' ||763년 - 774년 || [목차] == 개요 == [[스폴레토 공국]] 15대 공작. == 행적 == <[[랑고바르드 왕국]]의 역사>를 집필한 8세기 [[수도자]]이자 역사가인 파울 부제에 따르면, [[랑고바르드 왕국]] 최후의 국왕인 [[데시데리우스]]의 친구이자 충실한 가신이라고 한다. 761년 스폴레토 공작 [[기술프]]를 폐위한 데시데리우스는 스폴레토 공국을 2년간 직할 통치하다가 763년에 그를 스폴레토 공작으로 세웠다. 768년, 크리스토포로와 세르지오 추기경이 로마에서 스폴레토로 망명한 뒤 [[대립교황]] [[콘스탄티노 2세]]를 폐위시키는 것을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이들을 파비아 궁정에 보냈고, 데시데리우스는 이들을 도와줌으로써 교황청에 대한 통제권을 얻고자 했다. 그 해 7월 29일, 스폴레토 공국의 두 도시 리에티와 푸르토나의 분견대가 포함된 랑고바르드 군대가 로마에 입성한 뒤 대립 교황 콘스탄티노 2세를 폐위시켰다. 772년 새 교황에 선출된 [[하드리아노 1세]]는 [[프랑크 왕국]]이 반 랑고바르드 정서로 돌아선 걸 눈치채고 친 랑고바르드파의 수장인 아파아르타를 해임하고 아파아르타에게 축출되었던 인사들을 복귀시켰다. 데시데리우스는 외교로 문제를 해결하기로 하고 스폴레토 공작 테오디키우스와 이브레아 공작 툰노, 왕실군 사령관 프란둘라로 구성된 사절단을 교황청에 보냈다. 그러나 하드리아노 1세는 "[[피핀 3세|피핀 왕]]과 [[아이스툴프]] 왕이 맺었던 조약 대로 모든 점령지를 교황청에 넘겨라"라고 요구했고, 협상은 결렬되었다. 테오디키우스는 이후에 더 이상 언급되지 않으나, 학계에서는 774년 파비아로 쳐들어온 프랑크 왕국군으로부터 데시데리우스를 지키기 위해 항전하다가 전사한 것으로 추정한다. 776년 6월 9일 스폴레토 공작이 파르파 수도원에 기증한 사실을 밝힌 문서에서는 후임자인 [[힐데프란트(스폴레토)|힐데프란트]]의 이름만 실려 있다. [[분류:스폴레토 공작]][[분류:774년 사망]][[분류:전쟁 사망자]]